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나답게 - 인생은 느슨하게 매일은 성실하게, 개정판
한수희 지음 / 인디고(글담)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p21 하찮은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인생이 된다는 것. 하찮아 보여도 그게 인생이라는 것. 그 하찮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생이 즐거워질 수도 비참해질 수도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을 나는 살아가면서 배웠다.

 

p23 에세이는 이토록 시시콜콜한 일들을 쓰는 것이로구나. 그것을 진심을 가득 담아 쓰는 것이로구나.

 

p89 나는 여전히 혼자 밥을 잘 먹는다. 내가 계속 혼자 밥을 잘 먹는 이유는 혼자 먹지 않아도 되는 현실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가족도 있고 친구들도 있다. 그러니까 점심 정도야 혼자 먹는다고 해서 비참할 이유가 없다.

 

p99 인생은 결국 선택의 문제고 어느 쪽을 선택하건 선택하지 않은 쪽을 책임지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는데 그게 맞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인생이 선택의 문제라면 인생은 이를테면 자장면과 짬뽕처럼 중국집의 메뉴 같은 것이 되어 버리는데 살아보면 알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인생은 그냥 닥치는 건지 모른다. 닥치고 수습하는 일의 반복이다.

 

p101 내게 재능이 있는 걸까. 있을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지금보다 더 나아질수 있을까. 나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이것 하나는 알았다.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없다면 차라리 이쯤에서 접는 것이 낫다는 것. 이쯤에서 접자니 어쩐지 좀 더 해보고 싶어졌다. 다른 걸 시작한다고 해도 이것보다 더 잘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렇다며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면 무얼 해야 할까.

 

p112 냉철한 현실감각을 갖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에 환상의 색채를 더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p117 지금은 안그래도 된다는게 너무 좋다. 하루 종일 굶어서 당이 떨어진 채로 마트에 들어가면 입구에서부터 야수처럼 먹을 것들을 쓸어 담게 되지만 배가 부를 때는 새 모이처럼 먹는 여자인 듯 도도하게 쇼핑할 수 있는 것과 같다.

 

p118 나이들어 가장 좋은 것은 이제 더 이상 누군가에게 잘보이기 위해 기를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 전전긍긍할 이유도 줄었다. 물론 지금도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고 날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괴로워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필사적인 기분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남편이 있고 애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있는그대로 의 나 좋아하고 사랑해주기 때문이다. 최소한 아직까지는 말이다.

 

p125 펜만들면 아름다운 문장이 빵처럼 구워진다고? 그런 사람이 정말로 존재하기나 하는 걸까? 이 세상의 작가들은 모두 온갖 유혹과 괴로움과 게으름을 떨치고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서 펜을 들 수 있는 불굴의 의지력을 가진 사람들이야. 그리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가지 쓰고 또 쓸수 있는 사람들, 엉덩이가 지독하게 무거운 사람들이라고.

 

p126 우리는 사실 별로 잘하는 것이 없는 인간들인지도 몰라. 우리는 대단한 일을 할 수도 없을거고 대단한 사람이 될수도 없을 거야. 그래서 순간순간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야.

 

p133 아낄 줄 모르는 마음은 자꾸만 새것을 찾게 만든다. 무얼 얻어내도 기쁘지가 않다. 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p170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터득한 삶의 진리는 당장에 무언가를 이루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는 될 턱이 없다. 죽기 살기로 덤벼들어 끝장을 보려고 뜨겁게 도전하다 보면 각자가 가진 능력과 개성 자기 안의 힘이 크게 꽃피는 날이 반드시 온다.

 

p197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p197 완벽한 시간과 완벽한 장소를 기다리다면 모 아니면 도의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

 

p199 글을 쓰기에 완벽한 장소는 없다. 단지 글을 쓰기에 완벽한 시간이 있을 뿐이다.

 

p225 다시 특별할 것도 없이 평범한 나로 살아가기 위해 마음을 추스렸다. 내가 나인 것을 받아들였다. 바로 그런 것을 위해서 나는 떠났던 것이다.

 

p227 나는 이제 이것이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나 자신을 발견하기보다는 가족을 돌보고 생계를 꾸려나가고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애쓴다.

대신 나는 움직이지 않는 여행을 한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상을 영위하며 조용히 그리고 규칙적으로 살아갈 때 나는 여러 가지 자극들에 좀 더 민감해지는 것 같다. 매일 똑같은 것들을 매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

 

거대한 세상에서 초라한 자신을 발견하고 의기소침해진 채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그런 일이야말로 살아가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 중의 하나니까.

 

p245 나는 인생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크게 기대하지 않으면 뭐든 그럭저럭 견딜 수 있는 게 인생이다.

 

p251 그냥 그런 말들은 언젠가 살갗 깊숙이 박혔던 가시처럼 혈관을 타고 떠돌아다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심장을 찌른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거절을 당했거나 연인에게 버림을 받았거나 세상 누구에게도 사랑받거나 인정받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 때 말이다.

 

p275 꽂혔다고만 하면 끝장을 보는 이 남자의 열정은 별로 부담스럽지가 않다. 세상에 무언가를 보여주거나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모든 일을 그냥 즐거워서 좋아서 신나서 하기 때문이다.

 

p281 세상에는 뭔가를 이루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다.

 

p282 우리가 부단히 노력해 이룰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과 화해하는 일이 아닐까. 그건 어떤 변명이나 무례가 아니라 일종의 무겁고도 홀가분한 체념 같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p309 내가 좋은 어른이었을 때는 어디까지나 내가 그러고 싶을 때일 뿐이었다. 그러고 싶지 않을 때 나는 나쁜 어른이 되었다.

 

p324 그래서 두려워도, 힘들어도, 귀찮아도, 뭐라도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p328 미련이나 후회는 해야 했으나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감정이다.

 

하찮은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인생이 된다는 것. 하찮아 보여도 그게 인생이라는 것. 그 하찮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생이 즐거워질 수도 비참해질 수도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을 나는 살아가면서 배웠다.

 

한수희의 온전히 나답게 에세이는 세상에 작고 하찮기만 해보이는 것들이 그녀의 인생에서 얼마나 밝게 빛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녀는 솔직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털어 놓는다. 그녀가 털어놓은 글들이 누군가에게 흉이 되거나 스스로가 바보처럼 보일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녀는 분명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아무런 평가없이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음을 안다. 그런 그녀가 멋지다. 그녀는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알고 또 세상 살이가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 또한 안다. 그녀는 언제나 세상을 하나의 렌즈로 바라보지 않는다. 삶의 모든 단면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것만 같다. 그녀는 가볍고 유쾌하다. 어떤 겉치례 없이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는 것이 그녀처럼 평범한 우리에게 잔잔한 위로가 된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함몰되지도 어떤 처량함의 넋두리도 없다. 그녀에겐 삶이 그저 여러 면의 장면일 뿐이다. 까매서 막막하고 회색이어서 우울하고 노랑이어서 신나고 밝지만도 않다, 그녀는 자신과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자신을 너무 비참하게 내몰지도 또 자신을 과장하지도 않지만 가끔은 도도하고 가끔은 찌질해서 웃음이 난다. 그녀의 찌질함도, 도도함도 순간의 진실된 감정일 뿐 어떤 과장됨이 없다. 그녀의 숨길 수 없는 매력이다. 그런 담백한 그녀와 그녀의 글이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담백한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 그녀처럼 관점은 열려있고 감정에 함몰되지 않는, 세상 우울한 이야기도 저렇게 가볍게 풀어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나도 당장 공책을 꺼내 뭐라도 긁적거려 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그녀 덕분에 용기 내어 다시 글을 시작하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