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강의
다석학회 엮음 / 현암사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원로 서양사학자 노명식은 20세기 한국현대사에서 ‘사상가’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은 함석헌 밖에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함석헌이 평생 ‘선생님’이라고 부른 단 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다석 유영모이다. 두 인물 모두 ‘외래의 목소리로 나를 말하지 않고 제소리를 만들어낸 한국 사상가’라는 평을 듣는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그러나 함석헌과는 달리 유영모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남긴 글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무교회주의자 김교신은 1935년에 쓴 글에서 유영모가 고귀한 사상을 품고 있으면서도 글로써 표현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심한 불평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위대한 사상가이면서도 가슴에 품은 뜻을 글로 써내지 않는 것을 두고 ‘물질적 수전노보다 더 심한 어른’이라고 원망 섞인 불만을 토로했던 것이다. 김교신에게는 유영모가 ‘정신적 수전노’로 비쳐졌을 법하다. 텍스트 없는 한국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리라.

 그러자 제자들이 묘안을 짜냈다. 1956-7년에 걸쳐 행한 일련의 강연을 속기사를 동원해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강연이 행해진지 반세기가 흐른 2006년, 제자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속기록이 한 권의 책으로 훌륭하게 정리되었다. 속기사를 동원하기로 한 제자들의 간절한 마음, 무려 반세기를 묵혔다가 이제야 책으로 풀어내기까지 제자들이 겪었을 심려와 노고를 국외자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유영모는 한글을 하나님이 세종대왕을 통해 우리에게 보내신 계시라고 생각했다. 한글은 진리의 구현이며 한국어는 하나님의 진리가 담긴 도구였다. 그는 한국말에는 진리의 빛이 언제나 빛나니 금강석을 다른데서 찾지 말고 우리말에서 찾는 것이 조국사랑이라고도 말했다.

 과문의 탓인지 모르나, 일찍이 과학성, 합리성을 이유로 한글을 예찬한 사람은 여럿 보았어도, 한글의 위대성을 사상과 종교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찬양한 인물은 유영모 말고는 본적이 없다. 한국말에 대한 지고한 사랑으로 전개된 유영모의 사상은 우리의 정신에 깊숙이 뿌리 내린 진정한 한국 사상이다. 모국어의 보석상자로서 두고두고 후손들의 자랑거리가 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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