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평전
최하림 지음 / 실천문학사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950-60년대 시대사나 시인들의 평전을 쭉 읽어가는 와중에 이 책은 그 중에서 여러 모로 추천할 만한 평전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점을 말하기 전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저자가 밝혔듯이 김수영 어머니의 증언에 많이 의존하고 있어서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없다는 점. 사실 이것은 이 책 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느낀 것인데 한 인물에 대해서 한 가지 관점만 있을 수는 없는 만큼 해당 인물에 대해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취재원들이 한 인물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밝히는 지점들을 다양하게 보여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점을 제외하면 이 책은 김수영의 삶에 대해 성실하고 진지하게 그러면서도 치우침 없이 전달해주고 있다. 저자가 국문학을 전공하는 연구자이자 시인이기도 해서인지 김수영의 문학사적 가치를 인지하면서 그의 시를 충실하게 해석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면서도 김수영의 인간적 면모를 김수영에 대한 신화에 그렇게 얽매지 않고 서술해주고 있어서 막힘없이 술술 읽을 수 있었다. 김수영의 집안 내력에 대한 설명이 특히 인상적인데, 경제적인 계산이 빨랐던 할아버지와 그의 어머니, 아내, 그리고 그의 형제와는 달리 무능력했던 아버지와 김수영 자신의 대비가 재밌었다. 김수영의 시나 산문에 보면 어머니와 아내를 경멸하는 듯한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이것이 자신의 경제적 무능력에 대한 죄책감일 수도 있으며 그 죄책감을 이런 방식으로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위악적인 것인지를 알면서도 그는 자신의 치졸함을 숨기지 않았다. 물론 나는 이 치졸함마저 '신화'로 만들어버리는 김수영 추종자들의 입장에는 반대하고 김수영 자신이야말로 자신에 대한 '신화'에 대해 가장 모욕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더. 김수영이 의용군에 끌려 갔다가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끌려갈 당시의 상황은 지나친 반공주의로 인해(특히 고은) 너무 폭력적인 것으로 그려져 왔던 것 같다. 김수영이 직접 쓴 소설을 찾아보고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또 김수영의 두 남동생이 모두 북으로 넘어갔으며 이 때문에 김수영이 반공주의의 공포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그가 이어령과 한 '시와 정치' 논쟁에서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동생이 남에 내려왔다는 사실로 인해 논쟁 이후 형사에게 끌려가기도 했다는 점(그는 이 논쟁 때문에 끌려간줄 알고 겁에 질리기도 했다)을 생각해보면, 김수영은 투사라기보다는 겁이 많은 싸움꾼이었으되 공포에 사로잡히면서도 그 공포에 지지 않으려고 했다는 점이 조금 감동적이었다. 그는 아무런 겁도 없이 '자유'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언제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두려워하면서도 말을 했던 것이다. 아마 자신이 말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인식했기에 이런 주장을 할 수도 있었던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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