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야수 : 감독판 (2disc) - [할인행사]
김성수 감독, 유지태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전혀 손톱만큼의 관심도 없다가 갑자기 꼭 봐야지, 로 바뀐 건 감독의 이름 때문이었다. 요즘, 영화랑은 아주 등을 돌리고 살았더니, 저 영화의 감독을 DVD를 들여다보며 발견하는 민망한 사태에 이르렀다. 감독의 이름만으로도 호기심이 돋아 명작까지는 아니더라도 꽤나 근사한 영화일 거라는 믿음의 근거는? 없다. 단, 사람을 만나는 방식이나 영화를 대하는 방식이나 거기서 거기라는 정도?
근래의 맹목적으로 웃겨주는 그래서 웃다가 바람 빠지는 현상에 식상해 있던 터라 적당히 어둡고 무거운 내용과 눈을 위한 영화, 그러면서 어떤 부분에선가 공감대가 형성되는 처절함을 뿜어내는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랄까. 아마도 <친절한 금자씨>를 본 후유증이 컸던 탓이다. 그 살벌하지만 호쾌한 영화를 만족스럽게 보고나니 도무지 달달하고 잔잔하고 느린 영화에 적응이 안 됐다. 그래서 선택한 <야수>는 나쁘지 않았다.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던 권상우의 연기도 그로선 최선을 다했음이 가슴에, 머리에 와 닿았다. 힘만 센 무식한 형사 장도영은 <공공의 적> 설경구나 <미스터 소크라테스>의 김래원이 보여주는 바닥과는 확연히 다르다. 다혈질에 말보다 주먹과 발길질이 먼저 나가긴 하지만 그에게선 언뜻언뜻 유약함이 엿보인다. 아픈 어머니, 이복동생의 비참한 말로, 천사같이 여린 애인이라는 주변 인물의 구성도 그가 비록 야수의 본성을 가졌지만 길들여질 소지가 다분함을 보여주듯. 늘 매끈한 얼굴이 두드러졌던 드라마에서의 권상우와 영화 <야수>에서의 야생들개는 다르지만 어딘가 닮았다. 어쩌면, 깊고도 슬픈 눈이 닮았다.
이 영화가 관객의 외면을 받은 현실은 가벼움이 대세여서 일까. 아님, 익숙한 옛 홍콩 영화의 잔재가 짙어서일까. 쏘고 또 쏘고, 죽이고 또 죽이는 피가 튀는 장면들에서 너무도 낯익어 오히려 식상한 영화의 공식을 발견했을 때 적당한 향수에 젖을 수는 있었지만 마냥 천진하게 박수를 칠 수가 없었다.
제목처럼 권상우는 확실히 야수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는? 떼를 지어 공격하는 야수와 홀로 싸우는 야수, 처음에는 반짝이는 엘리트 검사였으나 결국에 가서는 야수의 본성을 드러내는 유지태도 역시 야수, 그 밖에 인간의 탈을 쓴 무수한 야수들을 보노라니 주변이 살짝 궁금해진다. 주인공들이 다 죽거나 혹은 파멸로 가는 그래서 끝장을 보는 영화를 간만에 본 것 같다. 아주 옛날, 비 내리는 극장에서 본 홍콩영화 <첩혈쌍웅>이 새록새록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