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인 현이가 이제는 슬금슬금 책에 대한 욕심을 드러낸다. 당장은 아니라도 일 년이나 이 년 후 정도에는 읽을 법한 책들을 골라서 가져가라하니 입이 함지박이다. 어떤 것은 너무 낡아서 누렇게 색이 바랬고 곰팡이 냄새도 풍기지만 적어도 한 번은 읽어주라 당부를 한다.

흥미롭게 읽히는 톰 클랜시, 클라이브 커슬러, 딘 R 쿤츠, 존 그리샴을 일차로 골라냈다. 보통은 한 번 이상을 읽었던 책이고 남자아이가 좋아할 법하다. 그 다음이 간디, 헬렌 켈러 , 링컨, 처어칠, 러셀 등 언젠가 한번은 호기심에 들춰볼 전기류. 마지막으로 재미있게 풀어 쓴 세계사, 한국사, 일본, 중국에 관한 잡다한 책들. 그리고 세계명작 중에서는 스릴과 모험 위주로. 이빨 빠진 배가본드도 몇 권 있고, 역시 이빨 빠진 고스트 바둑왕도 있다. 만화라면 무조건 좋아한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도 아낌없이 줄까. 아시모프의 로봇시리즈도 곁들이고... 베르베르의 '개미'와 '타나토 노트'..     

겹겹으로 쌓아놓고 대책없이 바라보던 책장의 빈자리가 그다지 쓸쓸하지 않은 것은 썩 좋은 주인을 찾아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 그렇게 빠진 빈 자리를 채우는 것은 즐거운 내 몫이다. 책 구경도 희귀했던 시절에 장에 가셨던 아빠가 사오신 한아름의 헌책을 끌어안고 좋아라했던 기억이 있다. 눈물나게 행복했다. 책을 사는 사치를 처음 누린 것이 아마도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였지 싶다. 아니다. 시골에는 오일장이 섰는데, 맨 바닥에 낡디 낡은 잡다한 책들을 늘어놓고 파는 아저씨가 한 분 계셨다. 거기서 '벤허'라는 헌 책을 500원 주고 처음 샀었다. 즐거운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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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7-08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맨 처음 헌책방에 아버지따라 갔다가 산 책이 펄벅의 대지였답니다. 삼중당문고로요...

잉크냄새 2004-07-08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일장 시골장터에서 좌판 벌려놓고 팔던 책들이 떠오르네요. 그때는 돈이 없어 쉽게 집어들지 못했는데... 물만두님의 삼중당 문고 책들도 떠오르고요. 좋은 추억이네요.^^

겨울 2004-07-09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서운 성격의 할아버지 댁 사랑방에는 삼성출판사 세계문학전집이 뽀대나게 모셔져있었는데, 초등학교 방학만 시작하면 한 권 씩 빌려다가 읽고 돌려드렸다. 무지 험악한 얼굴로 잘 보고 갖다 놔라 하시던 할아버지가 없을 때를 틈 타서 꺼내오는 스릴이 마냥 즐거웠던 건 아니다. 어째서 할아버지는 본인은 읽지도 않는 그 책들을 그렇게 소중히 아끼셨을까. 물론 덕분에 나는 어지간한 소설은 초등학교 시절에 설렵했다. 적과 흑,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달과 6펜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쿠오바디스 기타 등등. 그 중 쿠오바디스는 엄청나게 좋아했다. 센켄비치라는 작가를 지금까지 외우고 있으니 말이다. 박해받는 기독교인과 네로황제 그리고 몰락한 나라의 공주와 로마 귀족과의 로맨스는 손에 땀을 쥐게했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