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스쿨러 - 길이 학교고 삶이 텍스트인 아이들의 파란만장 삽질만발 탐구생활, 2009년 청소년저작 및 출판지원사업 당선작
고글리 지음 / 또하나의문화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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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상깊은 구절] 

“누군가 도덕 시험에서 100점을 맞았다는 사실이 그 아이가 같은 반 친구를 따돌려 본 경험이 없음을 뜻하진 않는다는 것을 겪어 본 사람들과, 이건 정말 사람이 못 먹을 음식이라며 속으로 혀를 내두르면서도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본 사람들은 알지. 이런 환경 속에선 믿음이나 배려가 생기기 어렵다는 걸. 내 삶은 왜 배운 거랑 다를까, 뭐 이런 음식을 비싼 돈 주고 사 먹느냐며 손님들을 속으로 비웃으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난 대체 뭘까. 삶과 앎과 일이 일치되지 않는 삶 속에서 오는 불신과 불안과 죄책감. 이 책은 그런 내 삶에 대한 고민과 탈주의 작은 보고서야 - 인경”
- 프롤로그 중 

 

[책 소개] 

책 표지가 유치하다고, 흔히 보는 센스 있는 제목에 모던한 표지로 무장한 인문학 책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된다고, 또 어린 10대,20대들이 썼다는 이유로 넘겨 짚을 수도 있는 나이 관점에서 이 책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 적어도 세상을 자기 스스로 개척해 나가며 애써 배워나가려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청소년들의 체험담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불량 청소년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사회적 조건(?)' 하나쯤은 가진 10대와 20대들이 쓴 솔직한 기록이다. 프롤로그에 나오는 말처럼 자신들의 삶과 앎이 일치되는 일상을 만들어가고 싶었던 그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용기 있는 기록이다. 

 

로드 스쿨러(Road Schooler). 길이 곧 학교이고 길에서 인생을 배우고 삶을 배우겠다는 아이들이 자칭하는 이름이다. 지금 사회가 만든 제도권의 교육을 충실히 받아온 우리들에게는 그 얼마나 발칙하고 말도 되지도 않는 생각이겠는가? 

하지만 내게는 꽤 감명 깊게 다가왔다. 그것은 그 친구들이 탈 학교를 했다는, 단순히 그들의 과감한 선택이 멋져 보이는 치기 어린 생각만은 아니었다. 내가 감명 깊었다는 이유는, 그들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나가고자 하는 마음가짐이었다. 나를 포함한 어느 누구도 의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지난 학창시절 속에서 제도권 교육에 끊임없이 회의감을 느끼며 ‘왜?’ 라는 질문을 던졌던 그들이었다.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말과 행동을 보였다. 보충수업과 밤 10시까지 학교에 묶어두는 야간 자율학습을 의무적으로, 아니, 강제적으로 우리들의 입으로 쑤셔 넣었다. 여기서는 이러한 것들을 ‘인스턴트 플랜’이라고 부르겠다. 정신 건강에 해를 끼치는 ‘인스턴트 플랜’.
‘그냥 믿고 따라가 볼까?’
눈 딱 감고 내 발이 끌려가는 대로 길을 걸어가면 대학이라는 곳을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몇 달간 글 쓰는 것도 멈춰 버렸다. 학교는 이에 맞장구를 치듯 더 많은 인스턴트 플랜을 생산하고 우리들을 더 많이 괴롭혔다.”
-p.53 내가 만난 로드스쿨러 / 성훈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은 곧 우리들의 고정관념이었고 부모님들의 고정관념이기도 했다. 고정관념을 벗어나면 사람은 거부감을 느끼듯 그들도 홀가분한 정도에 이르기까지 부모님 또는 가까운 주변인들과 만만찮게 대립하는 시간과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도 그런 과정 선상에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브로스 레드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두려움보다 더욱 중요한 무언가를 선택한' 용기가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생각하는 삶을 제대로 살아보고 싶은 자기애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인생 또한 살아보고 싶은 대로 후회 없이 살고 싶은 마음 말이다. 

내가 감명 깊었던 두 번째 이유는 나의 현재 상황과 비슷해서 더 공감할 수 있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나 또한 지난 3년여 간 제도권 안에서 온실 속의 화초로 지내다가 과감히 운명을 결정하고 나온 지 3개월이 지났다. 선택해 본 사람은 안다. 누구든 무모한 선택이었다고 할 지 모르겠지만 당사자에게는 선택하기까지 두려움보다 선택하고픈, 선택해야만 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을. 그리고 현실적인 대안으로 말하는 모든 사실들이 대부분 다 맞는 이야기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 마음 속으로 엄습하는 두려움은 때론 견딜 수 없이 힘들다는 것을. 

이 친구들은 자신들을 '고글리' 라 칭한다. 고정희라는 여류시인을 기리는 청소년 문학 작품전을 통해 만난 뜻이 통하고 마음이 맞는 친구들이 글도 쓰고 문화작업도 하는 마을을 만들었다는 뜻이란다. 이 친구들은 그동안 많은 일들을 해 왔다. 노인들을 위한 잡지 제작의 일부터 신라의 역사를 공부해보기 위한 일환으로 각자 신라의 동요인 ‘향가’를 한 곡씩 선택한 후, 그 향가에 맞는 경주 여행 계획을 세우고 공부를 했다. 이 얼마나 멋진 모습인가! 자신이 알아가는 과정에서의 즐거움이 바로 공부라는 것을 이 친구들은 신라 여행을 통해 여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성취의 즐거움보다 과정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공부의 참 맛이라는 것을. 내 개인적으로도 이 친구들이 신라에 대해 공부해 나가고 스스로 깨달아가는 과정에서는 감동과 감탄을 숨길 수가 없었다. 가끔은 나보다도 훨씬 성숙하고 멋진 친구들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까. 

 

“그중에서도 고글리가 한 해 동안 주력한 프로젝트는 '여행을 통한 배움'을 모토로 하는 여행스쿨이다. 길에서 역사를, 인물을, 삶을 배우고 나를 찾아가는 여행, 논문과 자료를 뒤지고, 이야기를 만들고, 경주 곳곳을 누비고 신라의 흐름을 쫓으며 우리는 우리 방식으로 공부했다. 신라를 공부하다가 신라를 배경으로 한 소설 『서라벌 사람들』을 쓴 심유경 작가를 초대하여 신라에 대해, 좋은 글쓰기에 대해 특강을 듣기도 했다.”
-p.47 텐트하나 쳐놓고 마을이라네 / 산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이렇게 질문하고 답을 찾는 과정은 신라의 세계관을 찾는 일인 동시에 내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계기였다. 현대의 문화를 아무런 의심 없이 수용하고 그것만이 옳다고 단정 지었던 내 태도를 돌아볼 수 있었다. 도덕과 비도덕을 판단하는 윤리적 잣대가 얼마나 많은 순간 나를 제어하고 있는지 그 빙산의 일각이나마 알게 되었다.”  

-p.110 아주 특별한 입학식:신라? 신나! / 산 

“수학도, 과학도, 국어도, 역사도, 사회도 모두 재미있는 학문이다. 그러나 그게 정말 뭘 알고, 재미있게 느낀 건지는 모르겠다. 시험 점수가 잘 나오면 공부는 으레 재미있어졌다. 이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아는 게 재미있는 게 아니라 목표 점수를 채우고 내가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이 즐거운 거였다.” 

-p.118 아주 특별한 입학식:신라? 신나! / 산 

 

개인적으로 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많이 배웠다. 제도 혹은 어느 틀 안에서 정해준 채로 살아가는 것보다 스스로 삶을 개척하고 만들어가는 이들에게서 나는 더 많이 배웠으며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했다. 이 친구들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 모른다. 이들은 검사, 판사가 될 수는 없을 것이고, 교수, 의사, 회계사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안 되면 또 어떠한가? 자신들 스스로 새로운 이름의 직업 속에서 전문가라는 타이틀과 함께 자신만의 깨달음의 길을 걸어갈 그들을 위해 나는 항상 응원할 것이다.  

다소 덧붙일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더 다양한 삶의 가치들이 존중받기 위해서라도 제도권의 교육만의 고집보다 다양한 교육 방식 및 관점을 인정해주는 구조적인 수용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친구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만 분명 사회적 통념과 풍족하지 못한 지원으로 사회적 두려움 또한 없진 않을 것이다. 이들이 조금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회에 한 일원으로 성장해 나간다고 생각해보자. 제도적 틀에서 소외받고 청소년으로서 박탈된 삶의 태도를 보이는 소위 '문제아' 학생들에게 또 다른 삶의 대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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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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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무엇보다 자유에의 도정이어야 한다. 자본과 권력, 나아가 습속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야 비로소 공부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세상이 곧 공부다.’ 우리는 이런 인생을 관조하는 듯한 얘기를 많이 듣는다. 인생공부, 인생경험 등. 하지만 솔직히 까고 말해 누가 공부를 이런 것이라고 하겠는가? 설마 어머니께서 부엌에서 양파 까는 것, 김치 담그시는 것을 보고 공부라고 말씀하실까? 아니다. 이렇듯 우리는 삶과 공부를 무의식적으로 분리시켜 놓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고미숙 선생님께서 이 책을 통해 강조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다. 공부란 무릇 학교에서 몇 가지 과목으로 분리시켜 놓은 것이 아닌, 대학에서 전공 몇 가지로 분리시켜 놓은 것 또한 아닌, 우리 생활 속에서 느끼는 감정, 일상의 경험 등 모든 것이 바로 공부이며 또한 끊임없이 배우고, 아낌없이 남에게도 줘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고미숙 선생님은 먼저 이 사회에서 말하는 학교라는 존재. 학교교육의 폐단과 그 속에서 자라온 우리들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교육열 자체야 뭔 죄가 있겠는가.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것, 그거야 오히려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에 속하는 것을. 문제는 그런 열망이 오로지 학벌과, 그리고 학벌은 다시 거액의 연봉과 고스란히 오버랩된다는 사실에 있다.” 

-p.17 ‘프롤로그’  

   “학생들은 교수를 스승으로 여기지 않고, 교수들 역시 학생을 지적 동반자로 여기지 않는다. 한마디로, 지금 대학에는 사제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그 이전에 사제관계라는 말 자체가 사라졌다. 사제관계가 없는 ‘대학’(大學)이라? 형용모순!” 

-p.23 ‘프롤로그-대학은 죽었다!’ 中 

 근현대사를 거쳐 형성된 이 사회에서 우리는 유치원부터 엄마 손을 붙들고 간다. 그리고 초등학교까지는 그렇게 간다. 그렇게 중, 고등학교를 거쳐 아무런 사유나 눈꼽 만큼치의 의심도 없이 수능을 보고 대학엘 간다. 이 책을 통해서면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나 또한 점수나 서열, 여러 객관적, 사회적 통념들을 참고서 삼아 대학이라는 곳에 당연하다는 듯이 진학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한 줄 알고 있었고, 심지어 나의 부모님조차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아저씨, 아주머니들이기에 그분들도 그렇게 내게 가르쳐주셨다. 

위에서 인용한 문구들은 나의 짧은 인생에도 분명 적용될 수 있다. 나의 부모님은 못 배우셨던 분들이기에 여느 대한민국의 사람들처럼 자식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욕망이 컸다. 그 욕망이 어떻게 발현되느냐가 문제인데 그저 사회가 시키고 보여주는 대로 따라갔다. 왜냐하면 교육에 관해 깊이 사유하고 생각을 해보기엔 당신들의 일상이 먹고 살기 급급했으니까.  

다시 돌이켜봤을 때 아쉬운 점은 학창시절 당시 어떠한 선생님도 대학에를 가야 한다는, 그러면 왜 가야 하냐는, 현실적 고정관념 이상의 사고를 우리에게 전파해주시는 분들이 한 분도 없으셨다는 것이다. 오히려 수능을 보고 나서 너는 이 점수이니 이 학과를 가라는 의견을 주시던 입시담당 선생님도 계셨다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이 경험했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까지의 경험을 비추어봤을 때, 고미숙 선생님의 대학에서의 학생과 교수 관계. 대학원에서의 지도교수와 대학원생 간의 ‘이해’ 관계를 역설하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씁쓸해졌다. 요즘 학생과 교수 관계처럼 진정한 사제관계가 형성되기 어려운 아이러니한 현실을 지난 20대동안 무던히도 많이 경험했던 까닭이었다. 

“오직 대학을 위해, 대학에 가서는 학점, 토익, 고시, 취업, 유학 등 아주 구체적인 실리가 눈앞에 있어야만 공부를 한다...(중략)... 

우리 시대는 성차별은 사라진 대신 경제적 가치 외에는 아무것도 사유하지 못하는 지적 주체들을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런 것은 공부가 아니다!” 

-p.40 ‘1부_학교, 공부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리다’ - 학번 공화국 中 

‘경제’ 라는 관념은 우리 사회 속의 다양한 가치들의 절대 우위에 있으며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고미숙 선생님의 말씀처럼 현대 시대의 청년들은 소비 가치 우위의 일상과 생활 속에서 정신은 이미 늙어버렸고 열정과 꿈도 잃어버린 정신적 노인들이다. 어디 그 뿐인가?  

 

"누가 더 잘하고 못하고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공부란 궁극적으로 자기를 넘어서는 것일진대, 거기에는 우와 열이 있을 수 없다. 그저 자기가 선 자리에서 한 걸음씩 나갈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할 따름이다. ‘남이 한 번 해서 그것에 능하다면 자기는 백 번 할 것이며, 남이 열 번 해서 그것에 능하다면 자기는 천 번 할 것이다.(중용)’ 밥을 먹고 물을 마시듯 꾸준히 밀고 가는 항심(恒心)과 늘 처음으로 돌아가 배움의 태세를 갖추는 하심(下心). 공부에 필요한 건 오직 이 두 가지 뿐이다. 

-p.49 ‘1부_학교, 공부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리다’ - 공부엔 다 때가 있다? 中 

상호 간의 끊임없는 발전을 위해 경쟁은 분명히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진리처럼 듣곤 한다. 그리고 분명히 경쟁은 필요하다. 하지만 경쟁이라는 가치가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교육으로부터 분명히 배워야 한다. 내 옆에 앉은 친구를 밟고 올라서야 내가 좋은 점수를 받고 좋은 대학에를 가며 성공으로 가는 길이라는 좁은 사고 속에서만 살아가는 10대와 20대.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경쟁 위주의 교육이 사실은 모두를 죽이는 교육일수도 있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이 우리 삶과 가치관을 바꾸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다고 이론적으로는 말한다. 한 과목에서 1등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알고 공부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예컨대 학교 윤리 시험에서 100점을 받은, 잘 교육받고 공부한 아이가 사실은 반에서 한 아이를 왕따로 몰고 괴롭힌다는 상상을 해보자. 과연 그 아이는 교육과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결코 지금 우리의 학교 현실 속에서 없다고는 말 못할, ‘불편한 진실’ 이다. 나 또한 지난 학창시절 경험했던 진실이니까. 

  저자 고미숙 선생님은 이러한 불편한 진실 속에서 어떠한 공부법이나 처세법을 내놓지는 않는다. 고전 평론가답게 고전 속에서 그 대안을 보여준다. 하지만 나는 고미숙 선생님이 언급하신 암송과 구술, 글쓰기보다도 독서, 그리고 고전을 읽자는 말이 더 와 닿는다. 

“학교식 공부법은 애초부터 독서는 그저 개인적 취미나 교양의 영역이고, 공부는 그것과 달리 구체적이고 실용적 지식을 배우는 것이라는 이분법을 유포시켜왔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선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p.55 ‘1부_학교, 공부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리다’ - 책과 패스트푸드 中 

“요즘 대학생들의 독서력은 실로 심각하다...(중략)...그들에게 지식이란 책을 통해 탐구하는 대상이 아니라 인터넷에 떠다니는 검색 다발일 뿐이다.” 

-p.58 ‘1부_학교, 공부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리다’ - 독서는 고리타분해! 中 

 이외수 선생님도 역설하셨다. 예전에는 책을 읽지 않으면 대학생 축에도 끼지를 못했는데 요즘에는 책을 읽지 않아도 다 대학생이 될 수 있다고. 요즘 우리는 책보다도 TV에서 세상을 배운다.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고 그것이 대세가 된다. 고미숙 선생님은 독서란 공부와는 별개이고, 요즘 대학생들이 ‘큰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 얼마나 미달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다산 정약용이 말했듯이, 독서는 ‘세상을 경륜하는 것은 물론 귀신과 통하고 우주를 지탱하는’ 위대한 공부다. 이것만 있으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책이 내 인생의 자산이 될 테니까 말이다.” 

-p.107 ‘2부_고전에서 배우는 ‘미-래’의 공부법’ - 책과 우리 시대 中 

“송나라 때의 유명한 기철학자 장재가 말했듯이, ‘배움이 크게 이롭다는 것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기질을 바꿀 수 있어서다.’ 그리고 그 배움의 핵심은 다름 아닌 독서다.” 

-p.109 ‘2부_고전에서 배우는 ‘미-래’의 공부법’ - 책과 우리 시대 中 

"우리 시대에 공부란 책을 읽는 것이고, 책 중에서도 고전과 접속하는 것이다. 독서는 결코 선택이나 취미가 아니라 필수며, 특히 고전 읽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 공부는 말짱 도루묵이다. 그러므로 뭔가 다르게 살고 싶다면, 가장 먼저 자신이 ‘호모 부커스’(책 읽는 존재)임을 환기해야 하리라.” 

-p.122 ‘2부_고전에서 배우는 ‘미-래’의 공부법’ - 책과 연애, 그 은밀한 접속 中 

독서를 해야 한다. 또한 편독하지 말아야 하며, 다양한 분야의 텍스트를 접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 속. 사랑, 죽음과 질병, 사회적 담론 등을 성찰하며 스스로 애써 많이 배워야 한다. 고미숙 선생님은 지난 시절 열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갔던 이들의 말을 빌려 강조한다. 그리고 독서를 포함한 글쓰기, 암송, 구술, 일상으로부터 배우기 등을 통해 결국 ‘앎’ 이라는 것은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아무런 실용적 목적이 없이도 공부할 수 있을 때, 그 때 공부는 비로소 최고의 지식이자 사회를 변혁하는 무기이면서 동시에 운명을 통찰하는 ‘지혜의 수행’이 된다고 말한다. 결국 공부로써 깨닫게 된 지식은 어느 특정한 사람의 사적 소유도 아닌 것이고, 권력의 수단도 아닌, 바로 우리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공부로써 깨닫는 과정에서 만나는, 일상의 순간마다 만나는 이들은 모두 나의 스승이 될 수 있고 나 또한 그들의 스승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는 배움에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수치심을 느끼는 경우는 절대 없다. 그래서 스승의 의미를 재 정의한 고미숙 선생님의 말이 흥미롭다. 스승은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훈계하는 대상이 아닌, 스스로 애써 배우려는 열정을 주변 사람들에게 감염 및 촉발시키는 사람. 바로 누구보다도 가장 열심히 배우는 이라고. 

“에피쿠로스는 말했다. ‘행복해지기 위해 어린아이에게 더 기다리라고, 노인에게 이미 지나갔다고, 노예나 매춘부에게 포기하라고 말해선 안 된다. 누구나 지금, 그 자리에서 행복해야 한다.’ 공부 또한 그러하다. 공부하면 이다음에 훌륭한 사람이 되고, 뭔가를 얻게 될 거라고 말해선 안 된다. 공부하는 그 순간, 공부와 공부 사이에 있다는 바로 그것이 공부의 목적이자 이유여야 한다. 고로 공부는 존재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p.192 ‘3부_인생의 모든 순간을 학습하라.’ - ‘사이’에서 존재하기 中 

개인적으로 이 구절이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인상 깊었다. 공부했을 때 무언가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닌, 자신의 행복을 위해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 곧 목적이자 이유여야 한다는 것. 그래서 공부는 곧 평생 배움이 가능하다는 것. 이것이 어쩌면 우리 사회의 공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그 이상의 사고로 나아갈 수 있는 명백한 텍스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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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게 길을 묻다 - 희망 더 아름다운 삶을 찾는 당신을 위한 생태적 자기경영법
김용규 지음 / 비아북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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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서 자기계발서를 즐겨읽는다 라고 하진 않지만, 지난 2,3년간은 꽤나 자기계발서를 읽어보는 편이었습니다. 흔히 자기계발서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늘상 하는 말처럼, 중,고등학교 도덕/윤리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로 저는 지루함을 느껴갔고,
이들이 말하는 것들에 절대적인 맹신은 피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오히려 더 강해졌습니다.
그런 류의 책을 읽을 때마다 소위 말해 "뻥 치시고 있네~ 진짜?" 사상으로 책을 일게 되었죠.
물론 그 중에서도 (주관적인 판단 하에서) 급이 다르다고 평가되는 책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이 책도 그런 책 중에 한 권입니다. 이 책의 표지에는 숲을 상징하는 녹색 바탕에 부제에 이렇게 써 있습니다.

"인생 경영 철학"

그리고 책을 설명하는 부제 밑에 "당신을 위한 생태적 자기경영법" 이라고도 써 있구요.
이 책에서 수긍할 수 밖에 없고 때때로 가슴의 울림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저자의 힘든 역경을 통해 성공을 그린 '성공시대 이야기' 도 아니요, 저자가 큰 깨달음을 얻고 가르치듯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저 저자는 우리 주변의 자연이 어떻게 순환되는 지를 통해 그 사실 자체를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논리적으로 결부시켰을 뿐이었으니까요.
그 중 읽으면서 몇 가지 가슴을 치며 들어왔던 부분을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막 '태어나다' - 숙명 : "숲에는 태어난 자리를 억울해 하는 생명이 없다."

저자는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자기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한가지가 꼭 하나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탄생'입니다. 태어난다라고 하는 것은 영어로도 'be born' 이라고 수동태로 표현할 만큼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문화적으로도 증명하는 것입니다. 저는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의 설명을 돕기 위해,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마음을 나누는 편지 10/15자 김용규님의 편지' 의 글을 조금 인용해보려고 합니다.

"바위 위에서 태어난 느티나무에게 바위는 자라는 내내 장애였으리라. 그의 줄기를 닮은 뿌리가 바위를 끌어안았다. 마침내 장애였던 바위가 거센 바람으로부터 그를 지켜주는 원군이 되었다. 이 숲 그 느티나무 아래 서면 사람들은 모두 그의 삶의 경탄한다."
출처 :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마음을 나누는 편지 '김용규님의 글'

10/15자 저자의 편지에 바위에 뿌리를 내린 느티나무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자는 제목을 '우리에게 내려진 형벌과 장애가 대하여' 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셨지요. 저자는 글에서 식물은 움직이지도 못하는 생명체는 절대 불평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으려 애를 쓰고 장애마저 품어 안으려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도 그것은 숙명입니다. 인간 또한 나무처럼 부모의 몸을 빌려 어느 시간대에 태어나 그곳에서부터 자신의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 환경이 비옥하든 척박하든 태어난 자리에서 그의 삶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힘겨운 자리에 태어난 억울함이 있다고 해도 어쩔수 없습니다."
- page. 36

"아직 이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는 그대라면 억울한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조금 더 숲의 가르침에 귀 기울여 보면 좋겠습니다. 숙명이 지천인 숲이라지만, 생명 각자는 발아한 그 자리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나는 아직도 주어진 자리가 억울하다고 분노하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 page. 38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고산지대에 사는 소나무는 구부정하니 키를 작게 하고 세찬 바람을 이겨내려고 애씁니다. 그리고 심지어 울창한 나무 아래에서 태어난 작은 식물은 어떻게 해서든지 빛을 더 받아보려고 잎을 넓게 펼치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새삼 부끄러워졌습니다. 저는 지난 시간동안 누구보다 컴플렉스에 사로잡혀 살아왔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지난 1년 전, 나침반 프로그램 1기를 수강하며 선생님들과 1기 동기들에게 했던 저의 소개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어두움에 사로잡혔던 제 학창시절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잘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던 학창 시절. 두렵기만 하고 싸움박질 투성이였던 그 시절. 게다가 IMF 시기를 겪으면서 가세가 기울어 경기도 근방으로 이사가야만 했었던 그 때의 저는 제 주변 환경에 대한 불평불만 투성이었습니다.
음식점을 하시던 아버지에게 대들다가 손님들 있는 앞에서 흠씬 두들겨 맞고는 집 근처 산 속으로 도망가서 하룻밤을 지새우고 내려온 기억도 있습니다.
그 때의 저를 회상하다 보니, 당시 산 속에서 하룻밤을 지새울 때 제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수많은 나무나 풀들은 저보다 훨씬 철들고 훨씬 멋진 존재들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더군요. 

 

2막 '성장하다' - 꿈 : "나무에게는 빛, 사람에게는 꿈"

"식물은 지구로 유입되는 태양 에너지의 0.2%만으로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마찬가지로 꿈은, 우리 마음의 0.2%에 불과한 작은 자리를 차지할지라도,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고 우리를 고난에 맞서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 됩니다."
- page. 65

식물의 에너지는 단지 태양 에너지의 0.2%로 만들어지는 것에 불과하지만 우리 삶의 전반적인 근원으로 작용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의 단지 0.2%에 불과하지만 꿈은 그만큼 중요하다고 하는 비유. 저는 이 비유에서 그만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레오 버스카 글리아의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Living, Loving, Learning)』에서 버스카 글리아는 "때로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때가 있다고" 고 했습니다.
저는 당시 그 글귀를 읽고 반신반의 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상황에 따라서 절대적으로 작용할 때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추상적인 단어와 개념.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우리 삶 자체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보거든요.

"...식물은 이렇게 매일 빛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공평하게 비추는 햇살을 생명 저마다의 처지와 환경에 맞게 맞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일 그렇게 자기를 자라게 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도 그래야 합니다. 사람도 꿈을 좇아 살아야 행복의 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빛을 잃은 모든 생명이 그 순간부터 시들듯이 꿈을 잃은 사람도 그 순간부터 시듭니다. 빛을 찾을 수 없는 나뭇잎이 누런 빛으로 바래가고 마침내 시들어 낙엽으로 떨어지듯이 빛이 흐르지 않는 삶은 희망이 없는 삶입니다....(중략)"
- page. 67

"...나무와 들풀은 오로지 자신을 꽃 피우려는 꿈, 그래서 어떻게든 열매를 맺는 것으로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이유를 증명하려 합니다. 나무는 숲을 모두 지배하려는 욕심을 품지 않습니다. 들풀은 제 자리가 아닌 곳을 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갖는 꿈도 그렇게 나무를 닮아서, 들풀을 닮아서 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로지 자기다움에서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생명체에게 꿈이란 하늘 한 자락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 것임을 우리 모두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 page. 69 
 


2막 '성장하다' - 상처 : "담담하게 지니고 있는 상처야말로 그다움 향기다."

"...음나무나 두릅나무 입장에서 보면 무척 괴로운 일입니다. 결국 동물들의 성가신 학대로부터 자신을 변형하기 위한 무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몸 일부를 변형시켜 가시를 만들고 키우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오래자란 나무보다 어린 나무일수록 가시는 도드라집니다....(중략)...한참 생장하는 어린 그들에게는 동물의 접근이 무척 두려웠을 테지요. 그들에게 가시는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강력한 방어수단인 것 같습니다.
나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직 세상의 불합리에 맞설 힘은 갖추지 못했는데,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은 말은 많았던 모양입니다."
- page. 85

저자는 나무의 상처를 가시의 흔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시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사람이 가시를 달고 있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응축된 에너지를 쏟아낸다는 의미로구나. 그 좌절과 절망의 마음을 토하는 것이로구나. 그것으로 자기의 분노를 응고시켜 세상에 맞서는 것이로구나....
(중략)
...그러나 사람이건 나무건 가시가 가득하면 가까이 하기에 꺼려집니다. 그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결국 가시를 가득 단 자는 더불어 살기 어려운 대상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그 분노를 자신을 넓히고 키워내는 에너지로 바꿔야 합니다. 가시를 다는 것이 분노와 좌절의 에너지라면, 가시를 떨어뜨릴 수 있을만큼 자신의 키를 키우고 줄기를 살찌우는 것은 자기 성장의 에너지입니다."
- page. 87

위에서 제가 학창시절에 가졌던 컴플렉스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직 저는 그 가시를 떨어뜨릴 수 있을만큼 제 키를 키우고 줄기를 살찌웠다고 보기엔 '아직' 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름 긍정적인 방향으로 열심히 노력하지만 그래도 "아직" 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때로 어떤 상황에서는 그때의 컴플렉스가 크게 영향을 주어 남들이 놀랄만큼의 정색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 다 리셋(Reset) 시켜버리고 싶을 만큼의 두려움에 빠지기도 하고, 오히려 제 가시를 곧추 세울 때도 있습니다.

"시인 신경림 선생은 '한 군데 부러졌거나 가지를 친 나무에, 또는 못나고 볼품없이 자란 나무에 보다 실하고 단단한 열매가 맺힌다' 라고 했습니다. 시인 정호승 선생은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면서 '상처많은 풀잎들이 손을 흔들고'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고 했습니다. 알고보면, 누군가 담담하게 지니고 있는 상처야말로 그다운 모습이며 그다운 향기입니다."
- page. 89 
 


3막 '나로서 살다' - 일 : "식물의 방식으로 일할 수 없다면 참된 일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가슴 한편을 짓누르는 공포로 작용합니다. 이 공포는 마치 나무의 몸뚱이를 파고드는 버섯과도 같이 무섭습니다. 자신의 몸뚱이에서 버섯이 피기 시작하면 나무는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중략)
몇몇 가지를 넘어 줄기에까지 버섯이 피기 시작하면 위험은 더욱 커집니다. 이러다가 이듬해에는 단 하나의 가지에서도 잎을 피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도 우리는 이 두려움을 껴안고 나와 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섭니다."
- page. 167

20대 중,후반에 들어서면서 저의 가장 큰 고민이자 두려움은 바로 밥벌이입니다. 어느 누구나 자신의 꿈과 밥벌이가 일치하기를 원합니다. 저도 원하구요. 그러다 보니 두려움이 커집니다. 위에서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저라는 나무의 버섯은 바로 밥벌이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꿈과 밥벌이가 일치하기를 원하는 삶. 거기서 현실의 나에게 느끼는 무기력감은 때때로 내가 남들과는 다른 허무맹랑한 삶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았을 때, 내가 좋지 않는 결과를 보인다면, 결과적으로 그들에게는 단지 허무 맹랑한, 객기어린 생각만 했던 무능력한 이로 보일거라는 두려움이 자주 제 가슴을 짓누릅니다.

"다시 말하지만 생명 모두는 일을 하며 살도록 운명지어졌습니다. 우리 또한 매일같이 일을 하며 살도록 태어났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 일이 시시포스의 형벌과도 같을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기를 실현할 수 있는 징검다리와도 같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나로서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진정한 일이란 '그 자체로서 자신의 목적이 될 수 있을 만큼 가치있는 활동'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 page. 175

저는 아직도 찾고 있습니다. 물론 현실의 저와 적절한 Trade-off를 맞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제가 크게 감동받은 문구는 '그 자체로서 자신의 목적이 될 수 있을만큼 가치있는 활동' 이라는 겁니다. 

 

3막 '나로서 살다' - 저장과 공헌 : '아낌없이 주어라! 그래야 아름다운 부자다.'

"숲의 낙엽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안식을 위해 치르는 의식의 산물이다. 동시에 낙엽은 숲 공동체가 서로의 삶을 부양하기 위해 내어놓는 저장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들은 서로를 부양할 줄 안다."
- page. 209

"...그 외에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숲의 낙엽처럼 그들이 살고 다음 세대가 살아갈 터전 위로 자신의 노동으로 이룬 가치를 되돌리고 있습니다. 쌓은 것이 얼마나 되든 그들은 모두 나무처럼 아름다운 부자입니다. 나무들처럼 자신의 노동에 정직하고 그것을 다시 되돌릴 줄 아는 아름다운 부자가 많아질 때 사람의 숲도 더 풍요로운 공간이 되겠지요. 내가 그럴 수 있고, 그대가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은 결코 생각만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 page. 210

저자는 나무는 가을이 되면 다음 해의 나와 주변의 다른 이들을 위해 잉여 자본을 다 버린다고 합니다. 여기서 잉여 자본은 나뭇잎이 되겠지요. 그리고 그 나뭇잎은 겨울을 거치며 그들에게 또 다른 공동의 비옥한 토양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공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꿈이지만 후에 능력이 된다면 사회 공헌적인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독서모임을 통해 배웠던 고려, 조선 시대 양반 사대부들의 재산 축적에서부터, 그리고 현 시대 재벌들의 엄청난 재산에 이은 부익부 빈익빈을 직접 사회적으로 보고 느끼면서 이러한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숲이 보여주는 나눔의 지혜. 함께 가고자 하는 조용한 그들을 보며 저의 생각이 더 확고해짐을 느꼈습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도 된다. 하지만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
-다보스 포럼,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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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막 22장에 이르는 이 책 중에서 제가 가슴으로 느꼈던 4가지 부분을 공유했습니다.
이 책의 서문을 들어가기 전, 나오는 한 문장을 남기며 이 책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길 위에 서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길을 잃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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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마주하고 잉카 문명 위에 서다
김지희 지음 / 즐거운상상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책 선택을 잘했다는 판단이 들은 것은 작가의 글의 다음과 같은 문구를 발견했을 때였다.
 

"세계 문명 지역을 답사하면서 가장 가슴에 와 닿은 것은 그동안 우리가 지나치게 서양 중심의 시각에서 세계를 바라보았다는 사실이다. 근대 이전까지 동양의 문화가 세계 문화를 주도해 왔으나 근대 이후 서양 제국주의에 의해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이 식민 지배를 받게 되면서 역사는 철저하게 서양인의 잣대로 쓰여졌다. 결국 우리는 지금도 서구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뉴스를 들으며 그들의 시선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자고 하면서도 얼마나 서구적 물질주의에 의한 잣대로만 상대방을 평가해왔는가. 진정한 역사의 평가와 문명의 평가는 그들 자신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야만 했다. 나와 다른 이와의 오해와 편견, 선입견 내지는 고정관념이 없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먼저 이해해야 하고 그 출발은 상대방의 입장과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의 4대 문명을 모두 돌아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유적 그 자체는 훌륭하나 그저 유적으로만 남아있을 뿐 ‘사람은 없다’ 고 설명한다. 죽은 듯 적막하기까지 하다고 했다. 하지만 마야, 아스텍, 잉카 문명 유적에서는 원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책은 남미의 대제국으로 건설되었던 고대 잉카제국 문명의 흔적을 나라 별 지역 별로 찾아서 글과 사진으로 적절히 설명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기행문과 같이 편하게 쓰인 저자의 문체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카 문명에 대한 전반적인 개론서 수준을 원했지만 단지 여행기에 불과했다는 점에 대해서 아쉬운 면이 없진 않다. 유물보다는 저자가 찾아본 유적지에 대한 사진이 많았다는 점에서는 그곳에 갈 수 없는 이를 위한 간접체험 용으로는 적합했다는 평가 또한 하고 싶다. 

 

책을 기행문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 책의 느낌이 문명을 찾아 나선 역사책인지 여행책인지에 대한 구분이 모호했다. 잉카 문명의 유적과 유물 대부분이 남아있다는 페루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페루에 남아있는 잉카의 수도 쿠스코를 통해 잉카 문명 이전의 문명과 잉카 문명이 멸망할 때까지의 과정, 잉카 문명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잉카 문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들의 소개와 설명이 이어진다.  

루 이후서부터는 볼리비아, 콜롬비아, 에콰도르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데, 이후부터는 잉카 문명의 이야기는 약해지고 19세기 남미 지역 독립운동과 혁명가들에 대한 이야기, 저자가 돌아본 지역에 대한 관광 소개 등이 나와 있어 제목과 조금 걸맞지 않다는 느낌도 들었다.
 

또한 군데군데 나오는 저자의 사적인 이야기는 기행문으로서는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굳이 서술할 필요는 없었을텐데 라는 생각 또한 가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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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을 때 - 감성 포토에세이
신미식 글 사진 / 푸른솔 / 200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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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신미식 씨의 포토 에세이이다.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뉴칼레도니아와 한국 그리고 그 외에 각종 여행지들(미국의 뉴욕 타임 스케어, 노르웨이의 베르겐, 벨기에, 캐나다의 벤쿠버 섬, 에디오피아의 다나킬) 을 여행하며 찍었던 풍경, 동물, 식물, 사람의 표정, 행동 등 특정 순간 속에서 자신이 가슴으로 느꼈던 울림 내지는 감동을 짤막한 글로 소개하는 책이다. 박광수 씨의 ‘광수생각’ 과 비슷하나 특정 목적과 전체적인 컨셉 속에서 구성을 보이는 책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사진기로 담았던 곳곳의 여행지에서의 느낌을 단지 지역별로 나눠 자유롭게 나열해놓은 듯한 느낌이 크다. 저자의 책을 추천해주는 글에서도 나와 있듯이 작가의 작업은 사진 비평의 영역이 아닌, 큰 얘기를 하는 사람도 아니고 사진 실력을 보여주려는 사람도 아닌, 그가 의도하였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그의 작업 태도는 그저 ‘가벼운 마음’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사진가도 작가도 그렇다고 기자도 아닌 다른 방법 혹은 스토리 텔링의 기술 상으로 볼 때 아마추어적인 홀가분한 태도를 취한다고 추후 설명하면서 사람의 감수성에서도 바로 ‘초저녁’의 감수성. 소년, 소녀적 감수성을 일관되게 건드리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위 책을 쓴 작가의 스토리 텔링과 사진 기술에 대해 추천의 글은 다음과 같이 한마디로 축약하기도 한다. ‘그의 카메라는 날카로운 편이 아니라 부드러운 면봉의 텃치로 세상을 묘사합니다’ 라고.

그런 마음으로 가볍게 읽어볼 수 있는 책이다. 포토 에세이임에도 ‘읽어볼’ 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이 책은 사진 속에서 저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며 이 사진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이 느끼지 않니 라고 내게 긍정의 반문을 던지는 듯한 느낌을 가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보는 포토 에세이가 아닌 읽는 포토 에세이이다.

특정 개념에 대해 누구나 각자 가치판단 기준을 가지고 산다. 여행도 그렇다. 적어도 우연찮게 집어든 이 책에서 나는 저자의 여행관에 대해 가슴깊이 공감했다. 저자는 책 어느 부분에선가 이렇게 말한다. ‘여행은 떠남이 아닌 또 다른 만남의 시작’ 이라고. 저자의 에세이를 읽으며 그가 시장 바닥에서 과일을 살 때도, 길거리를 지나가는 아이의 눈망울 속에서, 지나가며 우연찮게 보았던 사람들의 일상 모습에서 그렇게 자기 자신과 그리고 그들과 마음으로 또 다른 만남을 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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