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성생명 - 창조주가 된 인간과 불확실한 미래
김훈기 지음 / 이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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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그 벤터의 선언으로 시선이 모아진 분야. 국내 저자가 쓴 책이라서 더욱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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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미술관 - 그림이 즐거워지는 이주헌의 미술 키워드 30 이주헌 미술관 시리즈
이주헌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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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책에서 이주헌이라는 이름을 본 지도 꽤 오래되었다. 많은 책이 나와 있지만, 미술 책을 좋아하는데도 이상하게도 나는 그의 책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우선 ‘지식의 미술관’이라는 제목이 눈을 끌었다. 그 다음엔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칼럼을 모은 것이라는 카피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신문에서 몇 번 보았던 기억이 있다. ‘꽤 재미있었는데...’ 서문에는 이 책이 ‘그림 보는 방법’에 관한 책이라고 씌어 있다. 그런데 ‘진정한’ 그림 감상을 알려준다고 한다. 진정한 그림 감상? 그러니까, 그냥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만 단순히 파악하고 마는 것은 그림이 품고 있는 그 촘촘하고 풍성한 의미의 층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단순히 외양만 보고 마는 것이 얼마나 아까운 일인지를, 그림을 보고 얻을 수 있는 것, 알 수 있는 것, 그리하여 크나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이 책은 이야기한다. 그것은 기법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그림이 태어난 시대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또 그림을 그린 화가, 그림을 수집하는 컬렉터, 그림을 판매하는 화상 같은 예술계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런, 얇은 그림의 화폭 뒤에 숨겨진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을, 이 책은 맛보게 해준다. 이주헌의 특장점인 ‘어려운 얘기 쉽게 하기’가 빛을 발한다. 화질 좋은 도판도 잔뜩 들어 있어서 보는 재미도 좋다. 제목 그대로 알찬 지식으로 꽉 찬 미술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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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의 탄생
배리 네일버프, 애비너시 딕시트 지음, 이건식 옮김, 김영세 감수 / 쌤앤파커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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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을 전공했다는 인연으로 사람들에게 많이 받는 질문은 단연 두 개. 1) 돈 많이 버는 데 경제학이 도움이 되요? 2) 경제를 알기 쉽게 풀어쓴 책은 뭐에요? 둘 다 ƒ당황스런 질문이지만 전자는 그냥 얼버무리고 말 일이고 (나도 못 벌어!), 후자가 참으로 난감한 질문이다. 최근 각광 받는 “게임이론”을 알기 쉽게 풀어쓴 책을 대보라는 요구를 받으면 더욱 난감해진다.  

왕규호 교수와 조인구 교수가 쓴 훌륭한 국문 게임이론 교과서도 있지만, 이런 류의 학술서들은 제외해야 겠다. 게임이론을 풀어 쓴 책은 이미 많이 나와 있지만, 몇 가지를 빼고는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례가 전부 외국의 것이기도 하려니와, 언제까지 1980년대 미국의 사례를 봐야하며, 윈도우와 맥킨토시의 뻔한 사례들에 이르면 코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이때 내가 하는 이야기가, “원서를 읽을 수 있겠어요”라는 질문이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단연 권장할 만한 책은 딕시트와 네일버프의 Thinking Strategically였다. 정말이지, 나무랄 데 없는 대중적인 감각을 지닌 책으로 가르침과 재기가 차고 넘치는 책이었다.  

이번에 번역된 [전략의 탄생 Art of Strategy]은 Thinking Strategically의 개정 증보이자 후속작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책의 미덕부터 몇 가지 살피고 넘어가자.  

1. 개정보다는 ‘증보’에 방점이 찍혔다는 점을 높이 사야 겠다. 이전 책은 당시까지 주류 이론의 성과들에 비교적 충실하게 전개되었지만, 이 책은 최근 주목받는 실험경제학 및 행동 게임이론, 그리고 신경경제학의 성과들까지 요모조모 잘 접목시키고 있다. 웬만해선 옆 길로 새지 않는 대가들로서는 상당히 재미있는 행보인 셈인데, 이는 경제학의 새로운 시도들이 어느덧 학계에서 일정한 ‘시민권’을 얻어가고 있다는 점을 반증하리라.  

2. 사례들의 펄떡이는 신선함이다. 책의 예들은 거슬러가야 90년대다. 인기 리얼리티 쇼 <서바이버> 이야기가 나오고 최근에 우리도 들어봤음 직한 이야기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이런 대목이야말로 국내 대중서를 쓰는 저자들이 가장 배워야 할 덕목일 터.  

3. 전작도 그랬지만, 이 책 역시 경제학의 게임이론서들과는 달리 “벼랑 끝 전술”에 많은 장을 할애하고 있다. 사실, 게임이론을 대중에게 파고들게 하는 데에는 이 주제 만큼 흥미로운 것도 없다. 대중서에서도 따분하게 전개형, 전략형 게임 따지는 것 보다는 정치학과 더 많은 접목을 지니는 이 대목을 앞세우는 것은 전략적으로 분명히 타당한 결정이다. (게임이론을 대중적으로 강의할 때, [뷰티플 마인드]보다는 쿠바 핵 위기를 다룬 [D-13]이나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가 훨씬 더 잘 먹히는 것 역시 이러한 까닭이다.)  

4. 적당히 쉽고, 또한 적당히 어렵다. 외국 책들 특히 MBA를 염두해두고 쓴 책들은 연습 문제를 반드시 담고 있다는 점에서 교재로서의 활용도 역시 손색이 없다. 이 책 역시 많지는 않지만, 배운 바를 시험해 볼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수록하고 있다. 웬만한 강의에 수업 교재로 써도 좋을 것이다.

이제 한국어 판에 대한 유감을 적어볼 차례다. 전작, Thinking Strategically는 “예일대학식 게임이론의 발상”이라는 황당한 부제를 달고 국내에 번역이 되었드랬다. 주변에 이 책을 산다면 쌍수를 들고 말릴 정도로 번역의 수준은 황당했다. 샘앤파커스라는 대형 출판사를 끼고 들어온 이번 책은 전작처럼 황당한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이 책 역시 한국어와의 인연을 그리 좋지는 못한 듯 하다.  

1. 우선, Art of Strategy를 왜 “전략의 탄생”으로 번역해야 했을까 여전히 의아하다. 김영세 교수의 대중 게임이론서 [게임의 기술]이라는 책이 있긴 하지만, “전략의 기술” 혹은 멋을 부렸다면 “전략의 예술”로 했더라면 책의 취지나 내용과 더 부합했으리라. “탄생”은 어쩐지 어색하다.  

2. 하지만, 제목 가지고 뭐라고 하는 건 치졸할 수도 있으니 그냥 넘어가자. 이번엔 번역의 문제다. 전반적으로 깔끔하게 된 것 같지만, 세부적인 조율과정이나 감수--책 앞에 붙는 타이틀로서의 감수가 아니라 실질적인 내용에 대한 감독--이 턱 없이 부족하다. 경제학에서 널리 쓰이는 바, “equilibrium”은 “균형”으로 번역된다. 하지만, 책은 한사코 이를 “평형”으로 번역했다. 역자의 철학이 그렇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면 왜 “평형”을 고집했는지 역주라도 달아주는 예의는 보였어야 했다.  

3. 다음으로 내용 상 치명적인 오역이 군데군데 존재한다. 전부 지적하지는 않겠다. 251쪽에 보면, “왼쪽 공격에 대한 골키퍼의 랜덤 전략”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것은 “골키퍼의 왼쪽 방어에 대한 (키커의) 랜덤 전략”이다. 어찌보면 완전 반대로 번역한 셈인데, 책의 나오는 내용만 충실하게 따라가며 교정을 봤더라도 생기지 않았을 법한 실수다. 아울러, 책의 가장 헛갈리는 부분의 하나인 혼합전략에 대해서 이러한 오역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좀 더 부연하면, 책에 잘 소개 되었듯이, 나의 혼합전략 균형은 상대가 어떤 순수전략을 쓰더라도 페이오프 (보수)가 동일하도록 만드는 방식으로 계산하면 된다. 따라서, 위의 구절에서 골키퍼가 오른쪽을 방어하든 왼쪽을 방어하든 방어율이 동일하도록 내가 오른쪽과 왼쪽을 적절하게 섞어 차야 한다는 취지다. 혹여, 원문이 잘되었되었더라면 누군가에게 자문을 구했으면 좋았을 법한 대목이다.

4. (개그맨 황현희 씨의 말 대로) 이 뿐 만이 아니다. “이집트의 정신세계로 안내했다”(이 표현 앞의 맥락은 정신세계가 아니라 첩보와 관련된 이야기다)든가, “영국은 … 고소득자와 비가 많은 나라다” (rain이 많다는 것인가, 고소득자의 비율이 높다는 이야기인가?)라는 표현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다시 협상을 제시할 차례’를 “카운터오퍼”로 여과 없이 쓴 것은 애교로 받아 주자 (물론, 영어 몰입교육으로 내달리는 나라지만, 카운터오퍼라는 표현을 여전히 어색하다).  

5. “공장”--여럿이 번역하고 한 사람이 책임지는 형태의 번역 작업--에서 번역한 흔적이 농후하다고 개인적으로 보는데, 공저자를 나타내는 et al. 한번은 누구누구 “등이 쓴”이라고 번역되었다가 뒤에는 누구를 “필두로 한”이라는 식으로 바뀐다. 이런 식으로 일관성이 없는 표현들도 종종 등장한다. 결국 전작처럼 최악은 아니지만, 이 책 역시 번역에 있어서는 그다지 높은 점수를 받지는 못할 듯 하다. 역자가 최근 경제,경영서를 많이 번역해내고 있는 번역 그룹의 소속인데, 개인적으로 저들의 번역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신뢰하지도 않는다. [넛지] 같은 상상력있는 책을 심드렁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은 분명 자랑할 만한 일은 못되지 않겠는가?  

P.S. 1)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저 분들이 주요한 경제 경영서의 번역을 많이 끌어 갈까? 이 역시 이 책의 내용인 게임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건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내는 숙제?  

P.S. 2) 출판사에서 아마도 학기 시작에 맞춰 책을 서둘러 냈을 지도 모르겠다. 개정판은 부디 여러가지 문제점이 고쳐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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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 - 0.1%의 가능성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차익종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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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경험주의다. [블랙스완]의 검은 백조란 그 경험주의가 지닌 가장 날카로운 칼이다. 모든 확증엔 언제나 예외가 있을 수 있는 법이다. 그 예외를 배제해서는 안된다는 니콜라스 나심 탈레브의 목소리는 새겨 들을 만 하다. 특히, 위험을 쪼개고 쪼개서--전문 용어로는 증권화라고 말한다--, (금융) 과학으로 포장한 들 원래 위험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건 바로 작금의 사태가 주는 교훈이다.  

다만, 스스로 수학자이자 사상가를 자처하는 탈레브는 너무 과하게 나갔다. 그는 스스로 딱지 붙인 플라톤주의적인 경제학자들을 비웃고 모든 경제 이론을 조롱한다. 하지만, 그의 조롱은 예측력이야말로 경제학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던 사람들 만큼이나 무모하고 거침없다. 다수의 경제학/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의 플라톤주의를 방법론적으로만 혹은 우화적으로만 활용한다. 실제 "이데아"의 세계가 있다고 믿는 하드코어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점에서 이론 자체의 회외를 넘어 '거부'를 선동하는 그의 칼춤은 내겐 위협이다. 그는 (나도 사랑하는) 흄을 계속 언급하지만, 적어도 흄은 회의주의 자체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태도를 견지했고, 이것이 흄에게서 찾을 수 있는 정수다.하지만 탈레브의 회의주의는 그가 혐오하는 플라톤주의를 정확히 뒤집어 놓은, 그래서 적과 지나치게 닮아버린 그런 형상이 되고 말았다.  

"부정의 논리"가 지닌 폭발력은 힐베르트 프로그램을 박살낸 괴델이 역사적으로 그리고 이론적으로 실증했던 바다. 하지만, 괴델은 그 폭발력을 알았기에 이 날카로운 보도를 매우 조심스럽고 엄밀하게 그리고 절제된 초식으로 구사했다. 그에 반해 탈레브의 휘두름은 얼마나 가볍고 경박한가? 이런 가벼움은 반대로 그의 이론적인 공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내가 알아먹을 수 있었던 행동경제학에 대한 탈레브의 서술이나 만델브로에 대한 그의 수학적인 설명 혹은 정규분포에 대한 악의적 왜곡은 불완전하거나 자의적이고 때론 지나치리만치 사후적이다. 그의 해석이 주관적이라고 확신하게 된 대목은 크리스 앤더슨의 "롱테일"을 이른바 블랙스완의 틀 내에서 너무 쉽게 승인하고 곡해한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롱테일"은 그가 바라보는 나타날 확률이 낮은 검은 백조가 아니라 그저 현금화되지 못한 기회들일 뿐인데 말이다.  

이른바 월가의 투자자들이 그의 책에 열광한다면 오히려 그 논조의 부정성이 지닐수 있을 일말의 타당성/지혜 때문이리라. 아마도, 그들의 립서비스는 이런 "막대구부리기" 하에서 의미가 있을 터인데 (월가에는 현자가 너무 많다!), 책의 볼륨이나 그 논리라는 면에서 막대를 너무 구부린 것이 아닐까 싶다. 한마디로, 절반만 유익하고 나머지 절반은 심드렁한,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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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식탁 - 진화론의 후예들이 펼치는 생생한 지성의 만찬
장대익 지음 / 김영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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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 김영하, 그에 대한 평가에 내가 짠 건 아마도 빌어먹을 [무협 학생운동사] 때문일 것이다. 뭐 그보다 더한 실수도 숱하게 저지른 내가 대작가가 잠시 삐끗한 것에 이리 박하게 구는 건 너무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소설이 나에게 준 충격은 그만큼 컸다. 좌우간, 이 경험 이후 나는 쉽게 풀어썼다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버릇이 생겼다. 처음에 장대익의 [다윈의 식탁]을 탐탁치 않게 여겼던 것 역시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다윈의 식탁]을 덮고 난 지금, 풀어쓰는 이야기가 지닌 힘을 제대로 실감하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이 내 경험에 쌓인 풀어쓴 책들에 대한 혐오를 해독할 듯 싶다.  

사실, 진화 생물학이나 심화 심리학은 그냥 이야기하면 벽에 부딪히기 쉽다. 진화란 것이 어차피 추세로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추세에 맞지 않는 예외는 얼마든지 발견된다. 이야기 자리에서 이런 예외로 물고 늘어지면 좀처럼 제대로 답변하기가 쉽지 않다. 복거일의 말마따나 발화의 장에서 "단순한 밈"은 "복잡한 밈"보다 언제나 강하다. 어쨌든, 진화 생물학에 대해서 몇 번 이야기하고는 이걸 좀 쉽게 정리해서 누가 풀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푸는 방식에도 여러가지가 있을 터다. 그리고, 대개 가방 끈이 긴 사람들은 '개론'풍으로 차근차근 설명하는 방식을 즐겨 사용한다. 지식 전달자로서는 당연한 선택이겠지만, 이런 방식의 문제는 그리 재미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학 다닐 때, "개론"자 붙은 과목치고 재미있는 것이 있던가? (있었다면 당신은 유능한 교수를 만난 것일게다!) 

 결국, 이 대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글재주일텐데, 일단 장대익의 덕목은 이 대목에서 빛난다. 다윈 이후 가장 맹렬하고 아름답게 폭발한 새로운 진화론을 세운 거인들 간의 논쟁이라니! 인간의 기억은 맥락과 함께 저장될 때 가장 생생하고 확실한 법인데, 이 점에서 이 책은 진화론이라는 보따리를 풀어놓는 가장 친절하고도 흥미로운 방식을 택한 셈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내용과 상관없이 그 '설정'에서 먹어주고 간다. 해밀턴의 죽음을 계기로 모인 대학자들이 제한된 시간에 논쟁을 벌인다. 화자는 이 논쟁을 기록한 서기이고, 매 논쟁마다 그의 짧은 코멘트가 붙는다. 내러티브가 결코 내용을 대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훌륭한 내러티브는 당의정과 같아서 어려운 내용도 쉽게 소화하도록 도와준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진화를 맛갈스럽게 잘 요리한 그 내용 뿐 아니라 책이라는 상품으로서 대단히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잘 정리된 책의 내용을 반복한다는 것은 구차한 것일 터다. 개인적으로 느낀 아쉬운 세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생물학 쪽의 쟁점들은--잘은 모르겠지만--비교적 잘 정리된 듯 하다. 하지만,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쪽의 내용들은 불균등하거나 듬성듬성한 인상을 받았다. 진화 심리학의 대가인 데이비드 버스는 왜 이 장례식에 오지 않았는가! 첫장에서 "강간"에 대한 내용을 다루어 페미니즘과 온갖 종류의 대립각을 세워온 진화 심리학의 내용을 뒤에 기대했지만, 첫장 이후에는 이와 다시 조우하지 못했다.  

둘째, 메이너드 스미스가 진화의 속도와 그 해석에 관한 대목에서만 등장한 점 역시 아쉽다. 책에서 쟁쟁한 대가들을 불러 모았던 고 해밀턴과 그가  진화 게임이라는 대목에서 맺었던 긴밀한 관계가 있기에 더욱 그렇다. 책에도 잠깐 언급이 되었지만, 스미스의 진화 게임이론은 생물학적인 응용을 넘어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으로 그 폭을 넓혀 나갔다. 하긴, 이미 최정규 교수의 [이타적 인간의 출현]이라는 좋은 책이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보면 되겠다. 

셋째, 마지막 종교에 대한 논쟁이 종합 토론처럼 들어가 있는데, 보다 폭넓은 주제에 속하는 문화 진화 역시 함께 어울렸으면 어땠을까? 예컨대, 인류학자인 보이드와 리처드슨에 의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문화 진화에 대한 논의 같은 것 말이다. 책에서 진화의 단위에 대한 논쟁이 등장하는데, 이른바 '다수준 진화'가 흥미롭게 적용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이 문화 진화이다. 문화와 유전자의 공진화, 문화 진화에서 집단과 개인의 관계 역시 진화론이 가장 흥미롭게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닐까?
  

제 블로그인  http://www.lazycats.net 에도 있습니다. 오해는 없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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