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주
김소윤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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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22. 난주는 경헌의 이마에 찬 볼을 댔다. 곧 아침이 밝아올 것이다. 더 이상은 떠난 임을 그리워하며 애통해하거나 부질없는 요행을 바라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견디어내는 것만이 그들에게 남은 삶이었다.

 

27. 천하고 귀한 것은 다 우리 마음 안에 있답니다. 저는 천한 종이지만 아씨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질 않나요. 이 마음은 천한 것이 아니랍니다. 그러니 이 마음이 머무는 제 몸뚱이도 그저 천한 것만은 아니라고 믿어요. 반명에 심술궂고 악한 마음이 물들어 있는 사람이라면 그저 귀하다고만은 못 하겠지요.

 

천한 것 안에도 귀한 것이 머물 수 있다는 것뿐예요. 사랑하는 마음만은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하늘이 뜻도 같을 테니까요.

 

고난 중에 만난 주모의 따뜻한 배려야 말로 귀한 사랑이 아니던가.

난주는 무엇보다 어떤 일도 그저 좋고 그저 나쁜 일은 없다는 순덕 어멈의 말에 위안을 받았다. 사람과 사람 속에 어우러져 살아가다 보면 막막하기만 한 남은 날들도 실낱같은 빛이 보이리라. 그러한 믿음조차 없다면 그야말로 스스로 택한 지옥을 사는 셈이다.

 

31. 바느질을 할 때는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을 함께 엮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한땀 한땀 정성과 복이 붙는다고 했다.

 

74. 난주는 오랜만에 가슴을 꼿꼿하게 폈다. 몸서리치게 아프고 난 뒤에 오히려 발걸음을 가볍게 느끼는 것은 죽음의 경계를 다녀온 자만이 알 수 있는 산 자의 기꺼운 착각이다. 오랜만에 들이마신 겨울의 신선한 냉기와 마른 가지 타오르는 뿌연연기, 눅눅한 풀 내가 뒤섞인 아침의 냄새까지 모든 것이 처음 대한 듯 낯설고 경이로웠다. 산 사람은 살게된다. 잔혹한 현실이다. 죽음 끝에 다시 만난 삶은 여전히 매혹적이었다. 천주를 위한 것이든 아들을 위한 것이든 난주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83. 난주는 종이 되어 사는 동안 사람 위에 군림하는 자들이 얼마나 잔혹하고 이기적일 수 있는지 보았고, 살을 직접 뜯어가지 않을 뿐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남은 것이라곤 살아있다는 비극적인 사실뿐임을 알았다.

 

145 관례가 사람을 살리지 못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행동입니다.

 

179 천한 집 어린 자식이라도 억울한 일이 있다고 우는 일은 없습니다. 그들이 배곯아 죽을 지경에도 제 몫의 죽을 할망이나 아우에게 양보하면서 눈물 한 방을 내놓지 않는다오.

 

185. 유모는 두렵지 않을지라도 우리들은 두렵소. 유모를 능멸하는 것은 우리를 능멸하는 것이며, 유모를 아프게 하는 일은 또 우리를 아프게하는 일이오.

 

189 모든 축복과 악운이 하나이며 고결한 천주의 뜻과 비루한 인간의 속내가 하늘과 땅차이가 아니라 실은 하나인 것 같기도 했다. 고락이 손바닥 뒤집듯 하나이고, 행불행이 또한 그렇지 아니 할까

 

210 무당이란 신의 말을 받아 세상에 없는 일을 이야기하는 자들이니, 그 역()이 약한 게 아니라 그 말에 기대는 이들의 나약함이 약하다. 무당이 쓴 말에 벌벌 떨고 단 말에 휘어 잡혀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그 부부 또한 두려움을 기대는 값이 수백 냥이요. 입맛에 맞는 점괘를 얻는 데 수백냥이라.

 

215 난주는 경헌을 생각했고, 흰 꽃같은 계모와 태산같은 아비를 생각했으며, 깊은 한숨과 눈물로 어미를 근심할 어린 딸 보말을 생각했다. 때로는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악착스레 살아남아야 할 때가 있다. 222. 예순여섯의 난주에게는 수없이 만나고 헤어진 소중한 인연들이 비슷한 무게로 함께 있다는 사실이었다.

 

218 마음으로써 순응하는 것과 억지스러운 것은 분명 다를 것이다. 자신이 떠나는 것이 모두를 위한 길이란 생각에서였다. 하 이방이나 여홍개나 미움과 증오로 괴로운 누구든 마음의 지옥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다. 부질없는 열정이나 바람 또한 훌훌 털어버릴 수 있기를 바랐다.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난주 자신을 위한 기도였다.

 

224. 이제부터 닥쳐올 고난이 오롯이 혼자의 것임에 적이 안심한다. 혼자만 아는 고통은 비록 상처는 깊더라도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되새기지 않아서 좋다.

 

269 고비를 건너면 또 고비, 가시밭길을 건너면 또 가시밭길, 그래도 간간이 햇살이 나리고 부드러운 풀밭이 위안해주니 살아갈 만한 세상이다.

 

310 오늘처럼 태연자약하게 능멸하는 것을 난주는 분하게도 또 가엾게도 여겼다. 그러나 누군들 온전한 악인이고 선인이랴. 황림에게 잔혹한 것은 그 자신이 아니라 바로 난주일 것이다.

 

320 죽음을 목적에 두었을 때 뼈마디마디 시려오는 한기와 허기로 쪼그라진 위장보다도 외로움이란 맹독은 더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지금 난주는 설사 죽음을 눈앞에 두었다해도 의연할 수 있었다. 깊은 연을 맺어온 사람들과 자식들은 물론, 올레길 한 곳 담장 한 쪽에도 숱한 시간과 기억이 난주의 곁에 있기 때문이었다.

 

322 제주는 형벌의 땅이 아니라 축복이었다.

 

340. 악함과 선함이 공존하고 고귀함과 비열함이 함께하며 때론 의도치 않은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억울한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런 혼란한 세계 속에서도 어떤 선한 결과(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을 향상시킬 만한)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느낀점: 명문가의 맡딸로 젊은 나이에 진사에 합격하여 천재라는 소리를 듣던 황사영의 아내로 살아가던 난주는 천주교 박해로 인해 삶이 송두리째 바뀐다. 남편 황사영은 순조 1년 신유박해 동안 북경의 주교에게 박해의 전말을 담은 편지를 보내려다 발각되어 능지처참형을 당하고 난주는 관노비가 되어 제주로 이송된다. 아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배교하지만 제주로 가는 길 추자도에서 어린 아들을 남겨두고 떠난다. 자신의 아들마저 노비의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았다. 아이를 두고가는 어미의 심정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을까?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 아픔과 함께 나는 자문했다. 난주는 더 이상 삶을 살아내야할 이유가 있을까? 난주를 지켜보는 내내 죽음을 생각했다. 노비로 갖은 수모와 멸시를 당하며 삶을 이어가야 할 이유를 알지 못했다. 처음에는 아들을 살려내기 위한 어머니의 모정인 것을 깊이 공감했다. 아무 죄없는 아이를 살리기위해 어머니도 살아야했다. 하지만 추자도에 아이를 두고오는 순간 난 또다시 난주의 삶을 이어갈 명분을 찾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난주는 주위 사람들을 아낌없이 도우며 그녀의 존재감과 영향력은 점점 확장된다. 난주를 겁탈하려는 나졸로부터 구해준 강노인을 양아버지로 모시고 자신에게 온 인연을 소중히 여겨고 돌보아 연이라는 양아들과 보말이라는 양딸을 두었다. 상집과 상윤이라는 양반댁 자제를 유모로 정성스레 길러냈다. 한양 할망이라 불리며 숱한 수양자식이 있었다. 구휼소를 차려 거리에 버려지다 싶이한 환자와 아이들, 노인들을 돌보았으며 온갖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매사에 정성을 다하였다. 그녀는 비록 노비의 삶이었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존재가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거친 세상을 살아갈 만한 곳으로 만들어주었다.

 

악함과 선함이 공존하고 고귀함과 비열함이 함께하며 때론 의도치 않은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억울한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런 혼란한 세계 속에서도 어떤 선한 결과(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을 향상시킬 만한)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자신의 자리에서 인간의 도리와 책임을 다하고 사람을 보배 다루듯 정성을 다해 살아가는 그녀의 삶은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었기에 난주의 귀천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존재 자체로 빛났고 그 빛으로 주위 사람들이 따뜻하게 살아갈 힘이 되었다. 노비의 삶으로 사느리 차라리 죽음이 낫겠다는 생각은 나의 어리석음이었다. 언제나 가진 것으로 판단하는 나의 세속적인 관점의 한계였다. 그녀의 이타적 삶과 나눔은 곁에서 보는 내내 따뜻했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어렴풋하게 들었다. 비록 허구적인 부분이 많으나 그녀의 영향력은 1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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