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략 소개



“520km의 도보 여행, 그 길 위에서 만나는 나와 세상.”


삶, 그리고 걷기의 인문학




걸음마다 비우고, 한 걸음씩 채우는 삶의 심연


―서울에서 고흥까지 520km 도보 여행은 나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어느새 은퇴라는 시간이 내 앞에 툭 떨어졌다.” 이 낯선 시간은 작가를 황홀한 고행길로 유혹했고, 그 유혹을 은근히 즐기고 싶기에 서울에서 고흥까지 두 발로 느리게 가는 여행을 택했다. 자동차 길로 400킬로미터, 4시간 30분이면 가는 거리를 왜 걸었을까.

《걸음마다 비우다》는 서울에서 전남 고흥까지 열닷새 만에 520킬로미터를 걸어가며 기록한 여정을 담은 인문 에세이이다. 저자는 느린 걸음 속에서 만나는 자연, 역사,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삶과 세상을 재발견하는 과정을 책 속에 오롯이 담아 냈다.

김정호의 『대동지지』(1866)에 따르면, 한성에서 전국 팔도로 나가는 10대 간선도로가 있다. 그중에 충청도·전라도·경상도의 삼남지방으로 가는 길을 삼남대로 또는 삼남길이라고 한다. 삼남길은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길과 상당 부분 겹치고, 소설 『춘향전』에서 어사길(춘향길, 금의환향길)도 이 길을 따라간다. “우리나라에서 도보여행은 자살길이다.”이라고도 하지만, 저자는 육체적 한계를 이겨내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뎌 조선시대 삼남길보다 더 긴 520킬로미터의 고흥길을 완주했다. 또한, 저자는 심리적·정신적 한계를 이겨내며 그가 마주했던 자연과 풍경, 그가 느꼈던 감흥과 사색, 그가 만났던 역사와 사람들에 관한 기록을 한 땀 한 땀 써내려 갔다. 《걸음마다 비우다》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버킷 리스트 하나를 채우기 위한 단순한 개인의 여행기가 아니다. 걷기를 통해 삶을 다시 정의하고, 내면의 평화를 찾는 과정을 담은 사색과 성찰의 기록이다. 빠르게 소비되는 현대 사회의 속도에 지친 당신에게, 이 책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가는 삶의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은 당신에게 묻는다. “걸음마다 비우고, 당신의 삶을 다시 채워볼 준비가 되었는가?”


 



걷기의 미학: 느림의 가치


저자는 “30년이 넘는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는 의식으로서, 탯줄이 묻혀 있고 육체가 성장하고 정신이 태동했던 곳, 언젠가는 되돌아가야 할 곳”인 고흥에 이왕 갈 것이면 “부모에게 물려받은 두 다리로 걸어가” 부모님께 무사 귀환을 알리고 싶었다 한다. 책의 첫 부분에서 작가는 걷기의 느림과 불편함이 오히려 삶의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다고 말한다. 하루에 평균 9시간씩, 40킬로미터 가까이 걷는 동안, 작가는 길 위의 다양한 풍경과 사람들을 관찰하며 자신의 내면과 대화한다. 그는 “속도가 느릴수록 생각은 깊어진다”고 표현하며, 걷기란 단순한 이동을 넘어 자기 성찰과 자연과의 교감으로 이어지는 점을 강조한다.


안양천의 대나무 숲길부터 삼남대로의 옛길까지, 섬진강의 물소리를 들으며 자연의 위대함을 발견하는 작가는 걷는 동안 만나는 풍경과 역사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비행기나 고속버스, 기차를 타고서는 창가에 스치는 사물과 풍경을 소화하기에도 바쁘다. 두 발로 걷는, 보다 느리게 가는 여행일수록 자신을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연과 역사, 그리고 삶의 사색


작가는 삼남대로와 백의종군길, 유배객들의 길을 걸으며 역사를 되새긴다.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길을 따라가며, 그는 장군의 고난과 결단을 떠올리며, 다산 정약용과 김정희 등 조선 시대의 유배객들이 걸었던 길에서 그들의 외로움과 고뇌를 공감한다. 작가는 역사적 여정을 걸으며 과거를 되돌아보며 자신이 걷고 있는 현재의 길 또한 역사의 연장선임을 깨닫는다. 특히 전라도의 들판과 섬진강을 따라 걸을 때, 그는 자연과 역사, 그리고 자신의 삶이 조화롭게 얽혀 있음을 느낀다.


 

길 위의 사람들


걷는 동안 저자가 만난 사람들은 여정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여행길에서 만난 주민들과 나눈 짧은 대화, 길 위의 동행자들과의 우연한 만남은 작가에게 따뜻한 위로와 영감을 주었다. 특히 수원천에서 만난 한하운 시인의 시비는 저자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한센병 환자였던 한하운의 시 「보리피리」를 읽으며, 저자는 소외받은 이들의 고통을 떠올리고 공감한다. 이처럼 길 위에서의 만남은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이해하는 통로가 되었다.


 

고흥 도착: 여정의 끝, 새로운 시작


작가는 서울 집을 나선 지 열닷새 만에 고향이자 안식처인 고흥에 도착한다. 걷기는 끝났지만,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삶의 새로운 방향을 찾는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삶의 무게를 비우며, 새로운 가능성을 채운 여정이었다. 부모님 묘소를 찾아 무사히 돌아왔음을 알린다.


버선발로 뛰어나오실 것만 같은 어머니를 대신해 텅 빈 집 마당 정원에 가득한 잡초 속에서 새와 벌과 나비들만이 작가를 반긴다. 힘들었던 고난을 이겨낸 성취감과 무사히 종주를 마친 안도감, 큰 숙제를 끝낸 해방감, 그리고 기나긴 여정이 끝나버렸다는 아쉬움이 교차하면서 한동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작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견한 삶의 새로운 면모와 사람들의 이야기 속 지혜는 독자에게 ‘귀향’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한다. 《걸음마다 비우다》는 우리가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마음의 고향이 있음을 상기시키며, 길 위에서 자신과 대면하며 얻을 수 있는 깊은 감동을 전해 준다.


 


 


걸음마다 피어나는 사색, 길 위에서 깨닫는 비움의 자유


―삼남대로, 백의종군길, 암행어사길에 이어 고흥길을 완성하다


 

서울을 떠나는 첫걸음은 설렘과 긴장이 섞인 특별한 순간이다. 안양천 대나무 숲길에서 시작된 여정은 저자에게 자연과의 첫 교감이자 여행의 본격적인 시작임을 알린다. 곧이어 수원천에서 한하운의 시 「보리피리」가 새겨진 시비 앞에서, 저자는 한센병 환자들의 고통과 절망을 떠올리며 사회적 소외와 아픔에 공감한다.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길과 삼남대로를 따라 걸으면서는 조선시대를 살아간 역사적 인물들과 자신이 걸었던 길을 연결하는가 하면, 섬진강의 물소리와 주변 풍경 속에서 자연이 주는 위로와 치유의 힘을 경험하기도 한다.

여행 중 저자는 마곡사에서 하룻밤 템플스테이를 하는데, 사찰의 고요함 속에서 마음을 정리하고 내면을 비우는 시간을 갖는다. 논산훈련소 앞을 지나며 저자는 군대 시절이라는 삶의 한 챕터를 떠올리며 현재의 자신을 되돌아본다.

섬진강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장면을 보며 자연의 경이로움, 순천 낙안읍성에서 조선시대의 삶과 전통문화를 체험하며 여행의 역사적 의미를, 벌교의 전통 시장에서 만난 시장 상인들과의 대화를 나누며 사람 사는 세상의 따뜻함과 활기를 느낀다. 걷기는 단순히 개인적 여정이 아니라, 자연과 역사와 사람들과의 연결임을 말해 준다.

저자가 영혼의 안식처라고 표현한 고향인 고흥에 도착하는 여정은, 이 여행의 절정이자 결말, 그리고 시작이다. 여정의 마지막, 부모님의 묘소를 찾아 무사히 도착했음을 알린다. 고향의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자신의 여정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시작을 다짐한다.

 


“실제로 여행을 떠나는 일은 그 비유를 구체화하는 행위, 몸과 상상력을 통해 인생을 구현함으로써 세상의 지형에 정신적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이다.”라고 리베카 솔닛이 말했듯, 작가도 일종의 순례 여행에서 한 걸음씩 힘들게 몸을 움직여 목적지에 닿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고된 여정을 통해 목적지에 닿은 작가에게 어떤 변화가 있고 무엇을 얻었는가? 정신적 차원의 변화가 있었을까?


이 책에서의 여정은 단순히 고향으로의 물리적 이동을 넘어, 자기 성찰과 존재의 이유를 되새기는 심리적 여정으로 확장된다. “나는 걸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걸음이 멈추면 내 생각도 멈춘다. 내 두 발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루소의 『고백록』)라고 했듯이, 걷기는 육체적 행위가 아니라 사색의 도구이자 목적이 된다. 저자는 삼남대로,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길, 그리고 조선시대 유배객들의 길을 포함한 역사적인 경로를 선택하며 과거의 발자취를 되새긴다. 이렇듯, 길 위에서의 만남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새로운 시선을 발견하고, 고향이란 단순히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돌아가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마음의 공간임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귀향은 외적 여행이 아닌, 내면의 쉼터와 안식처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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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마르티(José Martí, 1853-1895)

쿠바 혁명에 큰 영향을 끼쳤던 국가적 영웅이자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중요 인물이다. 그는 시인, 수필가, 저널리스트, 혁명가, 번역가, 교수, 정치이론가였다. 그는 1853년 1월 28일, 쿠바 아바나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868년 스페인에 맞서는 쿠바의 독립 투쟁인 ‘10년 전쟁’이 일어나자, 독립과 자유를 위한 투쟁에 동참했다. 1869년, 스페인 군대에 입대하는 친구를 비난하는 편지를 썼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6년형을 받고, 이듬해 스페인으로 추방됐다. 1874년 사라고사 대학에서 법학과 인문학 학사 학위를 받은 후, 그해 말 쿠바 귀국을 시도했으나 거부당했다. 1875-1878년 프랑스를 거쳐, 주로 멕시코와 과테말라에 머물면서 쿠바 독립을 위한 활동을 계속했다. 1878년 ‘10년 전쟁’이 끝나자 귀국했다. 그러나 반정부 폭동의 주도자로 몰리면서 또다시 스페인으로 추방됐다. 그 후 1881년부터 1895년 쿠바 독립전쟁을 위해 떠날 때까지 주로 뉴욕에서 다양한 장르의 창작을 하고 신문 칼럼을 썼다. 이 시기 주요 시집으로는 『이스마엘리요』(1882), 『자유 시집』(1891)이 있고, 대표적인 에세이로는 『우리들의 아메리카』(1891)가 있다. 1892년 자신이 창당에 관여한 쿠바혁명당 대표로 선출된다. 이때부터 1895년까지 미국 전역을 포함해 아메리카 대륙 곳곳을 누비며 쿠바 독립의 대의를 설파하고 쿠바 독립전쟁을 계획한다. 1895년 1월, 뉴욕을 떠나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향한다. 2월 24일, ‘쿠바 혁명의 목적과 원칙’을 밝히는 <몬테크리스티 선언>을 발표하면서 독립전쟁을 선포한다. 4월 11일, 쿠바에 상륙해 현지 혁명군과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독립전쟁을 시작한다. 5월 19일, 도스 리오스 전투에서 백마를 타고 스페인군 진영으로 돌격하다가 총에 맞아 전사한다.

호세 마르티 작가 연보

1853년 1월 28일, 쿠바 아바나의 가난한 가정에서 1남 7녀 가운데 첫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스페인 발렌시아, 어머니는 스페인 카나리아 출신이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실제로 재능도 보인다.

1865년 멘디베(Rafael María de Mendive) 선생이 교장으로 있는 초등학교에 등록한다. 멘디베는 일생에 걸쳐 마르티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준다. 또한 이곳에서 부유한 집안 출신의 발데스 도밍게스(Fermín Valdés Domínguez)를 만나 평생 깊은 우정을 맺는다. 이듬해 멘디베의 재정적 도움을 받아 중학교에 입학한다.

1867년 산 알레한드로 국립예술학교를 거쳐, 멘디베가 설립·운영하는 산 파블로 고등학교 2-3학년 과정에 등록한다. 그림보다는 글쓰기에 흥미를 느끼고 습작을 시작한다. 이듬해에 멘디베의 부인에게 바치는 시를 과나바코아 지방 신문 《앨범(El Álbum)》에 싣는다.

1868년 스페인에 맞서는 쿠바의 독립 투쟁인 ‘10년 전쟁’이 일어나자, 쿠바 민족주의에 동감하고 쿠바 독립과 자유를 위한 투쟁에 동참한다.

1869년 최초로 정치적 성향의 글을 써서 발데스 도밍게스가 발행하는 신문 《엘 디아블로 코후엘로(El Diablo Cojuelo, 말썽쟁이)》에 싣는다. 같은 해에 신문 《라 파트리아 리브레(La Patria Libre, 자유 조국)》를 창간하고, 가상 국가의 독립 투쟁을 그린 자신의 창작 드라마 「압달라(Abdala)」를 싣는다. 같은 해 10월, 스페인 군대에 입대하는 친구를 비난하는 편지를 썼다는 이유로 발데스 도밍게스와 함께 체포되어 6년 징역형을 받는다.

1871년 감옥에 있는 동안 부모가 필사적으로 구명 운동을 했으나 실패한다. 그러나 건강이 악화되어 석방된 후 스페인으로 추방된다. 마드리드대학교(Universidad Central de Madrid)에서 공부하는 한편, 쿠바 독립을 고취하는 글을 쓰면서 활발한 반식민 운동을 한다.

1873년 사라고사로 이주해 1874년 사라고사 대학에서 법학과 인문학 학사 학위를 받는다. 그해 말 쿠바 귀국을 시도했으나 거부당한다.

1875년 스페인을 떠나 프랑스를 거쳐, 주로 멕시코와 과테말라에 머물면서 쿠바 독립을 위한 집필 및 투쟁 활동을 계속한다. 1877년에는 과테말라 국립대학 교수로 임명되어 인문학 강의를 하기도 한다. 쿠바 망명객의 딸인 카르멘 사야스 바산(Carmen Zayas Bazán, 1853~1928)과 결혼한다.

1878년 2월에 ‘10년 전쟁’을 끝내는 산혼(Zanjón) 휴전 조약이 체결된다. 이에 따른 사면령이 내리자 아내와 함께 귀국한다. 그해 11월 22일 외아들 호세 프란시스코(José Francisco)가 태어난다.

1879년 쿠바에서의 변호사 활동이 거부된다. 이에 교사로 일하며 독립을 위해 더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다. 그러나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일어난 반정부 폭동의 주도자로 몰리면서 또다시 스페인으로 추방된다.

1881년 프랑스와 뉴욕을 거쳐 베네수엘라에 도착해 《레비스타 베네솔라나(베네수엘라 리뷰)》 잡지를 창간한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인 글이 독재자 안토니오 구스만 블랑코의 심기를 건드려 다시 뉴욕시로 돌아온다.

이때부터 1895년 쿠바 독립전쟁을 위해 떠날 때까지 주로 뉴욕에 거주하면서 다양한 장르의 창작을 하고 신문 칼럼을 쓴다. 특히 아르헨티나의 《라 나시온(La Nación)》에 실리는 정기 칼럼으로 중남미 전역에서 명성을 얻는다. 이 시기에 나온 주요 시집으로는 외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을 드러낸 『이스마엘리요(Ismaelillo)』(1882), 자유를 주제로 한 『자유 시집(Versos libres)』(1891)이 있고, 대표적인 에세이로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단결을 호소하는 『우리들의 아메리카(Nuestra América)』(1891)가 있다.

1892년 자신이 창당에 관여한 쿠바혁명당(Partido Revolucionario Cubano) 대표로 선출된다. 이때부터 1895년까지 미국 전역을 포함해 아메리카 대륙 곳곳을 누비며 쿠바 독립의 대의를 설파하고 동참을 호소하고 군자금을 모은다. 또한 혁명군 지도자인 막시모 고메스(Máximo Gómez), 안토니오 마세오(Antonio Maceo) 등과 접촉하며 쿠바 독립전쟁을 계획한다.

1895년 1월, 뉴욕을 떠나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향한다.

2월 24일, 막시모 고메스와 함께 ‘쿠바 혁명의 목적과 원칙’을 밝히는 <몬테크리스티 선언>을 발표하면서 독립전쟁을 선포한다.

4월 11일, 쿠바에 상륙해 현지 혁명군과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독립전쟁을 시작한다.

5월 19일, 도스 리오스(Dos Ríos) 전투에서 백마를 타고 스페인군 진영으로 돌격하다가 총에 맞아 전사한다.

1898년 쿠바 독립전쟁에 미국이 개입하면서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비화한다. 미국이 승리하면서 마침내 쿠바는 독립을 얻었으나 이후 3년 동안 미군정 치하에 놓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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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마르티 지음|조갑동·신정환 옮김|304쪽|18,000원|신국판(152×225)

2024년 8월 15일|ISBN 979-11-89333-83-6 93900 부엔비비르 총서 05

쿠바의 국민적 영웅 호세 마르티의 『황금시대』 국내 첫 번역

『황금시대』는 인간의 가장 고귀한 열망을 전달하며,

문학이 도덕적이고 시민적인 교육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소설가/노벨상 수상 작가)

『황금시대』는 어린이 문학이 얼마나 깊이 있고 교육적일 수 있으며,

동시에 하나의 문학적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시다.

― 미겔 데 우나무노(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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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모데르니스모의 창시자이자,

쿠바의 국민 영웅 호세 마르티의 대표작 국내 첫 번역

 

황금시대는 쿠바의 호세 마르티가 어린이들을 위해 만든 월간지였다. 황금시대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언어로 어린이들에게 얘기를 들려주면서 한 세기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참신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의미를 유지하고 있다. 첫 잡지는 18897월에 빛을 보았다. 그 당시 마르티는 스페인 식민주의에 맞선 쿠바 독립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뉴욕에 있었다. 그 전쟁에서 마르티는 목숨을 잃게 된다. 무거운 책임감 속에서도 초인적 노력을 기울이던 마르티는 이 잡지를 네 번이나 출간했다. 잡지는 32쪽으로 이뤄졌고 예쁜 판화와 삽화를 가지고 있었다. 잡지에 실린 글은 마르티의 휴머니즘과 이상주의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단편소설, 에세이, 그리고 시들이었다. 거기서 다뤄지는 방대한 주제와, 시대를 초월해 보편성을 띤 휴머니즘 가치가 우리에게 전해진다. 황금시대는 어린 독자들에게 지식과 사랑과 정의를 추구하도록 이끌어준다. 네 번 출간된 잡지는 같은 이름을 가진 한 권의 책으로 엮이면서 수도 없이 출판되었고 쿠바와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고전이 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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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라틴아메리카 모데르니스모의 창시자이자,

쿠바의 국민 영웅 호세 마르티의 대표작 국내 첫 번역

 

황금시대는 쿠바의 호세 마르티가 어린이들을 위해 만든 월간지였다. 황금시대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언어로 어린이들에게 얘기를 들려주면서 한 세기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참신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의미를 유지하고 있다. 첫 잡지는 18897월에 빛을 보았다. 그 당시 마르티는 스페인 식민주의에 맞선 쿠바 독립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뉴욕에 있었다. 그 전쟁에서 마르티는 목숨을 잃게 된다. 무거운 책임감 속에서도 초인적 노력을 기울이던 마르티는 이 잡지를 네 번이나 출간했다. 잡지는 32쪽으로 이뤄졌고 예쁜 판화와 삽화를 가지고 있었다. 잡지에 실린 글은 마르티의 휴머니즘과 이상주의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단편소설, 에세이, 그리고 시들이었다. 거기서 다뤄지는 방대한 주제와, 시대를 초월해 보편성을 띤 휴머니즘 가치가 우리에게 전해진다. 황금시대는 어린 독자들에게 지식과 사랑과 정의를 추구하도록 이끌어준다. 네 번 출간된 잡지는 같은 이름을 가진 한 권의 책으로 엮이면서 수도 없이 출판되었고 쿠바와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고전이 되기에 이르렀다.

 

호세 마르티(1853~1895)는 쿠바의 정치가, 외교관, 시인, 수필가, 언론인, 철학자이며 쿠바혁명당의 창립자이자 독립 전쟁의 조직자였다. 그는 쿠바의 국민 영웅인 동시에, 라틴아메리카 모데르니스모(문학적 모더니즘)의 창시자로 여겨져 왔다. 호세 마르티의 자유와 독립을 향한 신념, 문화와 역사를 자각하는 정신을 담은 대표 저작인 황금시대는 수많은 국가와 수많은 언어로 출판되었고 지금도 라틴아메리카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고전이 되어 있다.

 

이 책은 원래 18897월부터 10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발간된 월간지의 내용을 함께 묶은 것이다.(황금시대4개월 동안 간행된 월간지 4권을 말하기도 하며, 이를 한데 묶은 단행본을 말하기도 한다.) 4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세상에 있다가 사라진 간행물이지만, 이를 한데 엮어 호세 마르티의 정신세계와 역사의식, 문학적 향연을 압축하여 보여주는 책으로 100여 년이 넘는 동안 전 세계의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황금시대는 중남미 최초의 아동문학 작품이라고 간주되기도 한다. 그의 관심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바로 세상의 균형을 잡아줄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소박한 사업이었다. 수많은 라틴아메리카의 지식인, 정치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인간의 가장 고귀한 열망을 전달하며, 문학이 도덕적이고 시민적인 교육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어린이 문학이 얼마나 깊이 있고 교육적일 수 있으며, 동시에 하나의 문학적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시”(미겔 데 우나무노)이고, “아이들을 교육하고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쓰였으며, 그 지혜와 인간성으로 빛나는 작품”(피델 카스트로)이다.

 

이렇듯, 황금시대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책은 19세기 후반, 쿠바의 정치적·사회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며, 마르티의 문학적 기량과 사회적 비전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 안에서 마르티는, 문학적 형식과 내용에서의 혁신(현실과 환상의 혼합, 쿠바의 현실과 민속을 문학으로 승화)을 이루어냈고, 사회적 비전(쿠바 사회의 모순과 문제 조명, 사회적 개혁과 민족적 자각 촉구)을 담아냈으며, 결국 문학적 성취(풍부한 상징과 상상력, 다양한 문학적 장치를 통한 독자의 감정과 사고를 자극)를 얻어낸 것으로 평가된다. 그럼으로써, 이 책은 쿠바와 라틴아메리카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제공하며, 해당 지역의 문학과 문화적 자산에 큰 기여를 했다. 호세 마르티의 황금시대는 단순한 문학작품을 넘어, 사회적 비전과 문학적 혁신, 문화적 기여를 통해 라틴아메리카 문학과 정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아메리카의 역사는 마치 소설처럼 아름답다.”

호세 마르티의 삶과 문학

 

호세 마르티의 생애는 문학과 정치, 그리고 민족적 자각이 어우러진 복잡한 여정으로, 그의 작품과 사상은 오늘날에도 쿠바와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자산으로 남아 있다. 그의 비전과 노력은 라틴아메리카 대륙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현재에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호세 마르티는 마리아노 마르티와 레오노르 페레스 카브레라 사이에서 1853128일 태어났다. 그는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인해 학교에 다니는 와중에도 집안일을 열심히 돕는 기특한 소년이었다. 그가 공부하던 아바나 학교의 교장 라파엘 데 멘디베는 시인이자 독립을 주장하던 혁명가였다. 마르티의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 멘디베는 평생에 걸쳐 마르티의 정신적 아버지 역할을 한다. 호세 마르티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쿠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혀 간다. 1869년 마르티는 스페인 군대에 입대하는 학교 친구를 비난하는 편지를 썼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징역 6년을 선고받는다. 그때 나이가 열여섯 살. 두 발에 쇠고랑을 차고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자 부모들이 백방으로 석방을 위해 노력한다. 호세 마르티는 1871년 석방되어 스페인 추방을 당한다. 하지만 쇠고랑으로 생긴 발의 상처는 한평생 지니고 살아야 했다. 스페인에 간 마르티는 마드리드와 사라고사 대학에서 법학과 인문학을 전공하고 프랑스를 거쳐 미국, 멕시코, 베네수엘라, 과테말라 등지로 여행하다가 미국 뉴욕에 자리를 잡는다. 멕시코에 체류할 때인 1876년에는 쿠바 카마구에이 출신의 카르멘 사야스 바산과 결혼해 유일한 자식인 호세 프란시스코(1878-1945)를 얻는다. 1차 쿠바 독립전쟁이 끝난 후 1880년 다시 뉴욕에 와서 정착한 마르티는 평생의 집념인 쿠바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영혼을 불살라 버릴 뜻을 세웠고 1892년에는 쿠바혁명당(PRC)을 창당한다. 황금시대를 펴낸 것도 뉴욕 시절이었다. 그는 1895년 쿠바로 돌아가 제2차 독립전쟁에 참전한다. 그러나 본격적인 첫 전투였던 도스 리오스에서 말을 타고 선두에서 진격하던 그는 세 발의 총탄을 맞고 쓰러진다. 누가 대신 해줄 것을 기다리는 것은 범죄가 된다고 말했던 마르티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지식인이었다.

호세 마르티는 독립 혁명가로서 쿠바의 국부로 간주되지만 중남미 문학을 빛낸 위대한 시인의 반열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가 니카라과 시인 루벤 다리오와 함께 만들어놓은 시 세계는 모데르니스모라는 새로운 유파다. 모데르니스모는 중남미 최초의 독자적이고 독창적인 문학 운동이자 전통과의 단절을 꾀한 최초의 미학이다. 모데르니스모는 중남미 고유의 순수 시어를 창조했는데, 이는 우리 아메리카(Nuestra América)’를 주창한 호세 마르티의 정치적 독립 정신과도 연관된다. 마르티는 시뿐만 아니라 편지, 에세이, 기사 등 모든 장르의 글을 썼고, 이스마엘리요(Ismaelillo), 소박한 시(Versos sencillos), 자유시(Versos libres)등 세 권의 대표 시집을 남겼다.

 

 

중남미 최초의 아동문학 작품, 황금시대국내 첫 번역

중남미의 새 역사를 쓴 영웅들의 이야기에서,

파리 만국박람회와 주거로 본 인류의 역사까지

 

황금시대는 중남미 최초의 아동문학 작품이라고 간주되기도 한다. 그의 관심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바로 세상의 균형을 잡아줄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소박한 사업이었다. 마르티는 부당한 일이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이를 보고 누가 대신 나서서 해결해 주겠지 하고 미루는 행위는 옳지 않을뿐더러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죄를 짓는 행위가 된다고 강조한다. 정의를 위해서는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잡지 첫 호는 세 사람의 영웅 이야기로 시작한다. 시몬 볼리바르, 이달고, 그리고 산 마르틴, 이 세 사람은 출신은 다르지만 중남미의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한 영웅들이다. 마르티는 이어서 고대 그리스 작품이며 세계적인 고전으로 알려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이야기를 들려준다. 비록 먼 나라, 먼 시대의 이야기이지만 사람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지식을 겸비할 때 균형 있는 사고와 분별력을 갖출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2호에서 마르티는 주거 문제를 중심으로 인류 문명의 역사를 돌아본다. 또한 세계적인 음악가, 시인, 화가 들을 중심으로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인 능력을 발굴하고 발전시킨 모습을 보여주면서 어린이 각자가 지닌 능력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3호에서는 18899월의 파리 만국박람회 소식을 다룬다. 그로부터 100년 전인 1789년 프랑스에서는 자유, 평등, 박애를 앞세운 대혁명이 일어나고 이 새로운 물결은 유럽뿐만 아니라 미 대륙까지 울려 퍼진다. 그러나 혁명을 주도한 이들이 나라 경영을 해본 경험이 없다 보니 나라가 혼란과 무질서에서 헤맸고, 그 기회를 틈타 등장한 나폴레옹이 황제로 군림하다가 몰락하는 사태까지 진전된다. 이러한 격동의 역사를 극복하고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는 인류의 대잔치가 되었다. 이어서 독자의 관심을 끄는 글은 스페인의 라스 카사스 신부 이야기다. 특히 백인 정복자들에게 희생당하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인권을 위한 그의 노력이 두드러진다.

마지막 4호에서는 안남 사람들이 나라를 찾는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데, 안남은 인도를 뜻하고 월남을 뜻하기도 한다. 네 명의 장님이 코끼리를 만져보는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이 글은 불교의 탄생 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풍습, 역사, 연극, 파고다 등을 설명한다.

 

 

저자 소개

 

 

호세 마르티(José Martí, 1853-1895)

 

쿠바 혁명에 큰 영향을 끼쳤던 국가적 영웅이자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중요 인물이다. 그는 시인, 수필가, 저널리스트, 혁명가, 번역가, 교수, 정치이론가였다. 그는 1853128, 쿠바 아바나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868년 스페인에 맞서는 쿠바의 독립 투쟁인 ‘10년 전쟁이 일어나자, 독립과 자유를 위한 투쟁에 동참했다. 1869, 스페인 군대에 입대하는 친구를 비난하는 편지를 썼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6년형을 받고, 이듬해 스페인으로 추방됐다. 1874년 사라고사 대학에서 법학과 인문학 학사 학위를 받은 후, 그해 말 쿠바 귀국을 시도했으나 거부당했다. 1875-1878년 프랑스를 거쳐, 주로 멕시코와 과테말라에 머물면서 쿠바 독립을 위한 활동을 계속했다. 1878‘10년 전쟁이 끝나자 귀국했다. 그러나 반정부 폭동의 주도자로 몰리면서 또다시 스페인으로 추방됐다. 그 후 1881년부터 1895년 쿠바 독립전쟁을 위해 떠날 때까지 주로 뉴욕에서 다양한 장르의 창작을 하고 신문 칼럼을 썼다. 이 시기 주요 시집으로는 이스마엘리요(1882), 자유 시집(1891)이 있고, 대표적인 에세이로는 우리들의 아메리카(1891)가 있다. 1892년 자신이 창당에 관여한 쿠바혁명당 대표로 선출된다. 이때부터 1895년까지 미국 전역을 포함해 아메리카 대륙 곳곳을 누비며 쿠바 독립의 대의를 설파하고 쿠바 독립전쟁을 계획한다. 18951, 뉴욕을 떠나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향한다. 224, ‘쿠바 혁명의 목적과 원칙을 밝히는 <몬테크리스티 선언>을 발표하면서 독립전쟁을 선포한다. 411, 쿠바에 상륙해 현지 혁명군과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독립전쟁을 시작한다. 519, 도스 리오스 전투에서 백마를 타고 스페인군 진영으로 돌격하다가 총에 맞아 전사한다.

 

옮긴이 조갑동

한국외대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KBS 국제방송국 스페인어 방송을 하며 이듬해 스페인 방송문화상을 수상했다. 이를 계기로 스페인에 유학하여 마드리드 국립 저널리즘 대학을 졸업하고 마드리드 대학교 문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에 외교부에 입부하여 주 볼리비아 대사, 주 바르셀로나 총영사, 주 콜롬비아 대사 등을 지낸 다음, 정년 퇴임했다. 이후 한서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국제관계학과 과장, 문화언어연수원 원장, 정보산업대학원 원장을 역임했다. 2005년부터 한-쿠바문화친선협회 회장 및 한국 중남미협회 이사로 있다. 번역서로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윤흥길의 장마, 이문열의 그해 겨울, 그리고 삼국유사, 한중록, 이승우의 식물들의 사생활등이 있다. 또한 스페인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은, 호세 마르티의 소박한 시, 루벤 다리오의 푸름, 라울 라이스마르티 림 김의 쿠바의 한인들등이 있다.

 

옮긴이 신정환

한국외대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스페인 마드리드 대학교에서 문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대 중남미연구소장 및 스페인어통번역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스페인·중남미 문학과 문화, 바로크 미학, 생태비평 등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두 개의 스페인, 라틴아메리카 역사 산책, 라틴아메리카 생태를 읽다, 역사를 살았던 쿠바(이상 공저) 등이, 역서로는 돈키호테 성찰, 7개의 목소리, 달콤한 고통: 알폰시나 스토르니 시선집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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