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선인장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사사키 아츠코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내가 회사에 들어와서 제일 많이 했던 것은 아마도 '이별'이다 벌써 우리 회사에 들어왔다 나간 사람들만도 100명은 넘을 꺼다. 어떤 사람들과는 원수였고, 어떤 사람들과는 친하게 지냈고.. 어떤 사람들과는 대화도 나누지 않았었다.

회사를 다니게 되면서 제일 이상했던 점은 아무리 친하게 지낸다고 해도 어느날 훌쩍 떠나버리고 떠난 후에 관계를 지속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젠 나도 그런 것에 익숙해져서 타인과 진지하게 교류하지 않게 된다.

모자는 떠나고 오이와 2는 계속 만나지만 점점 뜸해진다. 거리가 멀어지고, 만나기가 힘들어지면 우리들은 더이상 만나지 않는다. 가끔 msn이나 메일로 인사를 주고 받긴 하지만 그 횟수도 점점 줄어들다가 결국은 만나지 않는 사람들이 된다.

호텔 선인장은 인간들의 만남과 헤어짐의 순환을 너무 담담하고 코믹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그리고 캐릭터 설정. 한국 소설들은 대체로 구성, 캐릭터 설정이 약하다. (안그런 소설도 많지만 대체적인 단편 소설들을 볼때) <호텔 선인장>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애니매이션 같고, 만화같고, 영화같고, 또 드라마 같았다. 소설 속 담담한 유머가 존재했다.

호텔 선인장에는 3명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모자... 여기서 모자는 예술가, 특히 문학쪽 사람인 것 같다. 영맛살이 있어 늘 떠돌아다니고, 집은 지저분하고, 게으르고 책을 읽고 뭔가 끄적거리고 불규칙한 생활을 살고 머릿속이 복잡하다. 남에게 깊게 정을 주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훌훌 털고 또 떠나간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귀여운 구석이 있다.

오이.. 헬스클럽 강사였었나?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약간 단순하고 건강하고, 규칙적이고 몸이 건강하니 정신도 건강하다.. 머리는 나쁜 편인 것 같고 정이 많다. 맥주를 마셨었나? 하여간 그렇다.

숫자 2. 제일 재밌는 캐릭터다. 공무원이고 소심하며 집착을 잘하고, 남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큰 사건이 없으면서도 재밌다. 계절처럼 이야기들은 계속 굴러가기 때문이다. 숫자2가 모자를 쓴다거나 하는 언어적인 재미도 있다. 책이 옆에 있었으면 더 많은 이야기를 했으련만.. 이만 줄인다.

p.s 나는 굳이 따지자면 모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낙천적이지만 또 염세적이기도 하다. 숫자 2의 특성도 조금은 갖고 있다. 그러니까 난 모자와 숫자2의 중간이다.
내 친구중 한명은 오이와 숫자2의 중간 정도 캐릭터라고 생각 된다. 많은 것에 얽매여 생각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점은 숫자2를 닮았고 알게 모르게 정이 많다거나 집안이 화목하다거나, 은근히 부지런한 점은 오이를 닮았다.

누구나 오이, 모자, 2의 꼭지점으로 만들어진 삼각형 어딘가에 존재할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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