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느리고 여유롭게 흐른다.

모든 사념을 내려놓은 몸과 맘이 완벽하게 쉬는 때이기도 하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지만 굳이 떠오르지 않는 말을 이어가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여백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놔둬도 불편하거나 어색하지 않는 건 커피를 가운데 두고 있어서다.

무언의 약속처럼, 테이블 혹은 아무 공간 어디라도 한 잔의 뜨거운 커피가 존재하는 순간, 주변은 고요해지고 일시정지 상태가 된다.

커피는 당신과 나의 무중력의 공간이자 쉼터다.

 

커피는 고대로부터 전해 온 마법이다.

심연에 깃든 검은 영혼의 손짓과 향을 거부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끌리는 이유다.

사랑한다, 동경한다, 라는 감정 그 이전의 태생부터 혼에 새겨진 인과 같다.

이 드넓은 우주에서 길을 잃었을 때, 홀로 고독이 사무칠 때, 기쁠 때, 혹은 슬플 때,

커피는 어김없이 검고 뜨거운 숨을 내쉬며 다가온다.

마치 통속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영원히 언제까지나 너와 더불어 살겠노라고

살며시 손을 잡고 안겨드는, 유일한 내 삶의 반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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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반복이 무너지기 시작할 즈음, 몸이 아프다는 걸 마음이 가장 먼저 알아챘다. 몸의 무거워지면 마음은 하던 일을 중단하라고 지시한다. 가만히 가만히 쉬면서 기다리라고, 함부로 행동하고 센 척하지 말고 몸의 고장을 찾기 전까지는 꼼짝도 못하게 한다. 그러면서 혼낸다. 무리했던 일들을 끄집어 내어 조목조목 따져들며 큰 목소리를 낸다.

 

몸과 마음은 수평적 관계인 동시에 수직적 관계다. 동등하지만 상대방이 하는 명령과 지시를 무시하면 곧바로 탈이 나기 때문이다. 마음의 위로와 간호가 약해진 몸에게는 즉효약이다. 마음을 받아들인 몸이 느슨하게 긴장을 풀고 쉬노라면, 아팠던 곳이 조금씩 느리게 사라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몸과 마음이 어울려 사는 방식이었다.

 

운동, 즉 요가를 시작하면서 내 몸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혐오하고 무시하는 쪽이었다. 몸을 생각하면 불편하다가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약해 빠져서 걸핏하면 아파하고 탈이 나고 주저앉아 일어나지도 못하고 이런저런 알러지에 괴로워하는 몸 따위는 차라리 없어지길 바랬다.  

 

그러나, 요가를 시작한 지금은 몸을 아끼고 사랑하지 못하면 마음이 병든다는 사실을 안다. 몸의 컨디션이 가볍고 유연하면 할수록 마음이 건강하고 기쁨과 환희로 가득찼다. 몸을 쓰는 건 마음을 다스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명상을 하노라면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순간들이 온다. 그 찰나의 시간들이 보석이 되어 멋진 집을 완성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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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아오리 사과다.

겨우내 저장된 묵은 사과가 시장에서 사라질 즈음

짠하고 나타나는 사과 중의 첫 사과

 

달콤새콤한 사과 조각이

아삭아삭 부서지면

메마른 입 안에 침이 가득 고이며

청랑한 사과향이 머리 끝으로 달린다.

 

내 생애 가장 빛났던 유년, 

사과나무에 사과꽃이 피어나는 시절

상처 하나없이 단단하고

푸르렀던

여름 날의 첫 기억

 

너와 나, 우리의 삶도

그 여름의 폭염을 견디고 익어가는

푸른사과 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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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날씨는 엄청 추웠다. 봄옷은 아무리 껴 입어도 입은듯 만듯 어설프다. 센 바람에 덜덜 떨면서도 산책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약속이기 때문이었다. 몸을 녹이려고 들른 편의점은 깨끗하고 번듯한 모양에 어울리지 않게도 강아지들의 출입을 거절했다. 솔직히 인간이 개보다 못하지 않느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늘 그렇듯이 참았다. 개를 싫어하는 이유는 다양하고 그 또한 존중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다리가 아플만큼 걸어도 꽃들이 지고 피는 광경은 근사했다. 반쯤 꽃잎을 떨군 나무들이 여린 초록잎을 내어놓는 모양은 신비롭다. 어여쁜 게 어찌 꽃 뿐일까. 꽃 뒤를 따라서 피어나는 잎이야말로 계절의 정중한 마중이 아닐까.  

 

블루문은 아주 잘 생긴 젊은 청년이 주인인 카페다. 가끔 들러도 기꺼이 웃어주고 들어오라 문을 열어주는 고마운 곳이다. 커피를 주문하고 피곤한 몸과 마음을 내려 놓으니 행복했다. 뜨거운 커피와 따뜻한 공간에 감사하고 마음이 너그러운 멋진 주인의 미소에 고마움을 표했다. 친절한 사람을 정말 필요로 할 때 만나기란 쉽지 않다. 오늘의 기억은 절대 잊을 수 없을 추억으로 소중에 곳에 보관할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늘 길에 달래와 달이, 두 마리의 개를 키우는 그녀를 만났다. 부산이 고향이라는 그녀는 이웃에 살며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는 관계다. 개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특별해서 만나면 반갑고 안부를 주고 받았다. 하나도 아닌 두 마리의 개라는 공통점과 늘 웃는 모습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사람, 디스크를 앓는 푸들 달래도 주인을 닮아 붙임성이 좋고 활달하다. 시추 달이는 정반대로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살짝 뚱보인 무뚝뚝이다. 좋은 주인과 좋은 개들이다. 

 

그녀는 바쁜 직장 생활 중에도 아이들의 산책을 빼먹지 않는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오직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병원에 데려가는 일로 바쁜데 한번도 힘들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무엇보다 사랑스럽다. 잘했어요, 라고 마구마구 칭찬하고 싶다. 그녀가 지치거나 아파하는 일 없이 건강하길 바랜다. 그래서 달래와 달이랑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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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검은 먹구름이 끼어 잔뜩 흐렸다.

댕댕이 토리와의 첫 산책인데, 유감스럽게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낙담했다.

비가 올듯말듯 바람도 세차게 불어제겼다. 예상했던 그림은 세 마리, 아니 다섯 마리의 댕댕이가 정답게 산책하는 모습인데 현실은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책을 취소할 수는 없어 일단 출발했다. 걱정대로 역시나 토리는 제멋대로였다. 산책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의 특성이 그래도 드러났다. 앞으로 직진하기 보다는 뒤로 돌아 걸으려고 하고, 낯선 사람을 만나면 짖고 뒤걸음치고 제자리 걸음을 했다. 줄은 계속 엉키고 밀당하느라 팔은 아팠다. 계속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중간에 포기하고 집으로 가야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30여 분을 힘들게 나아갔다. 사거리를 지나 작은 어린이 공원에 도착해서 쉴 때까지 토리는 갈팡지팡, 엉망진창이었다. 커피와 빵을 먹고 댕댕이들은 물과 간식을 간단히 먹였다. 바람이 계속 불었다. 스산한 봄날 댕댕이 다섯 마리의 컨디션도 좋아보이진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 시작된 산책에서 토리는 처음과는 완전 다른 아이가 되어 있었다.

토리는 씩씩하게 앞서 걸었다. 한 눈도 팔지 않고, 낯선 사람이나 개를 보아도 크게 짖거나 심하게 경계하지 않았다. 걷는 속도도 당연히 빨라졌고, 엉덩이 아래로 바짝 내려왔던 꼬리도 등 너머로 치켜 올라갔다. 토리는 그렇게 단숨에 산책의 맛과 의미를 깨우친 것이다. 감동이었다.

 

우리는 토리를 위해 산책 시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비가 올듯해서 짧게 끝내려 했는데, 동네에서 더 멀리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낯선 동네, 아기자기한 골목을 찾아서 인간 둘과 다섯 마리의 댕댕이는 멋진 산책을 즐겼다. 토리는 누구보다 앞서서 걸었고, 에너지가 넘쳐서 신나했다. 다른 아이들이 바람과 흐린 날씨에 영향을 받는 것과는 반대였다. 

 

하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 않았던 것일 뿐.

토리의 얼굴이 불안과 긴장에서 점점 밝고 환하게 바뀌어 가는 걸 지켜보는 마음은 뿌듯하고 감동으로 촉촉해 졌다. 이렇게 멋진 포메라이언 아이인데, 집안에서 하루종일 주인을 기다리며 낙담해 있었을 것을 상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원치않는 비만견 진단도 받고, 사람과 개를 보면 경계하고 짖는 아이로 단정했다니 인간으로서 미안했다. 토리는 스스로의 약점들을 단시간에 모두 극복한 영리한 개였다. 익숙하지 않았을 뿐, 타인도 개도 좋아했던 것이다. 토리야, 내일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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