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18세기에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먼저 일어났는가? 1960년대 한국과 필리핀은 1인당 소득이 100달러 내외로 비슷했는데 왜 지금은 큰 차이가 날까? 중세까지 유럽에 비해 경제적·문화적으로 월등히 우월했던 중국이 왜 근세에 들어와 지위가 역전되었나?
시기나 지역이 다르지만 질문의 성격은 같은 것이다. 경제발전이란 무엇이며 발전의 격차는 왜 생기는가 하는 의문이다. 이런 질문에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가에 따라 우리나라가 앞으로 해야 할 과제나 처방도 달라질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사회적 기술이란 개념을 소개한다. 생산성은 두 가지 기술로 좌우되는데, 하나는 자연을 변화시키는 물리적 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제도나 조직 운영과 같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사회적 기술이다.
“사회적 기술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교역제도다. 개방과 교역은 인류가 고안한 거의 최초의 사회적 기술이다. 수렵 채취시대에 가족에서 씨족과 부족 그리고 부족연합으로 확대되면서 최초로 씨족 간, 부족 간 교환이 시도된다. 오늘날도 해외무역은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일종의 기술로 간주된다. 국내 생산이 불가능하거나 가능해도 비효율적인 생산물을 교역을 통해 얻게 되면 이는 기술개발과 같은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사유재산제도, 법치, 투명성, 반부패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사회적 기술이다. 이런 사회적 기술이 경제활동을 촉진시키고 효율성을 높이며 생산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적 기술이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바를 실증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을 했다. 87개국을 대상으로 경제성장과 사회적 기술 간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 사회적 기술이 성장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선진국과 후진국에서 동시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특히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선진국으로 진행할수록 사회적 기술은 물리적 기술보다 더 중요해지고 성장에 더 탄력적이라고 한다. 이는 후진국의 성장속도가 빨라져 선진국을 따라잡는다는 수렴가설이 일반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부패 법치 투명성 같은 사회적 기술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선 그룹 안에서만 후진국이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반부패 법치 투명성을 강조하는 데는 경제학자로서 그의 흔치 않은 경력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일치감치 경실련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한 데 이어 공정거래위원장으로 경제 현장을 나름대로 경험했다.
저자가 말하는 사회적 기술은 어떻게 보면 기존의 일부 경제발전 이론에서 강조하는 제도적 측면과 비슷하면서도 그보다 더 폭넓은 개념인 듯하다. 이 책은 사회적 기술 이론을 한국 현대사에도 적용하려고 시도한다. 1948년 제헌헌법을 만든 이후 9번에 걸친 헌법 개정을 비롯한 사회적 기술의 발전이 오늘날의 경제발전을 가능케 했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저자의 결론은 앞으로 한국사회가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아울러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동 후발국가의 경제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임은 물론이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