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공부는 무엇보다 자유에의 도정이어야 한다. 자본과 권력, 나아가 습속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야 비로소 공부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세상이 곧 공부다.’ 우리는 이런 인생을 관조하는 듯한 얘기를 많이 듣는다. 인생공부, 인생경험 등. 하지만 솔직히 까고 말해 누가 공부를 이런 것이라고 하겠는가? 설마 어머니께서 부엌에서 양파 까는 것, 김치 담그시는 것을 보고 공부라고 말씀하실까? 아니다. 이렇듯 우리는 삶과 공부를 무의식적으로 분리시켜 놓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고미숙 선생님께서 이 책을 통해 강조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다. 공부란 무릇 학교에서 몇 가지 과목으로 분리시켜 놓은 것이 아닌, 대학에서 전공 몇 가지로 분리시켜 놓은 것 또한 아닌, 우리 생활 속에서 느끼는 감정, 일상의 경험 등 모든 것이 바로 공부이며 또한 끊임없이 배우고, 아낌없이 남에게도 줘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고미숙 선생님은 먼저 이 사회에서 말하는 학교라는 존재. 학교교육의 폐단과 그 속에서 자라온 우리들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교육열 자체야 뭔 죄가 있겠는가.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것, 그거야 오히려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에 속하는 것을. 문제는 그런 열망이 오로지 학벌과, 그리고 학벌은 다시 거액의 연봉과 고스란히 오버랩된다는 사실에 있다.” 

-p.17 ‘프롤로그’  

   “학생들은 교수를 스승으로 여기지 않고, 교수들 역시 학생을 지적 동반자로 여기지 않는다. 한마디로, 지금 대학에는 사제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그 이전에 사제관계라는 말 자체가 사라졌다. 사제관계가 없는 ‘대학’(大學)이라? 형용모순!” 

-p.23 ‘프롤로그-대학은 죽었다!’ 中 

 근현대사를 거쳐 형성된 이 사회에서 우리는 유치원부터 엄마 손을 붙들고 간다. 그리고 초등학교까지는 그렇게 간다. 그렇게 중, 고등학교를 거쳐 아무런 사유나 눈꼽 만큼치의 의심도 없이 수능을 보고 대학엘 간다. 이 책을 통해서면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나 또한 점수나 서열, 여러 객관적, 사회적 통념들을 참고서 삼아 대학이라는 곳에 당연하다는 듯이 진학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한 줄 알고 있었고, 심지어 나의 부모님조차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아저씨, 아주머니들이기에 그분들도 그렇게 내게 가르쳐주셨다. 

위에서 인용한 문구들은 나의 짧은 인생에도 분명 적용될 수 있다. 나의 부모님은 못 배우셨던 분들이기에 여느 대한민국의 사람들처럼 자식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욕망이 컸다. 그 욕망이 어떻게 발현되느냐가 문제인데 그저 사회가 시키고 보여주는 대로 따라갔다. 왜냐하면 교육에 관해 깊이 사유하고 생각을 해보기엔 당신들의 일상이 먹고 살기 급급했으니까.  

다시 돌이켜봤을 때 아쉬운 점은 학창시절 당시 어떠한 선생님도 대학에를 가야 한다는, 그러면 왜 가야 하냐는, 현실적 고정관념 이상의 사고를 우리에게 전파해주시는 분들이 한 분도 없으셨다는 것이다. 오히려 수능을 보고 나서 너는 이 점수이니 이 학과를 가라는 의견을 주시던 입시담당 선생님도 계셨다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이 경험했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까지의 경험을 비추어봤을 때, 고미숙 선생님의 대학에서의 학생과 교수 관계. 대학원에서의 지도교수와 대학원생 간의 ‘이해’ 관계를 역설하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씁쓸해졌다. 요즘 학생과 교수 관계처럼 진정한 사제관계가 형성되기 어려운 아이러니한 현실을 지난 20대동안 무던히도 많이 경험했던 까닭이었다. 

“오직 대학을 위해, 대학에 가서는 학점, 토익, 고시, 취업, 유학 등 아주 구체적인 실리가 눈앞에 있어야만 공부를 한다...(중략)... 

우리 시대는 성차별은 사라진 대신 경제적 가치 외에는 아무것도 사유하지 못하는 지적 주체들을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런 것은 공부가 아니다!” 

-p.40 ‘1부_학교, 공부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리다’ - 학번 공화국 中 

‘경제’ 라는 관념은 우리 사회 속의 다양한 가치들의 절대 우위에 있으며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고미숙 선생님의 말씀처럼 현대 시대의 청년들은 소비 가치 우위의 일상과 생활 속에서 정신은 이미 늙어버렸고 열정과 꿈도 잃어버린 정신적 노인들이다. 어디 그 뿐인가?  

 

"누가 더 잘하고 못하고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공부란 궁극적으로 자기를 넘어서는 것일진대, 거기에는 우와 열이 있을 수 없다. 그저 자기가 선 자리에서 한 걸음씩 나갈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할 따름이다. ‘남이 한 번 해서 그것에 능하다면 자기는 백 번 할 것이며, 남이 열 번 해서 그것에 능하다면 자기는 천 번 할 것이다.(중용)’ 밥을 먹고 물을 마시듯 꾸준히 밀고 가는 항심(恒心)과 늘 처음으로 돌아가 배움의 태세를 갖추는 하심(下心). 공부에 필요한 건 오직 이 두 가지 뿐이다. 

-p.49 ‘1부_학교, 공부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리다’ - 공부엔 다 때가 있다? 中 

상호 간의 끊임없는 발전을 위해 경쟁은 분명히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진리처럼 듣곤 한다. 그리고 분명히 경쟁은 필요하다. 하지만 경쟁이라는 가치가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교육으로부터 분명히 배워야 한다. 내 옆에 앉은 친구를 밟고 올라서야 내가 좋은 점수를 받고 좋은 대학에를 가며 성공으로 가는 길이라는 좁은 사고 속에서만 살아가는 10대와 20대.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경쟁 위주의 교육이 사실은 모두를 죽이는 교육일수도 있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이 우리 삶과 가치관을 바꾸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다고 이론적으로는 말한다. 한 과목에서 1등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알고 공부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예컨대 학교 윤리 시험에서 100점을 받은, 잘 교육받고 공부한 아이가 사실은 반에서 한 아이를 왕따로 몰고 괴롭힌다는 상상을 해보자. 과연 그 아이는 교육과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결코 지금 우리의 학교 현실 속에서 없다고는 말 못할, ‘불편한 진실’ 이다. 나 또한 지난 학창시절 경험했던 진실이니까. 

  저자 고미숙 선생님은 이러한 불편한 진실 속에서 어떠한 공부법이나 처세법을 내놓지는 않는다. 고전 평론가답게 고전 속에서 그 대안을 보여준다. 하지만 나는 고미숙 선생님이 언급하신 암송과 구술, 글쓰기보다도 독서, 그리고 고전을 읽자는 말이 더 와 닿는다. 

“학교식 공부법은 애초부터 독서는 그저 개인적 취미나 교양의 영역이고, 공부는 그것과 달리 구체적이고 실용적 지식을 배우는 것이라는 이분법을 유포시켜왔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선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p.55 ‘1부_학교, 공부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리다’ - 책과 패스트푸드 中 

“요즘 대학생들의 독서력은 실로 심각하다...(중략)...그들에게 지식이란 책을 통해 탐구하는 대상이 아니라 인터넷에 떠다니는 검색 다발일 뿐이다.” 

-p.58 ‘1부_학교, 공부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리다’ - 독서는 고리타분해! 中 

 이외수 선생님도 역설하셨다. 예전에는 책을 읽지 않으면 대학생 축에도 끼지를 못했는데 요즘에는 책을 읽지 않아도 다 대학생이 될 수 있다고. 요즘 우리는 책보다도 TV에서 세상을 배운다.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고 그것이 대세가 된다. 고미숙 선생님은 독서란 공부와는 별개이고, 요즘 대학생들이 ‘큰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 얼마나 미달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다산 정약용이 말했듯이, 독서는 ‘세상을 경륜하는 것은 물론 귀신과 통하고 우주를 지탱하는’ 위대한 공부다. 이것만 있으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책이 내 인생의 자산이 될 테니까 말이다.” 

-p.107 ‘2부_고전에서 배우는 ‘미-래’의 공부법’ - 책과 우리 시대 中 

“송나라 때의 유명한 기철학자 장재가 말했듯이, ‘배움이 크게 이롭다는 것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기질을 바꿀 수 있어서다.’ 그리고 그 배움의 핵심은 다름 아닌 독서다.” 

-p.109 ‘2부_고전에서 배우는 ‘미-래’의 공부법’ - 책과 우리 시대 中 

"우리 시대에 공부란 책을 읽는 것이고, 책 중에서도 고전과 접속하는 것이다. 독서는 결코 선택이나 취미가 아니라 필수며, 특히 고전 읽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 공부는 말짱 도루묵이다. 그러므로 뭔가 다르게 살고 싶다면, 가장 먼저 자신이 ‘호모 부커스’(책 읽는 존재)임을 환기해야 하리라.” 

-p.122 ‘2부_고전에서 배우는 ‘미-래’의 공부법’ - 책과 연애, 그 은밀한 접속 中 

독서를 해야 한다. 또한 편독하지 말아야 하며, 다양한 분야의 텍스트를 접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 속. 사랑, 죽음과 질병, 사회적 담론 등을 성찰하며 스스로 애써 많이 배워야 한다. 고미숙 선생님은 지난 시절 열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갔던 이들의 말을 빌려 강조한다. 그리고 독서를 포함한 글쓰기, 암송, 구술, 일상으로부터 배우기 등을 통해 결국 ‘앎’ 이라는 것은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아무런 실용적 목적이 없이도 공부할 수 있을 때, 그 때 공부는 비로소 최고의 지식이자 사회를 변혁하는 무기이면서 동시에 운명을 통찰하는 ‘지혜의 수행’이 된다고 말한다. 결국 공부로써 깨닫게 된 지식은 어느 특정한 사람의 사적 소유도 아닌 것이고, 권력의 수단도 아닌, 바로 우리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공부로써 깨닫는 과정에서 만나는, 일상의 순간마다 만나는 이들은 모두 나의 스승이 될 수 있고 나 또한 그들의 스승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는 배움에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수치심을 느끼는 경우는 절대 없다. 그래서 스승의 의미를 재 정의한 고미숙 선생님의 말이 흥미롭다. 스승은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훈계하는 대상이 아닌, 스스로 애써 배우려는 열정을 주변 사람들에게 감염 및 촉발시키는 사람. 바로 누구보다도 가장 열심히 배우는 이라고. 

“에피쿠로스는 말했다. ‘행복해지기 위해 어린아이에게 더 기다리라고, 노인에게 이미 지나갔다고, 노예나 매춘부에게 포기하라고 말해선 안 된다. 누구나 지금, 그 자리에서 행복해야 한다.’ 공부 또한 그러하다. 공부하면 이다음에 훌륭한 사람이 되고, 뭔가를 얻게 될 거라고 말해선 안 된다. 공부하는 그 순간, 공부와 공부 사이에 있다는 바로 그것이 공부의 목적이자 이유여야 한다. 고로 공부는 존재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p.192 ‘3부_인생의 모든 순간을 학습하라.’ - ‘사이’에서 존재하기 中 

개인적으로 이 구절이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인상 깊었다. 공부했을 때 무언가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닌, 자신의 행복을 위해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 곧 목적이자 이유여야 한다는 것. 그래서 공부는 곧 평생 배움이 가능하다는 것. 이것이 어쩌면 우리 사회의 공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그 이상의 사고로 나아갈 수 있는 명백한 텍스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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