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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스쿨러 - 길이 학교고 삶이 텍스트인 아이들의 파란만장 삽질만발 탐구생활, 2009년 청소년저작 및 출판지원사업 당선작
고글리 지음 / 또하나의문화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인상깊은 구절]
“누군가 도덕 시험에서 100점을 맞았다는 사실이 그 아이가 같은 반 친구를 따돌려 본 경험이 없음을 뜻하진 않는다는 것을 겪어 본 사람들과, 이건 정말 사람이 못 먹을 음식이라며 속으로 혀를 내두르면서도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본 사람들은 알지. 이런 환경 속에선 믿음이나 배려가 생기기 어렵다는 걸. 내 삶은 왜 배운 거랑 다를까, 뭐 이런 음식을 비싼 돈 주고 사 먹느냐며 손님들을 속으로 비웃으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난 대체 뭘까. 삶과 앎과 일이 일치되지 않는 삶 속에서 오는 불신과 불안과 죄책감. 이 책은 그런 내 삶에 대한 고민과 탈주의 작은 보고서야 - 인경”
- 프롤로그 중
[책 소개]
책 표지가 유치하다고, 흔히 보는 센스 있는 제목에 모던한 표지로 무장한 인문학 책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된다고, 또 어린 10대,20대들이 썼다는 이유로 넘겨 짚을 수도 있는 나이 관점에서 이 책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 적어도 세상을 자기 스스로 개척해 나가며 애써 배워나가려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청소년들의 체험담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불량 청소년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사회적 조건(?)' 하나쯤은 가진 10대와 20대들이 쓴 솔직한 기록이다. 프롤로그에 나오는 말처럼 자신들의 삶과 앎이 일치되는 일상을 만들어가고 싶었던 그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용기 있는 기록이다.
로드 스쿨러(Road Schooler). 길이 곧 학교이고 길에서 인생을 배우고 삶을 배우겠다는 아이들이 자칭하는 이름이다. 지금 사회가 만든 제도권의 교육을 충실히 받아온 우리들에게는 그 얼마나 발칙하고 말도 되지도 않는 생각이겠는가?
하지만 내게는 꽤 감명 깊게 다가왔다. 그것은 그 친구들이 탈 학교를 했다는, 단순히 그들의 과감한 선택이 멋져 보이는 치기 어린 생각만은 아니었다. 내가 감명 깊었다는 이유는, 그들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나가고자 하는 마음가짐이었다. 나를 포함한 어느 누구도 의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지난 학창시절 속에서 제도권 교육에 끊임없이 회의감을 느끼며 ‘왜?’ 라는 질문을 던졌던 그들이었다.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말과 행동을 보였다. 보충수업과 밤 10시까지 학교에 묶어두는 야간 자율학습을 의무적으로, 아니, 강제적으로 우리들의 입으로 쑤셔 넣었다. 여기서는 이러한 것들을 ‘인스턴트 플랜’이라고 부르겠다. 정신 건강에 해를 끼치는 ‘인스턴트 플랜’.
‘그냥 믿고 따라가 볼까?’
눈 딱 감고 내 발이 끌려가는 대로 길을 걸어가면 대학이라는 곳을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몇 달간 글 쓰는 것도 멈춰 버렸다. 학교는 이에 맞장구를 치듯 더 많은 인스턴트 플랜을 생산하고 우리들을 더 많이 괴롭혔다.”
-p.53 내가 만난 로드스쿨러 / 성훈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은 곧 우리들의 고정관념이었고 부모님들의 고정관념이기도 했다. 고정관념을 벗어나면 사람은 거부감을 느끼듯 그들도 홀가분한 정도에 이르기까지 부모님 또는 가까운 주변인들과 만만찮게 대립하는 시간과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도 그런 과정 선상에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브로스 레드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두려움보다 더욱 중요한 무언가를 선택한' 용기가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생각하는 삶을 제대로 살아보고 싶은 자기애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인생 또한 살아보고 싶은 대로 후회 없이 살고 싶은 마음 말이다.
내가 감명 깊었던 두 번째 이유는 나의 현재 상황과 비슷해서 더 공감할 수 있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나 또한 지난 3년여 간 제도권 안에서 온실 속의 화초로 지내다가 과감히 운명을 결정하고 나온 지 3개월이 지났다. 선택해 본 사람은 안다. 누구든 무모한 선택이었다고 할 지 모르겠지만 당사자에게는 선택하기까지 두려움보다 선택하고픈, 선택해야만 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을. 그리고 현실적인 대안으로 말하는 모든 사실들이 대부분 다 맞는 이야기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 마음 속으로 엄습하는 두려움은 때론 견딜 수 없이 힘들다는 것을.
이 친구들은 자신들을 '고글리' 라 칭한다. 고정희라는 여류시인을 기리는 청소년 문학 작품전을 통해 만난 뜻이 통하고 마음이 맞는 친구들이 글도 쓰고 문화작업도 하는 마을을 만들었다는 뜻이란다. 이 친구들은 그동안 많은 일들을 해 왔다. 노인들을 위한 잡지 제작의 일부터 신라의 역사를 공부해보기 위한 일환으로 각자 신라의 동요인 ‘향가’를 한 곡씩 선택한 후, 그 향가에 맞는 경주 여행 계획을 세우고 공부를 했다. 이 얼마나 멋진 모습인가! 자신이 알아가는 과정에서의 즐거움이 바로 공부라는 것을 이 친구들은 신라 여행을 통해 여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성취의 즐거움보다 과정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공부의 참 맛이라는 것을. 내 개인적으로도 이 친구들이 신라에 대해 공부해 나가고 스스로 깨달아가는 과정에서는 감동과 감탄을 숨길 수가 없었다. 가끔은 나보다도 훨씬 성숙하고 멋진 친구들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까.
“그중에서도 고글리가 한 해 동안 주력한 프로젝트는 '여행을 통한 배움'을 모토로 하는 여행스쿨이다. 길에서 역사를, 인물을, 삶을 배우고 나를 찾아가는 여행, 논문과 자료를 뒤지고, 이야기를 만들고, 경주 곳곳을 누비고 신라의 흐름을 쫓으며 우리는 우리 방식으로 공부했다. 신라를 공부하다가 신라를 배경으로 한 소설 『서라벌 사람들』을 쓴 심유경 작가를 초대하여 신라에 대해, 좋은 글쓰기에 대해 특강을 듣기도 했다.”
-p.47 텐트하나 쳐놓고 마을이라네 / 산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이렇게 질문하고 답을 찾는 과정은 신라의 세계관을 찾는 일인 동시에 내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계기였다. 현대의 문화를 아무런 의심 없이 수용하고 그것만이 옳다고 단정 지었던 내 태도를 돌아볼 수 있었다. 도덕과 비도덕을 판단하는 윤리적 잣대가 얼마나 많은 순간 나를 제어하고 있는지 그 빙산의 일각이나마 알게 되었다.”
-p.110 아주 특별한 입학식:신라? 신나! / 산
“수학도, 과학도, 국어도, 역사도, 사회도 모두 재미있는 학문이다. 그러나 그게 정말 뭘 알고, 재미있게 느낀 건지는 모르겠다. 시험 점수가 잘 나오면 공부는 으레 재미있어졌다. 이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아는 게 재미있는 게 아니라 목표 점수를 채우고 내가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이 즐거운 거였다.”
-p.118 아주 특별한 입학식:신라? 신나! / 산
개인적으로 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많이 배웠다. 제도 혹은 어느 틀 안에서 정해준 채로 살아가는 것보다 스스로 삶을 개척하고 만들어가는 이들에게서 나는 더 많이 배웠으며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했다. 이 친구들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 모른다. 이들은 검사, 판사가 될 수는 없을 것이고, 교수, 의사, 회계사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안 되면 또 어떠한가? 자신들 스스로 새로운 이름의 직업 속에서 전문가라는 타이틀과 함께 자신만의 깨달음의 길을 걸어갈 그들을 위해 나는 항상 응원할 것이다.
다소 덧붙일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더 다양한 삶의 가치들이 존중받기 위해서라도 제도권의 교육만의 고집보다 다양한 교육 방식 및 관점을 인정해주는 구조적인 수용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친구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만 분명 사회적 통념과 풍족하지 못한 지원으로 사회적 두려움 또한 없진 않을 것이다. 이들이 조금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회에 한 일원으로 성장해 나간다고 생각해보자. 제도적 틀에서 소외받고 청소년으로서 박탈된 삶의 태도를 보이는 소위 '문제아' 학생들에게 또 다른 삶의 대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