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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소년이 온다.
등장인물:
동호- 중3
시신의 성별과 어림잡은 나이, 입은 옷과 신발의 종류를 장부에 기록하고 번호 매김
갱지 쪽지에 같은 번호를 적어 가슴께 핀으로 꽂아 놓음
유족들에게 신원확인 시켜줌 / 신원확인 된 시신이 상무관으로 옯겨지는 걸 장부에 기록
은숙 누나 - 수피아 여고 3학년/ 수피아여고 하복 차림/ 조금 튀어나온 눈이 귀염성있게 동그랗고 양갈래로 땋은 곱슬머리
전대 부속병원에 헌혈하러 왔다가 시민자치가 시작된 도청에 일손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왔다가 얼결에 시신을 맡음
p26 점퍼 주머니에서 부스럭부스럭 카스텔라와 요구르트를 꺼낸다. 성당 아줌마들이 나눠주길래 네 것도 받아왔어.- 배려심있고, 챙겨주고, 자기 일을 꾿꾿히 해내는
선주 누나 – 20대 초반 핏기없는 피부, 가는 목, 야무진 눈매, 또렷한 목소리, 연두색 셔츠/ 충장로 양장점 미싱사 / 헌혈하러 왔다가 / 코피가 잘 나는 체질- 침착하고 단단해보임, 배려하고 섬세하기보다는 털털하고 형 같은 느낌.
진수형- 서울에 대학을 다니다 휴교령으로 내려옴
깊게 쌍꺼풀진 눈, 긴 속눈썹이 여자애처럼 예쁘장
장부에 기록한 인적 사항들을 벽보에 써서 도청 정문에 붙임
정대: 초등학생같이 키가 안 자란 정대
못생긴 정대
단춧 구멍같은 눈에 콧잔등이 번번한 정대
귀염성이 있어서 사람들을 웃기는 정대
공부보다는 돈을 벌고 싶어하는 정대
누나 몰래 신문 수금 일을 하는 정대
누나 때문에 할 수 없이 인문계고 입시 준비를 하는 정대
초겨울부터 볼이 빨갛게 트고 손등에 흉한 사마귀가 돋는 정대
마당에서 배드민턴 칠 때, 제가 무슨 국가 대표라고 스매싱만 하는 정대
천연덕스럽게 누나를 챙겨주려고 칠판 지우개(누나의 학교다닌적 추억)를 책가방에 담던 정대
정미누나: 빠듯한 형편에도 우유를 배달시켜 먹이는 정대누나
화 한번 시원하게 내본 적 없을 것처럼 걸음이 가볍고 목소리가 조용한 사람
방직공장에 다님/ 짧은 단발머리
p38 차갑고 부드러운 헝겊으로 겹겹이 감싼 것 같은 손끝으로 뭔가를 겁내듯 조용히 두드리는 소리....혹시 너, 1학년 교과서 다 버렸어?......먼지 묻은 교과서들과 참고서 몇 권을 안고 나오자 정미 누나의 눈이 커졌다.....세상에 너는 머시매가 어쩌면 이렇게 착실하냐. 우리 정대는 다 내버렸던데.....정대한텐 말하지 마라. 안 그래도 저 때문에 내가 학교 못 다녔다고 눈치보는데, 중학교 검정고시 합격할 때까지만 모른 척해줘. 얼굴에서 무슨 풀꽃 같은 게 연달아 피어나는 것처럼 눈웃음을 짓는 그녀의 얼굴을 너는 멍하게 바라보았다.
엄마: 난리 통에도 대인시장의 피혁 가게에 나가 계심
p42 집에 가자. 물에 빠진 사람처럼 무섭게 손을 끌어당기는 엄마
군대가 들어 온단다. 지금 집에 가자이. 억센 엄마의 손가락을 마침내 다 떼었다.
해지기 전에 와라이. 다 같이 저녁밥 묵게.
아빠: 가죽 원단박스를 나르다가 허리를 다쳐 안방에 누워계심
큰형: 얼굴이 곱고 체형이 작음/ 서울에서 9급 공무원
작은형: 21살/ 어려서부터 공부밖에 몰라 반에서 늘 1등
대학시험에선 거푸 실수를 해 삼수하는 형
얼굴이 큰데다 수염 숱이 무성해서 나이들어 보임
p33 작은형이 제 방에서 영어 단어를 외우는 소리가 들렸다.
줄거리
소년이 온다. 소년은 동호다.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죽은 중3 동호다.동호는 한집에 살던 정대와 시위에 나갔다가 아수라장 속에서 정대의 손을 놓쳤다. 정대가 옆구리에 총을 맞는 걸 봤다. 모로 넘어진 정대를 뒤로 하고 동호는 달렸고 멀리 숨어서 정대의 하늘색 체육복 바지를 얼핏 본 것 같아, 맨발이 꿈틀거린 것 같아 다시 뛰쳐나가려는 순간 한 아저씨가 어깨를 붙들었다. 지금 나가면 개죽음이여. 동호는 정대를 잃었고 정대의 시신을 찾으러 갔다가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수습하는 일을 한다. 동호는 시신이 들어오면 인상착의를 장부에 기록하고 번호를 매기고 유족들에게 신원확인을 시켜주었다. 수피아여고 1학년 은숙 누나와 양장점 미싱사로 일하던 선주 누나는 시신들을 옮기고 물수건으로 닦고 머리를 정돈한 뒤 냄새를 막기 위해 비닐에 싸는 일을 했다. 진수형은 서울에 대학을 다니다 휴교령으로 광주에 내려와 상무관에서 동호가 기록한 인적 사항들을 도청 정문에 붙이고 전체 관리를 맡았다.
2장은 죽은 정대가 서술해 간다.
정대는 죽었다. 군인들은 시신을 날라다가 어딘지 모르는 공터 뒤 덤불 숲에 시신들을 열십자로 쌓아 올렸다. 정대는 아래에서 두 번째 끼어 납작하게 눌려있었다. 시신들의 무더기는 썩어가고 날파리 떼들이 기어다니고 날아 앉는 걸 지켜보며 정대는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누나와 동호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그 후로도 가마니에 덮인 몸들의 탑이 늘어갔고 어느 날 군인들이 석유를 부어 시신들을 모두 불태웠다. 정대는 혼령이 되어 동호를 찾아가려 했지만 동호가 죽었다는 걸 느꼈다.
3장은 5년이 지난 은숙 누나의 이야기다. 은숙 누나는 출판사에서 일한다. 계엄군이 도청으로 들어오던 그날 은숙 누나는 병원으로 숨어 목숨을 구한다. 도청을 빠져나오며 만난 동호를 붙잡지 못하고 놓쳐버린 걸 후회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지만 아무일 없는 듯 도청 분수에 물이 나오는 걸 참지 못해 민원실에 수시로 전화한다. 은숙은 살아남은 자신을 치욕스럽게 느꼈다. 빨리 늙고자 했다. 수배 중인 번역자를 만났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조서를 받으러 갔다가 일곱 대의 뺨을 맞고 왔다. 그녀는 잊으려 한다. 하루에 한 대, 일주일 만에 잊을 거라 결심하지만 여섯 번째 따귀를 잊어야 하는 날 뺨이 아물어 통증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일곱 번째 뺨을 잊을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진수형의 이야기는 4장에서 전개되고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진수형은 감옥에서의 모진 고문으로 인간의 가장 바닥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갈증과 배고픔과 볼펜을 끼워 뼈가 드러나게 하는 고문과 성고문까지. 교도소를 나와서도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술로 전전하다가 결국 자살한다. 진수형이 죽고 유언장과 사진을 발견하는데 그 사진은 동호와 아이들의 나란히 누운 시신의 사진이었다. 계엄군이 도청으로 오던 그날 진수형은 동호가 남은 걸 보고 깜짝 놀란다. 그리고 무조건 숨어있다가 항복하면 죽이지 않을 거니까 항복하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손을 들고 나란히 줄을 서서 나온 항복한 동호와 아이들을 흥분한 장교가 무참히 죽인다.
5장은 20년이 흘렀고 선주 누나의 이야기다. 선주는 열일곱살 공장에서 일하며 성희 언니의 옥탑방에서 한문을 외우고 노동법을 공부했다. 성희 언니는 자주 ‘우리는 고귀해’라고 말했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았고 총을 소지하고 있었으므로 보안부대로 이송되었다. 그들은 간첩지령을 받았다는 각본을 완성하기 위해 하혈 끝에 의식을 잃을 때까지 고문을 멈추지 않았다. 교도소에서 석방되고도 그녀는 평온한 삶으로 되돌아 갈 수 없었다. 그녀는 죽고자 광주로 다시 돌아갔을 때 카톨릭 외벽에 학생들이 붙여 놓고간 사진을 발견한다. 그 사진에서 동호의 죽음을 본다. 그녀는 터질 것 같은 고통의 힘으로 분노의 힘으로 다시 살고자 한다. 선주도 진수와 마찬가지로 죄책감에 시달려며 동호의 혼령이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책임이 있는 거야. 그렇지?
그래서 나에게 오곤 하는 거야?
6장은 동호 어머니의 진술이다. 동호를 찾으러 작은아들과 도청에 갔지만 둘째 아들마저 잃어버릴까 두려워 도청에 들어가려는 아들을 막으며 울면서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동호가 죽고 삼십년이란 세월동안 어머니는 유족회에 나가 시위를 벌이고 아들을 그리워하며, 미쳤다가 시름시름 앓다가 겨울이면 삭신이 얼고 심장이 차가워졌다. 어머니는 동호의 학생증 사진을 오려 간직하고 틈만 나면 들여다 본다.
봄이 오면 늘 그랬드키 나는 다시 미치고, 여름이면 지쳐서 시름시름 앓다가 가을에 겨우 숨을 쉬었다이. 그러다 겨울에는 삭신이 얼었다이.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 다시와도 땀이 안나도록 뼛속까지 심장까지 차가워졌다이.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한강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자신이 살았던 광주의 중흥동 집을 팔고 삼각동으로 이사 가면서 중흥동 집으로 이사 온 사람들이 동호네 식구였다고 동호네는 정대와 정미 누나를 문간방에 세를 주었다고. 소년이 온다는 한강 작가와 아주 가깝고도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한강은 12살에 아버지가 숨겨놓은 광주 민주항쟁의 참혹한 사진집을 보았고 그녀의 연한 부분이 소리없이 깨어졌다. 그녀는 이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학원강사인 동호의 작은형을 찾아가 소설을 써도 되는지 허락을 구한다. 그녀는 동호의 무덤을 찾아가 초를 태우고 묵묵히 들여다 본다.
소년이 온다는 실로 어마어마한 소설이다. 동호로부터 시작해 죽은 정대의 목소리 5년 후의 은숙 누나, 10년 후 자살한 진수형, 20년 후의 선주 누나, 30년 후의 어머니 그리고 지금의 한강으로 전해져 온다. 도청에서 죽은 동호는 그렇게 정대를 통해 은숙 누나를 통해 진수형과 선주 누나 그리고 어머니 한강에게로 걸어온다. 그리고 말한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로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한강은 깊은 고통 속에서 소년을 이끌고 빛으로 나왔다. 그녀의 소설을 통해 깊은 고통의 슬픔을 우리는 함께했다. 너무 고통스러워 한장 한장 종이를 넘기는 일이 조차 어려운 일을 대체 한없이 약해보이기만 한 한강작가는 어떻게 그 글을 써내려 간 것일까? 압도적인 고통으로 쓴 책이라는, 세줄 쓰고 한시간 울고, 아무것도 못하고 몇시간 정도 가만히 있다가 돌아오고 그랬죠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리고 그녀는 위대하다.
114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 만큼이나 강렬한 무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p115
다음날 아침 헌혈하려는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 있던 병원들의 입구, 피 묻은 흰 가운데 들것을 들고 폐허 같은 거리를 빠르게 걷던 의사와 간호사들, 내가 탄 트럭위로 김에 싼 주먹밥과 물과 딸기를 올려주던 여자들, 함께 목청껏 부르던 애국가와 아리랑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치는 걸 느꼈습니다.....(중간 생략)...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양심과 책임이라는 단어가 내 안에 남았다. 광주항쟁의 살아있는 인물들의 공통점이었다.
동호의 죽음에 그들 모두가 죄책감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했다. 어쩌면 그들이 당한 고문보다도 동호에 죽음에 대한 죄책감의 고통이 더 크게 느껴졌다. 진수형은 동호의 사진을 유언과 함께 가지고 자살했고 선주 누나는 동호의 죽음을 접하고 그 분노의 힘으로 살고자 했다. 은숙누나는 자신이 살아남은 것을 치욕스럽게 느끼며 그 고통을 잊지 않고자 했다.
나에게 양심과 책임이라는 게 있던가? 나는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런 종류의 영화나 다큐에는 저항조차 가지고 있었다. 우리 집안은 보수계열이고 어릴 적 아버지는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우리 남편 집안도 보수 쪽이라 진보세력의 영화들은 기피했다. 그래서 노무현이 주인공이었던 영화나 화려한 휴가, 택시 운전사 이런 영화들은 일부러 안보기도 했던 것 같다. 이번 책을 덮으며 1980년 이름만 알던 광주항쟁의 일들이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그때의 풍경과 느낌들을 한강이 그랬던 것처럼 사진으로 다큐로 생생히 보고 싶어졌다. 다큐멘터리를 찾았고 오늘 낮엔 송광호가 주연인 택시 운전사라는 영화를 봤다. 한강 소설의 인물들이 다큐멘터리와 영화에 그대로 등장했다. 태극기를 싸멘 수많은 시신들, 오열하는 사람들, 피흘리는 사람들, 최류탄, 곤봉을 휘두르는 군인들, 주먹밥을 나르는 사람들, 함께 노래하는 군중들, 아이들, 노인들, 젊은이들, 소녀들이 울고 웃고 두려워하고 슬퍼하며 뒹굴고 있었다. 소설이 이 현실에서 살아 숨쉬며 뒤엉켜있었다. 나는 더이상 눈을 돌리지 않고 똑바로 응시했다.
그 사건들이 그저 나의 생각 안에 있었을 땐, 내 상상 속에 있었을 땐 그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무서운 일에 왜 연루될까? 죽음을 무릎 쓰는 시위에 왜 뛰어들까? 나는 방안에 꼼짝 않고 숨어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곁을 두지 않는 나를 상상하곤 한다. 혹시라도 누명을 써서 경찰에게 끌려가는 일이 생긴다면 묻기도 전에 이실직고 하는 나를 상상한다. 그 어떤 위험도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보았다. 어린 동호가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았던 일, 진수형이 소녀들을 데려다주고 금세 다시 돌아왔던 일, 선주 누나가 끝까지 남아 총을 메겠다고 자진하던 일을. 동호는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친구 정대의 죽음으로 자신만 돌아가 살아남기를 원치 않았다. 그들은 그곳에서 함께 그것을 느꼈다.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혼자 살아 남는 것보다는 함께 죽어도 좋다는 느낌을, 그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그 강렬한 느낌을, 양심이라는 깨끗한 보석을 박은 광휘를 두려움 속에서 선택한 것이다.
p95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는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
한강은 질문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인간은 양심과 책임을 가진 선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잔인성과 추악함을 가진 악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 양심과 책임을 가지고 선한 의지를 발휘하며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