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후반 소위 '주의주의자' 딱지 붙이기가 '반종파투쟁'이란 미명으로 학내에서 들불처럼 

번지던 시절에 '품성'(sic) 좋은 선배들로부터 악질 종파분자에 극좌 모험주의자로 '디스'당했다.

나는 '민족' 통일' '인간' '주체' '품성' '자주'..운운하는 엔엘 특유의 어법과 상투적인 레토릭이

싫었다. 왜 남한혁명의 주체가 남한 노동자계급이 아니라 NKLP의 지도를 받아야 하는지..

올림픽을 치른 나라가 왜 '식민지반봉건사회'인지, 게다가 '수령론'의 황당무계함과 종교적이고

쇼비니즘적인 애티튜드 ...외에도 수백가지의 이유로 나는 지도 선배들과 결별을 선언했고 

나는 보다 계급적이고 보다 극단에 가까운 왼쪽 정치적 그룹으로 전향했다. 여전히 지금도 나는

엔엘주사그룹을 사회주의 이념을 가진 정파가 아니라 일종의 '에스카톨로지' 종교 그룹으로 

인식한다.


그 이후로 이십여년 넘게 엔엘 주사 그룹이 저지르고 다닌 여러 패악과 코미디들을 봤지만 

어제 본 문제의 '녹취록' 사건은 민노당 당원 명부를 북한에 가져다 바친 사건 이래 

가장 기가 찬 블랙 코미디였다.   '화공과 학생'을 섭외한다거나 '사제 폭탄'을 만든다거나...

알카에다는 언감생심, 소말리아 모가디슈의 반군들 보다도 못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이거 바보들 아닌가 싶지만 그 모든 언술들이 진지하고 정치적 확신이라는데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이번 사안에 대한 내 스탠스는 도리어 보수 인사인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의 입장과 같다,


요즘 힙합씬을 달구는 '디스 전쟁'의 메인 비트인 'control'을 나도 다운 받을까.

 


(mc : alche / feat : alche)


Verse-1


yo dude 세월은 이십여년이나 흘렀지.

세상은 번쩍번쩍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너희는 찌질찌질 어제와 오늘이 똑같고 

흐른 것은 저 시간 

멈춘 것은 너 인간 

아직도 오래된 화석은 암모나이트

꽃병을 놓고 이젠 든 것은 다이나마이트

신심과 품성은 지겨워 boring

자주와 주체는 역겨워 disgusting

General Kim은 애저녁에 die away

Small Kim도 fade away

Baby kim은 too young to control far far away

우리는 evolution 

너희는 revolution

하지만 you do not that way yo dude.


오늘은 verse-1까지만. 나의 첫번째 랩 가사.


그나저나 '조유식' 사장이 있는 알라딘에서 주사를 디스하는 글을 쓰니 우습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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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로 2013-08-30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에 폭소를!ㅎㅎㅎ

알케 2013-08-30 19:11   좋아요 0 | URL
일종의 '본진 러쉬'인가 ㅋ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감옥 안에 핀다고 한탄하지 않고 
갇힌 자들과 함께 너희들 환한 얼굴로 하루를 여나니 
 
간혹 담을 넘어 들려오는 소식들은 밝고 
짐승처럼 갇혀도 우리들 아직 인간으로 남아 
오늘 하루 웃으면서 견딜 수 있음을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감옥 안에 핀다고 한탄하지 않고 
갇힌 자들과 함께 너희들 환한 얼굴로 하루를 여나니

1982년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으로 옥살이하던 문부식 시인이 쓴 시에

임준철이 1990년에 곡을 붙인 노래 <꽃들>.

한겨레가 창간 2주년으로 기획한 공연 <겨레의 노래>에서 불렸다.


나는 첫 이 시의 첫 구절인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가 늘 마음결을 

덜컥하게 해 어디 서명을 남기거나 카드를 보낼 때 종종 이 귀절을 쓰곤 한다.



'부미방'의 주범으로, 시인으로, 변절론의 당사자로, 눈 밝은 평론가로, 

진보정당의 대변인으로 한 시대를 파란만장하게 살았지만 

두 해전에 술로 일한 구설수에 올라 일순간에 종적이 묘연해진 문선생.


지난해 한겨레신문 토요판에 <김두식의 고백>이란 '포트레이트 피쳐'를 연재하던

김두식 교수가 '그 난리'가 있은 후에 문선생과 긴 인터뷰를 했다.

나는 그 피쳐를 두 번 읽었다. 아니 세번 읽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23907.html


김두식 교수는 이 긴 인터뷰의 마지막 문단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굴곡이 심했던 인생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문부식은 “나는 원래 길 잃은 인간으로 태어났으며 구원받는 것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도 않는다”는 존 스타인벡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네이팜탄 공장에 폭탄을 설치했다가 예기치 않은 희생자를 내고 평생 도망 다녀야 했던 영화 <허공에의 질주>의 반전운동가 부부가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화 속의 그들과 달리, 문부식에게는 그를 끝까지 보호하고 지원하는 ‘조직’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사람을 쓰고 빨리 내다버리는 곳이 우리 사회인 것 같습니다. 문부식처럼 민주화운동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에게 자기 삶과 화해할 기회를 한번이라도 더 주는 것이, 저처럼 민주화 운동에 전혀 기여한 바 없이 과실만 따먹은 사람들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선생님...어디 핀들 꽃이 아니겠습니까 ?

강건하시길.


You should keep your fingers cros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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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염원하는 천주교 사제 수도자 5038인 선언' 기자회견이 열린

 26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앞에서 참석한 수녀들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쌍차'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의 관심과 지원은 참으로 대단하다.
사제님들과 수녀님들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그저께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사제 262분들이 '국정원 관련' 시국 선언을 냈는데 
찬찬히 읽어보니 성명서의 글이 참 명문이다.


오늘도 공주님께서는 자신은 국정원의 도움을 받은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30826111306728&RIGHT_REPLY=R7)


아이고 공주님. 공주님....국민은 바보들이 아니예요. 

당신 아버지가 다스리던 잔혹했던 공포의  '겨울 공화국'에서 입닫고 귀 막고 살던

 '그 때 그 사람들'이 아니란 말입니다.





국정원 관련,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262인의 선언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교회는 민주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민주주의가 “시민들에게 정치적 결정에 참여할 중요한 권한을 부여하며, 피지배자들에게는 지배자들을 선택하거나 통제하고 필요할 경우에는 평화적으로 대치할 가능성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정한 민주주의는 법치 국가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올바른 인간관의 기초 위해 성립한다고 교회는 가르친다.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백주년 46항 참조)

 

“진정한 민주주의는... 모든 인간의 존엄, 인권존중, 정치생활의 목적이며 통치 기준인 공동선에 대한 투신과 같은 ....가치들을 확신 있게 수용한 열매이다.

 

” 국가권력(공권력)의 존재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류역사는 ‘개인들의 독단적 의사’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법치주의’로 극복하고, 국가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권력분립’(입법, 사법, 행정의 공권력)으로 균형과 견제를 발전시켜왔다.

(「간추린 사회교리」, 407항, 408항 참조) 마침내 우리는 이를 ‘민주공화(民主共和)’라고 이름 한다.

 

그러나 교회는 현실에서 어떤 정치체제도 완전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바로 ‘죄의 구조들’ 의 존재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과 이웃의 선익에 반하는 태도와 행동들, 그리고 그것들로 구축된 “죄의 구조들”, 그 안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든 이익을 집어삼키려는 욕망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쟁취하려는 권력에의 욕망이강렬하게 꿈틀거리고 있다.(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사회적 관심」 37항 참조) 가히 경제독재와 정치독재라 할만하다.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사회적 관심」 37항 참조)

 

사실 우리의 근현대사는 이를 극복하고 진정한 ‘민주공화’를 실현하려는 힘겨운 과정이었다. 인간의 존엄을 확인하고, 인권을 발전시키며, 공동선을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분들이 십자가를 짊어졌는지 우리는 그 분들의 희생에 빚을 졌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망각한다. “사적 이익이나 이념적 목적을 위해 국가권력을 독점한 폐쇄적 지배집단”(「백주년」, 46항)이 ‘민주공화’를 얼마나 심각하게, 얼마나 끈질기게 왜곡했으며, 깊은 상흔을 남겼는지를... 일제강점부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폐쇄적 지배집단”은 우리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은밀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민주공화’를 부정한다.

 

부끄럽게도 우리는 ‘죄의 구조들’에 대해 때로는 강압에 의해 침묵하거나, 때로는 무감각과 무관심으로, 때로는 적극적으로 그 확장을 돕는다.

 

‘정보’도 그 한 몫을 한다. 교회는 '정보‘가 민주적 참여를 위한 주요한 도구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그러면서 “정보의 객관성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 가운데 특별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소수의 사람이나 집단들이 조종하고 있는 뉴스 미디어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에, 정치 활동, 금융기관, 정보기관들의 유착까지 더해지면, 이는 전체 민주주의 제도에 위험한 결과를 미친다.”(「간추린 사회교리」 414항) 고 경계한다.


이른바 ‘국가정보원’과 관련된 일련의 ‘새로운 사태’는 “죄의 구조들”이 ‘민주공화’를 노골적으로 부정하고, 이에 우리의 무감각과 “정보의 비윤리성”(「간추린 사회교리」 416항 참조)이 가세한 것이다.

 

첫째, 국민이 “국가안보수호와 국익증진의 사명”을 부여한 ‘국가최고의 정보기관’이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을 포기하면서까지, 국가안보와 국익의 토대인 ‘민주’의 가치를 허물어뜨렸다.

 

둘째, 대통령 직속의 국가기관의 이 권력남용 행위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으며, 오히려 침묵으로써 방치하거나, 왜곡으로써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를 정쟁으로 희석함으로써 공동선을 무너뜨렸다.

 

셋째, 국민을 위한 봉사의 목적에서 일탈한 행정부를 바로잡아야 할 입법부의 무능함과 사법부의 수수방관은 ‘법치’를 적극적으로 포기한 것이다. 그렇게 ‘삼권’이 협력함으로 써 “폐쇄적 지배집단”은 강화되어 절대 권력화를 도모했다. 모든 인간의 존엄과 인권은 위기에 내몰린다.

 

넷째, 대중매체가 ‘상황과 사실들과 제시된 문제 해결책’을 객관적으로 제공함으로써 민주시민의 책임 있는 공공생활 참여에 기여하는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 “이데올로기, 이익 추구, 정치적 통제 욕심, 집단 간의 경쟁과 알력, 기타 사회악” 때문일 수도 있겠고, “특정 이익 집단을 위해 잘못 이용되는 돈벌이 사업”(「간추린 사회교리」 416항) 때문일 수 있을 것이다. 대중매체가 “공동선을 위해 진실과 자유와 정의와 연대에 근거한 정보를 제공 ”(「간추린 사회교리」 415항)하지 않는다면,대중매체 역시 “폐쇄적 지배집단”에 부역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

 

다섯째, 오늘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익을 추구하는 욕망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배 권력을 쟁취하려는 욕망이 그렇게 강력하게 결탁한 ‘죄의 구조들’은 버젓이 시민의 “옷을 빼앗고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도 태연하다.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리는” 사제가 될 수는 없다.(루카 10,29-37)

‘모든 인간의 존엄’, ‘인권존중’, ‘공동선에 대한 투신’을 내놓고 길을 떠날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자.

 

2013년 8월 21일

 

* 2013년8월21일 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262명 서명함.



 

* 마지막 두 문장이 가슴을 친다.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리는” 사제가 될 수는 없다.(루카 10,29-37)

 

‘모든 인간의 존엄’, ‘인권존중’, ‘공동선에 대한 투신’을 내놓고 길을 떠날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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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7 1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27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술잔 대신 이런 저런 일거리들이 쌓여 있는 책상에서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이런 밤에도 듣고 싶은 노래들이 있다.

오늘은 Van Morrison. 

나도 이 할배 판 몇장 가지고 있는데 특히 이 노래는 가을 날, 
얼굴을 스치는 바람에서 찬기운이 느껴지는  늦가을
오후 네시쯤에 들으면 아주 좋다.

특히 a섹션이 끝나고 나오는 브라스 사운드는 이 애상조의 발라드에
묘한 리듬감을 주면서 아주 섹시한 느낌을 준다. 

이 노래는 오리지널도 좋지만 그에 못지않는 어썸한 커버곡들도 많다.

경애하옵는 Joe Cocker의 Into the mystic (나는 이 버전이 좋다)



Jen chapin의 Into the mystic (이 어쿠스틱 버전도 정말 좋다)





The Wallflower의 "Into the mystic



아..일하기 싫다.

찬 사케 두 도꾸리에 꼬치나 마시고 먹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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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8-23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에서 찬기운이 느껴지는 늦가을 오후 네시,는 아니라도
지금 이 시간에 들어도 참...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알케 2013-08-27 00:15   좋아요 0 | URL
바람 서늘한 늦가을 오후 네시 무렵에 꼭 다시 들어보세요.
이유를 아시게 될 겁니다. 왜 꼭 '오후 네시'여야만 하는지 ㅎㅎ
 



해마다 전력량 예측 실패하고 심지어 올해는 뇌물 받아먹고 불량부품을 원전에 사용해 몇 개의 

발전소가 가동 중단된 이 상황에서도 국민들이 전기 많이 사용해 이 꼴 났다며 으르렁거려도, 

이 불지옥 염천에 에어컨 동 중지에 실내등 소등까지 명령해도 군말없이 따르는 이런 백성들과 

공무원들이 세상 천지 어디있나. 하긴 정책실패를 후안무치하게 국민 탓으로 돌리는 나라도 

아프리카 몇 나라 빼고는 없을 듯. 전시통제도 아니고 일사불란, 유신총화의 정신인가.


우리 공주님은 저 모습이 '보기에 좋으신가'? 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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