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놓은 지 한참이 지나서야 읽게 되는 책에는 이유가 있다. 이 책은 어렵지는 않지만 타의 혹은 자의에 의해 망명, 유랑하다 죽은 자와 죽음에 대한 사색들이 상당히 암울하다. 그래서 저조했던 당시의 상황과 기분으로는 제대로 몰입하여 읽을 수가 없었던 것. 그러다보니 연이어 다른 읽을거리들에 점점 책장 안쪽으로 밀려들어갔다. 읽다 만 책들이 시간이 흐르면 마치 다 읽은 듯 뻔뻔히 바라보기 마련인데 소설이 아닌 다른 것을 찾는 내게 딱 걸려들어, 이 12월에 온전히 만났다.
그의 여행이 언제는 고독하지 않았냐마는 이번 글에서는 유난히 쓸쓸함이 짙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을 텅 빈 마음이 느껴진다. 어쩌면 나이 듦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형제애나 가족애, 어떤 사상이나 이념으로도 건드릴 수 없는 수 없는 영혼의 서글픔 같은. 그의 디아스포라적인 감정과 사색은 태생의 우울이 아닐까. 그것이 역동적인 힘이 되어 살아 왔지만 찰나의 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음을 그는 고백한다. 그가 말하는 죽음과 삶과의 거리는 너무 가깝다.
이렇게 나를 이 세상에 잡아매두는 끈들은 그 어떤 것도 인공적이고 불투명한 것이다. 내가 ‘죽음’을 향해 몸을 내밀었을 때, 그 끈들이 나를 꽉 잡아줄 것인가. 그럴 것 같지 않다. 내 쪽에서 손에 쥐고 있는 끈을 살짝 놓으면 그걸로 그만일 것이다.
국적이나 고향, 가족의 뿌리 안인들 그와 같은 방황이 없을까? 어디서 어떤 삶을 산들 천성이 고독과 죽음을 끌어당기는 사람이 있다. 똑같은 사물을 보고 상황에 처해도 누군 절망을 하고 누군 낙관을 하듯이. 그리고 나는, 세상은 낙관하는 이보다 절망하는 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위안을 얻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