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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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

신영복

 

서론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고 한다. 고전 독법 역시 과거의 재조명이 생명이다. 당대 사회의 당면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전 독법의 전 과정에 관철되고 있어야 한다. 우리의 고전 강독에서는 과거를 재조명하고 그것을 통하여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것을 기본관점으로 삼고자 한다.

고전 강독은 기본적으로 사회와 인간 그리고 인간관계에 관한 근본적 담론을 주제로 한다.

고전 강독의 전 과정이 화두를 걸어놓고 진행한다. (현재에 대한 비판적 시각)

우리가 걸어 놓은 화두는 관계론이다.

유럽 근대사의 구성원리가 존재론- 개별적 존재를 세계의 기본단위로 인식 (실체성 부여/자신을 강화해가는 운동 원리/ 자기 증식 운동 /자본 운동/배타적 독립성/ 개별적 정체성)

동양 사회 구성원리 관계론-관계망으로서 존재/ 관계론적 구성원리(자연과의 조화와 공동체의 가치를 소중히)

차이보다는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

형식에 있어서나 그 표현에 있어서의 차이 즉 지엽적인 부분이 비교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부분을 확대하는 것이다. 본질에 대하여 이해하려고 하는 경우는 먼저 그것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최대한 수용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대등한 비교란 존재하지 않는다. 비교나 차이는 원천적으로 비대칭이다.

 

서양의 근대문명은 과학과 종교라는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과학은 진리를 추구하고 기독교 신앙은 선을 추구한다. 과학 정신은 외부 세계를 탐구하고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된다. 그리고 종교적 신앙은 인간의 가치를 추구하며 사회의 갈등을 조정한다. 그러나 과학과 종교가 서로 모순된 구조, 과학은 비종교적이며 종교 또한 비과학적이라는 사실. 과학의 압도적 우위로 말미암아 진리와 선이라는 서양문명의 기본 구조가 와해,

 

동양사회의 도덕적 구조는 기본적으로 인문주의적 가치가 중심( 자연 인간 인간관계 등)

동양사고는 현실주의적 우리들의 삶이 여러 가지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승인하는 태도. 저 혼자 마음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고 나아가 자연과의 관계도 고려. 살아가는 일의 소박한 현실이 소중한 가치.

 

도는 글자 그대로 이다. 도는 길처럼 일상적인 경험의 축적이라는 의미.

(진리: 일상적 삶 속에)

서양철학 지혜를 사랑하는. (진리 ; 사색에 의해 터득)

 

동양에서는 자연이 최고의 질서. (self-so)

장을 구성하는 개개의 부분은 부분이면서 동시에 총체성을 갖는다. (부분적 총체들의 복합체)

자연은 생기의 장- 모든 것과 조화 통일되어 있으며 생주 이멸의 순환과정 속에 놓여있음.

어떤 존재가 특별히 자기를 고집하거나 비대하게 되면 생성과정이 무너짐.

고도성장과 과잉축적이 생각의 장을 파괴.

 

인성이란 무엇인가? 한 개인이 맺고 있는 여러 층위의 인간관계에 의하여 구성.

배타적으로 자신을 높여나가는 어떤 능력이 아님.

덕성이 곧 인성. (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인간관계라는 관계성의 실체로 봄)

동양적 가치는 어떤 추상적인 가치나 초월적 존재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구하는 구조. ( 관계 = 존재 )

인성을 고양 시킨다는 것 기르는 것으로 시작

자기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닌 것을 키우는 것. 그것을 통하여 자기를 키우는 순서.

(자기가 서기 위해서는 먼저 남을 세워야 한다는 순서)

-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이루어 주는 것 ( 成人之美)

인성의 고양이 사회성의 고양.

 

오래된 시와 언

 

[시경]에 주목하는 이유- 사실성과 진정성 (백성들이 부르던 노래-소박한 민중의 삶과 소망)

삶과 정서의 공감을 기초로 하는 진정성

감수성을 사로잡고 있는 오늘날의 문화는 본질에 있어서 허구.

시경 독법은 우리들의 문화적 감성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을 기르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사회 역사적 관점에 대한 투철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하고 그 시대와 그 사회의 애환이 자기의 정서 속에 깊숙이 침투되어야 하는 것이다.

 

시적 관점은 우선 대상을 여러 시각에서 바라보게 한다.

사물과 사물의 연관성을 깨닫게 해줌

시적 관점은 사물이 맺고있는 광범한 관계망을 드러냄 (시야를 열어줌)

자신의 좁은 체험의 세계를 부단히 열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시경]의 정신은 땅을 밟고 걸어가듯 확실한 세계를 보여줌. (땅을 밟고 있는 확실함이 우리 삶의 진정성)

불편함은 정신을 깨어있게 합니다. (무일 無逸- 편안하지 않음)

무엇보다도 불편함이야말로 우리 정신을 깨어있게 하는 깨달음

살아간다는 것이 불편한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이 곧 상처받는 것.

 

[어부] 굴원의 시- 이상과 현실의 영원한 갈등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가장 정갈하게 간수해야 하는 갓끈을 씻고 반대로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 것 비타협적 엘리트 주의와 현실 타협주의를 다 같이 배제/ 획일적 대응을 피하고 현실적 조건에 따라서 지혜롭게 대응해야 한다.

 

[초사]가 대표하고 있는 남방 문학의 낭만주의적 정신세계가 갖는 의미 재조명

낭만주의가 대체로 부정적 의미로 인식되는 것은 인간의 정신을 구속하는 억압에 대한 원천적 저항 과 비판의식을 내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응 방식의 개인주의적 성격 때문.

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소아병적 인식의 협소함 때문에 그리고 도피 또는 복고적이라는 실천의 허 약함 때문에 그것의 긍정적 의미가 크게 훼손되어왔기 때문.

현실에 매달리지 않고 현실의 건너편을 보는 거시적 시각과 대담함이 곧 낭만주의의 일면.

 

느낀점: 시경은 백성들이 부르던 노래로 소박한 민중의 삶과 소망을 이야기한다. 민중의 삶의 애환 시경의 정신은 피상적이거나 허구적이지 않다. 현실에 발이 닿아있다. 삶의 정서와 공감을 기초로 하는 사실성과 진정성에 마음을 울린다. 또한 시적관점은 광범위한 관계망을 드러내면서 시야를 열어준다. 나의 협소한 체험을 세계를 부단히 넓혀가고 싶다. 또한 무일이라는 단어가 내게 필요하다. 편안하지 않음(무일), 그동안 늘 편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불편을 감수하면서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세상을 더 많이 더 제대로 경험하기 위해 무일을 조금씩 실천해가고 싶다.

 

 

 

주역의 관계론

[주역] 수 천 수 만 년에 걸친 경험의 누적이 만들어낸 법칙성

동양 사고의 보편적 형식

판단형식이 관계론적

(관상과 수상), (자기가 타고난 천명, 운명- 사주팔자), (선택과 판단)

대동(大同)-점괘와 백성들의 의견 조정대신 그리고 임금의 뜻이 일치하는 경우

춘추전국시대의 산물 (부국강병의 국정목표)

 

()과 전()

()은 원본 텍스트이고 전()은 그것의 해설(괘사와 효사에 관한 10개의 해설문)

[주역]의 경은 8, 64괘와 괘사 효사 4가지.

괘와 효는 고대문자, 괘사와 효사는 점을 친 기록

8괘를 소성괘라하고 이 소성괘를 두 개씩 겹쳐서 만든 64개의 괘를 대성괘.

() 와 괘()

(): 8괘를 구성하는 세 개의 음양을 나타내는 부호.

(): 걸어놓고 본다는 뜻.

 

[주역] 읽기의 기초개념

양효()는 하늘 또는 남자

음효 (--)는 땅 또는 여자

==> 3개의 효로 한 개의 괘를 만듬(소성괘) ==> 소성괘 두개가 대성괘

 

8= 건괘/태괘/감괘/이괘/ 진하련/ 손하절/ 간상련/ 곤삼절/

양효가 홀수이면 양괘 , 음효가 홀수이면 음괘 (소수가 전체의 성격을 결정)

 

()와 응()

()- 자리 1 3 5 양효자리/ 2 4 6 음효자리 ==> 득위 (효가 그 자리를 얻지 못한 경우; 실위)

효는 득위해야 좋은 것. 개별적 존재에 대해서는 그것의 고유한 본질을 인정하지 않거나 개별적 본질을 인정하는 경우에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김.--> 처지에 따라 생각도 달라지고 운명도 달라진다.

개인에게 있어서 그 자리가 갖는 의미는 운명적.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 처하는 경우 십중팔구 불행하게 된다. 제 한 몸만 불행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불행에 빠트리고 나아가서는 일을 그르치게 마련이다.

70%의 자리 강조/ 30정도의 여유

개체의 능력은 그 개체 속에 있지 않고 개체가 발 딛고 있는 처지와의 관계 속에서 생성.

중간을 매우 좋은 자리로 규정.(대성괘를 이루고 있는 효중에서 2효과 5효가 이다.)

 

(): 효와 효의 관계에 관한 것

1효와 4/ 2효와 5/3효와 6효의 음양 상응 관계를 보는 것

위의 개념이 개체단위의 관계론이라면 응의 개념은 개체와 개체가 이뤄내는 관계론

응은 위보다 상위개념 (ex> 실위이더라도 응이면 무구이다)

위가 소유의 개념이라면 응은 덕의 개념.

 

[주역]은 어떤 괘를 그 괘만으로 규정하는 법이 없고 또 어떤 괘를 불변의 성격으로 규정하는 법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존재론적 관점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역경에 처했을 때 앙상하게 드러난 가지를 직시하는 일

 

절제와 겸손은 관계론의 최고형태

절제와 겸손이란 자기가 구성하고 조직한 관계망의 상대성에 주목하는 것.

우리의 삶이란 우리가 조직한 관계망에 지나지 않는다. 객관적 세계의 극히 일부분을 선별적으로 추출하여 구성한 세계에 불과. 자기중심의 주관적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느낀 점: 우리의 삶이란 우리가 조직한 관계망에 지나지 않는다. 객관적 세계의 극히 일부분을 선별적으로 추출하여 구성한 세계에 불과. 나의 삶의 크기는 얼마만큼 일까? 아주 작고 협소하다. 그동안 작은 방구석에서 작은 거울로 나만 쳐다보고 살아온 것만 같다. 이 책에서는 내가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지 또한 이 세상의 아주 작은 조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주역에서는 개별적 존재의 능력보다는 상황과 처지에 따라 시시 때때로 변화하고 운명도 달라진다고 말한다. 또한 좋아도 좋은 것이 아니고 나빠도 나쁜 것이 아니다. 좋은 것이 끝에는 나빠질 수도 또 나쁨이 좋아짐으로 바뀔 수 있다. 불변하는 것은 없다. 또한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 욕심을 낸다면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불행에 빠질 수 있으니 70% 정도의 자리를 강조한다. 자기 능력과 적성에 아랑곳없이 큰 자리나 높은 자리를 선호하는 세태는 문제라고 말씀하신다. 자기의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먼저 자기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 개체의 능력은 개체 그 속에 있지 않고 개체가 발 딛고 있는 처지와의 관계 속에서 생성된다고 하였다. 중간이 가장 좋은 자리라고 말씀하신다. 늘 나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최고를 선호하는 나를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설정해 놓은 나의 세계를 조금씩 키워가도록 노력하고 싶다.

 

[논어] 인간관계론 보고

춘추전국시대의 특징

1. 철기의 발명- 2의 농업 혁명기

2. 사회 변동기 중앙집권적 관료국가로 전환

3. 제자백가의 백화제방(갖가지 학문이나 예술이 함께 성함)의 시기.

 

배움

학이시습지 습은 실천의 의미 / 시의 의미도 때때로가 적절한 시기로 읽어야./ 실천의 시점이 적절한 때임을 의미

 

군자는 그릇이어서는 안된다. (문사철 시서화를 두루 익혀야)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 덕으로 이끌고 예로 질서를 세우면 부끄러움도 알고 질서도 바로 서게 되지만 정형으로 다스리면 형벌만 면하려고 할 뿐 설사 법을 어기더라도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

()의 논리- 자기와 다른 가치를 존중. 타자를 흡수하고 지배함으로써 자기를 강화하려는 존재론적 의지를 갖지 않는다. 타자란 없으며 모든 타자와 대상은 사실 관념적으로 구성된 것일 뿐이다.

참된 지()는 사람을 아는 것- 인간에 대한 이해가 진정한 의미의 지라는 사실

지와 애는 함께-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알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애정없는 타자와 관계없는 대상에 대하여 알 수 있다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이론과 실천의 통일 ()하되 사() 하지 않으면 어둡고 사하되 학하지 않으면 위태롭다.

사는 생각이나 사색의 의미가 아니라 실천의 의미. (경험적 사고)

실천의 가장 결정적인 특징은 현장성 (현장성은 구체적이고 조건적이며 우연적)

특수한 경험적 지식을 보편화하는 것 또한 위험하다는 뜻.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탓하는 것이 존재론적 사고라면

관계론적 사고는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는 것!

어리석음이 앎의 최고 형태-지와 우에 대해 보다 열린 생각을 가져야 한다.

우가 그냥 우가 아니라 대지를 품고 있는 우라고 하였다. 진정한 지란 무지를 깨달을 때 진정한 지가 된다는 사실. 자기의 지가 어느 수준에 있는 것인가를 아는 지가 참된 지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야말로 지의 최고의 형태.

모든 사람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겸허해야 하는 이유. 대부분의 경우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명석합니다. 이 말에 대하여 아마 선뜻 납득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타자의 시각이 정곡을 찌르는 법입니다.

욕심이 없어야 겸손할 수 있으며 욕심이 없어야 지혜가 밝아진다.

겸손을 뒷받침하는 것이 무욕(無欲) 과 무사(無私)이다.

마을의 좋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좋아하고 마을의 좋지 않은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사랑은 분별이기 때문에 맹목적이지 않으며 사랑은 희생이기 때문에 무한 할 수도 없다.

사회란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구조도 아니며 동시에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대립과 모순이 있으며 사랑과 증오가 함께 존재하는 세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학습과 놀이와 노동의 통일

지란 진리의 존재를 파악한 상태이고 호가 그 진리를 아직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한 상태임에 비하여 낙은 그것을 완전히 터득하고 자기 것을 삼아서 생활화하고 있는 경지로 풀이.

이상적인 교육은 놀이와 학습과 노동이 하나로 통일된 생활의 어떤 멋진 덩어리를 안겨주는 것.

즐거운 마음으로 무엇을 궁리해가며 만들어내는 과정

즐거움은 놀이이고 궁리는 학습이며 만들어내는 행위는 노동이 된다.

지를 대상에 대한 인식이라고 한다면 호는 대상과 주체간의 관계에 관한 이해.

그에 비하여 낙은 대상과 주체가 혼연히 일체화된 상태를 의미

지가 분석적인 것이라면 호는 주관적인 것 그리고 낙은 주체와 대상이 원융된 상태를 의미.

따라서 낙은 어떤 판단형식이라보다는 주체와 대상, 전체와 부분이 혼연한 일체를 이룬 어떤 질서와 장을 의미

 

느낀 점: 배우고 그것을 적절한 때에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진정한 의미의 지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싶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반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지를 깨달을 때 진정한 지가 된다는 사실. 자기의 지가 어느 수준에 있는 것인가를 아는 지가 참된 지라는 것 또한 명심하고 싶다.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주위 사람들은 나보다 명석하다는 것을 잊지않고 늘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겠다.

 

 

맹자의 의()

공자의 인()이 맹자에 의해서 의()의 개념으로 계승.

인이 개인적 관점에서 규정한 인간관계의 원리라면 의는 사회적 관계로서의 인간관계를 의미.

민본사상이 핵심- 민에 의한 혁명의 논리

여민동락 사상(왕이 백성과 더불어 낙을 같이 나눔)- 진정한 즐거움이란 여럿이 함께 즐거워하는 것

다른 사람들과의 공감이 얼마나 한 개인을 행복하게 하는가에 대해 무지.

 

성선설이 표명된 구절

측은해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해하는 마음은 의 싹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 싹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의 싹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의 싹이다.

성선설이 인간의 본질을 구명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 실천과 관련된 것

맹자는 사람의 본성도 사회적 입장에 따라 재구성되는 것

본성을 어떤 순수한 본질로 이해하는 것은 관념적. 선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사회성을 띠고 있다.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이야기하기 어려워한다.

바다는 큰 깨달음을 뜻함. 깨달은 사람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함부로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또한 성인의 문하에서 학문이 무엇인지 깨달은 사람은 모든 언에 대하여 지극히 겸손한 태도를 가진다.

 

느낀 점: 함께하는 즐거움을 조금씩 더 쌓아가자. 인의예지는 내가 가져야 하는 기본 덕목이다. 측은해하는 마음, 부끄러워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시비를 가리는 마음이 모두 결여된 듯싶다. 차근차근 키워가야겠다.

 

노자의 도와 자연

노자 사상의 핵심은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가는 것.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근본은 자연.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

자연을 최고의 질서 즉 코스모스로 인식.

노자는 근본적으로 반문화적 체계. 건축의지에 대한 비판(계몽주의든 합리주의든 기존의 인위적 구조를 이루고 있는 일체의 건축적 의지를 해체)

자연의 생성변화가 곧 도()

일체의 인위적 규재를 재앙으로 규정하고 자연이라는 근본적 질서를 회복할 것과 진정한 인간의 자유를 주창하는 반문화 사상.

상편은 도로 시작하고 하편은 덕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도덕경이라 불리움

무위와 관조라는 동양적 사유의 근저를 이루는 사상.

 

도라고 부를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며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참된 이름이 아니다. 무는 천지의 시작을 일컫는 것이고 유는 만물의 어미를 일컫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로서는 항상 그 신묘함을 보아야 하고 유로서는 그 드러난 것을 보아야 한다. 이 둘은 하나에서 나왔으되 이름이 다르다. 다 같이 현이라 부르니 현묘하고 현묘하여 모든 신묘함의 문이 된다.

 

핵심 개념은 무와 유가 같은 것이라는 선언(무와 유는 그것에 접근하는 접근로에 따라서 구분될 수 있는 개념상의 차이)

무는 제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노자의 도는 인간의 개념적 사고라는 그릇으로는 담을 수 없는 것.

 

인위는 거짓입니다. (인위, 작위 자체가 거짓: 자연에 대한 거짓인 셈)

무위 (자연에 따라 행하고 인위를 가하지 않은 것)

미와 오 선과 불선의 구별이 절대적이지 않음.

노자 사상의 체계에서 대립적인 것은 없다. 세상 만물은 상대적인 것이며 상호 전화하는 것이다. 존재론적 체계가 아니라 관계론적인 체계.

 

유무, 난이, 고저, 장단은 비교할 것이 아니다. 스스로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자연스러운 것이다. 굳이 비교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 더구나 윤리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미의식마저도 기존의 인위적 틀 속에 갇혀있다. 먼저 잘못된 인식을 반성한 다음 올바른 방식으로 실천하기를 요구, 말없이 실천하고, 자랑하지 말고, 개입하지 말고, 유유하고 자연스럽게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노자의 실천론.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서 바다가 됩니다.

물이 최고의 선

1. 만물을 이롭게 한다.

2. 다투지 않는다. (작위하지 않는다)

3.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가장 낮은 곳에 처한다)

 

비어있음이 쓰임이 된다.

모든 현상의 숨겨진 구조를 주목

한 개의 상품의 있음 즉 그 효용에 주목하기보다는 그것을 만들어 내는 노동을 화두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의 배후로써 무를 드러내는 것이 노장의 철학)

서툰 글씨가 명필입니다.

가장 뛰어난 기교는 마치 서툰 듯하며 가장 잘하는 말은 마치 더듬는 듯하다.

눌변이 청자의 연상 세계를 확장해준다.

 

()보다는 정(), (滿)보다는 허(), ()보다는 졸(), ()보다는 자()를 그리고 진()보다는 귀()를 더 높은 가치로 봄

 

느낀 점: 노자의 사상은 파격적이기도 하다. 더 낮게 더 비우며 더 자연스럽게 나아가고 싶다.

모든 현상의 숨겨진 구조를 주목하라는 말에서 요즘 컵을 볼 때 컵이 아닌 것을 보라는 명제가 떠올랐다. 대상을 바라볼 때 그것이 아닌 것을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대상이든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아닌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볼펜을 보면 플라스틱 +스프링+ 잉크 등 각각은 볼펜이 아닌 것이 모여 볼펜이라는 대상이 생겨난다. 또한 플라스틱을 만드는 사람들. 잉크를 만드는 사람들. 스프링을 만드는 사람들 등 하나의 볼펜 속에 수많은 부속물들과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 하나의 볼펜이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인연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존재를 볼펜이라 이름 붙였다. 유의 배후로써 무를 드러내는 노장 사상. 보이지 않는 무속에 신묘함을 유로써는 그 드러남을 보아야 한다. 수많은 인연에 의해 일시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또 사라진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더 낮아지고 겸허지고 싶다. 신영복 선생님의 겸허함이 내게도 물드는 것만 같다. 또한 신묘한 세상을 즐기고 싶다.낙은 대상과 주체가 혼연히 일체화 된 상태를 의미한다. 대상에 합일되어 매 순간을 몰입하며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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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5-22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온전히 나답게 - 인생은 느슨하게 매일은 성실하게, 개정판
한수희 지음 / 인디고(글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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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 하찮은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인생이 된다는 것. 하찮아 보여도 그게 인생이라는 것. 그 하찮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생이 즐거워질 수도 비참해질 수도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을 나는 살아가면서 배웠다.

 

p23 에세이는 이토록 시시콜콜한 일들을 쓰는 것이로구나. 그것을 진심을 가득 담아 쓰는 것이로구나.

 

p89 나는 여전히 혼자 밥을 잘 먹는다. 내가 계속 혼자 밥을 잘 먹는 이유는 혼자 먹지 않아도 되는 현실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가족도 있고 친구들도 있다. 그러니까 점심 정도야 혼자 먹는다고 해서 비참할 이유가 없다.

 

p99 인생은 결국 선택의 문제고 어느 쪽을 선택하건 선택하지 않은 쪽을 책임지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는데 그게 맞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인생이 선택의 문제라면 인생은 이를테면 자장면과 짬뽕처럼 중국집의 메뉴 같은 것이 되어 버리는데 살아보면 알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인생은 그냥 닥치는 건지 모른다. 닥치고 수습하는 일의 반복이다.

 

p101 내게 재능이 있는 걸까. 있을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지금보다 더 나아질수 있을까. 나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이것 하나는 알았다.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없다면 차라리 이쯤에서 접는 것이 낫다는 것. 이쯤에서 접자니 어쩐지 좀 더 해보고 싶어졌다. 다른 걸 시작한다고 해도 이것보다 더 잘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렇다며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면 무얼 해야 할까.

 

p112 냉철한 현실감각을 갖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에 환상의 색채를 더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p117 지금은 안그래도 된다는게 너무 좋다. 하루 종일 굶어서 당이 떨어진 채로 마트에 들어가면 입구에서부터 야수처럼 먹을 것들을 쓸어 담게 되지만 배가 부를 때는 새 모이처럼 먹는 여자인 듯 도도하게 쇼핑할 수 있는 것과 같다.

 

p118 나이들어 가장 좋은 것은 이제 더 이상 누군가에게 잘보이기 위해 기를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 전전긍긍할 이유도 줄었다. 물론 지금도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고 날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괴로워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필사적인 기분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남편이 있고 애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있는그대로 의 나 좋아하고 사랑해주기 때문이다. 최소한 아직까지는 말이다.

 

p125 펜만들면 아름다운 문장이 빵처럼 구워진다고? 그런 사람이 정말로 존재하기나 하는 걸까? 이 세상의 작가들은 모두 온갖 유혹과 괴로움과 게으름을 떨치고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서 펜을 들 수 있는 불굴의 의지력을 가진 사람들이야. 그리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가지 쓰고 또 쓸수 있는 사람들, 엉덩이가 지독하게 무거운 사람들이라고.

 

p126 우리는 사실 별로 잘하는 것이 없는 인간들인지도 몰라. 우리는 대단한 일을 할 수도 없을거고 대단한 사람이 될수도 없을 거야. 그래서 순간순간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야.

 

p133 아낄 줄 모르는 마음은 자꾸만 새것을 찾게 만든다. 무얼 얻어내도 기쁘지가 않다. 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p170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터득한 삶의 진리는 당장에 무언가를 이루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는 될 턱이 없다. 죽기 살기로 덤벼들어 끝장을 보려고 뜨겁게 도전하다 보면 각자가 가진 능력과 개성 자기 안의 힘이 크게 꽃피는 날이 반드시 온다.

 

p197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p197 완벽한 시간과 완벽한 장소를 기다리다면 모 아니면 도의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

 

p199 글을 쓰기에 완벽한 장소는 없다. 단지 글을 쓰기에 완벽한 시간이 있을 뿐이다.

 

p225 다시 특별할 것도 없이 평범한 나로 살아가기 위해 마음을 추스렸다. 내가 나인 것을 받아들였다. 바로 그런 것을 위해서 나는 떠났던 것이다.

 

p227 나는 이제 이것이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나 자신을 발견하기보다는 가족을 돌보고 생계를 꾸려나가고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애쓴다.

대신 나는 움직이지 않는 여행을 한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상을 영위하며 조용히 그리고 규칙적으로 살아갈 때 나는 여러 가지 자극들에 좀 더 민감해지는 것 같다. 매일 똑같은 것들을 매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

 

거대한 세상에서 초라한 자신을 발견하고 의기소침해진 채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그런 일이야말로 살아가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 중의 하나니까.

 

p245 나는 인생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크게 기대하지 않으면 뭐든 그럭저럭 견딜 수 있는 게 인생이다.

 

p251 그냥 그런 말들은 언젠가 살갗 깊숙이 박혔던 가시처럼 혈관을 타고 떠돌아다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심장을 찌른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거절을 당했거나 연인에게 버림을 받았거나 세상 누구에게도 사랑받거나 인정받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 때 말이다.

 

p275 꽂혔다고만 하면 끝장을 보는 이 남자의 열정은 별로 부담스럽지가 않다. 세상에 무언가를 보여주거나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모든 일을 그냥 즐거워서 좋아서 신나서 하기 때문이다.

 

p281 세상에는 뭔가를 이루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다.

 

p282 우리가 부단히 노력해 이룰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과 화해하는 일이 아닐까. 그건 어떤 변명이나 무례가 아니라 일종의 무겁고도 홀가분한 체념 같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p309 내가 좋은 어른이었을 때는 어디까지나 내가 그러고 싶을 때일 뿐이었다. 그러고 싶지 않을 때 나는 나쁜 어른이 되었다.

 

p324 그래서 두려워도, 힘들어도, 귀찮아도, 뭐라도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p328 미련이나 후회는 해야 했으나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감정이다.

 

하찮은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인생이 된다는 것. 하찮아 보여도 그게 인생이라는 것. 그 하찮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생이 즐거워질 수도 비참해질 수도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을 나는 살아가면서 배웠다.

 

한수희의 온전히 나답게 에세이는 세상에 작고 하찮기만 해보이는 것들이 그녀의 인생에서 얼마나 밝게 빛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녀는 솔직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털어 놓는다. 그녀가 털어놓은 글들이 누군가에게 흉이 되거나 스스로가 바보처럼 보일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녀는 분명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아무런 평가없이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음을 안다. 그런 그녀가 멋지다. 그녀는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알고 또 세상 살이가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 또한 안다. 그녀는 언제나 세상을 하나의 렌즈로 바라보지 않는다. 삶의 모든 단면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것만 같다. 그녀는 가볍고 유쾌하다. 어떤 겉치례 없이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는 것이 그녀처럼 평범한 우리에게 잔잔한 위로가 된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함몰되지도 어떤 처량함의 넋두리도 없다. 그녀에겐 삶이 그저 여러 면의 장면일 뿐이다. 까매서 막막하고 회색이어서 우울하고 노랑이어서 신나고 밝지만도 않다, 그녀는 자신과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자신을 너무 비참하게 내몰지도 또 자신을 과장하지도 않지만 가끔은 도도하고 가끔은 찌질해서 웃음이 난다. 그녀의 찌질함도, 도도함도 순간의 진실된 감정일 뿐 어떤 과장됨이 없다. 그녀의 숨길 수 없는 매력이다. 그런 담백한 그녀와 그녀의 글이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담백한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 그녀처럼 관점은 열려있고 감정에 함몰되지 않는, 세상 우울한 이야기도 저렇게 가볍게 풀어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나도 당장 공책을 꺼내 뭐라도 긁적거려 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그녀 덕분에 용기 내어 다시 글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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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피천득 수필집
피천득 지음 / 종합출판범우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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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수필집

 

<찰스램> p39

나는 그저 평범하고 정서가 섬세한 사람을 좋아한다. 동정을 주는데 인색하지 않고 작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곧잘 수줍어하고 겁많은 사람, 순진한 사람, 아련한 애수와 미소 같은 유머를 지닌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비원> p42

비원은 창덕궁의 일부로 임금들의 후원이었다. 그러나 실은 후세에 올 나를 위하여 설계되었던 것인가 한다. 광해군은 눈이 혼탁하여 푸른 나무들이 잘 보이지 앟았을 것이요, 새소리도 귀담아 듣지 못하였을 것이다. 숙종같이 어진 임금은 늘 마음이 편치 않아 그 향기로운 풀 냄새를 인식하지 못하였을 거다. 미는 그 진가를 감상하는 사람이 소유한다.

 

비원은 정말 나의 비원이 될 것이다.

 

<> p62

나이를 먹으면 젊었을 때의 초조와 번뇌를 해탈하고 마음이 가라앉는다고 한다. 이 마음의 안정이라는 것은 무기력으로부터 오는 모든 사물에 대한 무관심을 말하는 것이다. 무디어진 지성과 둔해진 감수성에 대한 슬픈 위안의 말이다. 늙으면 플라톤도 허수아비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높은 지혜도 젊은만은 못하다.

 

<오월> p64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있는 비취가락지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나의 사랑하는 생활>

p80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고운 얼굴을 욕망없이 바라다보며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반사적 광영> p87

나는 범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달이 태양의 빛을 받아 비치듯, 이탈리아의 플로렌스가 아테네의 문화를 받아 빛났듯이 남의 광영을 힘입어 영광을 맛보는 것을 반사적 광영이라고 한다.

 

사람은 저 잘난 맛에 산다지만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 잘난 맛에 사는 것이다. 이 반사적 광영이 없다면 사는 기쁨은 절반이나 감소 될 것이다.

 

<이야기>

p93 좋은 말을 하기에는 침묵을 필요로 한다. 때로는 긴 침묵을 필요로 한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은 아니요, 농도 진한 말을 아껴서 한다는 말이다.

남의 말을 정성껏 듣는 것도 말을 잘하는 방법인데 남이 말할 새 없이 자기 말만 하여서 얼마 되지 아니하는 바닥이 더 빨리 드러나는 것이다.

 

이해관계 없이 남의 험담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이런 재미도 없이 어떻게 답답한 세상을 살아간단 말인가. 남의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사람은 위선자가 틀림없다.

 

<>

p100 눈같이 포근하고 안개같이 아늑한 잠, 잠은 괴로운 인생에게 보내온 아름다운 선물이다. 죽음이 긴 잠이라면 그것은 영원한 축복일 것이다.

<플루트 연주자>

p124 토스카니니가 아니더라도 어떤 존경받는 지휘자 밑에 무명의 프루트 연주자가 되고 싶은 때는 가끔 있었다.

 

<송년>

나는 반세기를 헛되게 보내었다. 그것도 호탕하게 낭비하지도 못하고 하루하루를 일주일 일주일을 한해 한해를 젖은 짚단을 태우듯 살았다.

<장수>

p148 예전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생애가 찬란하였다하더라도 감추어둔 보물의 세목과 장소를 잊어버린 사람과 같다.

 

아름다운 인연을 많이 맺으며 나날이 착한 일을 하고 때로 살아온 자기의 과거를 다시 사는데 있는가 한다.

 

<만년>

p149 그리고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하고 한숨지어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

 

<여성의 미>

p153 아무리 아무리 아름다운 여성도 청춘의 정기를 잃으면 시들어버리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여 나는 사십이 넘은 여인의 아름다운 얼굴을 드물게 본다. ’원숙하다또는 곱게 늙어간다라는 말은 안타까운 체념이다. 슬픈 억지다. 여성의 미를 한결같이 유지하는 약방문은 없는가 보다. 다만 착하게 살아온 과거, 진실한 마음씨, 소박한 생활 그리고 아직도 가지고 있는 희망 그런 것들이 미의 퇴화를 상당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선물>

p154 선물은 뇌물이나 구제품같이 목적이 있어서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고싶어서 주는 것이다. 구태여 목적을 찾는다면 받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선물은 포시아가 말하는 자애와 같이 주는 사람도 기쁘게 한다.

 

<서영이>

내가 서영이 아빠로서 미안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첫째 내 생김생김이 늘씬하고 멋지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따라서 아름다운 아내를 맞이하지 못하였던 것이 미안하다. 젊은 아빠가 아닌 것이 미안하다. 보수적인 점이 있기 때문이다. 기대가 커서 그것에 대한 의무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미안하다.

 

<딸에게>

이 싸움을 네가 언제까지 할 수 있나 나는 가끔 생각해본다. 그리고 너에게 용기를 북돋워 준다는 것이 가혹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도산>

p176 지도자일수록 과학적 정확성과 예술적 정서를 가져야 한다.

 

 피천득 선생님의 인생에 대한 긍정과 연민, 작고 소박한 것들에 대한 사랑, 순수함과 자연스러움 그리고 작은 행복과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그는 글과 삶이 같았다. 아니 어쩌면 글보다 삶이 더 따뜻하고 순수하고 소박했으며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신 분이었다.

초등학교 다니는 딸 서영이를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마중나가던 자상한 아버지, 훌쩍 커버린 서영이의 자리를 대신하는 곰인형과 난영이가 잠들지 못할까봐 안대를 해주고 이웃 주민들이 시끄러워 할까봐 박지 못한 액자가 벽 아래 놓여져 있는, 착한 소 시민이자 동물과도 교감을 나누던 성프란치스코의 마음을 가진 독실한 천주교인, 학문에 있어선 누구 못지않게 열정으로 많은 후학들에게 학문의 자세가 무엇인지 보여준 학자이셨다. 그는 98세까지 장수하시면서 세상 모든 것과 소중한 인연을 맺으며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감수성으로 순수하고 맑게 살아가신 듯하다. 글 안에서는 그가 겸손하다못해 아주 작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신의 위신이나 명예보다는 다른 사람의 공적을 찬양하고 누구든 늘 좋은 모습으로 그려주신다. 자신의 인품이 부족함을 부끄러워하고 염치없어 하셨다. 엄마에 대한 사랑에서 딸에 대한 사랑으로 또 다시 손자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진다. 그는 정말 사랑하며 살았다.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사셨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미는 그 진가를 감상하는 사람이 소유한다.

비원은 정말 나의 비원이 될 것이다.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고운 얼굴을 욕망없이 바라다보며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남 잘난 맛에 사는 것이다. 이 반사적 광영이 없다면 사는 기쁨은 절반이나 감소 될 것이다.

 

좋은 말을 하기에는 침묵을 필요로 한다. 때로는 긴 침묵을 필요로 한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은 아니요, 농도 진한 말을 아껴서 한다는 말이다.

 

나는 반세기를 헛되게 보내었다. 그것도 호탕하게 낭비하지도 못하고 하루하루를 일주일 일주일을 한해 한해를 젖은 짚단을 태우듯 살았다.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하고 한숨지어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

 

 

피천득 선생님 엄마의 죽음 너무도 안타깝고 슬프다.

아기소가 엄마소 옆에 있는 모습이 부러웠다는 말이 애잔하다.

 

나에게 죽음은 왜 아무렇지도 않을까?

오히려 기다리는 무언가이거나 그냥 그런 무언가이다.

아빠는 할아버지가 죽기를 기다리는 건 아니지만 퇴직 후 할아버지를 모시며 이렇게 세월이 길어질 줄 몰랐다. 10년이 지나고 또 15년이 지났다. 할아버지는 100세를 넘었고 아빠도 할아버지처럼 노인이 되었다. 책임감으로 시작한 일이 세월이 길어지면서 아빠는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고 아빠의 몸과 마음을 더 약하게 만들었다. 할아버지는 그런 아빠를 안타깝게 여기거나 고마워하지 않는다. 100세까지도 자신만 생각하는 할아버지다. 오히려 아들을 귀찮아하거나 미워한다. 그래서 아빠는 그런 희생을 치루고 있음에 어떤 보람을 느끼시긴 어려웠다. 엄마는 아빠를 위로하려는지 사람이 늙으면 빨리빨리 죽어야 해, 안 죽고 살아있는 것도 못할 노릇이야.’ 이런 말을 꺼내면 아빠는 그저 얼굴에 잔뜩 인상을 쓴 채 고개를 숙인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함께 아빠의 노년이 시작되었고 아빠의 괴로움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우리는 한 노인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죽음에 대한 무감각이 자라게 된 건 어리석은 생각이란 걸 알면서도 내게 죽음은 아주 멀리 있는 것이다. 적어도 기다리는 그 분의 다음 세대이니 나의 엄마 아빠는 천년만년 오래오래 살아 계실 것만 같다. 설사 돌아가신다해도 내 마음은 무덤덤하다, 살아 생전에 원 없이 효도를 해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마 아빠에 대한 원망이나 증오 따위도 없다. 그냥 인간의 삶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 꽃이 피었다 사라지듯 인간의 삶이 그렇게 가치 있거나 그렇게 안타깝게 여겨지지 않는다. 얼마 전 귀 뒤에 갑자기 작은 혹이 하나 생겨서 내심 깜짝 놀라 남편에게 두려움 섞인 볼멘 소리로 여보, 나 이거 종양 아니예요? 나 죽는 거 아닌가?“했더니 남편은 표정 없는 얼굴로 나를 나무랐다. ”죽으면 죽는거지 죽음이 뭐 대수라고 호들갑이야..“ 집안 내력인지 우리 엄마 아빠도 남편도 죽음은 빨리 헤치우는게 좋거나 혹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피천득 선생님의 어머니처럼 우리 선생님의 어머니도 선생님이 중학교 때 돌아가셨다. 지금도 그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슬프고 안타깝다. 아직은 보호 받아야 할 나이에 삶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너무도 큰 상처와 아픔을 갖게 된다. 그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아픔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고스란히는 착각일 것이다.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 맞다.) 다른이가 맞이하는 죽음은 너무도 안타깝고 슬프지만 여전의 내 주위의 죽음은 덤덤하다.

 

몇 달 전 시댁에 작은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은 코로나의 여파로 더욱 썰렁했다. 장례식장에는 아무도 슬퍼하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작은 어머님(부인) 은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딸과 함께 집에 머무르셨고 아들들은 여는 명절과 다르지 않은 표정들이다. 큰아들은 우리 아버지 살아 생전 원하는 거 다 하시고 80세까지 사셨으니 호상이다.“하시며 사람들이 보내온 화환을 다시 돈으로 환급받을 궁리에 빠지셨다. 주위를 둘러봐도 누구도 슬퍼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그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감정이 사라진 담백한? 장례식도 있구나 하는 생경한 느낌이었다.

 

친구네 집 화분에 오랫동안 아름답게 피어있던 구절초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화분은 다시 예전처럼 잎사귀로만 무성했다. 원래의 모습이었다. 한때 그렇게 신비로운 꽃을 피우고 언제 그랬냐는 듯 그렇게 사라졌다. 나는 잎만 무성한 화분을 바라보며 얼마 전 피어났던 구철초를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피천득 선생님의 삶과 글을 보며 나를 본다. 세상 무엇에도 무덤덤하게 살아간 나, 관계 속에서도 무관심했던 나, 소박한 것들은 하찮은 것으로, 소중한 것들은 당연한 것들로 여기며 살아왔다. 나의 무감각으로 세상과 연결되지 못했다. 피천득 선생님의 그 세심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대상에게 진정과 정성을 다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그러한 삶을 나도 살고 싶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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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향기롭게 - 법정 대표산문선집
법정(法頂) 지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는가.

 

만남

 

p10 반드시 어떤 만남에 의해서만 인간은 성장하고 또 형성된다. 그것이 사람이든 책이든 혹은 사상이든 간에 만남에 의해서 거듭거듭 형성되어간다.

 

만난다는 것은 곧 눈뜸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세계가 새롭게 열리고 생명의 줄기가 파랗게 용솟음친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비로소 인식하는 것이다.

 

그는 일단 자기를 내던짐으로써 거듭 태어나게 되었다. 만남에는 자기를 버리는 그런 아픔을 치러야 한다.

 

p11 생명의 환희와 감사의 마음이 따르지 않는 것은 만남이 아니라 마주치는 것이요, 사교일 따름이다. 만나는 데는 구도적인 엄숙한 자세가 있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런 문제를 지니고 찾아 헤맬 때에만 만남은 이루어진다. 나 하나를 어쩌지 못해 몇 밤이고 뜬눈으로 밝히는 그러한 사람만이 만날 수 있다.

 

만난 사람은 그때부터 혼자가 아니다. 그는 단수의 고독에서 벗어나 복수의 환희에 설레면서 맑게 맑게 그리고 깊게깊게 승화한다.

 

사람은 혼자 힘으로 인간이 될 수는 없다. 만남에 의해서만 형성되는 것이다.

 

법정 스님의 이 첫 에세이가 내 마음을 파고 들었다. 나를 버리는 아픔을 치러야 비로소 진실된 만남이 가능하다. 그런 만남을 통해 복수의 환희에 설레면서 맑고 깊게 승화해 갈 수 있다는 말씀이 지금 나의 상황과 겹쳐지며 작은 위로가 되었다.

나를 버리는 아픔을 치러야 했다. 그만큼인 줄은 몰랐다. 그냥 조금 알면 되고, 조금 수정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다시 태어나기 위해 나를 내던져야 했다. 열심히 쌓아왔던 나의 허상을 완전히 무너뜨려야 했다. 허상이 실재인 줄 알았기에 또 단단했기에 나는 몇 해를 헤매었다. 깊은 만남은 나의 허상을 조금씩 부서뜨리기 시작했다. 아픔과 고통에서 시작된 나는 누구인가?를 직면하며 유리 같은 허상은 수없이 깨지고 부서지기를 반복했다. 고통과 눈물 그리고 한 줌의 희망 속에서 작은 싹 하나를 발견한다. 그것은 작고 여리지만 진짜 나였다. 만남에 의해 나는 다시 새 삶을 시작한다. 마음 안에 작은 싹을 잘 돌보고 싶다. 만남은 그렇게 내 인생에 어마어마한 폭풍처럼 다가왔다. 이제 내가 진짜 사람이 되려는가 보다.

 

거꾸로 보기

p13 그건 새로운 발견이었다. 하늘은 호수가 되고 산은 호수에 잠긴 그림자가 되었다. 바로 보면 굴곡이 심한 능선이 거꾸로 보니 훨씬 유창하게 보였다. 그리고 숲의 빛깔은 원색이 낱낱이 분해되어 멀고 가까움이 선명하게 드러나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랐다. 나는 하도 신기해서 일어서서 바로 보다가 다시 거꾸로 보기를 되풀이했었다.

 

여기에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캐낼 수 있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람을 대하거나 사물을 보고 인식하는 것은 틀에 박힌 고정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알아버린 대상에서는 새로운 모습을 찾아내기 어렵다. 아무개 하면 자신의 인식 속에 들어와 이미 굳어버린 그렇고 그런 존재로 밖에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건 얼마나 그릇된 오해인가. 사람이나 사물은 끝없이 형성되고 변모하는 것인데.

 

p14 보는 각도를 달리함으로써 그 사람이나 사물이 지닌 새로운 면을 아름다운 비밀을 찾아낼 수 있다. 우리들이 시들하게 생각하는 그저 그렇고 그런 사이라 할지라도 선입견에서 벗어나 맑고 깨끗한 열린 눈으로 바라본다면 시들한 관계의 뜰에 생기가 돌 것이다.

 

내 눈이 열리면 그 눈으로 보는 세상도 함께 열리는 법이다.

그 어떤 고정관념에도 사로잡히지 말고 허심탄회한 빈 마음으로 바라보라는 것, 남의 눈을 빌릴 것 없이 자기 눈으로 볼 때 우리는 대상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이다.

 

p15 인격에 고정된 틀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지닌 좋은 덕성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는 내게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p16 일산의 밤가시골 초가집 수도원에서 오늘의 교회와 사원을 바라보는 눈을 나는 그날의 선물로 받아왔다.

 

양생법

p20 마음을 안정시키려면 그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아야 한다. 분수 밖의 탐욕이 우리들 마음을 산산히 흩뜨려 놓는다. 외부로만 향했던 시선을 안으로 거두어들일 수도 있어야 한다. 밖으로 쳐다보지만 말고 안으로 들여다 볼 때 자기 분수를 가늠할 수 있다.

 

수본진심 제일정진, 즉 자기 자신의 천진스런 본래 마음을 지키는 것이 으뜸가는 정신이라고

 

자기 특성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어떤 일에 전념할 때 우리들의 마음은 온갖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 가장 투명하고 평온해진다. 이런 상태가 곧 마음의 안정이다.

 

p21 우리들이 건강을 유지하려면 즐겁고 명랑한 생활을 해야 한다. 즐겁고 명랑한 생활이 곧 삶의 리듬이요, 무게다.

 

우리들은 스스로 즐거움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이든지 마음의 본성에 따른 행동은 즐겁고 그에 거슬린 짓은 즐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합리적인 식사- 자연식 섭취

마음의 안정이나 즐겁고 명랑한 생활에는 먹는 음식이 중요한 작용을 한다.

 

나는 분수대로 살지 못했다. 분수를 몰랐다. 아니 내 분수를 과장했다. 밖으로는 나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눈이 없었고 안으로는 욕심이 넘쳐서 내 분수가 퍽이나 큰 줄 착각했다. 나의 시선은 늘 밖을 향해있었다. 나는 그들보다 나아야 하고 더 나아지고 싶었지만 요 모양 요 꼴인 내가 한심하고 싫었다. 그런 생각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감정은 열등감이나 질투 그리고 불안이었다. 먼저 나의 분수를 자각하는 것이 중요했다. 외부로의 시선들을 거두어들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려고 했다. 아무것도 아닌 나와 존재로서 소중하고 가치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 분수를 알고 명랑하고 즐겁게 나의 일에 전념하며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 한다.

 

물 흐르고 꽃피어난다.

p25 눈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내게 좋은 말이 있을 턱이 없다.

사람의 말이란 자연에서 치면 한낱 파리나 모기 소리와 같이 시끄러움일 뿐이다.

입 다물고 자연의 일부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밖으로만 팔았던 눈과 귀와 생각을 안으로 거두어들여야 한다.

자연의 숨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p26 그 알량한 말로 인해서 지금까지 우리는 얼마나 눈멀어 왔고 귀먹어왔는지 냉정하게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닳아지고 관념화되어 꺼풀만 남은 오늘의 우리를 회복시킬 수 있다.

 

자기 삶 속에 꽃을 피우고 물이 흐르도록 해야 한다.

 

p27 자기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를 두고 딴 데서 찾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헛수고일 뿐 그러기 때문에 저마다 지금 바로 그 자리가 자기 삶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

 

남의 길을 가지 않고 자기 자신이 길을 가는 사람만이 무위진인이라 불릴 수 있다.

無位眞人이란,

어느 자리도 연연하지 않고, 어떤 모습에도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어떤 상태에도 머물지 않고 스스로를 잘 아는 참사람을 뜻함.

 

입을 다물어야겠다. 수없이 뱉어내었던 과장의 말들! 스스로에게 꽂혀서 혹은 내가 너무 중요해서 귀는 닫고 내가 맞다고 내가 옳다고 떠들어 댔다. 그 작은 관념 안에 사로잡혀 교만하게 우겨대던 나의 소리가 부끄럽다. 상대에 대한 관심이나 배려는 안중에도 없고 생각없이 뱉어내던 말들이 부끄럽다. 하고 싶은 말을 멈추고 상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언제나 나보다는 상대를 헤아려주고 싶다. 입을 닫고 귀를 활짝 열어야지!

 

버리고 떠나기

p29 잎을 떨치고 빈 가지로 묵묵히 서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자신도 떨쳐 버릴 것이 없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p30 자신의 분수와 그릇에 맞도록 자기 몫의 삶을 이루려면 선택된 청빈일 것이다.

선택된 청빈은 결코 악덕이 아니라 미덕이다.

 

p31 무엇이든지 차지하고 채우려만 하면 사람은 거칠어지고 무디어진다.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p32 흙을 가까이하면서 나무들을 매만지고 쓰다듬으며 가지 끝에 열려 있는 하늘을 이따금 쳐다보아야 한다. 하늘은 툭 트인 무한한 우주 공간을 우리에게 안겨줌으로써 어느 일부분에 매달리거나 안주하려는 그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p33 나무줄기를 쓰다듬으니 거칠거칠한 그 속에서도 여리디여린 부드러움이 있다. 거칠고 살벌한 이 풍진 세상에서도 우리 안에는 원천적으로 여리고 부드러움이 내재되어 있다는 소식일까.

 

보다 멀리 내다보려면 다시 한충 더 높이 올라가라.

 

여백이 없는 사유는 자칫 환상이나 망상으로 치닫기 쉽다.

 

일상의 소용돌이에서 한 생각 돌이켜 선뜻 버리고 떠나는 일은 새로운 삶이 출발로 이어진다.

 

나무들이 달고 있던 잎을 미련없이 떨쳐버리는 그런 결단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p34 우리가 산다는 것은 끝없는 탐구이고 시도이며 실험이다.

 

자연의 리듬은 멈추거나 끝나는 일이 절대로 없다. 자연은 스스로를 정화하면서 가장 자연스럽게 존재한다. 우리 인간도 먹는 것, 입는 것, 생각하고 활동하는 것, 대인 관계 등에 억지나 과시나 허세가 없이 지극히 자연스러워야 한다. 자연스러움이 곧 건전한 삶을 이룬다.

 

나에게 아직 떨치지 못하는 어떤 집착이 남아있을까?

나는 무엇을 미련없이 버리고 떠나야 할까? 내겐 어떤 결단과 용기가 필요할까?

루이와 함께 간 공원의 나뭇잎들이 모두 떨어지고 가지만 남았다. 시야가 훤하게 뚫린 느낌이라 뭔가 더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여백이 주는 아름다움, 모두 버려야 다시 그곳에 새로움을 채운다. 자연의 순환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에게 아직 어떤 집착이 남아있을까? 욕심은 많이 비워지고 과정을 밀도있게 즐기고 싶은 마음 뿐이다, 더 버릴 욕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기꺼이 비우고 싶다. 깨끗한 도화지에 밝은 크레파스로 명랑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 하지만 좀 더 신중히, 좀 더 정성을 다하고 싶다. 깨어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매사에 뭐든지 그냥 흘려버리는 습관들을 고쳐나가야 한다. 내게 필요한 결단과 용기는 매 순간 나를 알아차리고 멈추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말하기 전에 멈추자. 그리고 신중히 생각해 보고 정성을 다해 행동에 옮기자.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는가.

p43 주어진 이런 아름다움과 신비를 일상의 우리는 그저 무감각하게 흘려보내고 있다. 이와 같은 아름다움을 신비를, 그런 고요와 평화를 우리는 한 생애를 통해서 몇 번이나 바라보며 느낄 수 있는가.

 

날마다 새날을

p47 진실로 삶은 놀라움이요, 신비다. 인생만 삶이 아니라 새와 꽃들, 나무와 강물, 별과 바람, 흙과 돌, 이 모두가 삶이다. 우주 전체의 조화가 곧 삶이요. 생명의 신비다.

 

삶은 참으로 기막히게 아름다운 것.

 

출가

p51 가지에서 저버린 나뭇잎처럼, 떠나지 않고는 변신이 불가능하다.

 

p55 사람이 주어진 환경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일반 동물이나 다를 게 무엇인가. 의지적인 노력을 통해 자신을 재구성하고 몸담아 살고 있는 환경을 끊임없이 개선해 나감으로써 고등 동물의 할 일을 다 할 수 있다.

 

크게 버리는 자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출가의 영원한 교훈이다.

버리지 않고는 새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비본질적인 자신을 털어 버림으로써 본질적인 자신을 크게 일깨우라는 뜻이다.

 

욕망을 버리는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p56 버리기 위해서는 맺고 끊을 줄 아는 굳센 의지가 작용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신비롭고 아름답다. 자연의 새와 동물, 꽃과 나무, 산과 바다, 태양과 달과 별 그 모든 것들이 신비롭기만 하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공물들도 마찬가지이다. 티비, 자동차, 비행기 그리고 예술품들 모든 게 신기하고 신비롭고 또 아름답다. 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세상을 잘 누리고 잘 즐기고 싶다. 무엇하나 허투루 보지 않고 무엇하나 무심히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 사람으로 왔다. 식물로 왔다면 꽃을 피우고 다람쥐로 왔다면 다람쥐로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나는 사람으로 와서 사람답게 살아야 이 세상의 부속물로 최선을 다해 나답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나다움 안에 사람다움이 함께한다. 고등 동물로서의 삶은 의지적인 노력을 통해 자신을 재구성하고 몸담아 살고 있는 환경을 끊임없이 개선해 나감이라고 말씀하셨다. 의지적 노력으로 성장해 나아가는 것이 사람으로서 자연스러움이다. 고등 동물로 태어나서 단세포 동물처럼 살아간다면 나의 본분을 잃은 것이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더 노력하여야 하겠다.

낙엽은 뿌리로 돌아간다.

 

p59 낮은 밤이 받쳐주기 때문에 밝고, 밤은 낮이 비워주기 때문에 그 자리에 어둠을 이룬다.

 

우주의 커다란 생명체와 우리 자신이 하나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p60 그것들은 삶 속에 묻혀 지낼 뿐 죽음 같은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것들은 그때 그곳에 모든 것을 맡기고 순간순간 있는 그대로 산다.

삶을 마치 소유물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소멸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p61 이 순간에 있는 그대로 사는 사람한테는 사슬이 없다. 기억의 사슬도 없고 욕망의 사슬도 없다. 시냇물이 흐르듯 그저 담담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일 뿐이다. 진정한 자유는 정신적인 데에 있다.

 

입 다물고 귀를 기울이라

p63 아무 생각없이 빈 마음으로 자연을 대하고 있으면 그저 넉넉하고 충만할 뿐 결코 무료하지 않다.

 

p64 받아들이려면 먼저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리고 귀를 기울이며 지켜보아야 한다.

 

p66 입 다물고 귀 기울이는 습관을 익히라. 말이 많고 생각이 많으면 진리로부터 멀어진다. 말과 생각이 끊어진 데서 새로운 삶이 열린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p67 먼저 생각하라 그런 다음에 말하라.

p68 우선 입 다물고 귀를 기울이라.

 

2. 당신은 행복한가.

 

일상의 심화

p70 대인의 관계도 어떤 것은 따지고 보면 소음과 비슷한 것이 적지 않다.

불필요한 가지들로 인해서 내 생명의 열매는 알차게 여물 수 없게 된다.

 

자신의 뿌리를 살피는 일, 자신의 처지와 분수를 되돌아 보는 일이다.

그리하여도 좋은 비본질적인 곁가지들에 대해서는 미련없이 가지치기를 해야한다.

새로운 삶을 위해서는 생나무 가지를 찢는 아픔쯤은 참고 견뎌야 한다.

 

심화는 곧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매듭이다

 

혼자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 자신을 본래적인 나로 있게 하기 위해서다.

그 모든 관계에서 벗어난 순수한 나를 일단 객관화 시켜야 한다.

 

진공묘유 모든 집착에서 벗어난 홀가분한 상태에서 오묘한 존재 혹은 오묘한 작용이 나올 수 있다

 

문제는 무슨 일에 있지 않고 어떻게 사느냐에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하는 일이 곧 나이다. 그 일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꽃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이다.

 

맑은 기쁨

 

p79 밤 시냇물 소리, 그것은 쉬지 않고 흐르는 세월의 소리다.

 

청빈의 향기

p80 잎이 져버린 빈 가지에 생겨난 설화를 보고 있으면 텅 빈 충만감이 차오른다. 아무것도 지닌 것이 없는 빈 가지기에 거기 아름다운 눈꽃이 피어난 것이다.

 

아무것도 걸리지 않은 텅 빈 벽에 방석만 한 장 달랑 방바닥에 놓여 있을 뿐이다.

그의 방은 그대로가 커다란 침묵이다.

 

그 이름을 알고 실물을 대했을 때와 이름을 모른 채 실물과 마주했을 때의 그 감흥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마치 별자리의 이름을 알고 밤하늘을 우러를 때와 같다.

 

흐린 물에 섞이다 보면 스스로도 흐려지게 마련이다. 설득이 불가능 할 경우에는 그 흐림에서 벗어날 수 밖에 없다.

 

그의 방 처마 끝에 달아 두고 듣던 조그만 풍경을 한 도반이 그 맑은소리에 유심히 귀 기울이는 것을 보고 그는 넌지시 그 풍경을 떼다가 도반의 거처에 달아 주었다.

 

반백살이 되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 작은 동굴 안에서 나만 보며 살았다. 더 화려하게 더 편하게 더 행복하게 내 맘대로 나만 생각하며 살았다. 지나온 세월들을 돌이켜보면 가슴이 철렁하다. 말도 안 되게 오만하고 교만했던 날들, 남이야 어떻든 나만 좋으면 그만이다 행동했던 날들이 부끄럽고 사람들에게 준 상처와 피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서늘해진다. 나는 분명 죄인이다. 이제 눈을 돌려 세상을 바라봐야지. 이 세상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든 것을 느끼고 누릴 것이다. 가까운 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꽃의 이름을 알아주고 하늘을 더 많이 올려다보고 소중히 아주 소중히 그 모든 것을 느끼고 싶다.또 이젠 지금까지의 나와는 다르게 천천히 정성스레 신중히 조심히 그리고 또 냉철하고 분명하게 세상과 상대를 마주하고 싶다. 오늘 밤이 지나면 2022년이 된다. 2022년 한 해는 나에게 뜻깊은 해가 될 것이다. 오늘 밤부터 나는 이미 달라져 있음을 느낀다. 행운을 빈다.

 

 누구와 함께 자리를 같이 하랴.

p84 유유상종, 살아있는 것들은 끼리끼리 어울린다. 그러니 자리를 같이하는 그 상대가 그의 한 분신임을 알아야 한다. 당신은 누구와 함께 자리를 같이 하는가.

 

물소리 바람 소리

p89 세월이 흐르는 소리라고, 인생이 흘러가는 소리라고 생각하니 도리어 시간에 대한 관념이 새로워진다.

 

한없이 무엇인가를 씻어내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혼자서 유별나게 살았으니 이제는 또 여럿 속에 섞여 그 그늘 아래 묻혀서 살고 싶다.

 

인생은 어떤 목표나 완성이 아니고 끝없는 실험이요, 시도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즉시현금 갱무시절(卽時現金 更無時節), 바로 지금이지 다시 시절은 없다는 말.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최대한으로 살라는 이 법문을 대할 때마다 나는 기운이 솟는다.

 

잠시도 멈추지 않고 시냇물은 흐르고 또 흘러서 바다에 이른다.

 

사막의 교부들

p96 필요 없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안락과 허영심은 정신을 좀 먹는 암이다.

 

그대 눈에 지금 보이는 바를 행하게

종교란 말 끝에 있지 않고 당장의 행동에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행복한가

 

p104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마음이 가난한 사람

마음이 가난한 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더 알려고 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더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지식으로부터의 자유, 소유로부터의 자유를 말하고 있다. 심지어 그는 신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사람만이 진정으로 마음이 가난한 자라고 한다.

 

산승의 편지

p117 늘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꽃처럼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야 합니다.

 

본래의 밝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닦음이고 닦지 않으면 더럽히니까 항상 전진하는 것이오.

 

될 수 있는 한, 말 적게 하고, 잠 덜 자고, 음식 덜 먹는 것이 수도 생활을 기쁨과 축복의 길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새벽에 귀를 기울이라.

p120 명상이란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과 다른 무엇이 아니라 깨어있는 삶의 한 부분이다.

 

무슨 일에 종사하건 간에 자신이 하는 일을 낱낱이 지켜보고 자신의 역할을 지각하는 것이 곧 명상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으면 자기 자신을 안팎으로 냉철하게 살펴보면 된다.

곰곰이 헤아려보면 자기 존재의 실상을 엿볼 수 있다

 

새벽에 일어나 자신의 삶에 귀를 기울여 보라. 나는 누구인가 하고 스스로 물어보라.

 

시간 밖에 살다.

p125 나는 비로소 시간 밖에서 살 수 있었다.

 

시계 바늘이 가리키는 시간에 팔리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그 순간순간을 알차게 사는 사람이야말로 시간 밖에서 살 수 있다.

 

어려운 일에 부딪칠 때마다 급히 서두리지 말고 좀 더 기다리라.

안팎의 사정이 달라지는 수가 많다.

 

3장 단순하고 간소한 삶

제비꽃은 제비꽃답게

 

p130 제비꽃은 제비꽃답게 피면 그만이지, 제비꽃이 핌으로써 봄의 들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그건 제비꽃으로선 알 바가 아니라네,

 

인간은 평범한 일상성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모험과 위험을 무릎쓰고라도 자기답게 살고자 한다.

 

지혜로 깊어지려면 거기에는 어떤 여과 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일상을 객관화시켜 되돌아보는 일.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응시함으로써 자기 존재에 대해 자각하는 일이다.

진공묘유라는 말은 텅 빈 것에 오묘한 것이 있다. (본성은 공 하지만 작용은 있다.)

 

본질적인 스승은 나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 책임과 긍지가 있다. 외부의 것은 나에게 다만 자극을 줄 뿐이다.

 

지혜로 깊어지고 싶다. 매일 하루 나를 돌아보고 매 순간 나를 응시하고 나의 존재를 자각해야 한다. 외부의 것은 다만 자극을 줄 뿐 본질적인 스승은 나 자신일 수밖에 없다. 나의 존재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 더 깊이 더 명료하게 깨어서 나를 알아차려야 한다. 이 존재에 대한 나의 책임은 매일 빛나게 닦아 주는 일이다.

본래의 밝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닦음이고 닦지 않으면 더럽히니까 항상 전진하는 것이오.

매일 닦아 주지 않으면 빛을 잃는다. 소중히 정성스레 매일을 살아보자.

 

겨울 숲

143 제상(諸相)과 비상(非相), 즉 현실과 본질을 함께 볼 수 있다면 비로소 우주의 실상을 바로 보게 될 것이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바로 인식하려면 드러난 단면만 보지 말고 그 배후까지도 함께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

 

보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내 나름의 질서가 없으면 내 삶은 자주적인 삶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그때그때 단 한번 뿐인 새로운 삶이다.

 

단순하고 검소한 삶

p177 자기 자신을 알고자 한다면 스스로 조용히 지켜보라. 자신의 걸음걸이 먹는 태도 말씨 잡담 미움과 시새움 들을 자세히 살펴보라. 어느 것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내부에 있는 모든 것을 깨우친다면 그것이 명상의 한 몫을 차지할 것이다.

 

자신의 신체 동작이나 언어습관 그리고 내면의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낱낱이 살피고 있을 때 마음은 저절로 안정을 이룬다.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아 맑고 투명해지는 것이 곧 명상의 세계다.

 

우리는 언젠가 낙엽처럼 나뒹굴 그런 존재 아닌가.

 

명상이란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과 다른 무엇이 아니라 깨어있는 삶의 한 부분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낱낱이 지켜보고 자신의 역할을 지각하는 것이 곧 명상이다. 내면의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낱낱이 살피고 있을 때 마음은 저절로 안정을 이룬다.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아 맑고 투명해지는 것이 곧 명상의 세계다. 마음의 수다가 점점 잠잠해진다. 또 이러다 언제 다시 시끌시끌해질지 모를 일이지만 요즘 같아선 따로 시간을 내어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필요성이 사라진다. 생각은 비워지고 당장 할 일에 빠져있는 시간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정신이 명료하게 깨어있지 못하는 때는 식사 시간이다. 식탐에 취해서 정신없이 들이키다 보면 어느덧 접시는 바닥나 있다. 그제서야 내가 또 알아차림을 놓쳤구나 깨닫는다. 올 한해 나를 잘 지켜보고 싶다. 주위의 세심한 관찰도 필요하지만 나에 대한 관찰도 시급하다. 오감 전체가 무뎌진 느낌이다. 잘 날을 세워 더 민감하게 나와 세상을 낱낱이 살피고 싶다.

 

4장 내가 사랑하는 생활

풍요로운 감옥

 

p206 자기 인생에 대한 각성 없이는 벗어날 기약이 없다. 깨어있는 사람만이 자기 몫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있고, 깨어 있는 사람만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끝없는 탈출을 시도한다.

 

p208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은 무엇보다도 사람 그림자를 전혀 볼 수 없는 점과 만날 그저 그렇고 그런 세상 돌아가는 소식이 미치지 않는 점이었다. 나는 근래에 와서 사람을 그리워해 본 적이 전혀 없다. 앞에서사람 그림자라는 표현을 썼지만 보다 솔직한 표현을 쓴다면 사람꼴이라 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시달린 처지라 사람꼴 안보니 얼마나 좋았는지 몰랐다.

 

뒷날 산을 내려와 배달된 신문을 펼쳐보니 솔직히 말한다면 이건 시끄러운 소음이요 쓰레기더미구나 싶었다. 내 정신과 몸에 얼룩이 묻기 전에 얼른 방으로 그 신문을 밀쳐 버리고 말았다.

 

법정스님의 이런 솔직함?에 반감이 들었다. 사람 꼴 안보니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는 말씀이나

신문은 시끄러운 소음이요 쓰레기더미라 하시니 그래서 밀쳐버렸다니 그 마음 씀이 세상 다 꼴보기 싫어 은둔하고 있는 괴팍한 노인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꼴 보기 싫어 더 더 깊이 파고 산골로 들어가 그리고 즐겁게 자연을 누리시고 즐기시니 요즘 티비에 나오는 자연인 같기도 했다. 저 분은 자연인과 무엇이 다를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요즘은 내가 나의 개인적인 관심보다는 세상의 이야기와 사람들과의 관계에 더 중점을 두는 터라 마음의 저항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살아있는 것은 다 한 목숨이다.

p221 살아있는 모든 것은 다 한 목숨이라는 우주 생명의 원리를 믿고 의지하라, 남을 해치는 일이 곧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는 사실을 알고 어떤 유혹에도 넘어짐 없이 사람의 자리를 지켜라.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

p230 1. 고집이 없다 물에는 고정된 모습이 없다. 둥근 그릇에 담기면 둥근 모습을 모난 그릇에 담기면 모난 모습을 한다. 뿐만 아니라 뜨거운 곳에서는 증기가 되고 차가운 곳에서는 얼음이 된다. 이렇듯 물에는 자기 고집이 없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남의 뜻을 따른다.

2. 늘 새롭다. - 살아 있는 물은 멈추지 않고 늘 흐른다. 강물은 항상 그곳에서 그렇게 흐른다. 같은 물이면서도 늘 새롭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거죽은 비슷하지만 실재는 아니다. 오늘의 나는 새로운 나다. 살아있는 것은 이와같이 늘 새롭다.

 

물처럼 살고 싶다. 나를 내세우지 않고 상대가 되어준다. 증기가 되고 얼음이 된다. 늘 낮은 곳으로 흐르며 멈추지 않는다. 매일 새로운 내가 된다.

 

오두막 편지

실패가 없으면 안으로 눈이 열리기 어렵다. 실패와 좌절을 거치면서 새 길을 찾게 된다. 그렇기때문에 전 생애의 과정에서 볼 때 한때의 실패와 좌절은 새로운 도약과 전진을 가져오기 위해 딛고 일어서야할 디딤돌이다.

 

불편함을 이겨나가는 것이 곧 도 닦는 일임을 알아라.

입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배 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적은 것이 있으면 신선도 될 수 있다.

 

5장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침묵의 눈

p238 목격전수(目擊傳受) 입 벌려 말하지 않고 눈끼리 마주칠 때 전할 것을 전해 준다는 뜻.

자기 자신을 안으로 다스리는 맑고 고요한 수행자의 눈이었다. 진실한 수행자의 눈은 안으로 열려 있다.

 

오늘 하루 내 살림살이

우리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구체적인 삶의 내용은 보고 듣고 먹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함이다. 따라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먹으며 어떻게 말하고 무슨 생각을 하며 또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그 사람의 현 존재다.

 

순간순간 당신 자신이 당신을 만들어 간다.

 

무엇을 들었는가?

무엇을 먹었는가?

어떻게 말했는가?

어떤 행동을 했는가?

나는 친구와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매일 빵을 먹고 루이와 얘기하고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다. 이것이 지금의 나다. 열심히 듣고 좀 더 가볍게 먹고 신중하게 말하고 좀 더 차분히 행동하고 싶다. 많은 욕망들이 가라앉은 듯 하지만 여전히 식욕은 왕성하다. 야채나 밥보다는 빵이나 고기를 찾게 된다. 식습관은 여전히 바꾸어가야 할 숙제다.

 

수첩을 펼치면서

p247 연말이면 행사처럼 아궁이 앞에 앉아 편지도 태우고 사진도 불태워 없애고 불필요한 기록들도 불 속에 던져 버린다. 기록이란, 특히 우리처럼 단순 명료하게 살려는 사람들은 그 자체에 의미를 두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인 연장은 불필요하다. 태워버리고 나면 마치 삭발하고 목욕하고 난 뒤처럼 개운하고 홀가분해서 새 삶을 시작하고 싶은 의욕이 솟아난다.

<금강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과거의 마음도 찾아볼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찾아볼 수 없으며 또한 현재의 마음도 찾아볼 수 없다.“

찾을 수도 얻을 수도 없는 이 마음을 어디에 매어 두어야 한단 말인가. 찾을 수 없는 마음이라면 텅텅 비워 버려야 한다. 텅 빈데서 메아리가 울린다. 어디에도 집착이 없는 빈 마음이 훨훨 날 수 있는 자유의 혼을 잉태한다.

또 저항이 찾아왔다. 나는 아직 무심함과 무관심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무엇이든 쉽게 잘 버리곤 했다. 어떤 물건에도 소중함이나 애정이 깃들지 않았다. 당장은 필요나 욕심으로 장만했다가도 금세 질리고 시큰둥해진다. 그리고 또 다른 새로움을 쫓는다. 그래서 무엇이든 잘 없애버린다. 그리고 마음은 언제나 깨끗하고 후련했다. 하지만 나의 그런 무성의하고 상대를 무가치하게 취급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자각하는 중이라 법정 스님의 이런 후련한? 정리가 왠지 대상에 대한 애정 없음으로 느껴진 것 같다. 그래서 쌤에게 이 문구들을 공유하고 받은 카톡 내용

그보다는 (인연이든 과거든) 모든 것들로부터의 자유, (기억하고 싶은)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의미를 두려는) 집착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하겠네요.

개인적인 욕망을 떨치고 지금 여기에 빈 마음으로 살아가는 법정 스님의 자유로운 혼의 정신을 나의 미천한 수준으로 끌어 내렸던가 보다.

 

좋은 친구란 서로가 빈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사이일 것이다. 서로의 빈 마음에 현재의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그런 사이여야 할 것이다. 그 어떤 선입 관념을 가지고는 친구가 될 수 없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p254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주재하는 이는 누구일까. 또 나를 다스리고 나를 뒤흔드는 이는 과연 누구일까. 는 누구인가?

 

물속에 물만 있지 않고 하늘에 하늘만 있지 않은 것처럼 내 안에 나만 있지 않을 것이다.

내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다. 그들을 곁에 두고 그리워하며 살고 싶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그렇게 귀하게 그들을 소중히 대하고 싶다.

 

- 주요 느낀 점-

1. 내 분수를 알고 명랑하고 즐겁게 나의 일에 전념하며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기

2. 입 다물고 귀를 활짝 열기! 말하기 전에 멈추자. 그리고 신중히 생각해 보고 정성을 다해 행동에 옮기자.

3. 고등 동물로서의 삶을 살자- 의지적인 노력을 통해 자신을 재구성하고 몸담아 살고 있는 환경을 끊임없이 개선해 나감

3. 무엇보다도 자신의 일상을 객관화시켜 되돌아보는 일- 매일 하루 나를 돌아보고 매 순간 나를 응시하고 나의 존재를 자각해야 한다날을 세워 더 민감하게 나와 세상을 낱낱이 살피고 싶다.

4. 물처럼 살기- 나를 내세우지 않고 상대가 되어준다. 증기가 되고 얼음이 된다.

늘 낮은 곳으로 흐르며 멈추지 않는다. 매일 새로운 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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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성경 신약 2 : 마가복음 - 성경 전 장을 이야기로 풀어쓴 스토리텔링 성경
김영진.강정훈.천종수 지음 / 성서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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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장 세례와 전도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복 있도다

나의 보잘것없음과 죄인 됨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영원한 구원과 생명을 간절히 바라는 가난한 심령으로 복음을 접하자.

예수님은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맞서 싸우신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온전한 인성을 지니신 사람의 아들로서 맞서 싸우셨다. 기도와 금식과 묵상의 힘이었다.

 

죄라는 개념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왜 죄인일까? 대체 뭘 그렇게 지옥에 갈만큼 잘못을 했을까?

교회에 안가면 지옥에 간다는 그런 말 자체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지옥이라는 존재를 믿지도 않았다. 이 모든 가르침을 비유로 듣자하니 지옥은 어디에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또 지옥에 간다는 말도 내 마음에 평화를 얻지 못하면 마음은 늘 지옥이다. 우리는 금세 어리석음에 빠진다. 그리고 나의 존재만으로 죄인이 될 수 있단 생각이 든다, 죄인은 용서를 구해야 하는 사람이다. 내 삶에서 그동안 나의 오만과 교만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죄를 입혔을지 모른다. 항상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렇다면 나의 보잘것없음과 죄인됨을 겸허히 인정하고 영원한 구원과 생명을 간절히 바라는 가난한 심령으로 이 글을 접하자 라는 말씀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2장 병자와 죄인의 친구

금식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예수님은 금식이 쓸데없다고 말씀하신게 아니라 다만 시기를 불문하고 자신의 경건함과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한 금식을 지적한 것이다. 금식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겸손과 순종의 행위여야 한다.

 

21.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의미나 내용은 무시되고 틀에 메인 형식에만 집중한다면 그곳은 하나님 나라가 아닐 것이다.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 금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잘 즐기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나의 원함이 아니라 겸손과 순종으로 하나님의 원함으로 따라야 할 것이다.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한다?

 

안식일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예수님은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 필요는 의식법이나 형식적인 종교 행위보다 우선한다.

안식일의 참된 정신 안식일에도 배고픈 자를 먹이고 궁지에 빠진 자를 도와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보여주심.

 

3장 열 두 제자와 참 가족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33.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35.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예수님은 때마침 찾아온 가족을 통해 육적인 가족보다 더욱 소중하고 영원한 영적인 가족관계를 비유적으로 적절하게 교훈

 

혈연적인 관계에 연연하기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가기위해 인간의 정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형에게서 사명자의 길을 보았고 그에 따른 외로움도 보았다.

나에서 가족, 가족에서 친구 이런 형태로 퍼져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평범한 인간에게는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찾아온 가족을 외면하는 예수님의 마음과 그 가족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가족은 순간 서운함을 느꼈을 수 있지만 인류의 행복을 지고 가는 위대한 성인으로서의 예수님을 기꺼이 이해했을 것이다. 단순한 혈연관계를 넘어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메시지. 나 중심, 가족 중심에서 벗어나 인류애를 보여주신 예수님의 행동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4장 천국 비유와 이적

씨뿌리는 자의 비유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5.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8.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9.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길가 (사탄, 망각), 돌짝 밭 (시험, 고난), 가시덤불 (욕망, 유혹)

씨뿌리는 농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 길가에 떨어진 씨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긴 하지만 곧바로 사탄에게 그 말씀을 빼앗겨 버리는 자들이다. 돌밭에 떨어진 씨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듣지만 그 말씀이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여 말씀 때문에 환란이나 박해를 받으면 곧장 넘어지는 자들.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들, 그들은 말씀을 듣긴하지만 세상살이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 그 밖의 다른 욕심들이 그 마음속에서 말씀을 막아서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들,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을 마음속에 단단히 뿌리내려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

듣고 흘려버리는 사람, 듣지만 시험이나 고난에 들면 넘어지는 사람, 또한 말씀을 듣지만 세상살이의 욕망과 유혹에 빠져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 또 말씀을 마음속에 단단히 뿌리내려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 우리 현실이 이야기다. 지식을 통해서든 관계를 통해서든 우리는 듣고 알지만 그것을 삶에 적용하는 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그냥 길가나 돌짝밭 가시덤불에 뿌려져 죽어버리는 것이 더 많은 것이다. 나는 어떠한가? 나는 그동안 무심히 흘리거나 작심 3일로 금세 포기해버리거나 또 나의 욕심과 욕망에 사로잡혀 다른 환상을 쫒기도 했다. 마음은 아주 무심하거나 약하거나 허황된 욕심을 부린다. 옳게 뿌리내린 말씀 그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내게 너무도 간절히 필요한 일이다.

매 순간 깨어 나를 관찰해야 한다. 또 무심하게 흘려보내고 있는지, 또 힘들다고 내팽게치고 있는지, 다른 곳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 말이다. 항상 정신을 깨우고 매사에 전일하며 살고 싶다.

 

 

5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의 권능

6 예수님의 사역과 이적

오병이어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42.다 배불리 먹고 43.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오병이어의 기적에는 어떤 비유가 포함되어 있는 걸까?

 

7 율법 정신과 치유 이적

 

음식을 먹기 전에 손과 몸을 씻는 유대 장로들의 전통이 신성불가침의 십계명이라도 되는 양 노발대발하며 시비를 거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 교사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섬긴다 하면서도 마음은 내게서 아주 멀리 떠나 있구나. 그들이 거짓된 마음으로 내게 예배를 드리고 사람이 제멋대로 만든 규칙만을 가르치고 있구나.

 

그렇소 마찬가지로 오늘날 당신들도 하나님의 계명은 버려둔 채 사람들이 만든 전통만을 고집하고 있소.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라 사람의 계명에 따라 하나님을 경배한다면 그것은 거짓되고 헛된 것이다.

 

그것 무엇이든 밖에서 몸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 여러분을 더럽힙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을지어다.

 

생각해보아라 너희가 먹는 음식물은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단지 뱃속으로 들어가므로 그것들은 배설해 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므로 모든 음식물은 사실상 다 깨끗하다고 볼 수 있느라

 

그러나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들은 참으로 그 사람을 더럽힌다. 악한 생각들은 모두 사람의 마음속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들이 아니냐? 음행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비방 교만 어리석음 등 이 모든 악한 것들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와서 그 사람을 더럽히느니라.

 

음식물의 정함과 부정함에 관한 구약시대 레위기 율법은 단지 영적인 정결함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한 표면적인 방편이었다.

사람의 안에서 나오는 것들, 그건 행동 이전의 어떤 마음가짐일 것이다. 마음 안에 시기, 교만, 어리석음들로 인해 우리는 고통받는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사실 외부의 환경보다는 마음속의 생각이나 관념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외부의 사건이나 사람들로 인해 고통받는다고 믿지만 사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어떻게 마음 먹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진다. 마음 안에 탐욕, 악의, 시기, 비방, 교만, 어리석음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것들로부터 깨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 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매 순간의 욕망들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하겠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큰 믿음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의 행동 ; 일차적인 사역 대상은 이스라엘 백성, 있는 그대로를 말함, 개 경멸과 악함의 뜻이 아니라 애완용 강아지를 말함. 우선순위의 문제? 그렇다면 자신의 가족도 외면한 예수님께 우선 순위란게 과연 존재하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왜 자녀와 개로 구분하였을까?

수로보니게 여인의 행동 : 너 낮은 자세로 임함,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

 

예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치심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예수님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자신이 행하려는 바를 보여주셨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최선을 다해 정성을 기울이는 자상한 의사.

말보다는 행동으로 자신이 행하는 바를 보여주시는 예수님이시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만드시고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이든 기꺼이 치료해주시고 돌봐주신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행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고 싶다.

 

8장 바리새인의 누룩과 베드로의 신앙고백

적은 음식물로 4천 명을 먹이신 이적

오병이어에 이어 칠병이어의 기적

 

예수께서 벳새다의 시각장애인을 고치심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십자가 고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34.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자기 중심적인 생각과 자신만의 안위만을 생각한다면 결국은 세상으로부터 도태되고 분리되고 만다. 한단계 더 나아가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결국 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결국 단단하게 굳은 에고로부터 벗어나야 영혼의 자유, 곧 구원을 얻게 되지 않을까 싶다.

 

 예수님의 변모와 제자 훈련

권능으로 임할 하나님 나라

가장 높은 자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예수님은 당시에 세상에서 하찮은 존재로 가볍게 취급받던 어린아이를 따뜻한 가슴으로 영접하는 것이 진정으로 크고 높게 되는 비결이라고 가르치셨던 것이다.

아이는 섬김의 모델- 시대의 가장 낮은 자였기 때문

가장 낮은 자로 임하시다. 이 땅에 낮고 낮은 종으로 오시네.

가장 어려운 일일지 모르겠다. 세상에 소외된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진정한 위안과 사랑을 베푼다는 것이 진정으로 그 모든 것을 품는다는 것이 예수님이시기에 가능할 것이다. 나의 보잘것없음 나의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듯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람들을 가르고 분류하고 그들을 은근히 피하거나 무시한다. 낮은 곳으로 임한다는 말씀은 아직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지만 여전히 발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런 행동이나 말씀을 그림자라도 따르고 싶다.

 

죄의 유혹을 떨쳐내라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43.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5.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7.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무언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방해하고 우리의 영성에 해를 끼치는 무엇이 있다면 곧 우리로 죄짓게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아주 과감하게 가차없이 제거해야 한다는 것,

분명 올바른 길을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수많은 어려움과 장애가 따를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손을 자르고 목을 메어 바다에 던지고 다리를 찍고 눈을 멀게 할 만큼의 각오가 필요하다. 잠깐의 안일한 태도로도 우리는 쉽게 미혹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원칙과 각오가 절실히 필요하다. 절대 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죄짓지 말고 소금 같은 삶을 살아갈 것을 교훈, 소금은 음식물의 상함과 부패를 막는 방부제 역할 즉 예수님 말씀에 바탕을 둔 신실하고 거룩하고 선한 삶으로 세상의 타락과 부패를 방지

공동체를 화목하게 만들고 밖으로는 세상의 타락과 부패를 적극적으로 방지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10장 올바른 혼인관과 재물관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 같은 자들의 것이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은 때 묻지 않고 순수하고 순전한 마음, 시키는 대로 행하는 순종과 믿음과 겸손의 마음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자기 부인의 삶 곧 예수 그리스도와 천국복음을 위해 현세에서는 온갖 핍박을 각오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구원과 영생을 누릴 시민 자격이 있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자만하지 말고 부단히 앞으로 전진해 나아가야 한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누구든지 크고 높은 자가 되려는 사람 그 사람은 지극히 작고 낮은 종이 되어 자신을 희생하면서 다른 이들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 그 완벽한 본보기가 바로 섬기는 종으로 오신 메시아 예수다.

 

11장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저주받은 무화과 나무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무성한 잎사귀는 사람을 현혹하는 위선적인 겉치레 같은 것, 삶이 열매가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열매가 없는 자들, 당시의 위선적인 바리새인들과 율법 교사들에게 경고.

 

위선적인 겉치례에만 집중하는 자들을 경고하셨다. 겉만 화려하게 꾸미고 실제는 그와 다른 기만적인 것들을 스스로 분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거룩한 의분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거룩한 의분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다가왔다. 의분-불의에 대하여 일으키는 분노

분노는 이성을 잃어 충동적으로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옳지 않은 것에 대해 분노하고 그것을 시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예수님에게도 분노는 필요했다. 삶의 희노애락을 모두 느끼시는 분이셨다.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안 좋거나 나쁜 것으로 생각했던 나를 발견했다. 하지만 때에 따라 우리에게 불의를 향한 분노의 감정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감정에 치우친 이성을 잃어버린 화가 아니라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의 원칙을 가지고 불의에 대해 분노할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용서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 죄를 용서 받고자 한다면 먼저 자신에게 죄 지은 자부터 용서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용서 받고자 한다면 먼저 용서하라. 내가 용서를 해야 할 자는 누구일까?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은 많은 것 같지만 내가 용서해야 할 대상은 잘 모르겠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렌데... 특별히 밉거나 싫은 대상이 없는 듯 하다. 그런 사람들은 이미 단절 시키고 관계를 모두 끊었다는 편이 더 맞다. 하지만 지금은 그 대상들도 내가 용서 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용서를 구해야하는 사람들이 된듯하다. 나의 무지와 무관심, 애정 없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피해를 입혔다. 정말 나는 죄인이다. 내 존재로 많은 해를 끼쳤다. 그러는지도 모르고 그랬다. 세상 모든 것에 용서를 구하고 싶다.

 

가장 크고 중요한 계명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1. 하나님 사랑(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2. 이웃사랑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사랑하며 살고 싶다. 내가 잘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주위 사람들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고

내가 조금씩 성장해 가기를 원하는 것처럼 주위에 모든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어느 면에서든 조금씩 나아져서 삶의 고통으로부터 나아지기를 바란다. 내 몸처럼 사랑하면 그들의 성장이나 성공이 큰 기쁨이 될 것이다. 실제의 나는 그들보다는 내가 더 잘되기를 소망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들이 조금씩 희석되고 있는 것 같다. 나의 마음이 조금씩 달라지고 변해가고 있음을 안다. 그렇게 또 조금씩 나아질 것을 믿는다. 세상 모든 것들이 자기 자리에서 아름답게 빛을 발하고 있음을 세상 모두가 아름답다. 그들을 내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하는 일은 그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관심과 애정을 줄까 세심하게 고민하고 그 마음이 표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고민이다. 그에게 정말 필요한 한결같은 관심과 애정으로 다가가고 싶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헌금의 액수보다 헌금 바치는 자의 마음 자세, 그의 생활 형편과 처지 그리고 마음에서 자발적으로 우러나는 믿음 등이 더욱 중요한 요소로 평가된다고 말씀하셨다.

 

13장 세상 끝날 징조와 재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6.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언제 닥쳐올지 모를 재림에 대비하여 정신을 차리고 항상 깨어있는 것이다.

 

14장 배반당하고 수난받는 예수님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 하였느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목적으로 행해진 신실함과 관대함이 결코 비난 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

주님을 영예롭게 하기위해 자신의 최선과 최고의 것을 바치는 행위는 결코 헛된 낭비가 아니라 귀한 헌신이라는 점이다.

평상시에는 근검 절약하면서도 필요한 곳에는 아끼지 않고 기꺼이 쓴다. 그것이 나의 안위를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누군가를 돕기 위함이라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귀한 헌신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의 최선과 최고를 누군가에게 헌신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고귀한 정신일 것이다.

 

놀라운 표적 (예수님의 열한 제자뿐만 아니라 복음을 믿는 자들 모두에게 주어짐)

귀신을 쫓아냄

새 방언으로 말함 낯선 언어를 뜻함

손으로 뱀을 만지거나 입으로 독을 마시더라도 전혀 해를 입지 않음- 믿는 자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한 권능을 받으면 해를 끼치는 뱀이나 독 같은 세상과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능히 보호를 받을 것이라는 의미

병자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임 예수님의 승천 이후 이 은사는 제자들에게 주어져서 많은 병 고침의 표적을 베풀었다.

 

4가지의 표적들을 보면서 어렸을 적 교회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탄아 물러가라! 이런 말들과 뭐라고 중얼거리듯 하는 방언의 기도와 아픈 사람이 목사님 앞으로 기어 나왔다가 걸어가는 동영상 장면들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또 이상한 교회에서 신도들에게 귀신을 쫓는다며 마구 때려서 죽음에 이른 사건들도 떠올랐다. 그땐 왜 교회라는 곳에서 저런 해괴한 짓을 할까 이상하기도 무섭기도 했었는데 이 표적들을 보니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치유하는 일이 그들의 예수님의 권한을 받아 행하는 임무이고 사명이었던 것이다. 사실은 지금도 사탄, 귀신, 이런 절대 악이란 개념에 반감이 생긴다. 세상에 그런 절대 선이나 절대 악이 과연 존재할까?!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비유로 생각하니 조금씩 마음이 풀리기 시작했다. 삶에서 내가 성장하기 위해 나를 가로막는 많은 장애와 어려움들이 나의 사탄이고 귀신일 수 있다. 그런 것들의 극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아주 분명한 원칙과 절대 타협하지 않을 삶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 예수님의 말씀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 순종하고 겸허히 따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삶의 푯대를 세우는데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행동을 자신의 기준으로 삼고 예수님의 그림자라도 따르는 삶은 분명 훌륭한 삶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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