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C, 인종 갈등·경제적 변동·제국 쇠퇴가 '극단적 폭력' 불렀다
"1900년 이후 100년은 의심의 여지 없이 역사상 가장 잔인한 세기였고 절대적인 관점뿐 아니라 상대적 관점에서도 그 어떤 시대보다 폭력적이었다."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경제사를 가르치고 있는 저자 니얼 퍼거슨 교수는 20세기를 '증오의 세기'라고 부른다. 20세기는 민주주의와 복지의 개념이 확산되고 의료·과학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는 등 분명 진보의 시대였다. 그러나 사라예보의 총성으로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 무차별 폭격과 원자폭탄으로 상징되는 제2차 세계대전, 난징 대학살, 스탈린의 대숙청, 한국전쟁, 중국의 문화대혁명, 유럽을 휩쓴 인종 청소 등 20세기는 전쟁과 살육의 시대이기도 했다. 진보가 대량학살로 전락한 까닭은 무엇일까.
저자는 20세기의 극단적인 폭력성의 이유를 세 가지로 든다. 인종과 민족 갈등, 경제적 변동성, 그리고 제국(帝國)의 쇠퇴이다. 20세기 들어 인종 상에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유전적 주장이 널리 퍼지고, 인종이 뒤섞인 이주 지역의 분쟁지가 정치적으로 분열되면서 인종·민족 갈등이 증폭되었다. 국내외 이주 집단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실과 동질적인 정치조직의 수립이라는 이상의 간극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1940년대에 대량학살이 자행된 지역들이 여러 민족이 뒤섞여 살고 있던 지역과 일치한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특히 중동부 유럽은 20세기의 살육장 중에서도 가장 비극적인 지역이었다. "20세기 내내 인간은 신체적으로 서로 다른 인종이 별개의 종(種)인 양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일부 집단을 '인간 이하'로 분류했다."
이러한 갈등은 경제적 변동성과도 관련이 있었다. 경제적 변동성이란 경제성장률, 가격, 금리, 고용 변화의 빈도와 진폭, 그리고 그와 관련된 모든 사회적 압력과 긴장을 의미한다. 불규칙적으로 불황과 호황을 반복하는 만성적인 경제 변동은 사회적 갈등을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경제사가들은 경제주기와 다양한 파동을 확인하느라 고심해왔지만, 호황과 불황의 빈도와 진폭이 얼마나 변하는지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이 변화가 예나 지금이나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대체로 먹고사는 문제가 어려워지거나 빈부격차가 커지면 소수 민족집단을 적대적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커진다.
저자는 20세기의 충돌을 이해하려면 배경에 있는 제국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를 지배했던 다민족 거대 제국의 쇠퇴와 몰락이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세계대전의 주요 참전국 대부분은 제국이었거나 제국이 되려고 애썼다. 또한 자세히 들여다보면, 민족국가나 연방국가가 되려 했던 그 시기의 여러 정치조직은 사실상 제국이었다."
20세기는 영국·스페인·네덜란드 등 세계를 지배했던 유럽의 기존 제국들이 해체되고 소련·독일·일본 등 새로운 제국들이 등장한 시기였다. 히틀러의 제3제국, 일본의 식민제국, 소비에트연방 등은 300년 정도 지속된 이전 유럽 제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명했지만 파괴와 살상에서 비범한 능력을 발휘했다.
새롭게 등장한 이들 제국은 과거의 제국들과 달리 중앙집권적인 권력과 경제적 통제, 사회적 동질성을 추구했다. 또한 새로운 제국은 무력 사용에 대한 전통적인 종교적·법적 제한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은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면 적국(敵國)의 훈련받은 군인만이 아니라 모든 국민을 공격하려 들었다. "영국이 인도의 민족주의자들을 지나치게 부드럽게 다룬다고 비난했던 히틀러는 신세대 황제 지망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20세기 대격변의 진원지가 새로운 제국의 주변과 정확히 일치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저자는 또한 '서구 세계의 몰락'에 대해 이야기한다. 20세기의 가장 거대한 격변은 아시아에 대한 서양의 지배력이 쇠퇴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1904년 일본이 러시아를 상대로 거둔 승리로부터 시작하여 1978년 이후 중국의 경제부흥에서 절정을 이룬다. 아시아와 유럽의 소득격차는 좁혀지기 시작했고, 서양의 상대적인 하락은 막을 수 없는 현상이 되었다. "이는 바로 1500년 이후 4세기 동안 무너졌던 동서양의 균형이 회복되면서 세계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방대한 분량의 통계와 역사자료를 동원하면서 20세기를 전쟁과 학살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H. G. 웰스의 공상 과학소설 '우주 전쟁'을 언급하며 "우리는 지난 세기의 전쟁을 야기했던 동인(動因)들을 이해할 때에만 다음 세기의 전쟁을 피할 수 있다"면서 "경제위기의 와중에서 인종 갈등과 제국들 간의 경쟁을 불러내고, 그 과정에서 모든 인간이 공유한 인간애를 부정하는 어두운 세력은 여전히 우리 내부에서 꿈틀거리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신용관 기자, 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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