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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 SE - [할인행사]
스티븐 달드리 감독, 제이미 벨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2001년 겨울에, 나는 당시 서브작가였던 아이와 함께 회사에 남아 이 영화를 보았다.
레카가 14화까지 방영을 하고, 회사가 극도로 어려워져 직원들이 반 이상 나가고, 남은 인원들이 한달에 겨우 한 편 정도밖에 만들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사장님은 14화 이후를 제작하느냐 마느냐 고심하다가 제작을 단행키로 결정했고, 남은 사람들은 꾸물거리며 조금씩 조금씩 15화,16화를 이어 만들었다. EBS에선 14화 이후에 다시 1화부터 재방영을 하기 시작했다. 시청자들의 항의에 리플을 달아주기 바쁠 때였다.
예술을 하면 배고프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다. 그렇게 주체 못하는 끼를 감당 못해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된 사람들 치고 배 안고픈 사람 거의 못 봤다.
가스에 쌀까지 떨어진 만화가들, 여기저기 옮겨다닌 서너개의 회사에서 모두 임금이 체불되었다며 노동청 드나들기 바쁜 애니매이터들, 시 한편에 만원도 안되는 원고료를 받으며 최저생계비 지급대상자가 되어 살고 있는, 그래도 문단에서는 꽤 알아주는 시인들, 1년에 벌어봐야 300만원 벌기도 힘들다는 소설가들, 겉으로는 고상한 발레단의 발레리나지만 한달 60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밤에는 무용 과외나 아줌마들 다이어트 재즈 댄스 강의 등의 알바를 뛰어야 하는 무용수들, 돈 없으면 전시회 하기도 힘든 화가들, 교통비도 안되는 푼돈을 받으며 주말도 휴가도 없이 24시간 내내 뛰어다니는 영화인들, 그나마도 여기 저기 원고료를 떼먹히고 남 좋은 일만 죽어라 하는 프리랜서들, 연예인의 꿈을 꾸며 죽어라 노력하지만 아무리 해도 뜨지도 못하고 나이만 먹어가는 어린 아이들….
예대를 나온 나는, 집안의 반대로 다른 학과에 지원했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 다시 입학을 했던 예술학도들을 많이 보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끝까지 꿈에 매달려서 결국 성공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왠걸? 나는 그토록 하고 싶어하던 꿈도 석 달 월급 체불 못 이긴다는 걸 알았다.
뭐.. 요즘이야 이걸 하나 저걸 하나 못사는 건 마찬가지니까 차라리 잘 됐다 싶다. 문학 포기하고 경영과 간 친구도 똑같이 죽쑤고 있다는 소리가 들려와야 그래도 글쓰겠다며 문창과 들어온 사람 기분이 좀 좋지 않겠는가. (안 그런가..? ^^)
자식이 예술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여기서 두 가지의 생각이 교차할 것이다. ‘예술? 그거 해서 입에 풀칠이나 하겠어? 그런거 시켜줄 돈도 없어.’ – 이 예술이란게.. 돈은 못 벌면서 들어가는 돈은 또 장난이 아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이거 시켜주면 나중에 엄청 성공하는 거 아냐? 내 자식의 이 넘치는 끼와 재능을 썪히는 것도 아까운데. 적어도 나처럼 지긋지긋한 인생을 살게 하진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한다.
왜냐면, 예술을 선택해서 결국 성공하게 된 사람이란, 극 소수지만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그런 인물이 한 명 나온다면, 그 집안은 성공 한거다.
너무 옆길로 샜다. 다시 [빌리 엘리어트]로 돌아오자.
빌리는 탄광촌에서 파업 중인 한 광부의 아들이다. 그 집안엔 꿈도 없고 미래도 없다. 빌리의 형은 이미 아무런 비전도 없는 광부가 되었다. 아버지는 늙어가고, 엄마는 죽었고, 할머니는 치매에 걸렸다. 파업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빌리의 집은 점점 가난에 쪼들린다.
그러니까 찢어지게 가난한 광부의 집에 춤에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 뭐..영화엔 그렇게 설정되어 있으니- 빌리가 태어난 것이다. -이건 꽤나 슬픈 설정이다 -
이제 빌리의 아버지는 선택을 해야 한다. 자, 어떻게 할까?
사실 빌리가 춤에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아버지로써는 알 수가 없다. 그냥 잘 추니까 그런가보다 할 뿐이다. 발레 학교에 보낼려면 돈도 무진장 들어간다. 아버지와 형이 죽어라 광석을 캐서 버는 돈을 족족 부쳐줘야 하니까 말이다. 그 학교에 간다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유명한 무용수가 된다 한들 돈을 많이 벌어서 그 동안 빚 다 갚고 가족들을 편안하게 해준다고 볼 수도 없다.
빌리를 보자. 그다지 착한 애도 아니다. 아빠가 없는 돈에 권투 도장가라고 준 돈으론 엉뚱하게 발레 강습에 들어가고, (태연하게 어른 속이기) 발레라는 세계를 열어준 고마운 선생님한테는 무례하게 대들고, 입학 시험 때 만난 곱상한 학생한테 괜한 자격지심에 주먹까지 휘두르고, 시험을 보고 와선 괜히 집안 사람들에게 툴툴거린다.
아마 학교에 가서도 애들 꽤나 팼을 것이다. 부잣집 아이들에게 열등감도 느꼈을 것이다. 빽있고 돈 있는 것들한테 밀려 주연자리를 못따고 단역만 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결국 빌리에게 모든 것을 건다. 우리는 이 지긋지긋한 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너는 떠나서 성공해라. 너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세계를 누비며 집안을 드놉혀라. 한마디로 입신양명 하라는 거다. (제일 불쌍한 건 형이다. 기껏해야 20대일텐데..)
빌리는 런던(?)으로 떠나고, 아버지와 형은 탄광촌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후 빌리는 멋지게 성공한다. 아버지와 형은 빌리를 보러 와서 눈물을 흘리며 기뻐한다. 그 한 순간을 위해 10 년 이상을 희생했을 것이다.(어쩌면 영화가 끝난 후에 갑자기 검은 가래침을 내뿜으며 병원으로 실려가 폐암 판정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판타지를 실현시켜준 우화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부모의 반대를 받지만 곧 반대는 기대로 바뀌고, 그들의 따뜻한 희생을 밟고 일어서 결국엔 성공하는, 즉 대박을 날리며 날아 오르는 그런 꿈. 너는 안돼! 못해! 라며 야유를 퍼붓던 고등학교 담임이나 기타 등등 사람들에게 성공한 자의 미소를 지어 보이는 꿈.
그래서 구질구질한 많은 부분들은 알아서 생략되어 버리고, 빌리의 경쾌한 탭댄스와 천진난만한 모습, 춤에 대한 열정만 미화되어 보여진다.
예술가라면 누구나 대박의 꿈을 꾸고 있다. 누구나 언젠가 화려한 시상식에서 소감을 발표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속물 예술가의 모습 같지만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그 한 순간을 위해서 지긋지긋한 현재를 견디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늘도 우리들의 부모님은 여기저기 자식 자랑을 하고 다니기 바쁘다. 우리 딸은, 우리 아들은 작가에요, 음악가에요, 화가에요, 하며. 언젠가는 우리들이 집안의 빚을 청산해주고 대궐 같은 아파트를 사 주기를 꿈꾸며.
휴. 어쩔 수 없지. 죽이 되든 떡이 되든 끝까지 해보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