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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 Blu ㅣ 냉정과 열정 사이
쓰지 히토나리 지음, 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오이와 쥰세이는 너무나도 사랑하는 연인이다. 두 사람은 과거에도 사랑했고 현재에도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미래에도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두 사람은 헤어졌고 길고 긴 시간이 강의 그들 사이에 들어섰다. 그들이 서로 만나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너무 쉽게 다시 맺어졌다면, 그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다.이미 그들은 서로에게 현실이 아니다. 10년이라는 세월만큼 멀어져 갔던 과거의 환상, 기억의 유령이다. 두 사람은 10년의 세월만큼이나 변했고, 그것이 그들을 서로 낯설게 만든다.
아오이는 10년동안 변하게 된 쥰세이를, 그리고 쥰세이는 변한 아오이를 받아들이고 사랑해야만 두 사람의 사랑은 맺어질 수 있다. 나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여러가지가 변하더라도 그 사람의 본질은 그대로이다. 다만 그 사람을 보는 눈이 변할 뿐이다. 아오이가, 그리고 쥰세이가 변한 것이 아니라 서로 바라보는 관점이 변한 것이다. 나는 수많은 나를 갖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지만 그들에게 나는 모두 다른 사람이다. 그 사람의 특성은 그를 바라보는 사람에 의해 정해진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제대로 된 연애도 못해본 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런 생각을 해봤다. 사랑이란.. 상대방을 더욱 외롭게 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립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한 개인 한 개인 속에 들어찬 세계는 얼마나 넓고 깊은지, 아무리 그와 친한 사람이라고 해도 도저히 그 밑바닥까지 볼 수 없다. 사랑하는 자들은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고 싶어하지만 불가능 한 것이다. 아무리 사랑해도 서로는 타인이고, 상대방의 내보이는 부분 외에는 알 수 없다. 서로를 100% 알지 못하기에 사랑해도 이별하는 연인이 생기고, 또 그렇게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아까도 말했듯이 쥰세이의 직업은 복원사이다. 과거의 시간을 복원하고 싶은 쥰세이에 대한 은유이다. 소설 속에 나타나는 복원기술이나 방법에 대한 부분들이 흥미롭다.쥰세이는 생각한다. 과거를 되살리지 않고, 미래를 기대하지 않고, 현재를 울려퍼지게 해야 한다고. 그는 섬세하게 그림을 복원해 낸다. 그러나 그 그림은 선생에 의해 심하게 훼손되고, 그 사건은 그의 일상에 균열을 일으킨다. 그동안 잘 참아 오던 생활들이 그 사건으로 인해 깨어진 것이다. 그는 과거를 복원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를 지탱시켰던 것은 아오이와 의 약속이었다. 그림이 찢어지면서 그는 아오이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절망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일본에서 다시 복원 일을 시작한다. 그림이 말하고 있는 것을 들어보려 애쓴다. 그는 그렇게 과거와의 대화를 시도한다. 그러자 과거에는 이해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이해하게 된다. 용서할 수 없었던 아오이에 대한 감정이 후회와 죄책감으로 변하고 그녀를 더욱 그리워하게 된다.
두 사람의 관계는 그럭저럭 잘 ‘복원’ 될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10년의 세월만큼이나 낯설고 어려워 졌지만, 언제나 꾹 다문 입의 차가운 표정만을 보여주는 그녀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어 달려갈 수 있는 쥰세이라면. 매일매일 전화 통화를 하고 주말엔 데이트를 하고, 커플티를 맞춰 입고 모임에 동반하고, 이벤트를 챙겨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계속 그리워할 수 있는 것, 그게 정말 사랑이 아닐런지. 나처럼 끈기도 없고 게으르고 타인에 대해 방관적인 사람으로서는 도통 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