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빈치 코드 - 전2권 세트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커피가 건강에 해롭다는 할머니 앞에서는 가능한 커피를 멀리하지만 오늘 먹다 내일 죽을지언정 땡기면 마셔야하는 게 커피다. 불량스럽다는 쮸쮸바가 없는 여름날 오후를 무슨 낙으로 견디며, 나른한 권태와 무료를 달래주는 사탕 한 알과 초콜릿 한 조각이 없는 내 가방은 어딘가 허전하다. 초등학교 하교길의 아이들의 손에는 정체를 알지못할 오색의 식품들이 저마다 하나씩 들려있는데 어찌나 맛나게 먹어대는지 바라만봐도 웃음이 난다. 그렇게 삶을 삶답게 하는 먹거리 중에는 불량이라는 꼬리표가 달려있곤 하다.

장르를 가리지않고 읽지만 가장 빠르게 쉽게 읽히는 책은 뭐니뭐니 해도 추리소설이다. 한 권의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책을 집어드는 중독성도 그렇거니와 긴 밤과 낮을 가장 근사하게 보낼 방법이 뭐냐고 하면 단연 소설, 그 중에서도 추리소설 읽기다. 그래서 올 여름의 시작은 '다빈치 코드'라는 댄 브라운의 소설이 테잎을 끊었다. 흥미진진 재밌다. 근사한 피서를 다녀온 기분이다. 마지막 장을 넘기자마자 떠오른 생각은 다음은 뭘 읽지?

책장을 정리하면서 늘 정리의 대상목록에 오르는 것은 흥미위주의 추리나 로맨스다. 두 번이나 세 번은 읽히지 않는다는 것도 이유가 되고 책이 나온 그 시점이 지나면 흥미가 떨어지는 것도 한 이유다. 그래서 제 값을 다 주고 사기가 망설여지는 게 또 추리물이고 읽고싶어도 포기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요즈음 생각해 보니 책에 대한 나의 편견도 상당하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대부분을 남에게 준 것도 아깝다는 생각도 한다. 왜 그랬을까? 이것도 허영심? 혹은 어른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억압과 금기?

불량식품을 향한 본능적인 아이들의 끌림은 싼 값에도 있지만 향과 맛에 있다. 다수의 아이들이 쉽게 접하는 판타지소설에 대한 맹목적 숭배도 그런 것일까? 읽지말라고 소리치는 부모들의 목소리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판타지소설에 대한 지나친 탐닉이 제대로된 독서환경을 무너뜨린다는 우려는 어른들의 독선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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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부턴가 초등학교 1학년인 원이의 별명은 '떼쟁이 대마왕'이 되었다. 싫어, 싫어는 기본이고 뭔가를 해라하면 조건을 달기 시작했고, 엄마와 이모의 속을 바글바글 끓이기로 작정을 하였는지 매사에 부정적인 어휘를 구사하는 것이다. 하다못해 밥을 먹이기 위해서도 뭐해줄까? 라는 애원과 부탁조의 말이 앞서나가서 버릇을 고치기는 커녕 한몫을 한다. 에디오피아의 난민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깡말라서는 오가는 유행병이란 병은 다 걸려와서 가족을 고생시키는 이 말썽꾸러기를 어찌해야할 지 모르다가 동생은 급기야 최후의 수단으로 매를 들고 호령하고 만다.

너, 이리와. 맞을래, 먹을래.

이 경우, 오빠인 현이는 쭈뼛쭈뼛 먹다가 토할지라도 먹는 시늉을 하는데, 역시나 원이는 다르다. 매를 드는 시점부터 왕!하고 울기 시작해서 도망을 치는데 결국 애엄마는 매는 사용도 못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삐져서 울다가 잠이든 아이를 멍하니 바라볼 뿐. 도대체 누굴 닮아서 저렇게 잘 삐지고, 눈물도 많고, 겁도 많냐고 뿌리찾기를 하는 가족들이다.

그런데 의외인 것은 집에서는 그렇게 어리광을 피우고 말을 안 들어 구제불능으로 낙인이 찍혔는데 밖에만 나가면 조숙한 숙녀마냥 저보다 어린애들을 챙기고 보살펴준다는 것이다. 숫기도 없어 앞에 나서서 떠드는 일도 없고 조용하고 얌전하다는 평을 듣는다는데, 그렇다면 문제는 저에게는 한없이 약한 엄마나 이모를 의식적으로 골탕을 먹인다는 것. 제일로 만만한 사람으로서 이 경우 정말 난감하다. 애버릇을 고칠 것인가. 알아서 철들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원이야. 언제쯤이면 눈높이를 마주하고 앉아서 세상사는 이야기를 시시콜콜 나눌 수 있겠니? 얼마든지 기다려줄 터이니 아프지말고 무럭무럭 자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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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문고의 이 책의 가격이 1000원이다. 싼맛에 골라들고 잽싸게 읽어치우고 또 다른 책을 기웃거리던 시절엔 아무리 읽어도 허기진 배가 채워지질 않았다. 지금이야 책을 즐기며 행복해 하고 어떤 책은 사 놓은 그대로 먼지가 가라앉아 끄덕끄덕 졸아도 그런가보다 하지만, 삶이 전투였던 때엔 문장 하나, 단어 하나, 쉼표 하나에도 의미 부여를 하고 진지하고 또 진지해서 걸어다니는 발자국의 무게가 버거웠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생각없이 여유를 부리며 살 날이 오리라곤 꿈에도 몰랐는데. 밤 새워 편지를 쓰고, 보내고, 답장을 받아들면 다시 이어지는 답장을 쓰던 아이를 떠올리면 눈물이 날 것도 같고, 배시시 웃음도 터진다. 세상의 변화에 다리 하나를 끼워넣고 발을 맞출 듯 씩씩했던 그 아이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기자가 되어 세계를 누비고 다니리라던 호탕한  그 아이가 하나 혹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학원비를 걱정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상상이 안 된다. 하지만 사람 일이 어디 뜻대로 되어지나. 풍경좋은 전원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살리라던 우리가 생사도 모르는 타인이 되어 불혹을 향해 가고있음에.

자신의 조국과 자신의 집을 점령한 독일을 위해 웃지도 말하지도 않겠다는 의지로 꼿꼿한 자존심을 세우는 프랑스 처녀는 <바다의 침묵> 이고, 그 침묵하는 바다를 향해 조용히 부드럽게 자신의 이상과 꿈을 얘기하는 청년장교 베르너가 있다. 숭고한 정신을 가진 독일군 장교 베르너는 점령지 프랑스를 향한 한없는 애정으로 마침내 거대한 '침묵'을 깨우는듯 했지만 나찌의 의도를 오판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의 음악가적 섬세함과 순수성은 동경하던 프랑스가 처한 현실을 깨닫자 스스로 지옥행을 선택한다. 청년의 울분과 비통함 앞에서 바다는 침묵을 깨고 말한다. 안녕히 가세요.  

슬프고도 짧은 한 편의 로맨스처럼 잊히지 않고 기억에서 살아나는 소설이다. 이야기는 비극으로 치닫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는 정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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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 2004-06-30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었는데 담담하게 읽다가 잔잔하게 여운이 남는 게 좋았어요. 밤마다 조용조용 혼자만의 독백과도 같은 대화를 하는 청년 장교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처음에는 처녀와 혹시 사랑하게 되려나 하는 기대를 했는데 그런 로맨스는 없더라고요. 모든 소설이 로맨스가 있을 필요는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잔잔한 아름다움, 고요한 침묵이 잘 살아나는 소설이에요. 님의 글도, 그 소설도 모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네요.
 

억울하고 분한 일을 당했지만 차마 가서 따져묻지 못하고 혼자서만 발을 동동 구르다 엉엉 울어버린 기억들 몇 가지는 지금 생각해도 모욕감에 치가 떨릴 때가 있다. 사노라면 그런 일은 허다하다. 속절없이 작고 약해서 불이익을 감수할 배짱이 없어서 무력하게 참아내며 어서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리는...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 없다는 단정, 할 수 없다.

지구본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중국 어딘가에 붙은 우리나라를 찾아 헤매다 드는 생각은 어쩌면 이리도 작은가. 이런 게 사면초가구나. 중국, 러시아, 일본이라는 육식동물에 둘러싸여 바르르 떠는 초식동물이다. 거기다 허리는 뚝 분질러져 반토막이고, 태평양 건너의 포악한 공룡 티라노사우로스는 호시탐탐 지배욕을 과시한다. 내 수중의 떡 열 개도 부족해 남이 가진 떡 하나를 탐하는 인간과 다를 바 없는 구도다. 사람은 무시하거나 등을 돌려 돌아서면 그만이지만 땅은, 땅에 갇힌 우리는 그 중 젤 나은 한 나라와 손잡고 동맹을 맺어 나머지 나라를 견제해야 한다. 약자는 불합리나 부조리를 또박또박 읊어 권리를 찾기가 어렵다. 그러면서 강자의 요구를 거절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우방, 동맹, 형제라는 허울좋은 이름으로 부르면서 부리기 좋은 노예나 다름없이 무시하고 깔보는 그들은 자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좋은 나라다. 

요즘은 눈을 감으면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죽음의 공포에 직면한 약하디 약한 모습의 그는 영화처럼 짠하고 살아돌아오지 못하고 먼 이국의 땅에서 살해됐다. 왜, 어째서라는 의문이 계속 머리에서 맴도는 가운데 연일 방송에서는 믿기지 않는 소식들을 터트린다. 결국, 죽었구나라는 체념이 믿기지 않는 어설픈 의혹에 직면하자 기가 막히고 숨이 막히더니 말문이 닫힌다. 

너무 무섭고도 슬픈 일이다. 부모가 자식을 유기하고 방치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범죄만큼이나 잔인하고 무지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생생히 떠오르는 얼굴에서 나를 비롯한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으리라. 그의 죽음 앞에서 어떤 이도 결백하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까. 저마다 책임 한 토막을 손에 들고 어디까지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지를 숙고하는 것? 무고한 우리 국민 한 사람을 살려내지 못한 무능한 정부는, 부시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지만 이국의 자유를 수호하는 명분보다 상처입은 자국의 국민을 위로하는 게 우선임을 토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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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 2004-06-26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시신이 도착했더라고요. 멀리 떠나 보낸 자식이 그렇게 돌아왔으니 부모님 심정은 말로 할 수 없겠지요. 그를 모르는 사람들 마음도 이렇게 답답하고 아픈데요.
방송과 언론은 서로 특종을 잡으려고 경쟁에 들어간 듯하고, 정부는 나몰라라 식이고, 몇몇 정치인들은 기회를 잡은 듯한 분위기 조성하고 있고, 의혹을 빨리 해결하고, 민심을 좀 알아주었으면 좋겠어요.

겨울 2004-06-28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 책들이 이사를 왔다. 일터에 나가있는 동안에 말끔히 정리를 마친 낯설지만 익숙한 냄새의 책장을 마주하니 아주 부자가 된 기분이다. 애지중지 아끼고 보살펴온 저 책의 주인을 생각하면 마음이 울적하지만 새 식구를 향한 나의 인사는 정겹다. 안녕, 잘 지내자.

더러는 내가 가진 책들도 있고 생소한 제목의 책도 보이고, 걸레를 들고 훔치고 문지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구경에 몰두하다가 저녁 먹을 시간을 훌쩍 넘기고서야 부랴부랴 미뤄둔 설걷이며 걸레를 빨아널었다. 간밤에 내린 소나기로 어질러진 마당도 치워야 하는데 왠 여유인가. 감잎이며 감꼭지가 우수수 흩뿌려진 위에 붉게 익은 보리똥 열매도 제 몫을 한다고 너저분하다. 올 해는 진딧물약을 치질 않아서 열매의 크기가 전 년의 반도 못미친다. 덜생긴 녀석들을 보니 일일이 따줄 맘도 안 들고 해서 방치했더니 아침 저녁으로 시멘트 바닥이 수난을 당한다. 뻘건 즙이 으깨진 모양 그대로 말라 비틀어진 것을 빗자루로 쓸어담는 비애라니 대책이 필요하다.

오늘 책과 장을 들여와 정리까지 손수 하신 분이 이사를 간다. 사업의 실패로 인한 이사이기에 마음은 그지없이 무거운데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가져가신다지만 손수 짜맞춘 책장을 남의 집에 들이고 가야하는 그 분의 마음이 애닯다. 처음엔 아무 창고든 박스에 넣어 보관할 계획이었는데 우리집에 공간이 있으니 들이자고 제안했고 결국 내 방의 책들 맞은편에 둥지를 틀게 된 것이다. 여분의 공간에 마침 중고로 사서 바리바리 챙겨온 만화책 '백귀야행'을 눈에 띄게 진열하니 그 자리가 명당이다.  책에도 인연이 있다면 이런 것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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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 2004-06-24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이사온 날, 부자가 된 것 같은 느낌, 알 것 같아요. 님이 책에게 하는 인사, 정겹게 들리네요. 어떨 때는 사람보다 책이 더 좋은 친구가 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책에도 인연이 있다는 말, 맞아요. 책도 주인이 따로 있다는 생각도 들고, 책꽂이에 꽂을 때도 자기 자리가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