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게 길을 묻다 - 희망 더 아름다운 삶을 찾는 당신을 위한 생태적 자기경영법
김용규 지음 / 비아북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현재로서 자기계발서를 즐겨읽는다 라고 하진 않지만, 지난 2,3년간은 꽤나 자기계발서를 읽어보는 편이었습니다. 흔히 자기계발서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늘상 하는 말처럼, 중,고등학교 도덕/윤리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로 저는 지루함을 느껴갔고,
이들이 말하는 것들에 절대적인 맹신은 피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오히려 더 강해졌습니다.
그런 류의 책을 읽을 때마다 소위 말해 "뻥 치시고 있네~ 진짜?" 사상으로 책을 일게 되었죠.
물론 그 중에서도 (주관적인 판단 하에서) 급이 다르다고 평가되는 책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이 책도 그런 책 중에 한 권입니다. 이 책의 표지에는 숲을 상징하는 녹색 바탕에 부제에 이렇게 써 있습니다.

"인생 경영 철학"

그리고 책을 설명하는 부제 밑에 "당신을 위한 생태적 자기경영법" 이라고도 써 있구요.
이 책에서 수긍할 수 밖에 없고 때때로 가슴의 울림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저자의 힘든 역경을 통해 성공을 그린 '성공시대 이야기' 도 아니요, 저자가 큰 깨달음을 얻고 가르치듯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저 저자는 우리 주변의 자연이 어떻게 순환되는 지를 통해 그 사실 자체를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논리적으로 결부시켰을 뿐이었으니까요.
그 중 읽으면서 몇 가지 가슴을 치며 들어왔던 부분을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막 '태어나다' - 숙명 : "숲에는 태어난 자리를 억울해 하는 생명이 없다."

저자는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자기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한가지가 꼭 하나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탄생'입니다. 태어난다라고 하는 것은 영어로도 'be born' 이라고 수동태로 표현할 만큼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문화적으로도 증명하는 것입니다. 저는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의 설명을 돕기 위해,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마음을 나누는 편지 10/15자 김용규님의 편지' 의 글을 조금 인용해보려고 합니다.

"바위 위에서 태어난 느티나무에게 바위는 자라는 내내 장애였으리라. 그의 줄기를 닮은 뿌리가 바위를 끌어안았다. 마침내 장애였던 바위가 거센 바람으로부터 그를 지켜주는 원군이 되었다. 이 숲 그 느티나무 아래 서면 사람들은 모두 그의 삶의 경탄한다."
출처 :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마음을 나누는 편지 '김용규님의 글'

10/15자 저자의 편지에 바위에 뿌리를 내린 느티나무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자는 제목을 '우리에게 내려진 형벌과 장애가 대하여' 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셨지요. 저자는 글에서 식물은 움직이지도 못하는 생명체는 절대 불평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으려 애를 쓰고 장애마저 품어 안으려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도 그것은 숙명입니다. 인간 또한 나무처럼 부모의 몸을 빌려 어느 시간대에 태어나 그곳에서부터 자신의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 환경이 비옥하든 척박하든 태어난 자리에서 그의 삶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힘겨운 자리에 태어난 억울함이 있다고 해도 어쩔수 없습니다."
- page. 36

"아직 이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는 그대라면 억울한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조금 더 숲의 가르침에 귀 기울여 보면 좋겠습니다. 숙명이 지천인 숲이라지만, 생명 각자는 발아한 그 자리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나는 아직도 주어진 자리가 억울하다고 분노하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 page. 38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고산지대에 사는 소나무는 구부정하니 키를 작게 하고 세찬 바람을 이겨내려고 애씁니다. 그리고 심지어 울창한 나무 아래에서 태어난 작은 식물은 어떻게 해서든지 빛을 더 받아보려고 잎을 넓게 펼치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새삼 부끄러워졌습니다. 저는 지난 시간동안 누구보다 컴플렉스에 사로잡혀 살아왔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지난 1년 전, 나침반 프로그램 1기를 수강하며 선생님들과 1기 동기들에게 했던 저의 소개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어두움에 사로잡혔던 제 학창시절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잘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던 학창 시절. 두렵기만 하고 싸움박질 투성이였던 그 시절. 게다가 IMF 시기를 겪으면서 가세가 기울어 경기도 근방으로 이사가야만 했었던 그 때의 저는 제 주변 환경에 대한 불평불만 투성이었습니다.
음식점을 하시던 아버지에게 대들다가 손님들 있는 앞에서 흠씬 두들겨 맞고는 집 근처 산 속으로 도망가서 하룻밤을 지새우고 내려온 기억도 있습니다.
그 때의 저를 회상하다 보니, 당시 산 속에서 하룻밤을 지새울 때 제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수많은 나무나 풀들은 저보다 훨씬 철들고 훨씬 멋진 존재들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더군요. 

 

2막 '성장하다' - 꿈 : "나무에게는 빛, 사람에게는 꿈"

"식물은 지구로 유입되는 태양 에너지의 0.2%만으로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마찬가지로 꿈은, 우리 마음의 0.2%에 불과한 작은 자리를 차지할지라도,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고 우리를 고난에 맞서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 됩니다."
- page. 65

식물의 에너지는 단지 태양 에너지의 0.2%로 만들어지는 것에 불과하지만 우리 삶의 전반적인 근원으로 작용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의 단지 0.2%에 불과하지만 꿈은 그만큼 중요하다고 하는 비유. 저는 이 비유에서 그만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레오 버스카 글리아의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Living, Loving, Learning)』에서 버스카 글리아는 "때로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때가 있다고" 고 했습니다.
저는 당시 그 글귀를 읽고 반신반의 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상황에 따라서 절대적으로 작용할 때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추상적인 단어와 개념.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우리 삶 자체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보거든요.

"...식물은 이렇게 매일 빛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공평하게 비추는 햇살을 생명 저마다의 처지와 환경에 맞게 맞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일 그렇게 자기를 자라게 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도 그래야 합니다. 사람도 꿈을 좇아 살아야 행복의 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빛을 잃은 모든 생명이 그 순간부터 시들듯이 꿈을 잃은 사람도 그 순간부터 시듭니다. 빛을 찾을 수 없는 나뭇잎이 누런 빛으로 바래가고 마침내 시들어 낙엽으로 떨어지듯이 빛이 흐르지 않는 삶은 희망이 없는 삶입니다....(중략)"
- page. 67

"...나무와 들풀은 오로지 자신을 꽃 피우려는 꿈, 그래서 어떻게든 열매를 맺는 것으로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이유를 증명하려 합니다. 나무는 숲을 모두 지배하려는 욕심을 품지 않습니다. 들풀은 제 자리가 아닌 곳을 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갖는 꿈도 그렇게 나무를 닮아서, 들풀을 닮아서 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로지 자기다움에서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생명체에게 꿈이란 하늘 한 자락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 것임을 우리 모두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 page. 69 
 


2막 '성장하다' - 상처 : "담담하게 지니고 있는 상처야말로 그다움 향기다."

"...음나무나 두릅나무 입장에서 보면 무척 괴로운 일입니다. 결국 동물들의 성가신 학대로부터 자신을 변형하기 위한 무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몸 일부를 변형시켜 가시를 만들고 키우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오래자란 나무보다 어린 나무일수록 가시는 도드라집니다....(중략)...한참 생장하는 어린 그들에게는 동물의 접근이 무척 두려웠을 테지요. 그들에게 가시는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강력한 방어수단인 것 같습니다.
나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직 세상의 불합리에 맞설 힘은 갖추지 못했는데,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은 말은 많았던 모양입니다."
- page. 85

저자는 나무의 상처를 가시의 흔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시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사람이 가시를 달고 있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응축된 에너지를 쏟아낸다는 의미로구나. 그 좌절과 절망의 마음을 토하는 것이로구나. 그것으로 자기의 분노를 응고시켜 세상에 맞서는 것이로구나....
(중략)
...그러나 사람이건 나무건 가시가 가득하면 가까이 하기에 꺼려집니다. 그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결국 가시를 가득 단 자는 더불어 살기 어려운 대상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그 분노를 자신을 넓히고 키워내는 에너지로 바꿔야 합니다. 가시를 다는 것이 분노와 좌절의 에너지라면, 가시를 떨어뜨릴 수 있을만큼 자신의 키를 키우고 줄기를 살찌우는 것은 자기 성장의 에너지입니다."
- page. 87

위에서 제가 학창시절에 가졌던 컴플렉스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직 저는 그 가시를 떨어뜨릴 수 있을만큼 제 키를 키우고 줄기를 살찌웠다고 보기엔 '아직' 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름 긍정적인 방향으로 열심히 노력하지만 그래도 "아직" 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때로 어떤 상황에서는 그때의 컴플렉스가 크게 영향을 주어 남들이 놀랄만큼의 정색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 다 리셋(Reset) 시켜버리고 싶을 만큼의 두려움에 빠지기도 하고, 오히려 제 가시를 곧추 세울 때도 있습니다.

"시인 신경림 선생은 '한 군데 부러졌거나 가지를 친 나무에, 또는 못나고 볼품없이 자란 나무에 보다 실하고 단단한 열매가 맺힌다' 라고 했습니다. 시인 정호승 선생은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면서 '상처많은 풀잎들이 손을 흔들고'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고 했습니다. 알고보면, 누군가 담담하게 지니고 있는 상처야말로 그다운 모습이며 그다운 향기입니다."
- page. 89 
 


3막 '나로서 살다' - 일 : "식물의 방식으로 일할 수 없다면 참된 일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가슴 한편을 짓누르는 공포로 작용합니다. 이 공포는 마치 나무의 몸뚱이를 파고드는 버섯과도 같이 무섭습니다. 자신의 몸뚱이에서 버섯이 피기 시작하면 나무는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중략)
몇몇 가지를 넘어 줄기에까지 버섯이 피기 시작하면 위험은 더욱 커집니다. 이러다가 이듬해에는 단 하나의 가지에서도 잎을 피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도 우리는 이 두려움을 껴안고 나와 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섭니다."
- page. 167

20대 중,후반에 들어서면서 저의 가장 큰 고민이자 두려움은 바로 밥벌이입니다. 어느 누구나 자신의 꿈과 밥벌이가 일치하기를 원합니다. 저도 원하구요. 그러다 보니 두려움이 커집니다. 위에서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저라는 나무의 버섯은 바로 밥벌이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꿈과 밥벌이가 일치하기를 원하는 삶. 거기서 현실의 나에게 느끼는 무기력감은 때때로 내가 남들과는 다른 허무맹랑한 삶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았을 때, 내가 좋지 않는 결과를 보인다면, 결과적으로 그들에게는 단지 허무 맹랑한, 객기어린 생각만 했던 무능력한 이로 보일거라는 두려움이 자주 제 가슴을 짓누릅니다.

"다시 말하지만 생명 모두는 일을 하며 살도록 운명지어졌습니다. 우리 또한 매일같이 일을 하며 살도록 태어났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 일이 시시포스의 형벌과도 같을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기를 실현할 수 있는 징검다리와도 같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나로서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진정한 일이란 '그 자체로서 자신의 목적이 될 수 있을 만큼 가치있는 활동'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 page. 175

저는 아직도 찾고 있습니다. 물론 현실의 저와 적절한 Trade-off를 맞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제가 크게 감동받은 문구는 '그 자체로서 자신의 목적이 될 수 있을만큼 가치있는 활동' 이라는 겁니다. 

 

3막 '나로서 살다' - 저장과 공헌 : '아낌없이 주어라! 그래야 아름다운 부자다.'

"숲의 낙엽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안식을 위해 치르는 의식의 산물이다. 동시에 낙엽은 숲 공동체가 서로의 삶을 부양하기 위해 내어놓는 저장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들은 서로를 부양할 줄 안다."
- page. 209

"...그 외에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숲의 낙엽처럼 그들이 살고 다음 세대가 살아갈 터전 위로 자신의 노동으로 이룬 가치를 되돌리고 있습니다. 쌓은 것이 얼마나 되든 그들은 모두 나무처럼 아름다운 부자입니다. 나무들처럼 자신의 노동에 정직하고 그것을 다시 되돌릴 줄 아는 아름다운 부자가 많아질 때 사람의 숲도 더 풍요로운 공간이 되겠지요. 내가 그럴 수 있고, 그대가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은 결코 생각만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 page. 210

저자는 나무는 가을이 되면 다음 해의 나와 주변의 다른 이들을 위해 잉여 자본을 다 버린다고 합니다. 여기서 잉여 자본은 나뭇잎이 되겠지요. 그리고 그 나뭇잎은 겨울을 거치며 그들에게 또 다른 공동의 비옥한 토양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공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꿈이지만 후에 능력이 된다면 사회 공헌적인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독서모임을 통해 배웠던 고려, 조선 시대 양반 사대부들의 재산 축적에서부터, 그리고 현 시대 재벌들의 엄청난 재산에 이은 부익부 빈익빈을 직접 사회적으로 보고 느끼면서 이러한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숲이 보여주는 나눔의 지혜. 함께 가고자 하는 조용한 그들을 보며 저의 생각이 더 확고해짐을 느꼈습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도 된다. 하지만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
-다보스 포럼,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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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막 22장에 이르는 이 책 중에서 제가 가슴으로 느꼈던 4가지 부분을 공유했습니다.
이 책의 서문을 들어가기 전, 나오는 한 문장을 남기며 이 책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길 위에 서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길을 잃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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