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의 월든 - 부족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태도에 대하여
박혜윤 지음 / 다산초당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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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태도에 대하여

라는 멋진 부제에 끌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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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치 하우스
앤 패칫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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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이브가 죽은 직후의 시간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오터슨 씨가 장례식 미사에서 가족과 함께 앉아 두 손에 얼굴을 묻고울었던 것 말고는 그의 슬픔은 내 것만큼 깊고 넓은 강물이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그에게 가봤어야 한다는 걸, 그를 위로했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내 안에 위로는 없었다. - 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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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 독거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혐오까지는 아니지만 이 사회에서 쓰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의미하는 부정적이고 쓸쓸하고 어둡고 불쌍한 느낌을 싫어한다. 방송 등의 매체에서 어디 사는 누가 고독사 하였다는 말을 전할 때마다 불편하다. 혼자살던 사람이 혼자 죽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죽음 후의 깔끔하지 못함을 두고 이러쿵 저러쿵 사회문제, 악인냥 치부하는 게 불편하다. 일찍 발견되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죽은 자는 사실 관심없다. 사는 동안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는 죽은 이만이 안다. 재밌게 살다 갑자기 준비없이 죽을 수 있다. 한달 후 발견 되었다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뒤처리를 하는 이들의 설명이 죽은 자에 대한 백 퍼센트 진실은 아닐 것이다.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을 때를 알고 가는 죽음, 죽을 때를 선택하는 죽음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죽음일 것이다. 바라건대 나 역시 그런 죽음을 원한다. 신이 있어 언제 죽을 것이라고 알려준다면 축복이겠지만, 아직까지 그런 죽음은 멀리 있다. 그렇다해서 요양원, 병원에서의 죽음이 더 가치 있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곳에서의 죽음이 아무리 깔끔한들 살던 집에서의 마지막에 비할 순 없다.

 

죽음은 죽음일 뿐. 죽음 이후 까지 계급을 나누고, 고급과 저급을 말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삶의 굴곡에 비하여 죽음만큼 인간에게 공평한 순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타인에 의한 살해만 아니라면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마지막, , 소멸은 한 줌의 재라는 결과물일 뿐이다. 언젠가 나도 홀로 죽을 것이다. 운이 없어 발견이 늦어 부패된 모양일지라도 흉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중임을 알아주길 바란다. 살이 썩어 구더기가 생기고 역한 냄새가 진동하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죽음임을, 뭐 대단히 비참한 삶의 종말처럼 떠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홀로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언제 어떻게 죽던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고 할 수 있는 그대들의 기도를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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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불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없다.

그러나 실제로 혼불을 보았다는 사람은 많다.

그것은 우리 몸 안에 있는 불덩어리로, 사람이 제 수명을 다하고 죽을 때, 미리 그 몸에서 빠져나간다고 한다.

어떤 사람의 몸에 혼불이 있으면 산 것이고, 없으면 죽은 것이다.

혼불은 목숨의 불, 정신의 불, 삶의 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은 또 사람을 사람 답게 하는 힘의 불이기도 하다.

즉 혼불은 존재의 핵이 되는 불꽃인 것이다.

이미 혼불이 나가버린 사람의, 껍데기만 남은 어둡고 차디찬 몸을 살아 있다고 믿는 어리석음이여!

나는 혼불이 살아 있는 시대를 간절히 꿈꾸면서

우리의 역사에서 가장 어둡고 아픈 일제 강점기

한 가문의 진정한 삶을 일궈내는 상처의 삼십 년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 눈물 나는 해원의 굿이 열리는 마당으로

나는 소설 혼불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1995, 미국 시카고대학 노스팍칼리지 초청강연

<소설 혼불을 통하여 본 한국인의 정서와 문학적 상상력, 그리고 작업과정>


혼불을 읽는다는 건 어떤 아주 아주 오랜 기억들과 마주하는 경험이다.

예전에는 사용했는데 지금은 들을 수 없는 단어, 고샅은 골목을 의미한다

고샅이라는 말에는 할머니의 기억이 묻어있어 정겹다

할머니도 여장부셨다. 청암부인처럼 19살에 과부가 되셨고 자식 셋을 거느리고 굴곡 많은 세월을 살아내셨다. 내 유년은 온통 할머니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졌다. 할머니 따라서 밭을 메고 모내기를 하고 뽕을 따고 감을 따고 밤을 딴 소소한 일상들.... 쉬지 않고 일하고 또 일하고 일만 하시던 할머니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다 겪으셨다

전쟁 중 남편과 아들을 잃었고 살아남은 큰 아들은 군대에서 앗아갔다

온전한 정신으로 버티고 살아온 것이 기적인 할머니의 그 삶 안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혼불'이라는 소설을 통해 하고 있는 셈이다. 

 

혼불의 언어는 전라도 사투리가 지배한다

전라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읽기가 더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몇 번을 읽어도 해석이 요원해서 애먹었다. 

경상도 사투리의 투박함보다 더 비틀린 느낌이 낯설어서 몇 번을 읽어야 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철저히 고증에 입각하여 그 지역 토박이의 언어로 말하듯이 썼다. 

한마디로 어려운 소설이다

올 한 해의 마무리와 시작은  혼불로 태워 활활 타올라  볼까. 

죽고 살고 엎어져서 논 매고 밭 매도
이녘의 목구녘에는 보리죽이 닥상이고
손톱 발톱 다 모지라지게 베를 짜도 내 생에
얻어입는 것은 요 사발만한 두루치 한쪼각이여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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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가는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 너무 반가워 속으로 환호했다. 어슐러 르귄이라니 과거에 좋아하다가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작가를 다시 만나는 것은 어린 시절의 친구를 우연히 마주친 듯 신이 난 일이다. 밤잠을 설치며 흠뻑 빠져 살던 시절, 편협하고 심심한 일상에서 양껏 상상의 날개를 달고 날아다녔다. 책을 사는 일보다 빌려보는 게 당연해지고 더 이상 책탑을 쌓아 읽지도 않지만 여전히 책을 향한 경외심 로망, 설렘은 있다. 다만 나이와 함께 노안이 와서 안경 없이는 독서가 불가능해지는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굴복했다. 아무 곳이건 어디서 건 장소 시간에 관계없이 책을 읽던 때를 향한 그리움과 간절함을 어떻게 설명할까. 소중한 것은 잃고 나서 그 가치를 발견한다. 책을 읽는 눈을 잃고 읽는 고통에 책장을 덮을 때마다 절망한다. 물론 느리게 조금씩 여전히 읽을 순 있다. 그것도 감사할 일임을 이젠 알고 있다. 이 세상에서 저절로 무한히 주어지는 건 없다. 오늘의 나가 내일의 나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렇게 세월 앞에 겸손해 졌다. 그리고 당신도 이 세상을 떠나 다른 곳으로 떠났다. 그녀가 창조한 세계 속으로 긴 여행 중이라고 믿는다. 멋진 일이므로 슬프지 않다. 그저 반가웠다. 안녕히, 어슐러 르귄. 

집에 오너라, 테나! 그만 돌아오렴!
골짜기 깊숙한 곳, 어스름 무렵이었다. 사과나무들은 내일이면 꽃필 듯했다. 어둑어둑 그늘진 가지에는 일찍 벌어진 꽃 한송이가 장밋빛 어린 흰빛을 띠고 희미한 별처럼 빛났다. 비탈진 과수원 길 저 아래쯤, 습기에 젖어 있는 빽빽한 새 풀 위를 어린 여자아이 하나가 달음질해 취해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아이는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바로 돌아서지 않고 크게 반원을 그리며 달려서 집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어머니는 오두막집 문간에 화로 불빛을 등지고 서서 조그만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사과나무들 아래 땅거미 진 풀밭을 바람에 날리는 엉겅퀴의 작은 깃털인 양 팔랑팔랑 가볍게 뛰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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