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지음 / 이레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처마 밑에 제비가 깃들기를 기다리는 강화도에 산다는 총각 이야기를 우연찮게 텔레비전을 통해 보면서 시인답다는 생각을 했었다. 집터를 가리는지 사람을 가리는지 불행히도 제비는 홀로 사는 남자의 집에는 찾아들지 않더라는 이야기다. 제비를 언제 보았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에 없다. 오랜 옛날, 슬레이트 지붕 처마 밑에 살던 제비와 하얀 똥 검은 똥을 싸던 기억은 삼십 년도 더 묵은 거다. 정말이지 그 많던 제비들은 다 어디에 숨어 집을 짓고 새끼를 낳는 걸까. 강화도의 빈 집에 세 들어 산다는 시인은 어쨌건 남의 처마에 깃든 제비 구경은 실컷 했으리라.


그는 가난을 드러내놓고 말한다. 가난하다. 가난하다. 얼마나 가난하냐면,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시고 살 처지가 안돼 뚝, 떨어진 어느 시골에 보증금 100만원에 월 2만 원짜리 방을 얻어 주고는 시시때때로 못난 자식이라고 자책한다. 가산이 기울고 형제는 뿔뿔이 흩어지고 그 와중에 노모의 처지가 가장 쓰라린 것이다. 굳이 골라내어 가난을 쓴 것은 아닐진대 써보니 온통 기억들이 가난뿐이라서, 그것을 들여다보는 마음도 덩달아 쓰리다.


가난에 길들여져 익숙한 사람끼리 공감하는 거와는 별개로 웬 지지리 궁상이냐고 눈도 한번 흘겨보지만, 가슴에 꼭꼭 묻어두고 선뜻 말하기 꺼려지는 말들을 보태지도 빼지도 않은 그대로 빨랫줄에 척척 널어놓는 시인이 착하다. 누굴 원망하지도 세상 앞에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이렇게 살았다고 수줍게 말하는 시인이 참 착하다. 앞으로의 삶도 크게 다를 거 없다고, 그게 뭐 어떠냐는, 없는 얘기를 지어내지도 않고 공치사도 없는 진솔한 글들을 두 번 혹은 세 번을 읽어도 마찬가지다. 고요하고 맑아서 선뜻 소리 내어 문을 두드리기가 겁이 나는 산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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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6-09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표 다섯.. 우울과몽상님의 별표 다섯개라는 것에 손을 내밀기로 했습니다..;;

잉크냄새 2005-06-09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부끄럼이 없는 것은 결코 죄악이 아니죠. 가난이 부끄러운 이들에게 가난은 죄악으로 비치겠지만 시인처럼 삶의 한 부분일때는 그저 옆구리에 붙은 살과도 같지 않을까 싶네요. 결코 싶지는 않겠지만요. 근데 이책 시집이 아니라 산문집인가요.

겨울 2005-06-09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간에 시도 나오지만 얇은 산문집이에요. 근데 다듬어진 글들이 시라고 해도 무방할 듯 싶어요. 그리고 남들 눈에 가난한 것과는 달리 스스로 가난하다는 말을 쉽게 말하기는 어렵지 않나요. 저는 그랬거든요. 사실 그건 자존심도 뭣도 아닌데 말이죠. ^^

비숍님, 제 별표는 다분히 주관적인 거랍니다. 하나도 버릴 것 없는 글들을 아까워하며 읽었어요. 산문집치고는 좀 얇거든요. ^^

2005-07-10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 2005-07-11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역시 님의 글의 읽고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