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느리고 여유롭게 흐른다.
모든 사념을 내려놓은 몸과 맘이 완벽하게 쉬는 때이기도 하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지만 굳이 떠오르지 않는 말을 이어가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여백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놔둬도 불편하거나 어색하지 않는 건 커피를 가운데 두고 있어서다.
무언의 약속처럼, 테이블 혹은 아무 공간 어디라도 한 잔의 뜨거운 커피가 존재하는 순간, 주변은 고요해지고 일시정지 상태가 된다.
커피는 당신과 나의 무중력의 공간이자 쉼터다.
커피는 고대로부터 전해 온 마법이다.
심연에 깃든 검은 영혼의 손짓과 향을 거부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끌리는 이유다.
사랑한다, 동경한다, 라는 감정 그 이전의 태생부터 혼에 새겨진 인과 같다.
이 드넓은 우주에서 길을 잃었을 때, 홀로 고독이 사무칠 때, 기쁠 때, 혹은 슬플 때,
커피는 어김없이 검고 뜨거운 숨을 내쉬며 다가온다.
마치 통속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영원히 언제까지나 너와 더불어 살겠노라고
살며시 손을 잡고 안겨드는, 유일한 내 삶의 반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