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가는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 너무 반가워 속으로 환호했다. 어슐러 르귄이라니 과거에 좋아하다가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작가를 다시 만나는 것은 어린 시절의 친구를 우연히 마주친 듯 신이 난 일이다. 밤잠을 설치며 흠뻑 빠져 살던 시절, 편협하고 심심한 일상에서 양껏 상상의 날개를 달고 날아다녔다. 책을 사는 일보다 빌려보는 게 당연해지고 더 이상 책탑을 쌓아 읽지도 않지만 여전히 책을 향한 경외심 로망, 설렘은 있다. 다만 나이와 함께 노안이 와서 안경 없이는 독서가 불가능해지는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굴복했다. 아무 곳이건 어디서 건 장소 시간에 관계없이 책을 읽던 때를 향한 그리움과 간절함을 어떻게 설명할까. 소중한 것은 잃고 나서 그 가치를 발견한다. 책을 읽는 눈을 잃고 읽는 고통에 책장을 덮을 때마다 절망한다. 물론 느리게 조금씩 여전히 읽을 순 있다. 그것도 감사할 일임을 이젠 알고 있다. 이 세상에서 저절로 무한히 주어지는 건 없다. 오늘의 나가 내일의 나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렇게 세월 앞에 겸손해 졌다. 그리고 당신도 이 세상을 떠나 다른 곳으로 떠났다. 그녀가 창조한 세계 속으로 긴 여행 중이라고 믿는다. 멋진 일이므로 슬프지 않다. 그저 반가웠다. 안녕히, 어슐러 르귄. 

집에 오너라, 테나! 그만 돌아오렴!
골짜기 깊숙한 곳, 어스름 무렵이었다. 사과나무들은 내일이면 꽃필 듯했다. 어둑어둑 그늘진 가지에는 일찍 벌어진 꽃 한송이가 장밋빛 어린 흰빛을 띠고 희미한 별처럼 빛났다. 비탈진 과수원 길 저 아래쯤, 습기에 젖어 있는 빽빽한 새 풀 위를 어린 여자아이 하나가 달음질해 취해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아이는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바로 돌아서지 않고 크게 반원을 그리며 달려서 집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어머니는 오두막집 문간에 화로 불빛을 등지고 서서 조그만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사과나무들 아래 땅거미 진 풀밭을 바람에 날리는 엉겅퀴의 작은 깃털인 양 팔랑팔랑 가볍게 뛰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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