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에 오는 29일짜리 2월은 번잡하고 수선스럽고 무엇보다 '꿈에 서방 만난 초년 과부'의 마음처럼 심란한 일들이 많은 달이었다. 주역의 괘사로 풀자면 '밀운불우(密雲不雨) ', 먹구름이 자욱한데 비는 내리지 않는 형국이었다. 뭐 그런 철이 있잖은가. 활발해진 태양 흑점 운동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던킨 도너츠의 1900원짜리 '이것 저것 다 넣은 오리지널 커피'가 2300원으로 올랐다. 이런...!)
따라서 2월엔 '무릇 세상의 이치와 질서를 공구'하는 책보다는 '세상과 세간의 속사'를 잊게 하는 책을 많이 읽었다. 먼저 기시 유스케 선생의 <악의 교전>1,2권...한 싸이코패스의 일본판 <볼링 포 콜럼바인> 이야기다. 2권 중반 부터의 억지스러움을 참으면 1권과 2권 중반까지의 이야기는 꽤 흥미롭고 별 짓을 다하는 하스미 선생을 나도 모르게 응원하는 당혹스러움도 느끼게 된다.
대니얼 H. 윌슨의<로보포칼립스>는 <세계대전z>와 같이 증언록의 피카레스크식 구성을 통해 로봇들의 반란과 그에 저항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린 소설. 에스카톨로지파는 아니지만 이런 류의 종말론에 열광하는지라 재미있게 읽었다. 설정은 빤하지만 의외로 기계적 지식의 완성도도 높고 각 챕터의 스펙타클은 헐리우드 영화의 시퀀스가 연상될 정도로 긴박하고 재밌다.
이사카 코타로의 <오! 파더>..내가 준비중인 다음 작품 시놉을 만들 정도로 나를 매혹시켰다. 코타로가 손에 힘을 빼고 설렁설렁 쓴 것 같은 밝고 유쾌한 이 소설은 현대 문명에선 사라진 모계사회라는 고대 가족의 형태와 '중혼重婚 : bigamy)으로 형성된 새로운 가족...그 속의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핑퐁처럼 탁탁 받아치는 대화 시퀀스의 '합'이나 코타로 특유의 재담과 반짝이는 아포리즘...그리고 콘티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시퀀스들...만인에게 권한다. 오...유키오.
오사와 아리마사의 <신주쿠 상어> 사메지마 시리즈..소문만 듣다가
근래 나온 개정판 1권을 읽고서는 양이 안차서 아직 개정판이 출간되지 않은 2권부터 4권은 절판된 1994년 이원두 선생 번역판을 정독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었다. '후까시'캐릭터의 전형이라 할만하지만 그 재미가 대단하다. 심란한 이런 저런 개인사에 얽메여 갈등하는 경찰 말고 좀 쿨하고 압도적인 히어로 경찰이야기를 보고 싶다면 사메지마 시리즈가 그 답이다. 그의 아름다운데다 '로켓 가슴'을 가진 여자친구 쇼(晶)양의 캐릭터도 아주 멋지다..(이런, 세상에 아름다운데다 로켓 가슴이라니...)

이 달에 읽을 요량이었던 마이클 코리타의 책들이나 스노우맨...몇 권의 철학책들은 3월에나 읽어야 할 듯.. 2월의 괘사였던 密雲不雨의 여러 풀이 중에 "조급하게 굴지말고 조금만 더 참고 견뎌라"는 풀이가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람쥐.
산
-김영석
아주 먼 옛날
가슴이 너무나 무겁고 답답하여
더는 참을 수 없게 된 사내가
밤낮으로 길을 내달려
마침내 더는 나아갈 수 없는
길 끝에 이르렀습니다
그 길 끝에
사내는 무거운 짐을 모두 부렸습니다
그 뒤로 사람들은 길 끝에 이르러
저마다 지니고 있던 짐을 부리기 시작하였고
짐은 무겁게 쌓이고 쌓여
산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길 끝에
높고 낮은 산들이 되었습니다
Ps.노래를 가만 들어보니 'cause i remember what we said as we lay down to bed 하기에
will return back home to where we're meant to be해서 we'll be back soon as we make history. 한다는데... 부디 make history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