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dementia)는 라틴어의 ‘de(아래로)’와 ‘mens(정신)’을 합친 데서 유래한 말로, 말 그대로 풀이하면 ‘정신적 추락’을 뜻한다. 치매가 뇌기능의 손상으로 인지기능이 지속적이고 전반적으로 저하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정신적 추락’이라는 어원의 의미가 이해가 된다. 그런데 최근에는 디지털 미디어로 인한 치매, 즉 ‘디지털 치매’에 대한 우려가 생기고 있다. 디지털 치매란 디지털 기기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뇌의 퇴화 증상을 일컫는 말로, 2007년 우리나라 학자들에 의해 처음 사용된 이래 국제적인 신조어로도 자리매김하였다.


 

실제로 독일의 한 뇌 과학자에 의해 『디지털 치매』라는 책이 발간되기도 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디지털 미디어가 우리를 “뚱뚱하게, 어리석게, 공격적으로, 외롭게, 아프게, 그리고 불행하게 만든다!”며 위험성을 경고한다. 그 중에서도 그가 특히 걱정하는 것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학습에 디지털 미디어가 사용되는 경우다. 스마트보드나 노트북을 이용해 학습할 경우 통제력 상실, 사회성 부족 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한국 학생들의 12퍼센트가 이미 인터넷에 중독되어 있다는 2010년도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인터넷 중독의 심각성을 강조한다. 한국에서 ‘디지털 치매’라는 표현이 나오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저자가 2015년부터 모든 취학 아동들에게 태블릿 PC를 지급하고 전자교과서로 수업하기로 한 한국 정부의 원대한 계획까지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직도 한국 사회가 디지털 미디어의 해악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통탄하지는 않을지.


 

물론 디지털 미디어가 자기 통제력의 상실, 고독, 우울증 게다가 장기적으로는 치매를 유발한다는 이 책의 주장이 다소 과도하다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이미 한국 사회에 그 부작용들이 출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가령 요즘 국정원의 행태는 인터넷 미디어에 과도하게 노출된 나머지 자기통제력을 상실한 것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다. 선거개입 의혹이 일어났을 당시 국정원은 정당한 대북 심리전을 했을 뿐이고, 국정원 직원을 도운 일반인은 “애국시민”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조사 결과 이 “애국시민”이 ‘일간 베스트(일베)’의 열성 회원인 것으로 드러났고, 국정원 직원은 ‘대북 심리전’이 아니라 특정 대선후보와 연관된 게시물이 베스트 게시판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총선 심리전’을 벌였다고 한다.


 

게다가 ‘정권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청와대 대변인마저 일종의 치매 증세를 보이며 국제적 망신을 시키고 있다. 자신의 블로그에 대한민국 국민들이 “눈만 뜨면 성폭행, 성추행하는 ‘미친놈’들에 관한 뉴스 때문에 스트레스 정말 팍팍 받으며 살고 있다”며 새누리당을 ‘색(色)누리당’이라고까지 칭했던 이가, 허락도 없이 남의 엉덩이를 움켜쥔(grabbed)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이다. 누리꾼들은 이러한 행동이 일종의 ‘셀프-디스’가 아니냐며 조소하고 있는데, 이 글이 겨우 일 년 전쯤 쓰인 데서 혹여 ‘디지털 치매’의 한 증상이 아닐까 우려된다. 『디지털 치매』의 저자는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 어린이들에게 마우스 대신 연필을 쥐게(grab) 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정원과 전 청와대 대변인도 이제 마우스나 허락 받지 않은 누군가의 엉덩이를 움켜쥐는 대신, ‘정신적 추락’을 막을 수 있는 다른 일을 알아보길 바란다. 국민들의 정신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말이다.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201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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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들의 음악을 ‘소울 뮤직’이라고 하듯 ‘소울 푸드’는 원래 미국의 흑인들이 즐겨먹던 음식을 뜻하는 말이었다. 미국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던 노예제 시대에 흑인들은 백인 농장주가 먹지 않던 식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만들어 먹었는데, 백인이 버린 닭발, 목, 날개 같은 부위를 뼈째 씹어 먹을 수 있도록 오래 튀긴 데서 유래한 프라이드 치킨 역시 이들의 대표적인 소울 푸드였다. 이처럼 흑인들의 음식에 ‘소울’이라는 말을 붙인 것은 이 음식들이 백인들로부터 핍박받던 흑인들의 허기진 ‘영혼’까지 달래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요즘에는 이 말이 사람들의 상처받은 영혼을 감싸주는 음식 전반을 일컫는 데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단식 역시 ‘먹는다는 것’이 기계적으로 허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소울 푸드와 상통하는 점이 있다. 소울 푸드가 추구하는 것이 영혼의 풍요로움이듯, 단식 역시 뱃속의 풍요로움 대신 정신의 자유를 택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단식은 ‘자유보다 빵’을 내세웠던 1960년대 박정희식 개발독재에 맞서는 투쟁방식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빵’으로 허기를 채우는 것이 영혼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빵’을 포기하겠다는 의지가 단식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단식투쟁을 하던 이들에게는 ‘빵’대신 선택한 ‘자유’야말로 일종의 ‘소울 푸드’였던 셈이다.

 

4·3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에서 주목한 소울 푸드는 ‘감자’였다. 영화 제목인 ‘지슬’은 ‘감자’를 뜻하는 제주도 방언으로, 감독은 감자가 전세계인의 소울 푸드라는 점에서 이를 제목으로 내세웠다고 한다. 실제로 영화에서 감자는 4·3사건 당시 무자비한 폭력과 그에 대한 두려움으로 피폐해진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주는 음식으로 등장한다. 군인에게 살해당한 어머니가 아들을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남긴 감자는 학살을 피해 굴에 피신한 이들에게 건네짐으로써 산 자들의 허기를 다스려준다. 죽은 자의 영혼이 담긴 음식을 함께 나누어먹음으로써 산 자들은 영혼의 허기까지 채울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죄없는 주민들을 학살하기를 거부한 군인은 누군가를 죽일 때까지 아무 것도 먹지 말라는 상사의 명령을 순순히 따름으로써 영혼의 ‘자유’를 지킨다. 자신이 먹기 위해 그리하여 살아남기 위해, 남을 죽여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는 ‘먹지 않음’을 선택함으로써 국가 폭력에 맞선 것이다.

하지만 65년이 지난 지금도 4·3사건 피해자들의 허기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듯하다. 4·3사건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얼마 전 열린 4·3사건 기념식에 끝내 참석하지 않았다. 4·3사건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겠다는 정부의 약속 역시 10년째 지켜지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남기고 싶다며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이 ‘종북 좌파’로 매도당하고 공권력을 위협하는 ‘범죄자’로 몰리며 300억이 넘는 과징금을 떠안고 있다. 체포·연행된 강정마을 주민과 활동가 수가 600명이 넘고 강정마을 주민의 31%가 자살충동을 겪고 있다고도 한다. 구럼비를 폭파하는 발파음이 들릴 때마다 4·3사건의 악몽을 떠올렸다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끝나지 않은 세월’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2015년 완공을 목표로 ‘순항 중’이다. 언제쯤에야 강정마을 주민들은 그들의 ‘지슬’을 맛볼 수 있을까. 구럼비에도 소울 푸드가 필요하다.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20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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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사회와 마찬가지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부단한 사회 변화의 과정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가진 어휘가 끊임없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기존의 어느 한 낱말이 다른 새로운 뜻을 파생시켰거나 이전에는 없었던 어휘가 새로 나타났을 때 이를 ‘신조어’라고 부른다. 특히 최근에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보급으로 신조어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과거 언론과 학계 등 여론 주도층에서 만들어내던 신조어를 요즘에는 일반 대중들이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조어 사용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최근 국립국어원은 일간지와 인터넷 매체 등에서 사용된 신조어를 정리해 ‘2012년 신어 기초 자료’ 보고서를 펴냈다. 이 중에는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시대를 가리키는 ‘삼포시대(三抛時代)’나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될 만큼 비싼 책가방을 가리키는 ‘등골백팩’과 같은 신조어들이 소개되어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아무 말 없이 도망가는 경우를 가리키기 위해 ‘알바추노’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단다. 이외에도 기발한 조어법으로 각박한 현실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해내어 웃음을 자아내는 신조어들이 눈에 띈다.

그런데 이러한 신조어들에서는 ‘멘붕’을 일으키는 현실을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안간힘’이 느껴진다. 여기에는 스스로를 희화화함으로써 고단한 현실을 견뎌보려는 대중들의 무의식이 반영된 듯하다. 그런 점에서 이런 현상을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웃프다’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웃프다’는 ‘웃기다’와 ‘슬프다’의 합성어로, 당장은 피식 웃게 되지만 속사정을 생각하면 슬퍼지는 상황을 일컫는다. 가령 ‘성형국(성형을 많이 하는 나라)’으로 일컬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예쁜 게 죄라면 나는 평생 죄 짓고 살 일 없어”라고 하는 여성의 자기비하 발언이나 온 국민이 태풍 ‘볼라벤’의 진로에 촉각을 곤두세울 때 “태풍은 좋겠다, 진로도 있고”라고 하는 고등학생의 푸념은 ‘웃프다’는 공감을 얻는다.

 

이처럼 현실을 ‘웃프게’ 바라보는 태도는 피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나름의 대응방식일 수 있다. 작년에 유행했던 ‘힐링’ 코드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식으로 현실 문제들을 회피하면서 자기 위안만을 추구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반면 ‘웃프다’는 현실의 씁쓸한 문제들을 직시하고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약자에 대한 공감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보여준다. 자기 자신을 희화화하는 ‘희생’을 감수함으로써 우회적으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표출하는 한편,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기서의 ‘슬픔’은 자기 내면의 슬픔에 갇혀 당면한 현실을 외면하는 무기력하고 자폐적인 ‘우울’과 대비된다.

지금 대중들은 무엇을 해도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비관적인 현실 속에서 섣불리 절망하지 않기 위해 현실을 ‘웃프게’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현실을 ‘웃프게’ 보는 시선 자체는 ‘슬픈’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리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웃어야 한다. ‘웃음’은 소통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타자와의 소통을 가능케 함으로써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미약한 희망이나마 발견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웃픈’ 것들은 프로포폴을 투약하는 것보다는 희망적이지 않은가.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2013.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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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용어로 ‘골든타임’이란 응급 외상환자 1시간, 뇌졸중 발병 3시간 등 사고 발생 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치료가 행해져야 하는 제한시간을 의미한다. 최근 종영된 드라마 <골든타임>은 생사의 기로에 놓인 중증외상 환자들의 골든타임을 사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증외상센터(Shock Trauma Center) 의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사명감을 가지고 환자를 대하는 주인공 ‘최인혁’의 카리스마였다. 물론 최인혁이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는 과정은 그리 수월치 않았다. 전문 인력 부족, 병원 내 다른 과의 비협조, 중증외상 환자를 이송하는 데 필요한 의료헬기의 지원이 안 되는 상황 등 개인의 사명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 차원의 문제가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통해 국내 응급의료시스템의 현실을 체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의료 인력과 지원 부족으로 제때 진료를 받았다면 충분히 살 수 있었을 응급 환자들이 생명을 잃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이익을 거둘 수 없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지원도 받지 못하는, 그래서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죽게 내버려 둘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최인혁은 좌절하지 않는다. 응급 환자 이송을 위해 소방헬기라도 지원해달라고 요청하는 자리에서, 그는 얼마 전 이송이 늦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사내에게 어린 자식이 둘이나 있었다고 이야기를 꺼낸다. 이에 대해 관계자들은 그런 감상적인 접근은 하지 말라고 선을 긋는데, 최인혁은 앞으로 그 아이들을 키워내는 데 드는 비용을 국가가 전부 부담해야 하는데 그것보다는 헬기를 지원해서 그 아이들을 키워낼 아버지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비용이 적게 들지 않겠냐고 말한다. 생명을 구하는 것이 윤리적인 행위인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경제적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요즘 우리 주변에도 당장 눈에 보이는 손해를 감수할 수 없다는 명목 하에 골든타임을 훌쩍 넘기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전기요금 15만원을 체납했다는 이유로 전기가 끊겨 촛불을 켜고 자던 할머니와 손자는 결국 목숨을 잃었다. 부당해고를 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목숨을 담보로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 사람이 있다”는 이들의 외침에 대해 구조적인 문제라 당장 해결이 어렵다며, 혹은 감상적으로 접근하지 말라고 응수하며 우리를 ‘멘붕’에 빠뜨리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개개인의 멘붕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적인 ‘트라우마’로 남는다는 데 있다. 3년 전 용산참사의 기억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상처로 남아있듯이 말이다. 이를 극복하는 데 얼마만큼의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할지를 생각한다면, 골든타임을 사수해야 하는 것이 최인혁만의 과제는 아니지 않을까.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2012.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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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단편소설 「달로 간 코미디언」에는 ‘달나라로 간 별주부전’이라는 코너에서 슬랩스틱 코미디를 선보이는 코미디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은 이 코미디언을 아버지로 둔 딸과 그녀를 사랑하는 주인공인 ‘나’가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게 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그보다는 코미디언으로 나오는 캐릭터가 두고두고 뇌리에 남았다. 그는 “콩나물 다 무쳤냐”라며 ‘수지Q’에 맞춰 엉덩이춤을 추던 이주일에 밀리다가, 1980년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식을 앞두고 이주일, 배삼룡 등이 ‘저질 연예인’으로 낙인찍히며 방송 금지를 당하자 그제야 빛을 보게 된다.

토끼 간을 구하기 위해 달에 간 별주부 역을 맡아 계수나무에 부딪치고 당근에 미끄러지는 등 바보 연기를 선보이던 그는, 전두환 대통령을 향해 “성군(聖君) 나셨도다아!”를 외치며 텔레비전 출연을 계속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남긴 유일한 유행어가 “웃을 일이 아니에요”였는데, 관객들을 웃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던 코미디언이 정색하고 “웃을 일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아이러니 자체는 우스울지 몰라도,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고 대통령이 된 군인을 향해 ‘성군’ 운운하는 것은 정말이지 웃을 일이 아니었다. 웃을 일이 아니라며 농담처럼 던진 그의 말이 오히려 진담처럼 들렸다고나 할까.

한편 밀란 쿤데라의 『농담』에는 무심히 던진 농담 한마디 때문에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는 한창 ‘작업’을 걸던 여학생으로부터 별 반응이 없자 심술이 난 나머지 스탈린주의가 한창이던 당시에 “트로츠키 만세”를 엽서에 써서 보내는데, 결국 그게 빌미가 돼 대학에서 추방되고 수용소와 강제노역장으로 보내진다. 그는 이후 자신을 탄핵한 동료에 대한 복수로 동료의 처를 유혹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 둘은 이미 오랫동안 별거 중이었고 당시 추앙받던 이데올로기 역시 잊힌 과거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시한 농담 한 마디에 그의 삶 자체가 쓰디쓴 농담이 돼 버린 것이다.

쿤데라는 한 인터뷰에서 농담이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는 죽음의 세계라고 말한 바 있다. 신성불가침한 확신 위에 건설된 사회에서는 이해보다는 심판이 앞서기 때문에 지혜와 관용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의 어리석음이란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갖는 데서 오는 것이기에 세상을 하나의 질문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점에서 전체주의 사회는 질문들의 세계가 아닌 대답들의 세계, 그리하여 농담이 설 자리가 없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요즘 들어 점점 농담과 진담을 구별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노크 귀순’이 문제가 되자 전방 철책 지역에 전화기를 설치하겠다는 군의 대책 발표는 과연 농담일까, 진담일까.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대통령의 형은 ‘현금 거래를 좋아해서’ 무려 6억 원의 현금을 대통령의 아들에게 ‘빌려’줬다는데 이건 설마 농담이겠지? 북한과 관련된 재미없는 농담 좀 했기로서니 한 트위터리안에게 2년형을 구형한 검찰이 부디 농담과 진담을 확실히 구분해 줬으면 좋겠다. 물론 이건 진담으로 하는 말이다.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2012.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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