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감옥 안에 핀다고 한탄하지 않고 
갇힌 자들과 함께 너희들 환한 얼굴로 하루를 여나니 
 
간혹 담을 넘어 들려오는 소식들은 밝고 
짐승처럼 갇혀도 우리들 아직 인간으로 남아 
오늘 하루 웃으면서 견딜 수 있음을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감옥 안에 핀다고 한탄하지 않고 
갇힌 자들과 함께 너희들 환한 얼굴로 하루를 여나니

1982년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으로 옥살이하던 문부식 시인이 쓴 시에

임준철이 1990년에 곡을 붙인 노래 <꽃들>.

한겨레가 창간 2주년으로 기획한 공연 <겨레의 노래>에서 불렸다.


나는 첫 이 시의 첫 구절인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가 늘 마음결을 

덜컥하게 해 어디 서명을 남기거나 카드를 보낼 때 종종 이 귀절을 쓰곤 한다.



'부미방'의 주범으로, 시인으로, 변절론의 당사자로, 눈 밝은 평론가로, 

진보정당의 대변인으로 한 시대를 파란만장하게 살았지만 

두 해전에 술로 일한 구설수에 올라 일순간에 종적이 묘연해진 문선생.


지난해 한겨레신문 토요판에 <김두식의 고백>이란 '포트레이트 피쳐'를 연재하던

김두식 교수가 '그 난리'가 있은 후에 문선생과 긴 인터뷰를 했다.

나는 그 피쳐를 두 번 읽었다. 아니 세번 읽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23907.html


김두식 교수는 이 긴 인터뷰의 마지막 문단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굴곡이 심했던 인생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문부식은 “나는 원래 길 잃은 인간으로 태어났으며 구원받는 것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도 않는다”는 존 스타인벡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네이팜탄 공장에 폭탄을 설치했다가 예기치 않은 희생자를 내고 평생 도망 다녀야 했던 영화 <허공에의 질주>의 반전운동가 부부가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화 속의 그들과 달리, 문부식에게는 그를 끝까지 보호하고 지원하는 ‘조직’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사람을 쓰고 빨리 내다버리는 곳이 우리 사회인 것 같습니다. 문부식처럼 민주화운동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에게 자기 삶과 화해할 기회를 한번이라도 더 주는 것이, 저처럼 민주화 운동에 전혀 기여한 바 없이 과실만 따먹은 사람들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선생님...어디 핀들 꽃이 아니겠습니까 ?

강건하시길.


You should keep your fingers cros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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