'6.10 백만 촛불집회' 는 예견된 바대로 꼭 그만큼의 성공을 거두었다. 

6월 10일 새벽부터 거대한 콘테이너를 광화문 한복판에 세우고 있는 권력의 저열함을 목격한 뒤 너나 할 것 없이 그날 자정 이후의 치열한 폭력을 예감했을 터였다. 이명박과 어청수의 불온한 상상력은 이토록 거대하며 무식한 의지는 차고 넘친다. 어찌 생각이나 했을까. 선친과도 같은 정주영처럼 거대한 유조선을 가져다 광화문 대로를 막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을까. 자발적인 자제력을 발휘하던 시민들도 자정 이후에는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그날의 대규모 촛불집회는 아슬아슬한 긴장감 속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싸움을 도발하는 상대에게 참을성을 발휘하기란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며칠 전부터 자정 이후의 시간은 평화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불안한 밤이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었으므로.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명박산성'이 세워진 뒤 시민들은 한순간 '왜구'가 되어버렸다. 통치자가 피통치자를 '적'으로 돌려세우는 이 기묘한 광경. 명박산성의 '안'은 어디인가. 정부종합청사와 청와대가 '안'이라면 시민들은 '밖'이다. 시민들이 '안'이라면 청와대와 정부종합청사가 '밖'일 것이다. 순식간에 모든 시민을 '비국민'으로 미끌어뜨리는 저들의 재주는 실로 감탄스럽다. 그러나 실제로 안과 밖의 구분은 이처럼 명확하지 않다. 안과 밖은 늘 비식별역에 위치하고 있기때문에 법-폭력이 들어서고 주권자가 처벌을 가할때만 그 구분이 생겨난다. 늘 우리는 주권자 즉 법-폭력의 언저리에 머무르거나 들어가지도 나서지도 못하는 문턱에 걸쳐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이 세계의 실제 현실이며 2008년 6월 대한민국의 심장부에 가로놓인 명박산성이 이러한 사실을 가시적이고 극명하게 드러내 주었을 뿐이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안'과 '밖'이 문제이다. 그렇다면 6월 10일 우리는 '안'에 있었는가 '밖'에 있었는가. 이순신 장군이 칼을 들고 노려보는 쪽은 시민들이었다. 명박산성 '밖'의 시민들. 그러므로 전경이 방패를 들고 보호해야하는 쪽은 명박산성 '안'의 권력자들. '고소영'과 '강부자'. 땅을 사랑하고 비지니스 프렌들리한 어륀지들이 맞다. '안'에 있는 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밖'의 사태는 소요이자 반란이며 저지하고 분쇄해야 할 명백한 적일 뿐이다. 권력은 '명박산성'이라는 아방가르드한 설치 미술 '쇼'를 통해 시민들의 '분노'를 불러냈지만, 시민들은 이 '분노'의 '밖'에서 '안'을 조롱하는 또 한 번의 '쇼'를 벌인다. 

시민들의 쇼와 분노는 '밖'에 있지만 희망과 변화를 품고 있다. 권력의 쇼와 분노는 분명 '안' 에 있지만 거기에는 답이 없다. 이제 경계는 다시 세워져야 한다. 안과 밖의 구분은 다시 설정되어야 한다. 명박산성의 안은 스스로의 고립이며 이명박이 세상으로 나올 수 없다는 명백한 증거일 뿐이다. 그는 시민들을 밖으로 몰아세우며 스스로 왕따가 되었다.

더 확장해서 생각한다면 이러한 '안'과 '밖'의 구별짓기를 통해 연대의 기준이 새삼 재확립될 수 있다. 우리는 국경과 민족, 성별, 인종이 조장하는 주체와 타자의 경계의 무의미함을 알아야 한다. 경계를 넘어서는 계급의 연대가 필요하다. 이명박은 이런면에서 우리에게 훌륭한 것들을 되새기게 해주는 반면교사이다.



오후가 되자 촛불이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한다. 5시가 되자 시청앞과 광화문은 이미 시민들로 꽉 채워졌다. 벌써부터 명박산성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사태를 논의하기 시작한다. 자연발생한 아고라. 대의민주제가 멈춘 자리에서 직접민주주의가 꽃을 피운다. 5시간이 넘는 토론. 다소 지루한 말다툼. 폭력과 비폭력의 공방. 아고라를 지켜보는 다수의 시민들도 걱정을 한다. 컨테이너 안의 저들은 컨테이너 밖의 시민들이 서로 싸우기를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최종적으로 저항하되 비폭력이어야 한다라는 가장 현명한 답을 얻어낸 시민들. 그 사이 시민들은 몇 배 이상 불어난다. 엄청난 인파와 촛불이 광화문 십자대로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허구와도 같은 부드럽고 유연한 변화가 가능할 정도의 규모이다.

거대한 철과 쇠의 밖에 부드러운 스티로폼 연단이 쌓아 올려진다. 하나둘 시민들이 올라가 명박산성의 안과 밖을 향해 쇼를 벌인다. 노래를 부르고 연설을 한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말을 통해 자신의 분노와 화를 표현한다. 자신들은 꼭 그만큼의 민주주의를 바라고 있다고 힘주어 외친다.

시민들은 알고 있다. 명박산성 '밖'에 놓여 주권자에 의해 노예보다 못한 적으로 취급받는 상황에 대해서. '명박산성'을 단순히 '소통'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권력자의 의지 정도로만 보는 것은 사태를 지나치게 소박하게 보는 처사일 것이다. 40일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는 촛불집회는 이명박이 애초부터 소통할 의사가 없음을 진작에 보여주었다. 이제 소통의 장에 나서도 시민들이 응하지 않을 것이다. 어렵게 장이 마련되더라도 대학생들에게 야코가 죽은 한승수 보다 처참한 광경이 연출되어 괜한 동정심이나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이명박의 무식함과 교양없음은 이미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던가. 또 누가 계란이라도 던지면 전세는 순식간에 뒤집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6월 10일은 정말 많은 인원이 모였다. 경찰과 찌라시들이 발표한 5만이나 7만이라는 숫자는 이제 은폐할 수도 없는 통계정치의 효력 정지를 더욱 노골적으로 증명시켜 준다. 이러한 숫자에 대한 강박은 규율 권력이 시민들 각자의 내면에 파시즘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면을 하나하나 지우려고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이야 말로 파시즘의 본질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알고 있다. 그것이 30만이든 50만이든 70만이든, 자신의 눈과 마음에 비춰진 촛불들의 거대한 파도가 얼마나 커갈 수 있는지를. 안티테제가 진테제로 바뀌어 갈 수도 있는 가능성을. 허약한 대의민주제도가 소중한 5년을 무조건 담보할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을.

6.10 이후 촛불집회는 휴일과 주말을 이용하여 상시적으로 설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40일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는 촛불집회가 이제 자체적인 자제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평화적인 시위를 하루 더 연장하는 매우 슬기로운 결과를 낳았다. 이제 당분간 과열된 폭력시위가 나타날 가능성은 상당히 줄어들었다.(하지만 변수가 있기는 하다. 화물연대의 억눌린 분노가 어느정도인지 아직 거리에서 표현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생존권을 박탈당한 화물연대의 극한 파업은 생존권을 박탈당한 이들이 벌이는 마지막 사투이기 때문에 폭력의 문제조차 윤리적으로 가늠하기 어렵다. 이는 조금 더 두고 보아야 할 문제이다.)



명박산성이라는 설치미술 '쇼'는 '분노'만 남긴채 하루만에 철거되었다. 명박산성은 언제든 다시 쌓아올려질 수 있다. 아니, 이미 예전부터 거기 그 자리에 가려진 채 쌓아올려져 있던 것이 그날 가시적으로 잠시 드러났던 것일 뿐이라는 표현이 더 적확하다. 분노를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동으로 순치시키는 시민들을 보며 희망을 찾는다. 비폭력이되 저항이어야 한다는 시민들의 가르침은 꼭 그만큼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를 아름답게 보여준다.

이순신 동상을 돌려세우지 않는 이상 명박산성의 안과 밖의 구분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 안으로 시민들이 들어간다 해도 어떤 가시적인 변화가 당장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과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꾸 더 모여야 한다. 밖이 안을 육박할 수 있는 힘이 될때까지. 안과 밖이 뒤집혀 쇼와 분노의 사이에 되다만 비극이 아닌 주체와 연대의 희망이 꽃피어날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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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6-12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명박산성에 페인팅 벽화도 그리고 단막 영화도 상영하고...
예전엔 무슨무슨 역 시계탑 아래서 만나요 한 것처럼
광화문 컨테이너 앞에서 만나요 하는 약속의 장소로도 활용하면서
촛불집회가 열린다면 무지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교통체증의 문제가 치명적이지만 장기전으로 돌입할 경우의 상상입니다.
하루만에 철거되면서 상상이 무너졌지만 다행히 5시간의 마라톤 토론이 있었다니
얼마나 다행이고 감동이었는지 모릅니다.
근데, 이젠 그 후의 촛불을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이런 토론도
광장에서 촛불들고 만나 논의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어요.
이번주말에 가능할래나...
화물연대는 그 분들의 생존권이 직결되는 문제라서 어떻게 돌출될지 예상하기 어려운데
이명박 정권이 화물연대의 투쟁방식을 폭력적으로 유도해서 진압하지 않을까
별 생각을 다 해 봅니다.

마늘빵 2008-06-12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촛불행렬사진이 굉장하군요! 저 중의 한 점으로 있었지만 티도 안납니다. -_-

나비80 2008-06-12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 님의 발칙한 상상력은 이명박과 어청수 뺨 때릴 수준이신걸요.^^ 원래는 정말 흉물스러웠던 걸 시민들이 이것저것 붙이고, 바르고, 덧대고, 꼽아서 그나마 볼만하게 해놓았더라구요. 뒤에 말씀하신 부분은 늘 아쉬운 대목이긴 합니다. 연설의 장은 공평하게 제공되지만 파토스가 과도하게 넘쳐납니다. 토론도 난상으로 벌어지긴 하지만 당일 시위의 폭력과 비폭력을 선택하는 공방에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가 할애되고 있는 형국이지요. 직접민주주의를 실험하는 진통이 만만치 않더군요. 인터넷 담론이 거리로 자연스럽게 삼투할 수 있다면 알라딘에서 진지하게 의논할 필요도 있겠습니다. 화물연대 파업이 개시되기 약 한 시간 남았는데 이분들이 지금 워낙 목이 졸린 상태여서 향후 국면을 예상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유가와 화물대란은 유럽과 미국 쪽에서도 상당히 심각한 문제로 드러나고 있더라구요.

아프락사스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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