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몸짓은 개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 동물행동학자가 들려주는 개와 인간의 심리와 행동 이야기
패트리샤 맥코넬 지음, 신남식.김소희 옮김 / 페티앙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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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개는 개 인간과는 다르다.

 

당신의 작은 몸짓하나가 개의 행동을 좌우한다.

개들이 우리 몸에 일어나는 미세한 움직임들을 사람보다 더 탁월하게 인지한다.

극도의 미세한 움직임들을 잡아내는 개들의 예리한 능력은 정말 놀랍다.

개들은 자기 주인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는데 주인들은 자기가 만들어내는 소리에만 주의를 기울인다.

개들은 시각신호를 더 쉽게 배운다.

 

개도 말하고 있다

비언어적인 의사표현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개들이 항상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매순간 좋아하고 있지는 않은 것처럼 말이다.

 

집에서 해보는 관찰 연습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묘사

ex> 우리 개는 1초당 한걸음씩 성큼성큼 천천히 걷고 있다. 머리는 어깨 관절 높이와 수평을 이루고 있으며 긴장이 풀린 듯 귀가 옆으로 40도 각도로 쳐저있는데 그렇다고 완전히 뒤로 넘어간 것은 아니다.

9

개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연습 방법; 대상을 지켜보면서 본 것을 써보는 것이다. 한 번에 몸의 한 부위에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인간은 무분별한 신호 제조기

가슴 아프게도 식구들이 동작이 일치하지 않을 때 가장 고통받는 것은 대개 똑똑하고 자발적인 개들이다.

개들이 우리의 움직임을 우리 자신보다도 훨씬 더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 우리의 목소리보다는 이러한 움직임들에 주의를 기울이기가 훨씬 쉽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개들의 인사법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보면서 접근하면 개는 이것을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예의바른 개들은 상대방의 옆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으며 심지어 거의 90도 각도로 접근하기도 한다.

개들은 시선을 마주치는 것을 피한다.

 

개들은 포옹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포옹이 따뜻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만 개들은 그 포옹을 무례하거나 위세를 부리는 위협적인 행동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개가 서로 포옹하는 유일한 순간은 수컷이 교미하기 위해 암컷을 붙잡고 있을 때 또는 자신의 우위를 표현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올라탈 때 또는 친한 개와 놀고 있을 때 뿐이다.

 

개를 쓰다듬지 말아야한다. 만약 개가 긴장하지 않고 편안한 상태로 다가온다면 개의 위쪽이 아닌 아래쪽으로 손을 내려서 냄새를 맡게 해준다. 낯선 개들을 만질 때는 항상 턱 아래 또는 가슴을 만져야 한다.

 

2장 개들의 신체언어 이해하기

들은 실루엣을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다.

 

개들을 오게하는 효과적인 방법

개들은 당신이 가는 방향으로 가기를 원하며 그것은 곧 당신의 얼굴과 발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이다.

개가 내 앞으로 오게끔 시각적으로 부르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는 몸을 낮게 구부린 후 개의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서 손뼉을 치는 것이다. 당신이 개를 부를 때 개에게서 돌아선 뒤 공 또는 간식을 줘야한다는 것을 기억.

 

 

바디 블록

개에게 손을 올린다는 것은 저리가라는 의미인 것 같지는 않다. 나는 두손을 배꼽에 올린 상태에서 어깨나 엉덩이로 개를 밀어내는데 이것이야 말로 그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신체언어이다.

당신에게 뛰어오르기 전에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어깨나 팔꿈치를 이용해 개를 막아보라 개가 뒤로 물러나면 다시 의자에 똑바로 기대어 앉아라. 고개를 돌리는 것 또한 도움이 된다.

 

몸의 기울기로 개들의 행동을 예측한다.

개의 몸이 아주 조금이라도 뒤로 옮겨져 있다면 공격할 준비라기보다 방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 눈을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아주 조금이라도 몸을 앞으로 움직일 때가 훨씬 위험한 상황이다.

 

3장 소리를 이용한 의사소통

개는 우리 마음을 읽을 수 없다.

개들은 말을 할 수도 없고 우리 마음을 읽을 수도 없다.

단순한 명령어 하나만 선택해서 사용하라.

단어를 엄격하게 사용

절대로 명령어를 반복하지 않는다.- 개들은 우리의 시끄러운 목소리를 두려움의 신호 또는 별로 통제력이 없다는 신호로 해석

 

짖는 개를 멈추게 하는 방법

개가 짖기 시작하지마자 그만이라고 말하고 간식을 들고 개에게 다가가라. 개가 문에서 물러난 뒤 몇 초 동안 조용히 있으면 그 때 간식을 주자.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만이라고 말하고 난 뒤 조용한 상태를 좀 더 오랫동안 유지하게 한다.

 

소리를 이용해 개를 훈련 시킨다.

낮은 소리들은 귄위 위협 공격 등과 관련있는 반면 높은 소리들은 흥분 미숙함 또는 두려움과 관련 있다.

큰 목소리보다는 낮은 목소리로 안돼또는 기다려라고 말하는 법을 그리고 개를 칭찬하거나 불러서 오게 할 때에는 목소리를 올려서 말하는 법을 연습하도록 하자.

 

개를 멈춰 세운 뒤 당신에게 주목하게 할 때에는 안돼또는 이봐또는 그만등의 짧고 높은 톤의 소리를 터뜨린다는 느낌으로 사용한다.

 

4장 개들은 코로 세상을 읽는다

인간과 개 모두 스스로를 그리고 다른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 냄새들을 제 몸에 바르고자 하는 욕구를 공유하고 있다. 다만 각자가 선호하는 냄새가 다를 뿐이다.

개들은 죽은 쥐 소똥 죽은 물고기 등 인간이 싫어하는 냄새들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냄새나는 것 위에서 뒹구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냄새가 지독하고 더 질퍽할수록 더 좋아한다.

 

 

6장 무리 친구

인간과 마찬가지로 개들도 성장하면서 주변 세상에 대해 배우는 정신적 발달과정을 거치는데 그 중에 사회화의 결정적 시기가 있다. 생후 5~12주 사이에 사람과의 접촉이 차단된 강아지들은 일생동안 사람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개가 되는 등 이 시기의 모든 경험들이 그 개의 일생을 좌우한다. 강아지들은 생후 초기4~5주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이를 통해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사람들이 세상 속의 일상적인 일부분들이라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7장 우위에 대한 진실

개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말을 오랫동안 들어왔다. 대게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곧 공격적이 되는 것을 의미했기에 그만큼 가혹한 처벌을 통해 개를 다루려는 사람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가혹한 처벌은 오히려 방어적인 차원에서의 공격성을 유발시킬 뿐이다. 이런 접근방식은 많은 개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자신의 주인을 두려워하게 만들거나 심지어 공격받고 있다는 생각에 되려 방어적인 공격성까지 도출시키게끔 만든다.

 

지위 우위 그리고 공격성이 완전히 다른 개념인데도 이들을 서로 혼동한다면 개에게 정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위가 사회 내에서의 위치와 서열인 반면 우위는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 상대방에 비해 더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개체들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다. 우위란 계급제 내에서의 위치인 반면 공격성은 해를 입힐 의도를 가지고 하는 행동이다. 공격성은 우위의 필수 요건이 아니다.

 

우위란 더 선호되는, 제한된 자원에 대한 우선적 접근으로 정의되었으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9장 개들은 모두 다르다

똑같은 품종을 선택하는 것이 원하는 스타일의 개를 선택할 확률을 높여주긴 하지만 개체로서 각각의 개성을 살펴보는 것이 훨씬 더 그 가능성을 높여준다.

 

10장 사랑 그리고 헤어짐

자신이 개에게 최상의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없다면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행위이다. 사랑이란 미명하에 개에게 사실상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려하지 못할 만큼 지독스럽게 그 개를 키우길 고집하는 것이야말로 개를 배신하는 행위이다.

 

에필로그

내가 튤립과 함께 세계평화에 대해 논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인간 친구들과의 관계로부터는 얻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튤립과의 관계에 존재한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확신조차 할 수 없지만 틀림없이 깊이있고 근본적이며 근사한 것이다. 다른 생명체들과 이 지구를 서로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는 무언가 연결고리가 있다. 우리 인간은 지구 어떤 동물과도 다른 매우 낯선 위치에 있다. 우리의 특수성은 우리들을 떼어놓고 우리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쉽게 잊어버리게 만든다. 아마도 개들은 우리 인간들이 자신의 뿌리 깊이를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개줄의 다른 한쪽 끝에 있는 동물이라는 점을 상기시켜주는지도 모른다.

 

루리에 대해 알게 된 것들

나의 많은 말들을 오히려 혼란스러워 할 수 있다.

쓰다듬거나 포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5~12주 사이에 정서적으로 잘 키워졌다.

냄새나는 것을 좋아하고 반대로 인간이 좋아하는 향기는 싫어한다.

 

루리를 키우게 되고 난 후 나는 루리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루리의 순진무구한 맑은 눈빛을 바라보면 나도 그 순수함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인간과 강아지와의 연결, 깊고도 애뜻한 연결이 나도 루리처럼 이 지구에 사는 또 하나의 생명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인간과 함께 사는 강아지, 우리 가족이 된 루리는 너무도 신비롭다. 강아지로 태어나서 강아지들과의 삶이 아닌 인간과의 삶을 산다. 나는 강아지 엄마가 되었다. 루리를 낳아준 엄마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그리고 루리를 잘 보살펴주고 행복하게 자라도록 열심히 책임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 루리는 나에게 많은 위안을 주기도 한다. 아가처럼 가만히 내 무릎에 안겨있을 때면 내 마음도 고요해지고 편안해진다. 이 책을 통해 개들에 대해 알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루리를 강아지의 시선으로 보지 못하고 인간의 눈으로 인간처럼 대한 면이 많았다. 개가 나를 개처럼 대하듯이 말이다. 이제 좀 더 루리의 시선으로 루리가 더 행복한 삶을 살도록 돕고싶다.

 

작가에 대하여~

페이지로 소개하겠지만 작가는 어떤 사건과 상황도 절대 스스로 단정짓지 않는다.

세심한 관찰로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여러 번 반복해서 자신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보여주기 만으로 우리는 그 상황들에 깊이 들어가 작가와 함께 느끼며 울고 웃는다.

작가의 세심한 관찰과 깊은 전문성에 탄복하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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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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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퀘렌시아

p14 좋아하는 공간, 가슴 뛰는 일을 하는 시간,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 이 모두가 우리 삶에 퀘렌시아 역할을 한다.

 

가장 진실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퀘렌시아이다. 나아가 언제 어디서나 진실한 자신이 될 수 있다면 싸움을 멈추고 평화로움 안에 머물 수 있다면 이 세상 모든 곳이 퀘렌시아가 될 수 있다.

 

삶의 파도들이 일어나고 가라앉게 두라. 너는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너는 바다 그 자체이므로.

 

좋아하는 공간 : 내 책상, 내 침대,

가슴 뛰는 일: 책 읽고 글쓰기, 세상 구경 ( 자연, 전시, 식당 등등)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 : 친구, 가족, 스승

 

찻잔 속 파리

p21 노 플라블럼의 기준을 나에서 타인으로 나 아닌 다른 존재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빅 플라블럼이다.

 

나에게서 모든 존재를 포함한 더 큰 공동체로 사고의 중심축을 이동하는 것, 나의 자리에 세상을 앉히는 것이 곧 깨달음이다.

난 괜찮아라는 생각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당신도 괜찮은가요? 하고 묻게 될 것이다.

 

노플라블럼! 나는 내가 늘 쿨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에 대해, 세상에 대해 그다지 미련도 후회도 없었다. 그 쿨함은 오로지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상처받기 싫어서 누군가를 사랑하려 들지 않았다. 적당한 거리에서 관계를 유지하다가 아니면 그만둔다. 상대가 괜찮은지는 나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언제나 내가 더 중요했다.

나의 자리에 중심축을 이동해 나의 자리에 세상을 앉히는 것,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은 때가 찾아왔다. 상대가 어떤지, 세상이 어떤지 관심을 갖고 관찰하고 또 묻고 싶어졌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신비롭다. 또 괜찮았음 좋겠다. 빅 플라블럼이었던 내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미소 짓게

p31 이 늙은이가 생의 마지막 기쁜 순간들을 가질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우리가 하는 행동과 말, 우리가 내미는 손길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이 마지막 순간이 될 수도 있다. 그 영혼은 그 마지막 느낌을 마음에 간직한 채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p 39 우리는 자주 오해받는다. 계속해서 성장하고 변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봄마다 껍질을 벗고 새로운 옷을 입는 나무와 같다. 우리의 정신은 끊임없이 젊어지고 더 커지고 더 강해진다.

 

나는 조금씩 변해간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며 지난달의 나와 이번 달의 내가 다르다.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는 아주 많이 변해있다. 내가 자주 하던 말, “어떤지 묻지 마세요. 20년째 똑같아요,” 이 말은 진실이기도 또 아니기도 했다. 남편 밑에서 경제적으로 평탄하게 살아왔다는 것이 진실이었고 나의 정신과 외적인 모습은 조금씩 아니 어쩌면 아주 많이씩 변하고 있었다. 1년 전 일기를 보다가도 내 마음이 이랬구나하며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내가 많이 변해있음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알게 모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쩌면 아주 다른 사람이 아닐까? 하며 피식 웃어본다.

 

지금이 바로 그때

p55 우리는 인생에서 많은 것을 놓쳤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가장 많이 놓친 것은 지금 이 순간들 이다.

 

인생의 봄날은 언제나 지금이다. 행동하는 날, 그날이 바로 길일이다.

 

당신은 이름 없이 나에게 오면 좋겠다.

p66 이름 없이 여뀌의 존재에 다가가는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여뀌와 나 자신이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인간과 식물이라는 구분을 버리면 우리 모두가 같은 생명이 흐르는 통로이다.

 

지식들은 앎이 아니라 대상을 분류하는 편리 수단일 뿐이다.

 

우리가 곤경에 빠지는 것은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라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자세히 볼수록 더 모르게 된다. 그것이 존재의 신비이다. 한 존재를 아는 것은 한 세계를 끌어안는 일이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모르는 그 무한한 세계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그냥 그대라고 불렀다. 그 자체로 존중이고 사랑이다. 당신은 이름 없이 나에게로 오면 좋겠다. 나도 그 많은 이름을 버리고 당신에게로 가면 좋겠다.

 

작년부터였을까? 선생님은 식물의 이름과 새들의 이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새들을 관찰하며 도감을 찾고 새소리를 기억하려 했다. 비슷한 꽃들도 구분하려 노력하며 각기 다른 이름을 불러주었다. 나도 덩달아 꽃밭에 심어놓은 식물들의 이름 간판을 읽어보고 또 다른 곳에 갔을 때 내가 외워둔 식물들이 나타나면 기쁜 마음으로 이름을 불러주었다. 많은 식물들 많은 새들이 그냥 한 무리의 생명이었다면 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우리는 이전에 알던 사이처럼 친구가 된듯했다. 누군가를 더 깊이 더 자세히 알아 봐준다는 것은 관심이고 사랑이었다. 아무개! 너 이름이 아무개지? 이름을 안다고 해서 대상을 다 안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너에게 관심을 가지고 따뜻한 눈으로 볼 수 있다는 뜻일게다. 류시화 님의 말처럼

그를 깊이 알고 싶을수록 더 깊이 다가갈수록 점점 그것에 대해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테지만 이 지구상의 함께 존재하는 가족처럼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p69 흔한 가시나무 장미꽃 앞에서 보낸 몰입의 순간들 속에서도 많은 영감을 얻었다.

 

그 몰입의 순간에 그는 나는 더 이상 하찮고 우연한 존재가 아니다.’라고 느꼈다. 나아가 한송이 꽃의 기적을 볼 수 있다면 우리의 삶 전체가 바뀔 것이다.’라고 썼다.

 

우리는 보고 느끼기 위해 태어났다. 그 밖에 꼭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움에 몰입하고 감동할 줄 아는 영혼을 가지고 우리는 이곳에 왔으며 그 몰입과 감동이 삶의 문제들을 극복하고 인생을 살아 나가게 하는 힘이다.

 

보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에 존재해야 한다. 너의 마음은 거의 언제나 다른 곳에 가 있다.

진정으로 바라봄이야말로 사랑의 행위이다. 눈앞의 세상을 보지 않고 삶을 피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영혼이 고통받는다. 깊이 바라보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면 사랑하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감동이 늘어만 간다. 세상 모든 것이 신비하고 경이롭다. 길가에 작은 들꽃 한 송이도 인간이 만들어놓은 인공물들도 대단하고 훌륭하고 또 아름답다. 당연하게 여겨졌던 모든 만물이 그저 신비롭기만 하다. 어찌 당연할 수 있었을까?! 메마르게 느꼈던 내 마음은 또 어떤 연유로 그랬을까? 세상에 다시 태어난 것만 같다. 이제 새롭게 이 세상을 다시 사는 것만 같다. 가능한 많은 것들을 음미하고 향유하고 싶다. 이 세상에 와서 아름다움에 더 몰입하고 감동하며 신나게 누리고 싶다.

 

 

혼자 걷는 길은 없다.

p77 모든 행위는 고유한 파장이 있고 그 파장과 일치하는 존재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

 

자신이 분리된 존재라고 믿는 것은 실제로는 우리의 고정된 생각과 관념, 제한적인 지각 작용이 만들어 내는 환상일 뿐이다. 그것이 존재에 대한 가장 큰 오해이다.

 

그대에게 가는 먼 길

p83 겉으로 보면 그날 나는 먼 길을 빙 돌아서 월든 호수로 갔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그와의 만남을 향해가는 지름길이었다.

 

헤매는 것 같아 보여도 목적지에 도달해서 보면 그 길이 지름길이자 유일한 길이다.

 

신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기 위해 때로는 길을 잃게 한다.

 

멀리 간다고 헤매인다고 원래 계획했던 길이 아니라고 징징거리지 않기로 했다. 작은 에고의 생각으로 나의 길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 주어진 길을 온전히 기꺼이 누리면 된다. 삶은 나에게 알아서 선물을 펼쳐주신다. 그것이 설령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언른 그 마음을 버리고 현재에 집중하고 몰입할 것이다. 매 순간을 그렇게 온전히 살고 싶다.

 

비전 퀘스트

어떤 일에 성공하려면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외적 수단으로는 그 답을 얻을 수 없다. 해답은 자기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자만심과 부족한 인내심과 두려움은 자기 안의 위대한 신비가 보내는 메시지를 가로 막는다.

 

마음이 원하는 길을 두려움없이 걸어가라.

 

지금 내가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p102 부족함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것과 삶이 베푸는 것에 자주 감탄하고 몰입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안다. 풀꽃 한 송이 봄 햇살 차 한잔에서 감사와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도.

 

장소는 쉽게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다.

p106 장소들은 본래의 모습을 쉬이 드러내지 않는다.

 

오랜 수고와 노력을 기울리지 않으면 장소는 자신의 진정한 얼굴을 보여 주지 않는다.

 

여행은 얼마나 좋은 곳을 갔는가가 아니라 그곳에서 누구를 만나고 얼마나 자주 그 장소에 가슴을 갖다 대었는가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봐야하며 그것에는 시간이 걸린다.

 

세상에는 시간을 쏟아 사랑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우리가 삶을 사랑하면 삶 역시 우리에게 사랑을 돌려준다. 사랑하면 비로소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헛된 욕망과 욕심이 많이 사라졌다. 무언가를 원한다면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야 얻을 수 있다. 노력보다는 운을 바랐고 실력을 쌓기보다는 얕은 눈속임으로 깊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것마저 말도 안되는 욕심이란 것조차도 몰랐다. 나를 과대평가했고 나를 알아봐 주지 않는다고 억울해했다. 하지만 현실의 나를 파악하는 눈이 생기면서 헛웃음이 나올 만큼 내가 하찮고 우습다. 요즘 같아서는 누군가 앞에서서 강의를 한다는 것조차 부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쥐구멍으로 숨거나 일을 포기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이 부끄러움을 이겨내고 사람들 앞에 설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 내가 실력을 쌓고 내 일에 더 최선을 다해야하는 이유는 교육생들의 시간 낭비를 조금이나마 막기 위함이다. 나 스스로를 비참하게 내몰지도 않을 생각이다. 그저 담담히 여기에서 당장 무엇을 할지 고민할 것이다.

 

 

p144 나머지는 삶이 알아서 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바위를 움켜잡고 있는 두려움에 찬 손을 놓기만 하면 삶이 알아서 하리라는.

 

죽음 앞에서

내일 인생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 오늘이 훨씬 소중하고 기쁘다.

 

나는 내가 사는 삶이 덤이라는 생각을 더욱 갖게 되었다.

 

삶은 하나의 선물이다. 매 순간이 축복의 순간일 수가 있다. 나의 낡은 머리는 떨어져 나갔으며 나의 심장은 나와 함께 남았다. 사랑하고 고뇌하고 갈망하고 기억할 수 있는 살과 피가 남았다.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면 삶이 그 만큼 더 소중해진다. 무의미한 고민이나 일들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된다. 주어진 날들이 선물처럼 다가온다. 더 절실하게 아침을 맞이하고 더 깊이 사랑하게 된다.

 

영원히 불가능해질 위기에 처하면 그것들은 다시 아름다워진다.

 

오늘 감동한 일이 있었는가.

p191오늘 놀라운 일은 무엇이었는가?

오늘 감동 받거나 인상 깊은 일은 무엇이었는가?

오늘 나에게 영감을 준 일은 무엇이었는가?

영적인 깨어남이란 새로운 각도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새로운 눈

인생의 부를 결정하는 기준은 얼마나 많이 느끼고 감동하며 살았는가.

풀벌레 하나, 꽃 한송이 저녁노을 사소한 기쁨과 성취에도 놀라워하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이다. 감동을 느낄 때 우리는 정화되고 행복해지고 신성해진다.

 

p204 과거를 내려놓고 현재를 붙잡는 것이 삶의 기술이다.

 

그동안 거들떠보지 않았던 나무 풀 태양 꽃 새 벌레들과 친해진다. 바람을 느끼고 온몸으로 비를 맞고 사람들을 껴안고 강아지와 달리기를 한다. 자신이 처음으로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매일 매일이 마지막 경험이었다.

 

다시 오지 않을 현재의 순간을 사랑하고 과거 분류하기를 멈추는 것, 그것이 바람을 가르며 나는 새의 모습이다.

 

p210 그대는 그대 자신에게 너무 많이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세상을 내면의 중얼거림으로 유지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말하기를 멈추자마자 세상이 완전히 바뀐다는 것을 안다.

 

p212 자신이 어떤 일을 하든 혹은 하지 않든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오로지 그 순간에 깨어 있는 것이 그 명상의 핵심이었다.

 

순간의 주의 기울이기

 

자두, 그것이 이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상상했다. 자두를 키운 따사로운 햇살, 땅의기운, 비를 내려 주는 구름과 밤의 별빛, 농부의 노동에 고마움을 느꼈다. 자두 한 알 속에 자연과 우주의 모든 것이 응축되어 있었다.

 

마음 챙김은 마음 챙김을 낳는다. 그 마음 챙김 식사의 신성한 경험을 모든 행동으로 넓혀 갔다. 식사라는 일상적인 부분을 명상화 함으로써 무슨 일을 하든 그 자세로 하게 된 것이다. 걸을 때나, 일을 할 때나, 사람들을 만날 때 순간에서 순간으로 이어가며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순간임을 알고 주의력을 집중했다.

 

진정으로 온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때 그것이 먹는 일이든 걷는 일이든 숨 쉬는 일이든 강력한 기쁨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하나만 집중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길가는 미친 여인이 중얼중얼 읊어대는 이야기를 들으며 따라가다가 자신의 마음속도 저 미친 여인처럼 끝없이 재잘대는 소리를 알아채고 놀라 겉으로 내뱉지 않았을 뿐이지 모두가 마찬가지겠구나 하는 류시화님의 말씀이 많이 공감되었다. 내 마음속에도 늘 시끄럽다. 어제 다 못한 일들에 대한 후회, 앞으로의 계획 또 아주아주 오래된 이야기도 문득 떠올라 한참을 휩쓸려갔다가 돌아오고 꿈꾸듯 내용도 가지각색에 그에 따른 감정들도 복잡다단하다. 나도 문득 이런 마음의 이야기들이 겉으로 드러난다면 난 정말 미친 여자 같겠지? 라는 생각을 해 본 일이 많다. 그나마 요즘은 마음의 수다가 많이 줄어들었다. 욕망이 줄어든 탓인지 예전보다는 훨씬 덜 시끄럽다. 하지만 여전히 궁시렁궁시렁 댄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챙김훈련을 열심히 해보려고 하지만 여전히 마음을 많이 놓치고 만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다. 그것이 내 마음이든, 누군가의 이야기든, 숨을 쉬는 일이든 조용히 가만히 들어다보고 싶다.

그 안에 어떤 기쁨이 들어있는지 나도 한번 느껴보고 싶다. 정신을 더 예민하게 날을 세워 세상의 모든 것을 고요히 들여다보고 싶다.

 

p221 축복은 하심을 통해 스스로 받는 것임을 알지 못했다. 외부의 힘에 의해 깨진 알은 생명이 끝나지만 내부의 힘에 의해 깨진 알은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위대한 일은 언제나 내부에서부터 시작된다.

 

p231 그 목숨들에 값하는 삶을 우리가 살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것만큼 중요한 명상은 없다.

그 삶을 잘 사는 것만이 그 생명들에 값하는 길이다. 그들이 어느 날 꿈속에서 우리에게 물을 것이다. 자신들의 수많은 희생에 값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고

 

p235 어둠 속을 보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에 마음이 지어내는 환상을 꿰뚫어 보는 투시력이 생겨난다.

 

축복(blessing)이라는 단어는 상처입히다(blesser)라는 프랑스어에서 나왔다. 축복은 종종 상처와 고통을 통해 오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눈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p240 인간 존재는 누구나 완벽하게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로 태어난다. 그러나 삶이 우리 존재의 보석에 금이 가게 만든다. 하지만 그 불완전하고 상처입은 자신을 아름답게 재탄생시키는 것이 바로 삶의 예술이다. 흠과 결함을 더 창조적인 것으로 변신시키기 때문에 예술인 것이다.

 

p253 길에서 낯선 이로부터 선물 받은 두 개의 음악 테이프가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 놓았다. 어떤 좋은 걸 타인에게 주려고 하는 것만큼 널리 전파되는 마음은 없다.

 

[넓어지는 원]

넓은 원을 그리며 나는 살아가네

그 원은 세상 속에서 점점 넓어져 가네

나는 아마도 마지막 원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지만

그 일에 내 온 존재를 바친다네

 

p257

사랑의 관계와 쓸모의 관계

거래에서는 순수 존재로서의 나보다 상품 가치로서의 나가 우위에 선다.

용도와 기능이 존중받아도 존재가 무시되면 진정한 관계가 불가능하다.

나를 온전히 존재하게 만드는 너는 그만큼 특별한 존재이다. 나는 너로 인해 나가 된다.

이것은 나 중심주의로부터의 해방이다.

 

쓸모의 관계 사람을 대하는 나의 자세였다. 용도와 기능이 다하면 언제든 버리거나 바꿔버리는 일이 쉬웠다. 그런 생각 때문에 나도 상품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믿었다. 내용물이 별로라면 포장이라도 화려하게 보이고 싶었다. 나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는 가까운 관계는 원치 않았다. 적당한 거리에서 그들에게 가치있는 존재로 보이고 싶었다. 누군가를 속일 수 있다는 생각이 너무도 어리석었다. 사랑은 없고 쓸모의 관계만 생각했던 어리석은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사랑과 관심으로 상대를 온전히 대해주고 서로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사이. 길들이기를 했던 여우와 어린 왕자가 생각난다. 서로에게 누구보다도 소중한 존재가 되어주는 관계.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려한다.

 

p265 인생은 숨을 쉰 횟수가 아니라 숨 막힐 정도로 벅찬 순간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로 평가된다.

숨 막히게 사랑한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가? 숨 막히게 몰입한 순간, 삶과 숨막히게 접촉한 순간이 그것이 꼭 거창한 순간일 필요는 없다.

 

p271 신이 짜놓은 근사한 일정을 우리가 망치지 않기를 그 여정에서 더 많은 모험과 시련과 근사한 일들을 겪게 되기를

 

주저하지 말고 경험에 뛰어들라. 문제에 대한 해답을 타인에게서 빌리려 하지 말고 그 문제를 살아야 한다.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살아야 할 신비다.

 

너는 길에서 얻은 모든 것들로 이미 풍요로워져

 

고난에 찬 여정이 빨리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긴 과정이 되기를 신들에게 기도해야 할 것이다. 오랜 과정 끝에 도달한 자기 발견이 더 진정하고 확고하기 때문이다. 아예 늙어서 목적지에 도착하는 편이 더 낫다. 지혜로운 현자가 되는 것은 긴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여정이 풍요롭고 신기함으로 가득 찬 시람은 목적지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미 그 자신이 멋진 삶을 누렸기 때문이다. 후회없이 살고 치열하게 추구한 사람은 더 바라는 것이 없다. 그는 깨달음에 도달하지 않아도 개의치 않는다.

 

목적지들이 가진 목적은 우리에게 그곳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선물하는 일이다.

 

풍요로운 여정을 만들어가려 한다. 긴긴 여정이라야 더 좋다. 그래야 조금 더 지혜로워질 테니. 후회없이 치열하게 숨 막히게 몰입하며 더 바랄 것 없이 살고 싶다. 이 여정의 매 순간이 신의 선물임을 알고 풍요롭게 아름답게 사랑하며 살고 싶다.

 

류시화 작가님의 에세이는 우리의 현실의 삶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다. 이분의 삶의 현장은 모험과 여행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현실의 삶에서 꿈을 꾸듯 그의 삶을 바라본다. 그의 경험에서 얻은 정신을 엿보고 배우려 한다. 내가 직접 겪어보지 못했지만 그의 경험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데 어떤 정신과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그 마음을 깊이 새겨 보려 한다. 자칫하면 그 고상한 정신이 아주 쉬운 것 마냥 착각할 수 있다. 관념과 현실이 얼마나 동떨어져있는지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아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고 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얼마나 마음을 내어주고 사랑하며 살고 있는지 돌아본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에게 따뜻한 웃음을 보내고 경비아저씨의 노고에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친구와의 만남 뒤에 너가 있어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내고 동생의 생일날 함께 저녁을 먹고 강아지와 매일 산책을 간다. 길가의 핀 꽃을 바라보며 신비로움에 감동하고 전시회의 그림을 보며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와 울컥한다. 요즘 우울한 언니에게 그림을 보내주고 안부를 묻는다. 매 순간 나 자신보다는 누군가에게 관심과 사랑을 기울여 보려는 요즘이다. 이 에세이는 지금의 내 삶이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것만 같다. 내 마음이 가야 할 길을 안내해주시며 또 지금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주시는 것만 같아 흐뭇한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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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에너지 센터 축복하기

우리 몸은 빛과 정보 에너지와 의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몸과 함께 의식을 가진 존재로서 라디오나 휴대폰 처럼 다양한 신호를 담은 다양한 주파수들을 끊임없이 보내고 받는다. 모든 주파수는 정보를 전달한다.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빛의 스펙트럼은 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너머에서 다른 수많은 정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생체광자- 살아있는 모든 존재 안에 들어 있으며 빛을 발하는 아주 작고 저강도의 빛 입자.

우리가 말 그대로 빛의 존재라는 사실이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매우 중요한 생명력을 방출하고 있으며 우리 몸은 실제로 주변에 빛의 장을 펼치고 있다.

 

특정 주파수에 우리 자신을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눈을 감고 고요히 앉아서 외부 세계 (다른 주파수를 잡지 못하게 방해하는 잡음)를 지울 때 우리는 분명한 신호를 잡고 거기에서 정보를 얻도록 자신을 훈련시킬 수 있다.

 

수렴적 집중;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한 마음으로 초점을 좁혀서 집중하는 것

ex) 스트레스는 문제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게 한다. 그래야 과거의 기억을 토대로 미래에 다가올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야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다.

확산적 집중 ; 좁은 집중에서 벗어나 초점이 좀 더 열리고 넓어지면 우리는 공간을 알아차리게 되고 따라서 우리 몸 주변의 공간 속에 있는 빛과 에너지도 알아차리게 된다.

이제 우리는 어떤 것(some thing)에 집중하는 데서 벗어나 아무것도 아닌 것(no thing)에 집중한다. 입자(물질)가 아니라 파동(에너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에너지 센터

[첫 번째 에너지 센터 ; 생식기 부분 즉 회음부

막대한 창조에너지와 성적 정체성 탄탄

두 번째 에너지 센터; 배꼽 약간 아래 뒤쪽

사회조직과 구조, 관계, 지원 시스템, 가족, 문화, 대인관계 관여

이 센터가 균형 상태에 있을 때 자신이 속한 환경이나 세계가 안전하다고 느낀다.

세 번째 에너지 센터; 배 중간에 위치

우리의 의지, , 자존감, 통제력, 충동, 공격성, 지배력과 관계

경제적인 행동, 개인적인 권력, 자부심, 뭔가 해보려는 의도와 관련된 센터

이 센터가 균형 상태에 있을 때 우리의 의지와 욕구를 이용해 삶의 환경이나 조건을 바꿀 수 있다. (용기)]

- 1,2,3 생존, 본능, 인간성에 관여

네 번째 에너지 센터; 가슴뼈 뒤, 심장, , 흉선(면역기능에 중요한 작용)

사랑, 보살핌, 양육, 자비, 감사, 감격, 친절, 고무, 이타심, 온전함, 신뢰

신성이 발현되고 영혼이 살아가는 자리.

삶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온전하다고 느끼며 만족한다.

다섯 번째 에너지 센터; 목 한가운데, 갑상선 신경총

사랑을 표현하고 자신의 진실을 이야기

스스로 인생에 매우 만족하고 기뻐하는 상태이므로 그런 생각과 느낌을 나누지 않을 수 없다.

여섯 번째 에너지 센터; 목과 정수리 중간, 송과선 관장, 1의 눈

더 높은 차원들과 연관되며 인식을 전환해서 장막 너머를 보거나 비선형적인 방식으로 현실을 봄

일곱 번째 에너지 센터; 정수리에 위치, 뇌하수체 관장

신성의 위대한 발현을 경험,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룸.

여덟 번째 에너지 센터; 몸 밖에 있는 센터, 머리 위로 40cm 떨어진 곳.

우리가 우주와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자신이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임을 느끼며, 통찰력과 직관, 깊은 이해에 자신을 열게 된다. (감사)

양자 속의 데이터와 메모리에 접근

고양된 감정으로 오픈 포커스 상태에 오래 머물수록 에너지 센터 주변에 매우 일관성 있고 높은 주파수를 가진 에너지장을 더 많이 구축할 수 있다.

 

에너지 센터가 새로운 주파수와 정보의 장으로부터 새로운 에너지를 끌어들일 때 우리 몸은 다시 균형 상태 혹은 항상성의 상태로 돌아간다, 이 새로운 상태는 물질보다 에너지에 더 가까워지고 입자보다 파동에 더 가까워진다. 고양된 감정을 더 많이 만들어 낼수록 그래서 에너지를 더 많이 만들어 낼수록 변화도 그만큼 더 극적으로 나타난다.

에너지 센터를 축복하기 명상에서 당신이 할 일은 뇌파를 느리게 하고 최고의 결과를 (사랑으로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는 것) 위해 각 에너지 센터를 축복한다는 의도에 고양된 감정을 결합한 다음 자율신경계에 모든 것을 맡기고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다.

 

에너지 센터 축복하기 명상

1. 에너지 센터에 집중

2. 센터 주변의 공간에 집중

3. 센터에 축복한 후 사랑 감사 기쁨 같은 고양된 감정에 연결

4. 여덟 번째 센터 감사의 감정으로 축복

5. 최소한 15분 누워서 쉰다. (마음을 내려놓고 자율신경계에 모든 것을 맡긴다.)

 

에너지 센터들은 모두 각각의 고유한 미니 뇌와 마음을 갖고 있다. (정말 그렇다)

각 센터는 자신만의 에너지 및 그에 상응하는 의식을 가지며 각 센터에 맞는 특정 감정과 연결된다.

 

익숙한 감정들을 이 호흡법을 이용해 풀려나게 한 다음 새로운 존재 상태를 매일 감정적으로 시연한다면

그 제한되지 않는 감정들이 우리의 정상적인 감정이 될 것이다. 우리의 뇌는 이제 그 고양된 감정들에 맞는

새로운 생각들을 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유전자에게 신호를 보내 우리 몸의 구조와 기능을 변화시킬 새로운 단백질을 생산해 낸다. 그것들은 우리가 활성화시켜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무제한의 천재성을 발현시킬 유전자도 있고 장수를 위한 유전자도 있다. 유전자가 못 할 일은 없다. 우리의 상상력과 창조력이 아무리 기발하더라도 유전자는 다 감당할 수 있다. 나는 당신이 이 과정에 온전히 몰입하기를 바란다.

 

새로운 마음에 몸을 재조정하는 명상

1.회음부를 끌어 올리듯 조인다. 이때 숨은 멈추지 않고 자연스럽게 쉰다. 근육을 최대한 단단하게 조인 다음 5초정도 그 상태로 가만히 있는다. 5초가 지났으면 근육을 풀어준다. (3회 반복- 정상호흡)

2. 이제 회음부를 조이면서 동시에 아랫배의 근육도 조인다. 아랫배 근육까지 약간 위로 당겨 올리듯이 조였다면 그 상태로 가만히 있다가 5초가 지나면 두 근육을 다 풀어준다. (3회 반복-정상호흡)

3. 이제 회음부를 조이고 아랫배 근육도 조이면서 동시에 윗배의 근육도 조인다. 그 근육들을 조인채 가만히 있다가 5초가 지나면 모든 근육을 풀어준다. (3회 반복-정상호흡) -좀 더 단단히 조이고 좀 더 위로 끌어올린다.

4.손가락 끝으로 머리끝 정수리를 찾아 손톱으로 눌러본다. 에너지를 보낼 목표 지점이다. 손을 다시 무릎으로 가져온다. 아직은 아무 근육도 조이지 않은 채로 코를 통해 천천히 조금씩 들이쉰다. 이때 숨이 회음부,아랫배, 윗배, 가슴 중앙, , 뇌를 거쳐 정수리로 곧장 올라오는 상상을 하며 그 숨을 그대로 따라간다. 정수리에 다다르면 그대로 숨을 참고 정수리에 주의를 집중해 에너지가 당신의 의식을 따라오게 한다. 그렇게 10초 정도 있다가 숨을 쉰다. 숨을 들이 쉴 때 빨대로 음료를 빨아올리듯 프라이관을 따라 에너지를 머리끝까지 쭉 올린다고 상상한다. (3회 반복)

5. 종합단계; 코로 숨을 들이 쉴 때 1.2.3 근육을 끌어 올리듯 차례로 조인다.(아래의 세 에너지 센터에 갇혀있는 에너지를 풀어내 뇌로 끌어 올리겠다는 의도와 함께) 아래쪽 세에너지 센터를 잠가놓은 상태로 가슴 목 뇌를 거쳐 정수리까지 끌어 올린다음 몸의 중심 근육들을 여전히 조인 상태로 10초정도 가만히 있다가 숨을 내쉬고 근육을 풀어준다. (최소 3회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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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문답 - 시대의 이상과 운명에 답한 조선의 자화상
이종수 지음 / 생각정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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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꾼 자 누구인가

안견 [몽유도원도]

 

몽유도원도

1447년 안평대군은 꿈에 박팽년과 더불어 복숭아밭에서 노닌 황홀한 꿈을 꾸고 안견에게 이를 이야기해주면서 그림을 의뢰하였다. 이 꿈 이야기는 도연명의 [도화원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는데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들은 안견은 3일 만에 [몽유도원도]를 완성하였다

 

그림은 38.7× 106.5cm 비단 바탕의 수묵담채화로 보통의 동양화 두루마리와는 다르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전개되고 있다. 왼쪽은 현실 세계이고 오른쪽은 꿈 속의 도원 세계인데 현실 세계는 평평하고 완만하게 그렸고, 도원의 세계는 기기묘묘(奇奇妙妙)한 산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전개되고 있다. 현실 세계는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린 듯한 느낌이고, 왼편의 도원 세계는 위에서 바라보는 듯한 부감법(俯瞰法)으로 그려져 있다.

 

그림에는 안평대군의 발문부터 김종서, 신숙주, 정인지, 박팽년, 서거정, 최항, 이개, 성삼문 등 당대 최고의 사대부 20여 명의 찬문(칭찬하는 글)이 친필로 붙어있다. 이로 인해 이 [몽유도원도]는 그림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조선 초기 문인들의 문학과 서예적 성취를 알게 하여 그 역사적 가치도 매우 높다.

 

안평대군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시문··화에 모두 능하여 삼절(三絶)이라 칭하였다. 그리고 식견과 도량이 넓어 당대인의 명망을 받았다. 또한 도성의 북문 밖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남호(南湖)에 담담정(淡淡亭)을 지어 수많은 책을 수장하였으며 문인들을 초청하여 시회(詩會)를 베푸는 등 호방한 생활을 하였다.

 

안평은 시문(詩文그림·가야금 등에 능하고 특히 글씨에 뛰어나 당대의 최고의 명필로 꼽혔다. 조선 초에는 그의 서체가 큰 유행이 되었다. 대표작으로 몽유도원도 발문이 있다

 

1453(단종1) 수양대군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켜 김종서(金宗瑞) 등을 죽이고, 이때 안평대군도 지지기반을 잃고 반역을 도모했다는 죄목을 받아 강화도로 귀양을 갔다. 그 뒤 교동도(喬桐島)로 유배되고, 그곳에서 36세를 일기로 사사(賜死)되고 말았다.

 

안견 화원 출신으로 세종 때 도화원(圖畵院) 6품인 선화(善畵)에서 정4품 호군(護軍)으로 승진하였다. 조선시대 화원은 최고 종6품까지 올라가는 것이 규정이었으나 이것을 깬 최초의 인물이다. 안평대군(安平大君)을 가까이 섬기면서 그가 소장한 고화(古畵)들을 섭렵하면서 화풍을 익혔고, 1447(세종 29) 그를 위하여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그리고 이듬해 대소가의장도(大小駕儀仗圖)를 그렸다.

 

안견은 1464년에 아직도 화원으로서 세조조에 기여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안평대군이 사사된 계유정난이 일어났던 해로부터 11년 뒤의 이야기이다. 안견이 이후로 얼마나 더 오래 살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그의 아들 안소희(安紹禧)에 관한 기록에 의거해서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다. 아들 안소희는 정6품직인 성균관의 전적을 지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화원의 아들이기 때문에 크게 출세하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아버지의 공적에 힘입어 원칙적으로 사대부 가문 출신에게만 열려 있던 문과의 벽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렇게 본다면 안견은 안평대군의 사후에도 그의 아들이 과거에 급제하고 관직에 몸담게 되었을 정도로 아무런 지장 없이 활동을 계속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세조의 계유정난을 당하여 안평대군은 공자의 귀한 몸으로서, 문화(文華)를 크게 아끼고 한묵(翰墨)을 스스로 좋아하며 당대의 명류들과 널리 교유하여, 사람들은 그를 흠앙하고 부러워하며 뜻을 주지 않은 이가 없었다. 안견도 역시 화기(畫技) 때문에 부름을 받았는데, 그는 정말로 뛰어난 화가로서 안평대군이 특히 그를 아껴 잠시도 그 집 문밖을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안견은 때가 위험스러움을 알고 스스로 안평대군으로부터 벗어나려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평대군이 북경의 저자에서 용매먹[龍煤墨丸]을 구입하였기로 안견을 급히 불러 그 먹을 적셔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마침 안평대군이 일어나 안에 들어갔다가 돌아와 보니 그 용매먹이 간 곳 없었다. 안평대군이 종과 시비들을 다그치니 계집종들은 스스로 변명하며 안견에게 혐의를 두는 것이었다. 안견이 일어나 소매를 떨치며 스스로 밝히려 하였으나 먹이 홀연히 그의 품속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안평대군이 별안간 노하여 그를 꾸짖어 내쫓고 다시는 집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하였다. 안견은 아무 말도 안 하고 묵묵히 있다가 달아나 물러간 후 집에 돌아가 숨어서 스스로 나타나지 않았다. 이 일이 드디어 떠들썩하게 일세에 전하여졌더니 조금 있다가 안평대군이 큰 화를 만나서 그의 집에 드나들던 사람들도 연루되어 죽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안견만이 홀로 그 화를 모면하게 되었던 것이니 사람들이 비로소 이를 기이하게 여기게 되었다.

 

! 덕을 품고도 행실은 더러워 스스로 세리(勢利)의 화염(禍剡)을 면하였구나. 이것은 고인(古人)들도 하기 어려운 것인데 안견이 홀로 능히 하였다. 이것이 어찌 또한 일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괴이하게 홀로 행한 선비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일을 내가 들으니 아마도 안견은 비단 그림에 대한 재주만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 또한 높은 식견과 멀리 미치는 생각과 가볍게 볼 수 없는 뜻이 있었던 모양이다.

 

특히 이것으로써 이 세상에 놀고 그 예술에 몸담았던 것인지. 이것을 가히 알 수 없도다. 나는 진실로 그림을 알지 못하나 이 그림을 보니 그 수석(水石)이 푸르고 멀며 풍연(風煙)이 잔잔하고 희미하여 비록 간일(簡逸)하고 소탕(疎蕩)하지만 돌아보건대 스스로 사람들이 쉽게 엿볼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어찌 또한 그림의 형상도 그 그린 사람이 그러한 때문일까. 이것을 기록하여 여러 호사가들에게 전하는 바이다. 하촌(夏村)의 병우(病寓)에서 쓰.

 

이 기록은 비록 안견이 활동했던 시대보다 약 2세기 뒤의 것이지만 당시에 구전되고 있던 것을 적은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꾸며진 이야기만으로 보기에는 그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짜임새가 있어서 신빙성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 기록으로 보면 안견은 그림에만 뛰어났던 것이 아니라 세상을 내다보고 판단하는 기지를 지녔고 머리가 명석하고 두뇌 회전이 빨랐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기지와 빠른 판단이 자신을 계유정난에서 구하고 오래도록 영화를 누릴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안견이 이처럼 머리가 좋고 기지가 뛰어났음은 <몽유도원도>의 구성과 표현에서도 엿보인다. 백호전서의 기록에서 또 한 가지 크게 주목되는 것은 안견이 계유정난 전까지 안평대군과 얼마나 가까웠나 하는 것을 잘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통하여 안견은 안평대군의 후원에 힘입어 더욱 대성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무계정사 조선 시대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이 세운 정자. 안평 대군이 도원(桃園)에서 놀던 꿈을 꾼 뒤 한양의 북문인 창의문(彰義門) 밖에 이 정자를 세우고, 1만권의 장서를 보관하고 선비들과 시를 짓고 교류함. 안평대군이 역적으로 몰려 사약을 받고 죽은 뒤 이 곳도 폐허가 됨.

 

느낀점 : 안견에게 분명 안평대군은 소중한 운명이었을 것이다. 안평대군(安平大君)을 가까이 섬기면서 그가 소장한 고화(古畵)들을 섭렵하면서 화풍을 익혔고 안견은 안평대군의 후원에 힘입어 더욱 대성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안평대군의 꿈을 그릴 때 분명 안견은 그 꿈속에 있는 듯 사흘 동안 그림을 완성하였다. (p38 어쩌면 이 순간이 나의 꿈이 었는지 모르겠다. 꿈을 꾼이는 분면 대군일진대 그 말씀처럼 대군의 꿈을 내가 모두 가져왔을까. 아직도 그의 꿈에 젖은 듯, 스치는 꽃향기가 몽롱했다. 꿈을 꾼자 왕자인가 아니면 그 앞의 한 화가인가) 안평대군을 섬기며 성장해가는 안견의 모습이 그려진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고 안평대군이 위험해 처한다. 안평대군의 꿈에서 함께 노닐던 사람들은 일찍이 상황을 파악하고 돌아선 신숙주를 제외하고 모두 처형되고 만다. 안견은 꿈을 함께한 자가 아니라 그저 꿈을 그린자로 그 사건을 비켜 간다. 안견은 끝끝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 살아간다. 안견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나 또한 안견처럼 그 상황을 빠져나왔을 것 같다. 하지만 또 자신을 믿고 신뢰하고 성장시켜준 대군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함 또 용서를 구하고 싶은 죄책감이 함께 하지 않았을까?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자신은 그 흐름의 물살을 잘 헤엄쳐갔지만 그 마음은 분명 괴롭고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또 그 과거의 날들을 얼마나 그리워했을지도...

 

 

자아

나는 누구인가

윤두서 [자화상]

현종 9(1668)에 녹우당에서 태어나서, 숙종 41(1715)에 역시 녹우당에서 세상을 떠났다. 윤선도의 증손이며 정약용의 외증조부이고 호는 공재(恭齋)이다. 숙종 19(1693) 26세 때 진사시에 급제했으나 서인이 세력을 잡고 있던 시절이어서 벼슬을 한다거나 정치적 출세와는 거리가 멀었다. 해남윤씨는 윤선도 때부터 골수 남인 집안이다. 그는 평생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고 선비 화가로 유명해서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과 더불어 조선 후기의 3재로 불렸다.

 

윤두서가 살던 시기는 대략 숙종 재위 기간(1675~1720)과 겹친다. 조선 중기와 후기의 전환기에 해당하는 이 시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격동을 거치면서 기존의 권위들이 무너지고 변화와 개혁에 대한 각성과 모색이 싹트던 때였다. 이 때에 활동한 윤두서였기에, 그의 그림에는 새로운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 그림 속에 비로소 조선의 인물과 조선의 생활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 중기까지 우리 그림에 등장하는 신선이나 도사의 옷차림, 시중드는 동자의 머리 모양 등은 거의 중국풍이었고 소 그림에서도 우리나라에 없는 남양 물소가 그려지곤 했다. 그러나 윤두서의 나물 캐는 여인에 등장하는 아낙들은 바로 수건을 머리에 쓴 조선의 농촌 아낙이고 밭 가는 풍경에서는 예전이라면 신선이나 앉아 있었음직한 산수 속에서 조선 농부가 조선 소를 몰고 밭을 갈고 있다. 짚신 삼기에서는 휘늘어진 나무 밑에 도사가 아닌 맨상투 바람의 조선 남자가 다리를 뻗고 앉아 열심히 짚을 엮고 있다. 이 그림들은 18세기 중후반에 김홍도 등에 의해 유행하는 풍속화를 예시한다.

 

이 그림들에서도 산수는 여전히 예전의 관념적 화풍을 따르고 있으나, 그 속에 현실을 끌어넣을 마음을 먹는 것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로써 윤두서의 그림들은 조선 중기와 후기의 전환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상징의 자리에 놓이게 된다. 그는 한편으로 중기의 막내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후기 사실주의 회화를 이끈 첫 사람이었다.

 

오늘날 윤두서의 이름 앞에 늘 붙어다니는 선비화가라는 수사는 그를 다 표현하는 말이 아니다. ‘선비화가라는 단순한 규정에서 빠져 버리는 그의 모습 가운데 당대의 지식인이며 실학 선구자로서의 면모가 있다. 해남 집 유물전시관에 있는 지도나 기하책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그는 옥동 이서 등 자신과 마찬가지로 출세 길에서 소외된 남인 학자들과 절친하게 지내면서 틀에 박힌 과거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현실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답하고 응용할 수 있는 학문을 두루 연구하였다.

 

윤두서는 옛 책들의 내용을 모두 널리 꿰뚫고 그 극치를 추구하였고” “백가(百家)의 뭇 기술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 원리와 응용을 연구하였으며 천문은 각 지방을 두루 답사하고 밤마다 돌아다니며 관찰하여 천체의 이동 현상을 살피었고” “천문을 측량하고 땅을 재는 법을 경험적으로 증명하였다. “세상에 전해 오는 병서(兵書)를 보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패관소설도 모두 읽어 지식을 넓히는 데 도움을 얻었고, 또 중국 지도와 우리나라 지리서의 내용을 모두 간파하고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실학자 성호 이익은 윤두서의 제문을 쓰면서 우리 형제는 자신이 없었지만 공의 칭찬을 듣고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하였으니, 이익과 같은 학자가 나오는 데는 윤두서와 같은 선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윤두서는 그림 그리는 데서도 사실성을 추구했다. 사람이나 동물 등을 그릴 때면 대상을 명확히 파악할 때까지 면밀히 관찰했으며, 그림을 그린 후에 대상의 본모습이 표현되지 않았다고 생각되면 버렸다고 한다. 대상의 겉모습만이 아니라 그 내용까지도 그려내야 만족하는 그의 자세는 자화상(국보 제240)에서 잘 드러난다.

 

어둠 속에서 떠오른 듯 화면 가득히 얼굴만이 그려진 자화상은 양식에서도 전무후무하며 묘사의 기법도 훌륭하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보이는 것은 그림이 아니고 윤두서 자신이다. 고작 가로 20.5, 세로 38.5의 작은 종이 위에 그 한 사람의 무게가 다 실려 있는 것이다. 화면 밖의 사람을 꿰뚫어보는 듯, 마주 보는 사람을 송구하게 만드는 강렬한 눈은 그의 내면을 담고 우울하고 강건하게 타오른다. ‘이 사람 속에서는 무언가가 끓고 있구나.’ 이상은 높되 실천할 수 없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진사가 된 26세 이래 20년 동안 줄창 이어진 집안의 상사(喪事)를 종손으로서 감당하며 그는 그렇게 안으로 타야 했던가 보다.

 

시원하게 바람을 가르며 광활한 세상으로 휘달리고 싶었음인지, 윤두서는 말 그림을 즐겨 그렸고 또 잘 그렸다. 버드나무 밑에 선 백마」 「뒹구는 말, 중국의 유명한 말들을 그린 팔준마도등 훌륭한 말 그림들이 그의 해남 집과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또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그의 자화상과 함께 한국 회화사상 손꼽히는 명작으로 평가되는 노승도그리고 심득경 초상화가 있다. 심득경은 윤선도의 외증손이며 윤두서와 절친한 지기로 지냈는데 먼저 죽었다. 윤두서가 그의 초상을 그려서 보내니 그 집안 사람들이 본인이 살아 온 것 같아서 모두 울었다고 한다. 그의 그림이 인물의 겉모습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내면의 사람됨까지 그려 냈음[傳神寫照]을 말해 주는 일화이다.

 

서울에 집을 두고 생활하던 윤두서는 46세 때(1713) 서울 생활을 완전히 털어 버리고 해남 집으로 돌아왔고 2년 후에 48세를 일기로 삶을 마쳤다. 그의 큰아들인 윤덕희와 손자인 윤용도 그의 화풍을 이어 그림을 그렸다.

 

p133 행장이 실득을 이야기하더군 생각해보니 내 삶의 지향이 바로 에 있었던가 하오

 

느낀 점 : 윤두서의 자화상은 생긴 그대로 파격적이었다. 화폭에 담긴 얼굴의 크기와 그 세밀한 묘사, 당장이라도 살아서 튀어 나올 것 같은 형상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자화상이다. 화선지에 하나 가득 자신의 얼굴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그동안 보았던 전신의 초상화 그림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로운 파격에 가까운 새로운 시도로 보였다. 그는 왜 그런 그림을 그렸을까? 의아했다. 그의 행적들을 보니 조금씩 이 그림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는 과거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현실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답하고 응용할 수 있는 학문을 두루 연구하였다. 기하학, 천문학, 병서, 지리학과 패관소설(민간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주제로 한 소설)까지 그는 현실에 기반한 학문들을 공부하고 실득을 지향했다. 그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윤두서는 사실성을 추구했다. 사람이나 동물 등을 그릴 때면 대상을 명확히 파악할 때까지 면밀히 관찰했으며, 그림을 그린 후에 대상의 본모습이 표현되지 않았다고 생각되면 버렸다고 한다. 대상의 겉모습만이 아니라 그 내용까지도 그려내야 만족하는 그의 자세는 태가 지니고 있는 특징, 개성, 사실 등이 파악이 될 때까지 지켜보고 특성을 잡아내고 관찰하고 내면을 완전히 파악한 후 그렸다고 한다. 그의 삶의 철학이 그의 그림에서도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윤두서는 26세 때 진사시에 급제했으나 서인이 세력을 잡고 있던 시절이어서 벼슬을 한다거나 정치적 출세와는 거리가 멀었다. 해남윤씨는 윤선도 때부터 골수 남인 집안이다. 이러한 세상의 흐름에 맞서 현실 세계에 발을 딛고 당당히 자신의 세계를 개척해 나간다. 중국풍의 신선이나 동자가 아니라 조선의 농촌과 아낙네 조선의 소와 말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관념적 화풍을 벗어나, 그 속에 현실을 끌어넣을 마음을 먹는 것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렇게 윤두서는 자신의 자리에 당당하고 기품있게 서 있다. 그의 모습이 그의 자화상이 장대하게 우뚝 선 북한산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나도 그렇게 당당한 모습으로 나의 길을 꿋꿋하게 나아가고 싶다.

 

풍경

그 달밤을 보았는가?

김홍도 [소림명월도]

 

p171 산수가 일종의 이상화된 자연이라면, 풍경은 현재 화가 앞에 펼쳐진 특정한 자연에 가깝다. 풍경화와 달리 산수화는 서구적인 원근법으로 따지기 어려운 독특한 시점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산수화 속 화가의 시점은 한자리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산 위에서혹은 앞에서 혹은 아래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그 전체를 화면으로 옮겨오는 것이다.

 

p171 진경산수 창작의 기본 역시 산수로서의 접근이었다. 산수 속의 진경은 여전히 아름다운 자연의 표상이었으며, 그리는 시점 또한 전통적인 방식에 기댄것이었다.

 

p171 [소림명월도]는 전통 회화에서 산수가 아닌 풍경의 시선으로 대상을 마주한다. 그것은 화가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었으되 이전까지 누구도 그림의 대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일상일 뿐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달밤을 그림으로 옮겼으니 이야말로 하나의 사건이라해야 옳을 것이다.

 

p172 시점또한 전통적인 산수와 달랐다. 서구의 풍경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일시점으로 그려졌다. 이미 절정에 선 화가였으나, 그는 여전히 자신만의 새로운 절정을 묻도 있었으리라, 그 달밤을 보았느냐고, 이제 그 달밤이 그림이 될 수 있겠느냐고.

 

p172 화려하지도 장대하지도 않은 화면이건만 단순한 구도를 살려내는 이 유려한 필묵이라니 소품의 매력을 아는 대가다운 면모다.

 

p197 나의 길 하나쯤은 만들어야 한다는 붓을 든 자로서의 소망 때문이었던 거야. 내 외로움에 내 스스로 답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p197 주위가 갑자기 낯설어지기 시작하는 거야. 아무리 이 길을 아름답게 채워넣는다 해도, 내가 만들어낸 길은 아니지 않은가.

 

p204 그저 밤이 내리는 순간을 맞고 있을 뿐이었어. 나를 적신 것은 그 몽롱한 대기의 한숨이었을까. 아니 견딜수 없도록 치밀어 오르는 어떤 갈증이었을 거야.

 

나는 그저 달빛에 취해있었지. 제법 아름다운 밤이로구나. 참으로 아름다운 그림이로구나.

 

아무것도 아닌 광경

이 순간을 남기고 싶었어. 무엇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지. 이순간은 그저 내 마음의 모습일터이니 달 하나에 나무 몇 그루, 그것으로 족한 밤이 있는 것이라고, 굳이 이름을 붙여 무엇하겠나. 밤에 취하듯 달에 홀리듯 그렇게 붓을 들었다네.

 

p207 누구든 이름에 충실할 수 있다면 그 또한 금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p207 절경을 찾아 금강산을 오르던 발길이야말로 참으로 흥겨운 것이었지. 하지만 어느 밤 내 집앞을 비추던 달빛 또한 그 감흥에 못지않았다네.

 

p213 그는 그림을 그리는 자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는 이였다.

세상은 아직 모를 것이나 언젠가 그 밤이 빚어낸 놀라운 그림 이야기를 알아주는 때가 올 테지.

 

p214 나의 금강은...... 바로 내 앞에 놓여 있었다고

이제 내가 다시 예전의 산수로 돌아간다 해도 가벼이 걸어갈수 있을 것 같군 그 달밤...... 내가 갈수 있는 길은 거기까지였을 테니까. 다음 시대의 화사들은 또 다른 꿈으로 저마다의 달밤에 이르는 길을 찾겠지.

 

p216 그런데 말이야 나에게는 있으나 겸재에게는 없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혹시 알겠는가?

바로...... 겸재야.

 

느낀 점 : 성공이란 건 그런 건 줄 알았다. 대단하고 화려하고 누구나 시선을 주목하게 하는 것, 모든 사람들이 선망하는 어떤 위치나 명예를 갖게 되는 것, 그런 것들을 이루어야 인생의 성공이고 인생의 목표에 다다르는 길이라 여겼다. 그래서 일상은 늘 내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니어서 너무도 당연해서 늘 그렇게 내 곁에 있어도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그런 것이었다. 날 숨 쉬게 하는 공기 같은 것이었다. 소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저 내가 소중함을 모르고 있다는 쪽이 더 맞았다. 하루의 소중한 일상들이 모여 어떤 결과를 이루게 된다는 것도 함께 무시되었다. 소림명월도를 보았을 때, 곡운구곡을 보았을 때처럼 아주 소박한 것들에 대한 소중함과 아름다움이 다시 내게 찾아왔다. 행복은 그 모든 과정 안에 있었다. 내가 취하거나 획득해야하는 무엇이 아니었다. 일상의 작은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때 그 소중함을 볼 때 세상의 모든 것에 감사와 경외감을 갖게 된다. 그 그림을 만난 후, 내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소림명월도와 같았다. 밝은 달빛, 밝은 가로등, 공원의 들풀, 그곳에서 귀를 팔랑대며 뛰어가는 루이 세상 모든 것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김홍도의 시선으로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기에 감사하다. 김홍도의 작은 그림 하나로 나의 마음이 열리고 새로운 눈이 떠진다. 이것은 환희이고 기적이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자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는 이였다.

세상은 아직 모를 것이나 언젠가 그 밤이 빚어낸 놀라운 그림 이야기를 알아주는 때가 올 테지.

 

미감

아름다움이 이유여도 좋을까

조희룡 [홍백매팔폭병]

 

조희룡에 이르러 담담한 묵매 위주의 조선 매화 그림이 비로소 다양한 색채를 입기 시작한다.

조희룡은 당시 예단의 권력인 김정희의 문인화 이론에서 다소 비껴가듯 손의 수련을 중시하는 수예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19세기 바람

조희룡(1789~1866)

19세기 혼란스러운 형국- 정조 사후 (순조- 헌종- 철종)- 안동김씨와 풍양조씨 세도정치

회화 수준 쇠퇴

18세기 회화의 힘- 사회의 다양한 가능성/ 화가의 자각/ 새로운 시도

 

추사 김정희(1786~1856) ‘완당 바람’ - 고증학을 바탕으로 한 청의 학문에 열광적 몰두

文字香書卷氣(문자향서권기) : 책을 많이 읽고 교양이 쌓여 몸에서 풍기는 책의 기운이 풍기고 문자의 향기가 난다.

Vs 조희룡의 수예론 : 화가의 재능과 숙련된 기량의 중요성

중인계층의 예술적 자각

신지식유형의 화가 등장- 근대적 의미의 전문화가

전기(1825~1854) 갈필의 산수

김수철-현대 수채화를 연상케 하는 색감

허유(1809~1892) 전통적 느낌의 남종화

 

시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그저 아름답기만한 그림에 깊이가 있는가. (속됨?)

 

그림의 주제가 감동의 조건이 아니다. 먹이냐 색이냐의 문제도 아와 속을 논하는 본질이 될 수 없다. 핵심은 주제를 대하는 화가의 생각과 기량.

 

조희룡의 [매화도] - 아름다움이 존재의 이유

한 시대의 새로운 미감

 

p257 냉담한 듯 날카로운 것이 그의 눈이 지니는 아름다움이 아닌가.

 

p265 그는 나의 속됨을 저어했으나 나는 그의 그림이 이념에 갇힐까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림의 속됨에 너그러운 것은 아니었다. 나 또한 속이야말로 그림이 떨어져서는 안될 마계라 여긴다. 하지만 무엇이 아고 무엇이 속인가 한 시대는 그 시대가 지닌 저마다의 색체가 있는 것이다. 누군가 속되다고 말하는 이 시대의 그림이 한 시대를 알리는 새로운 고아함으로 사랑받게 될는지 또 어찌 알겠는가.

 

느낀 점 : 추사 김정희의 문자향 취향기와 조희룡의 수예론이 대두된다. 책을 많이 읽고 교양이 쌓여 몸에서 풍기는 책의 기운이 풍기고 문자의 향기가 난다는 문자향 취향기를 추구하는 김정희와 화가의 재능과 숙련된 기량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조희룡이 그 둘이다. 시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그저 아름답기만한 그림에 깊이가 있는가? 아와 속의 기준은 누가 또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일까? 이 둘이 양극단에 서 있다면 서로의 양끝을 주장하는 팽팽한 대결은 결코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 분명 둘 다 중요하고 둘 다 필요한 것이다. 예술적인 감각과 기교 그 예술에 불어넣는 정신 어느 것 하나 놓을 수는 없다. 김정희의 불이선란이란 작품에서 기교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둔탁한 글씨와 단조로운 난의 모습에서 놀랍게도 그의 기개와 고고한 정신이 깃들어 있는듯하다. 조희룡의 홍백매팔폭병은 정말 아름답다. 그 구도와 꽃잎들이 완벽한 우아함을 자아낸다. 그 안에 담긴 정신따윈 잊게 될만한 아름다움이다. 어느 한 쪽에서든 그 탁월함은 그 반대의 것을 잊게만들만큼 훌륭하기도 하다. 결국은 이 모든 것이 불이 둘이 아니고 또 다르지 않다는 마음이 든다. 커다랗고 든든한 양쪽의 기둥을 둔 웅장한 집이 결국 하나이듯 김정희와 조희룡이 결국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대립의 구도로 서있지만 기교의 아름다움이든 정신의 아름다움이든 아름다움으로 우뚝 서서 그 높낮이를 가늠할 수 없다. 한국의 위인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회고

시대의 끝, 어쩌면 연민이었을까

장승업 [ 귀거래도 ]

 

장승업 (1843 ~ 1897)

장승업(張承業)1843년 헌종 9년에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아로 이리저리 떠돌며 자라 그의 출생에 관해서는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다. 그의 본관은 대원(大元)이며 선조는 무반(武班)이었고, 조선 후기의 화가 단원 김홍도를 의식하여 "나도 원이다"라는 뜻의 오원(吾園)으로 스스로 칭할 만큼 화가로서의 자부심이 강했다.

장승업은 20대 무렵 서울 수표교 부근에 있는 이응헌의 집에서 하인으로 일하며 기거하게 되었다. 어릴 적에 공부할 기회가 없어 글자를 못 배운 그는 주인 아들의 어깨너머로 글을 깨우쳤다. 이응헌은 중국의 유명한 화가의 그림과 글씨를 많이 소장하고 있었으며 상당한 재력을 지닌 여항 문인이었다. 장승업은 이응헌의 집에 있는 원명 이래의 명인들의 서화를 접하고 그림에 눈이 트이게 되었다. 우연히 장승업이 그린 그림을 보고 그의 천재성을 확인한 이응헌은 비록 천한 신분의 하인이지만 장승업의 숨어 있는 재능을 아끼고 지속적으로 그를 후원했다.

 

장승업은 조선 초기의 안견, 후기의 김홍도와 함께 조선시대 3대 화가로 불린다. 후기의 정선까지 합쳐 4대 화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한다. 특히 그는 조선왕조의 마지막 대()화가로 쇠락해가는 국가의 운명을 지켜보며 화가로서 일생을 살았다. 그를 둘러싼 환경은 조선 초기 세종 연간에 활동한 안견, 그리고 조선 후기 영조·정조 연간의 문화적 황금기에 활동한 김홍도와 정선보다 훨씬 열악한 것이었다. 그러나 장승업은 이들 대화가들 중 누구 못지않은 왕성한 창작력과 고도의 세련미 넘치는 미감을 보여 주었다.

 

장승업의 명성은 궁궐에까지 알려져 감찰이라는 정6품 관직을 제수받고, 고종의 명령으로 궁궐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성격이 호방하고 어디에 매이는 것을 극히 꺼려했던 그는 엄한 궁궐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세 번씩이나 궁을 빠져나와 황제의 노여움을 사기도 했다. 그럴 때면 민영환이 왕에게 간곡히 청하여 위기에서 그를 구해주었다. 그밖에 한성부 판윤이었던 변원규, 흥선대원군 이하응, 민영익, 오세창, 오경연 같은 문화계 인사들이 그를 후원했다.

 

장승업의 신운이 넘치는 작품세계는 암울했던 19세기 후반에 시대를 밝히는 찬란한 예술혼의 승리였다. 그의 회화는 자칫 빈약할 뻔했던 조선 말기의 회화사를 풍성하게 살찌웠고, 우리 민족사의 어두웠던 한 시기를 정신적, 예술적으로 환하게 밝힌 빛이었다. 장승업은 1897년 그의 나이 55세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느낀 점 : 장승업은 불운의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참 운이 좋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고아였지만 그의 재능을 알아봐 주는 좋은 주인을 만났고 좋은 스승을 만났고 그를 도와주고자 하는 좋은 사람들이 그의 주위에 풍성했다. 그는 천재로 인정받고 스스로 오원이라는 호를 칭할 만큼 나름의 자부심도 컸다. 그는 왕의 총애까지 얻었지만 그런 명성에는 별 관심이 없는듯하다. 그의 자유로운 기질이 그의 작품에 왕성한 창작력과 고도의 세련미 넘치는 미감과 개성으로 활개치 듯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 덕분에 암울한 19세기 후반의 시대를 그의 찬란한 예술혼으로 환하게 밝혔다. 천한 신분임에도 그의 천재성을 알아봐 주고 그를 후원한 훌륭한 스승과 문화계의 인사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덕분에 그는 조선 시대 3대 화가로 자리매김한다. 장승업을 보면서 자신의 천재적인 재능도 중요하지만 그를 알아봐 주고 도와주려는 주변의 인물들이 빛난다. 우리는 혼자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 집단주의나 전체주의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인연으로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또 사라진다. 장승업의 삶을 보며 장승업 하나의 인물을 보기보다는 전체를 바라보게 된다. 그 한 인물이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인연들이 만나 서로 돕고 상생해간다. 나는 누구를 진실로 알아봐주고 또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며 살고 싶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탓하는 것이 존재론적 사고라면

관계론적 사고는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는 것.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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