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발견]

《서울리뷰오브북스》 봄호 편집마감이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다음 특집 주제는 ‘시의성 있게’ ‘헌법의 순간’으로 정했습니다. 출간 주기가 3개월인 계간지가 매번 시사/이슈에 대응하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지난 겨울호는 시의에 맞지 않아도, 너무 맞지 않은 결과였습니다. 책이 나오자마자 비상 계엄 사태, 그리고 그로 인한 탄핵 정국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았다면, “만화라는 소우주”에 스며들어 보는 것은 한번쯤 권할 일이 아니었나 쉽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준비했지만, 빅이슈에 파묻혀 그다지 주목하지 않게 된 “만화-책-큐레이션”을 다시 소개해 드립니다!

《서울리뷰오브북스》 16호(2024년 겨울호)의 특집 주제는 ‘만화라는 소우주’이다. “허구한 날 책은 안 읽고 만화나 본다”며 한소리 들었던 어린 시절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보통의 책’에 비해 만화를 낮추어 보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일이다. 그러나 그런 고정관념은 철 지난 것이 된 지 오래다. 책의 세계가 우주라면 만화는 그 자체로 소우주를 이루었다. 《서울리뷰오브북스》는 만화라는 광활한 소우주를 유영하며, 네 편의 만화를 만나 본다. 만화가 선우훈은 최근 드라마화되며 더욱 화제를 모았던 서이레·나몬의 『정년이』를, 출판 및 시각예술 기획자 한윤아는 최성민의 첫 장편만화 『좁은 방』을, 편집자 김미래는 아마존 베스트셀러 그래픽노블 작가 앨리슨 벡델의 『초인적 힘의 비밀』을, 소설가 김화진은 2023년 일본 만화대상 2위를 차지한 『아카네 이야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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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읽으라는 책은 안 읽고 만화나 본다”며 엄마한테 등짝을 맞았던 어린 시절 추억 하나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보통의 책에 비해 만화를 낮추어 보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일이다. (……) 책의 세계가 우주라면 만화는 그 자체로 소우주를 이루었다. 글자가 아닌 그림이라는 수단을 사용한다고 해서 혹은 종이책이 아니라 인터넷에 올라온다는 형식을 이유로 책의 우주에서 제외할 수는 없다. (……) 《서울리뷰오브북스》는 16호 특집 리뷰로 ‘만화라는 소우주’를 준비했다.

―유정훈 「편집실에서」, 2-3쪽

『정년이』는 최근 여성 서사로 분류되는 작품들 중에서도 다양한 면에서 여성 서사의 본질을 충실히 담아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여성들의 관점, 관계, 성취뿐 아니라 ‘여성국극’이라는 실제로 존재했던 여성들의 역사를 소재로 삼고 있다.

(……) 여성국극이라는 소재를 다룬 『정년이』는 극 중 인물들의 여성 서사일 뿐 아니라, 여성들이 한때 향유했던 문화적 장을 세밀하게 그려 내고, 스스로 다시금 그러한 장을 창출하는 데까지 성공한다.

―선우훈 「재밌지 않니? 세상은 거대한 여성국극 무대 같아」, 16-18쪽

결론적으로, 다예의 환상 서사 전략은 실패한다. 이 실패의 서사는 도처에 널려 있다. (……) 다예의 서사는 순정만화의 ‘남주’를 통해 그리는 판타지, 아이돌 가수를 향한 사랑과 비슷한 면이 있다. 만약 그것이 현실의 성적 상징계를 전도시키고 위반하는 환상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었다면, 판타지를 통해 소유하고자 했던 꽃미남 오빠들의 좁은 방을 열어젖히는 순간, 다예는 환상을 불능으로 만드는 진짜 가부장적 실체를 ‘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다예에게 유예의 시간이 실패의 문턱으로 재확인되는 순간인 것인지, 이야기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한윤아 「‘좁은 방’에 침잠하는 시간」, 45쪽

『초인적 힘의 비밀』은 보디빌딩부터 피트니스, 아웃도어 스포츠, 주짓수와 같은 아시아 무술, 요가와 같은 치유성 수련의 대중적인 유행을 연대순으로 훑으며, 자신이 거친 시대와 시대에 맞게 형성해 나간 자기의 몸을 보고하는 책이다. (……) 흥미롭게도, 사실은 더한층 만화답게도, 이 책은 유행하는 스포츠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진화하는 스포츠웨어에 깊이 감사하며, 시대별 스포츠에 푹 몸을 담그며 살아온 덕에, 몸의 변화, 즉 노화와 질병, 에이징커브를 맞으며 정신과 신체의 관계를 재정립해 나가는 아마추어 스포츠인의 그야말로 끝 모르는 열정을 보여 준다. 평생에 걸친 신체적 건강에 관한 열정, 영혼 담는 바구니의 단련이라는 열정을.

―김미래 「비밀 누설하기」, 53쪽

나는 아카네 모르게 아카네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속삭인다. 나도. 나도 수많은 이야기를 배울 거야. 이야기를 친구라고 믿는 아카네를 친구로 믿으며 나는 힘을 낸다. 어떤 시기를 그만두고 어떤 시기를 시작하는 사람으로서. 그럴 때 어떤 이야기는 계속되어 가는 와중이라는 사실까지 포함하여 좋다. 아카네에게 라쿠고인 것이 나에게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좋다.

―김화진 「그만두는 일, 시작하는 일, 소설가의 일」, 74쪽

결국 이들은 스스로 신체적 존엄성을 내던지는 바로 그 행위를 통해 역설적으로 자신 또한 동료 시민에게 기존의 권리 체계가 정당한지 논의해 보자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자율적 존재라는 사실을, 인간이자 같은 정치 공동체에 소속된 시민으로서 지닌 존엄성을 증명해 보인다. 기어가는 몸짓에 권리 주장이 체현된 이러한 장면 앞에서 우리가 느껴야 할 것은 동정이 아니라 숭고다. (……) 이렇게 포체투지는 기어가는 행위의 의미가 단지 동정의 몸짓에만 국한되던 기존 시선을 깨트리고 정치적 주체의 숭고한 몸짓으로 이를 전용하는 전복적 행위가 된다.

―김도형 「전장연 시위라는 사건」, 101-102쪽

무위의 시간은 저자에게 일터와 도시라는 기존의 관심 영역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심의 장을 열어젖힌다. 따라서 무위는 어떤 완결이 아닌, 하나의 전환이자 접속이다. 그것은 비유컨대 우리의 관심과 에너지를 다른 방향으로 쏟을 수 있게 돕는 키이다. 우리는 정해진 길을 벗어나 새로운 흐름을 탈 수도 있고, 또 전혀 낯선 장소에 다다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참다운 나/너를 찾을지도 모른다.

―이두은 「무위의 계보학」, 124쪽

디지털 기술 시대의 인쇄술과 소량 제작 방식은 책을 훨씬 쉽고 저렴하게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이제는 누구나 글과 그림과 사진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저자가 될 수 있고 소규모 출판도 가능해졌다. 그 결과 세상에는 작고 다양한 목소리가 많아졌다. 지역의 목소리가 선명해지고 감춰져 있던 장면들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것이야말로 책의 미래이자 끊임없는 자기 갱신의 가능성 아닐까.

―정재완 「싱가포르에서 가져온 책 세 종」, 137쪽

50대의 마스다 미리는 『누구나의 일생』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리텔링’한다. 일이 주는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두렵지만 꿈꿔 볼 만한 미래에 대해 말하던 ‘30대의 마스다 미리 자신’을 저성장과 코로나로 점철된 ‘2020년대’에 데려다 놓는다. 그것이 만화 작가의 일이라는 듯. 시대와 호흡하는 게 작가의 일이라는 듯. 나는 독자이자 편집자로서 마스다 미리의 『누구나의 일생』을 그렇게 읽었고, 이 작품은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만화 대상에서 단편상을 수상했다. 나는 예술과 만화 그 어디쯤에 다시 선 기분이 든다.

―고미영 「20세기 말 순정만화 잡지 독자가 지금을 호흡하는 이야기」, 149쪽

K-의료는 이미 ‘값싼 의료’가 아니다. (……) 이 점에서 우리는 이미 남들만큼 쓰고 남들만큼의 성과만 내는 단계에 와 있다. 의료비 지출이 매우 빠르게 늘었기 때문이다. 의료비 지출 총액을 계속 늘릴 수는 없으니 덜 필요한 의료에서 더 필요한 의료로 돈을 옮겨 와야 한다. ‘뒤틀린’ K-의료의 전체적인 재조정,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

―이동진 「기자의 눈으로 본 K-의료의 정치경제학」, 159쪽

폭염은 자연 현상이지만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공공성이 무너진 곳에서 재난으로 드러난다. 즉, 폭염은 자연 재난인 동시에 사회적 재난이기도 하다. (……) 인간이 일으키는 폭염은 결국 인간의 손길만이 해결할 수 있다. 폭염 대응은 우리가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대해 얼마나 감수성이 있는가의 척도이기도 하다. 즉 폭염이 우리 수준을 드러낼 것이다.

―조천호 「불타는 폭염에서 불타는 야망으로」, 172-174쪽

현실에 없는 ‘중간의 아이’를 기준으로 가르치는 교실에서 학습 격차가 커질수록 교육의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올해 봄 교실에서 내가 느꼈던 막막함이 바로 거기에 있다. 학습 격차는 한 사람의 교사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섰다. 그렇다고 교사를 갑자기 대규모로 훈련해서 학교에 배치할 수도 없다. 이때 교사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도구가 맞춤형 학습을 도와주는 소프트웨어다.

―정은진 「모두가 다르게 배우는 하나의 교실을 위해」, 182-183쪽

이름만 ‘횡행’한다는 표현을 굳이 쓴 것은 현재 그의 학술적 위상에 비해서는 스펜서의 이름이 매우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사회진화론이라는 사상 자체를 광범위하게 보급시킨 데에 그의 영향은 매우 컸다. 앞에 언급한 대로 스펜서에 가장 열광했던 미국과 일본의 경우는 사회진화론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근대 사회를 구축한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는데, 특히 일본의 사회진화론 수용은 일본 국내에 그치지 않고 이후 동아시아 지역 전체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다.

―김도형 「이상적인 사회로의 진화, 아니 진보에 대한 지적 탐색」, 199쪽

책 한 권을 끝내고 나면 홀가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오래 사귄 연인과 헤어진 것처럼 허전하고 마음이 한 번 몸살을 앓는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오로지 텍스트에 빠져 저자의 의중을 헤아리려고 집중한 노력으로 연애를 했다면, 아마 그 어떤 연애도 성공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마감 과정의 치열함에 진이 빠져 “아휴, 이제 번역 그만해야지”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출판사에서 “이 책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같이 작업하실래요?”라는 메일이 오면 매번 넘어간다.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연결하는 즐거움. 그 중독적인 매력. 그래서 나는 오늘 밤도 노트북 앞에 앉아, 영어사전을 띄운다.

―박누리 「옮기는 이의 말」, 229쪽

작가는 일생 동안 단 한 권의 책을 쓴다고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어쩌면 독자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고 이따금 생각한다. 아닌 척해도, 우리는 책을 읽을 때 우리의 내면의 눈으로 읽기 때문이다. 우리는 눈을 떠서 텍스트를 읽는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대부분 눈을 감아야 보이는 암흑 속 빛에 기대어 일생 동안 오독한다. 그렇다면 수없이 많은 책을 읽지만, 우리가 일평생 읽는 것은 결국 단 한 권의 책일지도 모르리라. 단 한 권의 책. 내가 쓰기 원하고, 또 읽기 원하는.

―백수린 「단 한 권의 책」, 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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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리뷰오브북스》 봄호 편집마감이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다음 특집 주제는 ‘시의성 있게’ ‘헌법의 순간’으로 정했습니다. 출간 주기가 3개월인 계간지가 매번 시사/이슈에 대응하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지난 겨울호는 시의에 맞지 않아도, 너무 맞지 않은 결과였습니다. 책이 나오자마자 비상 계엄 사태, 그리고 그로 인한 탄핵 정국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았다면, “만화라는 소우주”에 스며들어 보는 것은 한번쯤 권할 일이 아니었나 쉽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준비했지만, 빅이슈에 파묻혀 그다지 주목하지 않게 된 “만화-책-큐레이션”을 다시 소개해 드립니다!

《서울리뷰오브북스》 16호(2024년 겨울호)의 특집 주제는 ‘만화라는 소우주’이다. “허구한 날 책은 안 읽고 만화나 본다”며 한소리 들었던 어린 시절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보통의 책’에 비해 만화를 낮추어 보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일이다. 그러나 그런 고정관념은 철 지난 것이 된 지 오래다. 책의 세계가 우주라면 만화는 그 자체로 소우주를 이루었다. 《서울리뷰오브북스》는 만화라는 광활한 소우주를 유영하며, 네 편의 만화를 만나 본다. 만화가 선우훈은 최근 드라마화되며 더욱 화제를 모았던 서이레·나몬의 『정년이』를, 출판 및 시각예술 기획자 한윤아는 최성민의 첫 장편만화 『좁은 방』을, 편집자 김미래는 아마존 베스트셀러 그래픽노블 작가 앨리슨 벡델의 『초인적 힘의 비밀』을, 소설가 김화진은 2023년 일본 만화대상 2위를 차지한 『아카네 이야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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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우수상 수상작 수록

2024 우주리뷰상 발표

『뒤틀린 한국 의료』로 보는 의료 대란부터

폭염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폭염 살인』까지

리뷰

『정년이』의 여성 서사부터

앨리슨 벡델의 『초인적 힘의 비밀』까지

특집 리뷰: 만화라는 소우주

백수린 작가와 박누리 번역가의 에세이

문학

《서울리뷰오브북스》 × 알라딘 주최, 아모레퍼시픽재단 후원

‘2024 우주리뷰상 발표’

의료 대란부터 폭염까지, 오늘의 이슈를 책으로 읽는

‘리뷰’

만화가, 기획자, 편집자, 소설가가 선택한 네 가지 만화

‘특집 리뷰’

《서울리뷰오브북스》 16호(2024년 겨울호)의 특집 주제는 ‘만화라는 소우주’이다. “허구한 날 책은 안 읽고 만화나 본다”며 한소리 들었던 어린 시절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보통의 책’에 비해 만화를 낮추어 보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일이다. 그러나 그런 고정관념은 철 지난 것이 된 지 오래다. 책의 세계가 우주라면 만화는 그 자체로 소우주를 이루었다. 《서울리뷰오브북스》는 만화라는 광활한 소우주를 유영하며, 네 편의 만화를 만나 본다. 만화가 선우훈은 최근 드라마화되며 더욱 화제를 모았던 서이레·나몬의 『정년이』를, 출판 및 시각예술 기획자 한윤아는 최성민의 첫 장편만화 『좁은 방』을, 편집자 김미래는 아마존 베스트셀러 그래픽노블 작가 앨리슨 벡델의 『초인적 힘의 비밀』을, 소설가 김화진은 2023년 일본 만화대상 2위를 차지한 『아카네 이야기』를 소개한다.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아모레퍼시픽재단의 후원을 받아 알라딘과 함께 서평 공모전 ‘우주리뷰상’을 개최했다. 500편에 가까운 서평이 응모된 가운데, 최우수작 1편, 우수작 7편이 가려졌다. 심사경위·심사평·수상 소감과 더불어, 『전사들의 노래』와 『출근길 지하철』을 통해 ‘전장연 시위’의 의미를 성찰하는 최우수작 「전장연 시위라는 사건」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무위 사상과 상호 참조적으로 읽은 우수작 「무위의 계보학」을 이번 호에 게재한다.

‘리뷰’ 코너에서는 올 한 해 한국 사회를 강타한 이슈들을 다룬 책들을 소개한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동진은 기자의 시선으로 의료 대란 사태를 들여다본 『뒤틀린 한국 의료』를 리뷰한다. 국립기상과학원 초대 원장을 지낸 대기과학자 조천호는 폭염의 위험성을 강력하게 경고하는 『폭염 살인』을 다룬다. 이 밖에도 ‘북&메이커’ 코너에서는 20세기 말 순정만화 잡지 독자가 지금을 호흡하는 이야기를 새의노래 출판사 대표 고미영이 전하고, ‘디자인 리뷰’에는 싱가포르 아트북페어에서 가져온 세 가지 책을 중심으로 아트북페어의 의미와 책의 미래를 가늠하는 정재완 편집위원의 글이 실렸다. ‘문학’ 코너에서는 소설가 백수린과 번역가 박누리가 책과 번역에 관한 사색을 전한다.


2024 우주리뷰상 발표

당선작·심사 경위·심사평·수상 소감 발표

최우수작 「전장연 시위라는 사건」,

우수작 「무위의 계보학」 공개

독서 문화 확산, 인문학적 지평 확대를 통해 사회적 책무를 수행해 온 아모레퍼시픽재단과 인문·사회·과학·교양 독자들의 지식 보급 창구가 되어 온 알라딘과 함께 독서 및 서평 문화의 확산, 신진 서평가 발굴, 도서 시장의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올해 처음으로 시작한 ‘우주리뷰상’이 막을 내렸다. 7월 1일부터 10월 4일까지 약 세 달간 총 478편의 응모작이 접수되며 서평가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응모작은 한국 독서 문화의 저변을 보여 주듯이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문학, 예술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책에 걸쳐 있었다. 이후 약 한 달간의 심사 끝에 최우수작 1편, 우수작 7편이 선정되었다. 당선자들은 학생부터 공무원, 대학 연구원, 시인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것으로 밝혀졌고, 그중 상당수가 20-30대라는 점 또한 두드러졌다. 여덟 편의 수상작 중 최우수작과 우수작 한 편을 이번 호에 게재한다.

“포체투지는 기어가는 행위의 의미가 단지 동정의 몸짓에만 국한되던 기존 시선을 깨트리고 정치적 주체의 숭고한 몸짓으로 이를 전용하는 전복적 행위가 된다.”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김도형의 「전장연 시위라는 사건」은 진보적 장애운동 활동가 여섯 명의 생애를 기록한 『전사들의 노래』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대표가 장애운동 전반의 역사와 생각을 기록한 『출근길 지하철』을 다루었다.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행동은 분명 한국 사회에 있어 하나의 사건이다. 특히 중증장애인의 신체가 지하철 바닥을 기어가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포체투지와 마주할 때 우리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낯선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김도형은 ‘전장연 시위’에 관한 납작한 이해에 맞서 두 권의 책이 제시하는 대항 서사를 재구성하며, 이를 통해 장애운동 전반이 어떻게 우리가 세상을 사고하고 감각하는 일상적 방식에 파열을 가하는지 살펴본다.

“무위는 어떤 완결이 아닌, 하나의 전환이자 접속이다. 그것은 비유컨대 우리의 관심과 에너지를 다른 방향으로 쏟을 수 있게 돕는 키이다.” 우수작으로 선정된 이두은의 「무위의 계보학」은 관심경제에 맞서 ‘하지 않음’을 전하는 제니 오델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리뷰했다. 이두은은 제니 오델의 ‘하지 않음’을 노자의 ‘무위’와 상호 참조적으로 읽는다. 그리하여 제니 오델이 제시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실천 전략들과 그 다양한 예시들(디지털 디톡스, 코뮌 운동, 헨리 데이비드 소로, 장미 정원에서의 새 관찰 등)을 무위의 계보 안에 위치시킨다. 그리고 이들 무위가 공통으로 지향하는 바는 단순히 관심경제에서 관심을 거두는 것뿐 아니라,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 다시 말해 관심의 새로운 방향성이며, 이때 무위는 어떤 완결이 아닌, 하나의 전환이자 접속임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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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으로 세상을 보다

〈리뷰〉에서는 올 한 해 한국 사회를 강타한 이슈들에 대해, 보다 심층적인 시각을 전하는 책들을 만나 본다. ‘의료 대란’ 사태를 다룬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동진 교수의 『뒤틀린 한국 의료』부터, 폭염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대기과학자 조천호의 『폭염 살인』 리뷰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시의성 있고, 심도 있는 서평들이 이어진다.

“‘뒤틀린’ K-의료의 전체적인 재조정,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동진은 「기자의 눈으로 본 K-의료의 정치경제학」에서 보건의료 전문기자 김연희의 『뒤틀린 한국 의료』를 소개한다. 이동진은 저자의 논의를 따라, 의대 정원 너머에 도사리고 있는 K-의료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은 ‘과학적’ 사실이지만, 의사 수만 늘린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돈 되는 과와 진료에 인력과 자원이 몰리는 현상이 심화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수가’이며, 덜 필요한 의료에서 더 필요한 의료로 돈을 옮기는 전체적인 재조정,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 이동진은 이를 위한 개혁의 전망이 어두운 현실을 지적하며, 정치의 역할을 이야기한다.

“폭염은 자연 현상이지만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공공성이 무너진 곳에서 재난으로 드러난다.” 대기과학자 조천호(전 국립기상과학원 원장)는 「불타는 폭염에서 불타는 야망으로」에서 기후 저널리스트 제프 구델의 『폭염 살인』을 다루었다. 조천호는 기후변화에 따른 온도의 변화, 즉 폭염과 같은 극단적인 날씨가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현실을 조명한다. 특히, 저자가 기후변화의 핵심 문제 중 하나라고 지목한 에어컨의 사례를 통해 폭염의 불평등성을 강조한다. 나아가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치명적인 폭염에 대한 대응이 곧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의 척도임을 지적하며, 적극적인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학생 한 명 한 명은 모두 다른 지식을 가지고 교실에 들어와, 같은 교실에 있어도 서로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배움의 결실을 맺는다.” 컴퓨터과학자 정은진(샌프란시스코대학교 부교수)은 「모두가 다르게 배우는 하나의 교실을 위해」에서 에누마 창업자·CEO인 이수인이 아이들의 학습을 돕는 교육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온 여정을 담은 『우리는 모두 다르게 배운다』를 소개한다. 정은진은 학습의 개별성을 돕는 교육 소프트웨어가 장애가 있는 아이, 난민촌의 아이, 다문화 가정의 아이 등 모든 아이들이 저마다의 속도로 학습하도록 도울 수 있는 도구임을 이야기한다. 또한, 현실에 없는 ‘중간의 아이’를 기준으로 가르치는 교실에서 학습 격차가 커지고 효율이 떨어지는 현실에 대해 맞춤형 학습을 도와주는 소프트웨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조명한다.


특집 리뷰: 만화라는 소우주

“책의 세계가 우주라면 만화는 그 자체로 소우주를 이루었다.

글자가 아닌 그림이라는 수단을 사용한다고 해서

혹은 종이책이 아니라 인터넷에 올라온다는 형식을 이유로

책의 우주에서 제외할 수는 없다.”

―유정훈, 「편집실에서」 중에서

만화가이자 만화평론가인 선우훈, 타이그레스 온 페이퍼 대표이자 출판·시각예술 기획자인 한윤아, 쪽프레스와 고트(goat)의 편집장 김미래, 소설가 김화진까지, 만화를 애정하는 네 명의 저자가 선택한 만화는 무엇일까?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웹툰, 장편만화, 그래픽노블, 왕도 성장물까지 저마다의 매력을 발산하는 네 가지 만화책에 대한 특집 리뷰를 마련했다. 선우훈은 서이레가 쓰고 나몬이 그린 『정년이』를 다루며 여성국극이라는 배경 위에 펼쳐진 여성 서사에 주목하고, 최근 방영되었던 드라마와의 관계를 논한다. 한윤아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오가며 현실을 포착해 온 만화가 최성민의 『좁은 방』을 통해 한국 사회 여성-청년의 경험과 가부장적 실체를 조명한다. 김미래는 콘텐츠의 성평등 평가 방식인 ‘벡델 테스트’로 잘 알려진 미국의 만화가 앨리슨 벡델의 『초인적 힘의 비밀』이 불러일으킨 몸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김화진은 유키 스에나가가 쓰고 모에 타카마사가 그린 『아카네 이야기』를 읽으며 라쿠고(일본의 전통 이야기 예술)가들이 가르쳐 주는 말하는 사람의 태도에 대해 생각한다.

“『정년이』는 최근 여성 서사로 분류되는 작품들 중에서도 다양한 면에서 여성 서사의 본질을 충실히 담아낸 작품이다.” 만화가·만화평론가 선우훈은 「재밌지 않니? 세상은 거대한 여성국극 무대 같아」에서 서이레가 쓰고 나몬이 그린 『정년이』를 리뷰한다. 선우훈은 『정년이』가 여성들이 한때 향유했던 문화적 장인 여성국극의 세계를 세밀하게 그려 내고, 여성 서사로서 스스로 다시금 그러한 장을 창출하는 데까지 성공했다고 이야기한다. 한편, 『정년이』의 가장 독특하고 중요한 특색은 ‘백합물’이라는 점임을 강조하며,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정년이〉에서 핵심적인 퀴어 인물들이 모두 삭제되면서 여성국극이라는 소재와 주제 의식 간의 긴밀한 연결고리가 크게 훼손되었다고 비평한다.

“다예의 환상 서사 전략은 실패한다. 이 실패의 서사는 도처에 널려 있다.” 출판·시각예술 기획자 한윤아는 「‘좁은 방’에 침잠하는 시간」에서 최성민의 『좁은 방』을 다룬다. 한윤아는 여주인공 다예의 음침한 섹슈얼리티와 욕망에 ‘환상’의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즉, 그것은 사회적 위계, 남성적 상징계의 질서를 환상성으로 해체하려는 시도다. 이를 통해 한윤아는 현실의 성적 상징계를 전도하고 위반하는 환상이 맞닥뜨리는 현실을 포착하는 한편, 오늘날 한국의 독립만화들이 관습화된 성장 서사를 벗어나 ‘그늘의 서사’를 담는 그릇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조명한다.

“안 하던 것을 시작시키고, 없던 몸을 주고, 읽지 않던 책을 읽히는 만화는 독자 정신의 영역을 넓힌다.” 편집자 김미래는 「비밀 누설하기」에서 앨리슨 벡델의 운동 탐구 생활에 대한 회고록 『초인적 힘의 비밀』을 소개한다. 김미래는 저자가 운동에 몰입하며 60년간 겪은 ‘자기초월’의 역사를 눈으로 좇는다. 나아가 몸의 변화, 즉 노화와 질병을 겪으며 정신과 신체의 관계를 재정립해 나가는 아마추어 스포츠인의 열정이 독자인 자신에게까지 와닿아 몸을 움직이게 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아카네에게 라쿠고인 것이 나에게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좋다.” 소설가 김화진은 「그만두는 일, 시작하는 일, 소설가의 일」에서 유키 스에나가가 쓰고 모에 타카마사가 그린 『아카네 이야기』를 리뷰했다. 『아카네 이야기』는 아버지 신타의 뒤를 이어 라쿠고가의 길을 걷는 아카네의 이야기를 그린다. 김화진은 무대에서 관객을 이야기 안으로 끌어들이고, 이야기에 마음을 열고 웃게 하기 위해 객석의 마음을 살피는 라쿠고가의 일이 곧 소설가의 일과 다름없다고 이야기하며, 만화 속 인물들이 쥐어준 가르침을 생각한다.


디자인 리뷰

“훌륭한 예술이 그렇듯 아트북은 우리의 익숙하고 사소한 일상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사유한다.”

디자인 리뷰에서는 정재완 편집위원이 「싱가포르에서 가져온 책 세 종」이라는 제목의 디자인 비평을 썼다. 정재완은 지난 10월 열린 싱가포르 아트북페어에서 가져온 책들, 『31 비치 룩스(31 beach looks)』와 ‘스트리트 리포트’ 시리즈, ‘뉴 포레스트’ 시리즈를 소개한다. 정재완은 이들 아트북의 작가들이 자신이 기반을 둔 지역에 대한 사진과 그림과 글을 통해 저마다의 개성과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처럼 지역에 밀착된 서사들은, 최근 성행하고 있는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아트북페어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정재완은 지역의 목소리를 포함한 작고 다양한 목소리가 많아진 데에서, 책의 미래와 끊임없는 자기 갱신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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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메이커: 출판의 낭만과 일상

“길을 잃은 것 같다가도 내가 사랑하고 경험한 세계는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그곳으로 우리를 이끄는 듯하다.”

북&메이커에는 새의노래 출판사 대표 고미영의 「20세기 말 순정만화 잡지 독자가 지금을 호흡하는 이야기」라는 글이 실렸다. 고미영은 학창 시절 수업 시간에 만화 잡지를 몰래 돌려 보던, 순정만화의 열렬한 독자였던 시절에 대한 회고로부터 출발해, 편집자로 일하며 이어 온 만화와의 인연을 돌아본다. 이를 통해 고미영은 1990-2000년대 인기를 누렸던 순정만화·여자만화 잡지들에 대한 독자로서의 추억, 만화 편집자로서의 경험, 그리고 ‘현재 자신에게 유일한 만화 작가’ 마스다 미리의 작품 세계를 이야기한다.


문학: 풍성한 읽을거리

문학에는 번역가 박누리와 소설가 백수린의 에세이가 실렸다.

번역가 박누리는 「옮기는 이의 말」에서 책을 쓰기도, 만들기도, 읽기도 해보았지만 그중 가장 친밀함을 느끼는 역할은 역자라고 말한다. 저자가 책을 쓰는 사람,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사람, 독자가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역자 혹은 번역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좋을까? 박누리는 번역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소개’, 그리고 그를 통한 ‘연결’이라고 이야기한다. 한 사람의 손끝에서 창조된 글은, 그 텍스트의 힘에 매료된 또 다른 한 사람의 힘만으로 ‘소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가 백수린의 「단 한 권의 책」은 지난겨울과 봄의 몇 달, 시몬 드 보부아르의 『둘도 없는 사이』를 번역하며 보낸 시간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어린 시절 서가에 얽힌 기억부터, 보부아르의 소설을 처음으로 만난 순간, ‘번역하는 작가’로서 누군가 자신의 글에 담긴 의도를 온전히 알아주길 꿈꾸듯 원저자의 의도대로 충실히 연주하는 음악가,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대사를 정확하게 외우는 배우처럼 번역을 하고 싶은 욕망까지, 책과 번역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한다.


고전의 강

이름만 ‘횡행’하는 사상가, 허버트 스펜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고전의 강에서 다루는 세 번째 고전은 허버트 스펜서의 『진보의 법칙과 원인』과 『사회정역학(Social Statics)』이다. 허버트 스펜서는 영국 출신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무엇보다 사회진화론의 창시자로 19세기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그러나 이후 진보에 대한 낙관적 인식에 기반한 보편 법칙과 자유방임주의를 더 이상 고수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이어졌고, 20세기 이후로는 잊혀지거나 이름만 횡행하는 존재가 되었다. 세종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 김도형은 허버트 스펜서의 사상이 집약되어 있는 두 저작을 다시 펼치며, 그가 세상에 남긴 사회진화론과 자유방임주의가 오늘날 우리에게 미치고 있는 영향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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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서평 전문지가 필요하다.”

‘어떤’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 2020년 12월 0호로 출발하여 2024년 3월, 13호와 창간 3주년에 이른 《서울리뷰오브북스》는 그 답을 서평에서 찾는다. 17인의 편집진은 오랜 토론을 거쳐서 주제와 책을 선정하고 서평을 쓴 뒤에, 이를 내부에서 돌려 읽으면서 비판을 듣고, 이를 반영해서 글을 고친다. 타인의 책을 비평하고 비판하듯이, 자신들의 글도 같은 비판의 과정을 거친다.

서평 전문 계간지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좋은 서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한국에도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서평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탄생했다.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자연과학, 역사, 문학, 과학기술사, 철학, 건축학, 언어학, 정치학, 미디어, 물리학, 생물학, 법조, 북디자인, 미술 등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7명의 편집위원이 뜻을 모았다. 중요한 책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제대로 짚고, 널리 알려졌지만 내용이 부실한 책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주목받지 못한 책은 발굴해 소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저자 및 편집위원 소개

편집위원 강예린, 권보드래, 권석준, 김영민, 김홍중, 박진호, 박훈, 송지우, 신형철, 심채경, 유정훈, 이석재, 정우현, 정재완, 조문영, 현시원, 홍성욱

편집장 김두얼

책임편집 유정훈

필자 (게재순)

선우훈

만화가. 만화평론가와 현대미술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데미지 오버 타임』, 『나의 살던 고향은』, 『정읍: 샘골 이야기』, 『세상을 바꾼 노래들』 등의 만화를 그렸다. 만화 비평 웹진 《유어마나》 편집장을 지냈고, 만화 비평 팟캐스트 〈주간웹툰〉을 진행했다.

한윤아

시각예술 분야에서 기획, 비평, 소규모 출판을 한다. 출판사 타이그레스 온 페이퍼를 운영한다. 『나사와 검은 물: 쓰게 요시하루 만화집작가 연구』 등을 번역했고, 그림책과 만화 등을 다루는 비평 진(zine) 《스포로이드 진》을 발행하고 있다.

김미래

문학 편집자로 경력을 시작했는데, 어떻게 경력을 끝마칠지는 모르겠다. 편집자는 일정한 방침 아래 여러 재료를 그러모아 책을 엮는 사람이다. 방침을 만들고 따르는 삶에 긍지를 지니는 한편, 방침을 뚫고 나오는 존재의 날카로움에 경이를 느낀다. 그러한 경이로부터 맺은 결실로 『그건, 고래』, 『편집의 말들』이 있다.

김화진

소설가. 202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소설집 『나주에 대하여』, 연작소설 『공룡의 이동 경로』, 장편소설 『동경』, 단편소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 등을 출간했다. 제47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김도형

박사 과정생. 정치사상과 비판이론을 현실과 서로 비추며 공부한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시간에 대해 읽고 쓰며 생각한다.

이두은

전남대학교와 베이징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공부했다. 현재는 전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강사 및 중국인문연구소의 학술연구교수로 있으며, 중국의 고대 문학과 사상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고미영

새의노래 출판사 대표. 한길사, 시공사, 아트북스에서 예술 분야 편집자로 일했다. 문학동네 계열사 이봄 대표로 12년 있었다. 프랑스문학과 서양미술사학을 공부했다. 다섯 명의 편집자와 같이 쓴 책으로 『편집자의 일』이 있다. 2022년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이동진

판사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민법, 의료법 등을 연구, 강의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의 법과 철학』 등 공저 20여 권, 논문 120여 편이 있다.

조천호

대기과학자. 30년간 국립기상과학원에서 일했으며 원장으로 퇴임했다. 기후변화 과학이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공부하고 있다. 기후위기를 다룬 『파란하늘 빨간지구』를 썼다.

정은진

컴퓨터과학자. 샌프란시스코대학교 부교수. 기술과 교육이 만나는 교육공학과 포용성을 높이는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조귀동

광주 풍향동, 산수동, 두암동에서 살았고 전남대학교 후문과 충장로에서 자랐다. 2021년 6월 학동 재개발 현장 붕괴 참사가 저발전의 악순환과 ‘닫힌 사회’에 대한 불만에 불을 붙여 책을 쓰게 됐다. 다른 책으로 『세습 중산층 사회』와 『이탈리아로 가는 길』이 있다.

김도형

세종대학교 국제학부 일어일문학전공 조교수. 일본 근대 사상, 그중에서도 서양의 지식과 학술을 받아들이고 변용한 근대 일본의 지식 체계 구축 양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역서로 『입헌정체략·진정대의』, 논문으로 「경쟁과 조화: 가토 히로유키의 자연주의와 윤리학(Competition and Harmony: Kato Hiroyuki’s Naturalism and Ethics for Modern Japan)」 등이 있다.

박누리

20대에는 다수의 책을 우리말로 옮긴 번역가로, 30대에는 한국과 일본 굴지의 테크 기업에서 자본 시장 업무를 담당한 테크업계 금융인으로 살았다. 현재는 한국의 콘텐츠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다양한 미디어에 기고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 『재닛 옐런』 등이 있다.

백수린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폴링 인 폴』, 『참담한 빛』, 『여름의 빌라』, 중편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 짧은소설집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 산문집 『다정한 매일매일』,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등을 출간했다.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차례

편집실에서 … 유정훈

특집 리뷰: 만화라는 소우주

재밌지 않니? 세상은 거대한 여성국극 무대 같아 · 『정년이』 … 선우훈

‘좁은 방’에 침잠하는 시간 · 『좁은 방』 … 한윤아

비밀 누설하기 · 『초인적 힘의 비밀』 … 김미래

그만두는 일, 시작하는 일, 소설가의 일 · 『아카네 이야기』 … 김화진

2024 우주리뷰상 발표

심사 경위·심사평·수상 소감

최우수작 전장연 시위라는 사건 · 『전사들의 노래』, 『출근길 지하철』 … 김도형

우수작 무위의 계보학 ·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 이두은

디자인 리뷰

싱가포르에서 가져온 책 세 종 … 정재완

북&메이커

20세기 말 순정만화 잡지 독자가 지금을 호흡하는 이야기 … 고미영

리뷰

기자의 눈으로 본 K-의료의 정치경제학 · 『뒤틀린 한국 의료』 … 이동진

불타는 폭염에서 불타는 야망으로 · 『폭염 살인』 … 조천호

모두가 다르게 배우는 하나의 교실을 위해 · 『우리는 모두 다르게 배운다』 … 정은진

반론

‘외부인’과 ‘관리자’로 규정하는 방식은 정당한가? … 조귀동

고전의 강

이상적인 사회로의 진화, 아니 진보에 대한 지적 탐색 · 『진보의 법칙과 원인』, 『사회정역학(Social Statics)』 … 김도형

문학

옮기는 이의 말 … 박누리

단 한 권의 책 … 백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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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발견]

《서울리뷰오브북스》가 창간 4주년을 맞았습니다. 2025년 봄호의 특집을 ‘헌법의 순간’으로 정하고 출간 준비를 하면서, 1년 전 2024년 봄호를 다시 꺼내봅니다. 창간 3주년이었던 13호의 특집 주제는 ‘민주주의와 선거’였습니다. 1년 만에 다시 정치적인 주제로 돌아오게 되었고, 이번에는 특별히 ‘헌법’이라는 단어에 더욱 집중할 특별한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헌법의 순간』『나쁜 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히틀러의 법률가들』『독재의 탄생』등의 책을 통해 우리들은 또다시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성찰에 응답하고자 합니다. (3월 15일 출간 예정)

그전에 『민주주의에 반대한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선거는 민주적인가』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 『지역정당』 등의 리뷰를 통해, 민주주의의 위치 현상과 정치적 대안을 모색했던 2024년 13호 기획을 다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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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해방 이후 수십 년 동안 수많은 희생을 통해 쟁취했던 자유선거와 민주주의가 정말로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인지 되짚어 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어렸을 때부터 당연하게 여겨 왔던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깊이 성찰한 저작들을 꼼꼼히 읽어 봄으로써,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이런 노력이 민주주의를 새롭게 이해하고 부활시키는 밀알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김두얼 「편집실에서」, 3쪽

주류 민주주의 이론은 대부분 브레넌이 절차주의로 분류하는 논변을 부분적으로라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주류 민주주의 이론은 많은 경우 민주주의가 여타 정치 형태에 비해 좋은 결과를 낳는 경향이 있을뿐더러, 인간의 자율성

실현, 정치 공동체 구성원 사이 평등의 구현 등 절차주의적 의의가 있다고 보는 혼합 논변을 견지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민주주의의 핵심 문제는 단지 ‘민주주의는 여타 정치 형태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가’가 아니라, 동시에 ‘민주주의가 때로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데도 우리가 민주주의를 수립하고 유지할 이유는 무엇인가’이다.

―송지우 「민주주의는 유권자 때문에 실패하는가」, 24쪽

저자들은 단순한 사례 열거에 그치지 않고 정치사에 대한 관찰과 분석을 근거로 합법적 수단을 통해 민주주의가 전복될 때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하고, 정치 지도자에게 독재자가 될 잠재력이 있는지 알려 주는 경고 신호를 네 가지로 정리한다. 구체적으로, 첫째,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혹은 규범 준수에 대한 의지 부족, 둘째, 정치 경쟁자에 대한 부정, 셋째, 폭력에 대한 조장이나 묵인, 넷째, 언론 및 정치 경쟁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성향이 그것이다.

―유정훈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선거로 구할 수 있을까?」, 31쪽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영원한 승자도 없고 영원한 패자도 없다는 인식과 맞물려 돌아간다. 정치에 정답은 없고, 여러 가능한 답들 중에서 주어진 맥락과 환경에 적합한 답을 선택하는 작업이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인이 해야 하는 일이다. 정기적으로 수행되는 선거는 ‘가치와 이념의 자유 시장’이다. (……)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서 각 정치 진영은 상대 진영을 절멸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으로 여긴다. 상대가 만든 법이라고 해도 그 법을 따르겠다는 태도, 우리가 졌다고 해서 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폄하하지는 않겠다는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 선거에서 국민의 뜻을 잘 읽고 설득하여 승리하겠다는 태도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서로 다른 정당들이 경쟁하는 방식이다.

―하상응 「차별 없는 차이의 인정」, 47-48쪽

선거가 주요 정치 과정이 되면서 ‘우열’의 개념이 확고히 자리 잡게 된다. 대표성의 원리는 ‘나와 유사한 사람’을 내보내는 것이라고 주장될 수 있지만 결국 투표의 과정은 나보다 탁월한 사람을 내보내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 결국 ‘나를 대표한다’는 것은 ‘나와 같은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뽑는 것이 되어 버렸다. 저자는 이것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비판만 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사람들은 재산 있고 존경할 만한 사람들을 뽑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며, 이는 ‘선거’라는 제도 자체가 갖는 본질적인 불평등성, 즉 고대로부터 강조되어 온 “선거의 귀족주의적 속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나미 「‘선거’는 민주적이라는 착각」, 57-58쪽

이 책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 및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라는 정치적 사건이 현대 정치가 직면하는 도전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고 진단한다. ‘극단적 정치 집단의 세력화’, ‘포퓰리즘의 대두’, ‘민주주의의 후퇴’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현대 정치의 위기는 존엄에 대한 대중들의 요구에서 비롯되었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다름 아닌 ‘정체성 정치’ 시대이다.

―정회옥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대중」, 66쪽

이 책을 통해 우리는 K-민주주의가 실은 얼마나 민주주의의 보편적 상식에 미달하는지, 앞으로 치열하게 도전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 정당은 다른 어떤 정치 제도보다 더 접근성이 높아야 한다. 누구나 쉽게 정당에 가입해 그 의사결정과 일상 활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정당 자체를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지역정당』이 소개하는 다른 대다수 민주주의 국가처럼, 뜻을 함께하는 사람 셋만 모이면 정당을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장석준 「양대 정당 독점 정치를 아래로부터 무너뜨리는 법」, 79-80쪽

〈서울의 봄〉은 죄인을 단죄하지 못하는 데 무심해진 동토에, 민주 사회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곳곳에서 민주주의 정신을 위배하는 일이 일어나는 데 경각심을 잃은 한국 사회에, 온기와 빛을 몰고 온 의미심장한 영상물이다. 감독은 1979년 12월 12일이라는 역사적 하루를 ‘사나이들 간의 대결’로 선명하게 형상화했다. ‘우리가 독재자와 싸워 민주화를 쟁취했다’고 가르치듯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부모 세대에게 불공정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맞섰던 젊은 세대가, 〈서울의 봄〉이라는 강력한 이야기에는 뜨겁게 반응하고 있다.

―정아은 「두 가지 키워드로 들여다본 〈서울의 봄〉」, 92쪽

독자들이 미처 신경 쓰지 않는 영역을 세심하게 건드리는 북 디자이너의 노고는 조금씩 동시대 시각 문화의 질적 수준을 높여 간다. 1980-1990년대 한글 탈네모꼴 폰트를 제안하고 실천했던 디자이너들의 유산은 현재로 이어지고 있다.

1980-1990년대 한글 탈네모꼴은 출판 현장에서 고군분투했다.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탈네모꼴이 획득한 시대정신은 분명했다. 그것은 기존 질서를 벗어나고자 했던 디자이너들의 실험정신이자, 한글 자체가 지닌 조형적 원리에 입각한 한글 타이포그래피 방법론에 대한 열망이었다.

―정재완 「한글 타이포그래피 실험기의 탈네모꼴 폰트」, 103쪽

‘한인/한글 문학의 플랫폼’으로서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는 2022년 11월 14일 첫걸음을 떼었다. (……) 창간호를 준비하는 과정 동안 무엇보다 《너머》의 편집 방향에서 중심축이 되어야 할 ‘디아스포라’에 대한 통념뿐만 아니라, ‘한인 디아스포라’에 대한 이해를 다듬어 나가는 공부를 했다. 특히, 그들의 언어가 ‘국어/모국어/모어’의 다층적 층위에서

통용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했다. 그리하여 낯선 타방에서 한글 공동체가 직면한 역사의 격동 속에서 한글 사용이 점차

어려워지고 정치적 억압과 금기로 한글 사용 자체가 용납되지 않는 엄혹한 현실에서도 그들의 문학이 단절되지 않고 있는 경이로움을 만날 수 있(었)다.

―고명철 「한인/한글 문학의 플랫폼,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를 만나기 위해」, 105쪽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쇼펜하우어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서가 아니라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대한 대중적인 소개서다. 그것도 본격적인 소개서라기보다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에서 인생 교훈을 끌어내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을 학술서를 평가하듯이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 책에서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대한 깊이 있고 창의적인 해석을 기대해서는 안 되며, 그런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다.

―박찬국 「베스트셀러 1위인 철학서를 어떻게 볼 것인가」, 117-118쪽

광해군의 일생은 어떤 이유로 연구할 가치가 있을까. 특이하게도 왕위에서 쫓겨난 사람이기 때문일까. 그런 사람으로

는 노산군(단종)과 연산군도 있으니, 광해군이 유일한 사례는 아니다. (……) 광해군을 어떻게 평가하든, 광해군 시대가 조선사의 변곡점이라는 데 많은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과연, 광해군은 조선사 전체를 들여다보게 해주는 창문일까. 창문이라면 어떤 창문일까.

―김영민 「조선 국가론을 향하여: 광해군과 ‘인조반정’을 둘러싼 논쟁의 재검토」, 129쪽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 국가는 우리의 오랜 시장이었다. 우리 기업은 그곳에서 얻은 기회를 통해 양적·질적으로 성장했고, 그것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발판이 되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경쟁은 치열해지고 상황은 악화 일로를 걸었다. 그렇기는 해도 아직도 그만큼 역동적인 시장은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걸프 국가는 아직도 놓칠 수 없는 시장이라는 말이다. (……) 걸프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그 시장을 직접 경험한 전문가들이 쓴 책 세 권을 골라 필요한 부분을 연결해 가며 읽었다.

―박인식 「석유 이후의 걸프 경제」, 164-165쪽

우리가 그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도 꽃들은 그저 피어나 어디서든 잘 자라고 있다. 자연은 불러 주는 이름이 없이도 서로 어울려 잘 지낸다. ‘나투라 논 파싯 살툼(Natura non facit saltum)’, 즉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름을 불러 주거나 비슷한 것끼리 모아 합리적으로 분류했다는 이유로 생명에 갑자기 없던 생명력이 생기거나 가치가 더 높아질 리 없다. 거꾸로 이름을 빼앗겼다고 하여 분류학에 투신했던 학자들의 노고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우현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아도 꽃은 이미 거기에 있다」, 186쪽

옐런은 과거와는 달리 정치적 고려를 무조건 배척하지 않고 상당히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퇴행인지 발전인지는 각자 판단할 일이나 경제의 최고 책임자라는 자리가 정치와 명확히 선을 그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다. (……) 옐런이 금융 위기,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의 와중에 연준과 재무부에서 내린 결정은 미국과 세계 경제가 파국에 빠지는 것을 막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부작용 또한 초래했다. 그런 점에서 옐런의 경험은 잊혀져서는 안 되는 소중한 자산이다.

―신현호 「자넷 옐런을 통해 본 경제와 정치의 접점」, 199-200쪽

출국하는 날 책 두 권을 넣은 가방을 들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불안은 수백만 톤에 달하는 기계가 허공에 떠 있음을 한순간도 잊을 수 없는 데서 비롯한다. 그러니 현재 상황을 의식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된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주위를 완전히 잊은 경험은 책에 몰입했을 때뿐이었다. 생각이 이 지점에 이르렀을 때 스스로 의아했다. 영화가 아니고 책? 그렇다. 영화가 아니라 책. 당신을 떠올린 것은 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부희령 「비행 공포」, 204-205쪽

그래도 여전히 나는 ‘사랑한다’에 이어 ‘사랑할 만하다’라는 말을 한다. (……) 내가 사랑하는 숲이 다른 사람들도 사랑할 만한 것으로 생생하게 살아 있기를 바란다. 카스탈리엔의 유리알 유희가 문화의 쓸모를 논하는 사람들에 맞서 섬세하게 지켜야 할 기예였듯이, 여기에도 가치가 있다고, 한 사람이라도 많이 사랑하게 되면 좋겠다고.

―심완선 「판타지 세계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217-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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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발견]

《서울리뷰오브북스》가 창간 4주년을 맞았습니다. 2025년 봄호의 특집을 ‘헌법의 순간’으로 정하고 출간 준비를 하면서, 1년 전 2024년 봄호를 다시 꺼내봅니다. 창간 3주년이었던 13호의 특집 주제는 ‘민주주의와 선거’였습니다. 1년 만에 다시 정치적인 주제로 돌아오게 되었고, 이번에는 특별히 ‘헌법’이라는 단어에 더욱 집중할 특별한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헌법의 순간』『나쁜 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히틀러의 법률가들』『독재의 탄생』등의 책을 통해 우리들은 또다시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성찰에 응답하고자 합니다. (3월 15일 출간 예정)

그전에 『민주주의에 반대한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선거는 민주적인가』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 『지역정당』 등의 리뷰를 통해, 민주주의의 위치 현상과 정치적 대안을 모색했던 2024년 13호 기획을 다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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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봄호 특집 리뷰: 민주주의와 선거

서울리뷰오브북스 편

송지우·유정훈·하상응·이나미·정회옥·장석준

정아은·정재완·고명철·박찬국·김영민·박인식

정우현·신현호·부희령·심완선 지음

232쪽|신국판 변형(140×225)|무선|15,000원|2024년 3월 15일

ISSN 2765-1053 41ISBN 979-11-89333-77-5 (03300)

국내도서 > 인문학 > 학회/무크/계간지

국내도서 > 인문학 > 책읽기/글쓰기 > 책읽기




《서울리뷰오브북스》 창간 3주년

민주주의와 선거를 들여다보는 여섯 편의 전문 서평,

‘특집 리뷰’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부터 『자연에 이름 붙이기』까지,

서점가의 화제작들을 다루는 다채로운 ‘리뷰’

“한국에도 서평 전문지가 필요하다”는 요청 아래 2020년 12월 창간준비호(0호), 2021년 3월 창간호(1호)로 출발한 《서울리뷰오브북스》가 창간 3주년을 맞았다. 기대와 우려 속에서 첫발을 뗀 창간 예비호부터 12호까지, 지난 3년간 《서울리뷰오브북스》는 77인의 필자가 참여하여 156편의 서평을 통해 198권의 도서를 리뷰했다. 서평을 통해 독자와 책을 잇고, 그럼으로써 한국 사회의 지식 공론장을 확장하는 데에 기여해 온 《서울리뷰오브북스》는 계속해서 깊이 있고 다채로운 서평들로 독자들에게 보답하며, 단단한 서평 문화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 계속 정진할 것이다.

창간 3주년을 맞아 펴내는 13호의 특집 주제는 ‘민주주의와 선거’이다. 2024년은 사상 최대의 ‘선거의 해’로 꼽힌다. 60여 개국에서 대선과 총선이 열리고, 올 한 해 선거를 치르는 국가의 인구가 전 세계의 절반을 넘을 정도로, 전 세계가 선거로 떠들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팽배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이런 민주주의의 위기를 직시해 보았다. 정치 및 정치학 분야의 전문가 6인의 특집 리뷰를 통해 민주주의와 선거 제도의 기본 원리를 깊이 성찰한 저작들을 읽으며, 민주주의의 위기 현상과 정치적 대안을 모색했다.

정치철학, 법찰학, 인권학의 교집합을 연구하는 송지우 편집위원은 제이슨 브레넌의 문제작 《민주주의에 반대한다》를 리뷰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회의에 응답한다. 지속적으로 미국 정치를 소재로 글을 써온 유정훈 편집위원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통해 민주주의 위기 신호를 진단한다. 하상응 교수(서강대 정치외교학과)는 『민주주의 공부』 리뷰에서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와 원리, 포퓰리즘의 문제를 살핀다. 이나미 생태적지혜연구소 학술위원은 급진적/대안적 민주주의 이론의 핵심 텍스트인 『선거는 민주적인가』를 읽으며 오늘의 관점에서 선거와 추첨을 재론한다. 정회옥 교수(명지대 정치외교학과)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21세기 정치의 핵심 화두 중 하나인 ‘정체성 정치’의 문제를 다룬다. 장석준 정의정책연구소 소장은 『지역정당』 리뷰를 1962년 체제에 머물러 있는 ‘K-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짚으며 양대 정당 독점 정치를 아래로부터 무너뜨리는 열쇠로 ‘지역정당’을 제안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사유와 성찰은 영화 리뷰 코너 ‘이마고 문디’에서도 이어진다. 이번 호에는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을 쓴 정아은 작가가 지난해 극장가 최대 화제작이었던 〈서울의 봄〉을 리뷰한다. 정아은 작가는 〈서울의 봄〉이 선택과 집중을 통해 1979년 12월 12일이라는 역사적 하루를 ‘사나이들 간의 대결’로 선명하게 형상화한 점을 호평하며, 내전과 정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영화를 다시 들여다본다.

리뷰 코너에는 서점가에 쇼펜하우어 열풍을 불러온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부터, 광해군과 ‘인조반정’을 둘러싼 논쟁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광해군: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모후의 반역』, 석유 이후의 걸프 경제를 조망하는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중동 경제 3.0』·『중동을 보면 미래 경제가 보인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있게 한 캐럴 계숙 윤의 『자연에 이름 붙이기』, 미국 재무부 장관 자넷 옐런의 전기 『자넷 옐런』까지 서점가의 화제작들을 다채롭게 다루었다. 철학, 역사, 경제, 생물학을 아우르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서평들을 리뷰 코너에 담았다.

특집 리뷰:

민주주의와 선거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깊이 성찰한 저작들을 꼼꼼히 읽어 봄으로써,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이런 노력이 민주주의를 새롭게 이해하고 부활시키는 밀알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김두얼, 「편집실에서」 중에서

1991년,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선언했다. 민주주의는 가장 공정하고 효과적인 체제로 여겨졌으며, 그 위상과 신뢰도 더없이 높았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은 눈에 띄게 약화되었다. 선거로 뽑힌 지도자가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포퓰리즘이 확산되고 있으며, 상호 존중에 기반한 대화와 타협이라는 규범이 무너지고 있다. 한마디로, 오늘날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져 있다. 이 같은 ‘민주주의의 위기’ 현상은 민주주의와 선거가 가장 좋은 제도인지,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등의 질문을 낳는다.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불안과 혼란이 팽배한 지금,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이러한 질문들에 저마다의 답을 제시하는 여섯 권의 책을 골랐다. 이들 여섯 권의 책과 6인의 전문 필자가 쓴 서평을 통해 우리가 민주주의를 수립하고 유지할 이유, 민주주의의 위기 현상과 미국의 경험,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와 가치, 선거 제도에 대한 비판적 검토, 정체성 정치, 지역정당 등 ‘민주주의와 선거’ 대한 다층적인 분석을 시도했다.

“민주주의의 핵심 문제는 ‘때로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데도 우리가 민주주의를 수립하고 유지할 이유는 무엇인가’이다.” 송지우 편집위원은 「민주주의는 유권자 때문에 실패하는가」에서 정치철학자 제이슨 브레넌의 도발적인 문제의식이 담긴 『민주주의에 반대한다』를 리뷰한다. 송지우는 민주주의에 반대하며 에피스토크라시(지식인에 의한 통치)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저자의 주장을 치밀하게 검토한다. 그리하여 보다 급진적인 민주주의 실험보다 에피스토크라시를 먼저 시도할 명분이 부족함을 지적하며, ‘때로 나쁜 결과를 초래함에도 우리가 민주주의를 수립하고 유지할 이유는 무엇인가’를 민주주의의 핵심 문제로 위치시킨다.

“그래서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해야 하나.” 유정훈 편집위원은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선거로 구할 수 있을까?」에서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정훈은 미국의 경험에 기초한 책을 한국의 현실과 교차해 읽으며, 선거로 시작되는 민주주의 붕괴 현상을 분석한다. 또한,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한 해법의 모호함은 저자들에 대한 아쉬움으로 남길 것이 아니라, 각자의 현실에 맞춰 스스로 찾아야 할 몫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민주주의에서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 하상응「차별 없는 차이의 인정」에서 정치철학자 얀-베르너 뮐러의 『민주주의 공부』를 소개한다. 하상응은 저자를 따라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자유와 평등부터 포퓰리즘의 개념, 민주주의의 퇴행을 막기 위한 전투적 민주주의와 시민 불복종까지 민주주의에 관한 쟁점들을 두루 살핀다. 특히,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로 ‘차별 없이 차이를 인정하는 것’과 ‘민주주의에서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선거 외에 다른 특별한 정치적 수단을 발견하기 어려운 지금, 우리는 어떤 자세로 선거에 임해야 하는가.” 이나미「‘선거는 민주적’이라는 착각」에서 출간 27년을 맞은 버나드 마넹의 『선거는 민주적인가』를 리뷰한다. 『선거는 민주적인가』는 출간된 후 한 세대가 흘렀음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적지 않은 충격과 울림을 주는 텍스트이다. 이나미는 『선거는 민주적인가』가 선거 외의 다른 정치적 수단을 발견하기 어려운 지금, 민주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선출 방법인 ‘추첨’을 자세히 소개하며, 선거 제도의 본질적인 불평등성을 비판한 점을 강조한다. 또한 정당에 의한 ‘전체주의화’의 위험과 ‘미디어 전문가의 통치’를 한국 정치의 현실과 교차하여 재론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다름 아닌 ‘정체성 정치’ 시대이다.” 정회옥「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대중」에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톺아본다. 저자는 후쿠야마의 관찰을 따라, ‘극단적 정치 집단의 세력화’, ‘포퓰리즘의 대두’, ‘민주주의의 후퇴’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현대 정치의 위기는 존엄에 대한 대중들의 요구에서 비롯되었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곧 정체성 정치의 시대라고 말한다. 정회옥은 분열되고 파편화되는 집단 간 인정 투쟁이 격렬한 한국 정치의 현실을 짚으며, 인간 존엄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도모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한국 정치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선거 제도 개혁만이 아니라, 아니 그보다 더 긴급하게 정당 제도 개혁이 요청되는 것이다.” 장석준「양대 정당 독점 정치를 아래로부터 무너뜨리는 법」에서 윤현식의 『지역정당』을 읽는다. 장석준은 한국의 양대 정당 독점 정치를 ‘위로부터’ 변화시키는 선거 제도 개혁뿐 아니라, ‘아래로부터’ 변화시키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때 주목할 것은 지역 생활 현장에서부터 기득권 정치에 도전하는 ‘지역정당’이다. 장석준은 저자의 시선을 따라 여전히 한국에서 지역정당이 금지되는 배경인 ‘1962년 체제’와 정당법을 검토하며, K-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보편적 상식에 얼마나 미달하는지, 앞으로 도전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리뷰: 책으로 세상을 보다

〈리뷰〉에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시의성 있고, 심도 있는 서평들이 이어진다.

박찬국 교수(서울대 철학과)는 「베스트셀러 1위인 철학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서점가에 분 ‘쇼펜하우어 열풍’의 중심에 있는 강용수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리뷰한다. 박찬국은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가 그동안 독자들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쇼펜하우어의 책과 철학에 대한 큰 관심을 이끌었다는 점을 칭찬한다. 그러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쇼펜하우어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서가 아닌 그의 사상에 대한 대중적인 소개서이며, 특히 본격적인 소개서가 아닌 인생 교훈을 끌어내는 데 목표를 둔 책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대한 소개와 관련해 몇 가지 이견을 제시한다.

김영민 편집위원은 「조선 국가론을 향하여」에서 『광해군: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 『모후의 반역: 광해군대 대비폐위논쟁과 효치국가의 탄생』을 함께 읽으며 광해군과 ‘인조반정’을 둘러싼 논쟁을 심층적으로 재검토하는 서평을 썼다. 먼저, 김영민 편집위원은 광해군(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를 종합적으로 살피며, 이에 대한 역사학계의 논쟁을 치밀하게 검토한다. 나아가, 김영민 편집위원은 광해군과 ‘인조반정’에 관한 논의를 조선의 국가 성격에 대한 논의로 확장, 진전시킨다.

중동 전문가 박인식「석유 이후의 걸프 경제」에서 걸프 시장을 직접 경험한 전문가들 이 쓴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 『중동 경제 3.0』, 『중동을 보면 미래 경제가 보인다』을 연결해 가며 읽었다. 세 권의 책을 통해 박인식은 산유국 경제의 초기 형태부터 걸프 국가의 산유국 경제 탈출 과정,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 등으로 대표되는 ‘석유 이후’를 준비하는 걸프 국가의 현황까지 두루 살피며 걸프 시장에 대한 이해를 도모했다.

정우현 편집위원은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아도 꽃은 이미 거기에 있다」에서 캐럴 계숙 윤의 『자연에 이름 붙이기』를 다룬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는 룰루 밀러의 베스트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정우현 편집위원은 분류학의 새로운 발견을 통해 두 사람이 지향하게 된 세계관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반대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물고기가 사라졌다’고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입장 모두를 배격하며, 이름과 분류에 관계 없이 자연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경제 평론가 신현호「자넷 옐런을 통해 본 경제와 정치의 접점」에서 미국 최고위 경제 정책직을 모두 거친 유일한 인물인 자넷 옐런의 전기를 리뷰한다. 신현호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경제·금융 분야 전문 기자인 저자의 시선을 따라 자넷 옐런의 일대기를 관찰하며, 경제와 정치의 접점을 생각한다. 경제학자이자 경제 관료로서 자넷 옐런이 금융 위기,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의 와중에 연준과 재무부에서 내린 결정은 미국과 세계 경제가 파국에 빠지는 것을 막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부작용 또한 초래했다. 신현호는 이 과정에서 옐런이 겪은 경험과 반성은, 경제와 정치의 접점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유익한 자료가 될 것이라 말한다.

이마고 문디: 이미지로 읽는 세계

“〈서울의 봄〉은 죄인을 단죄하지 못하는 데 무심해진 동토에,

민주 사회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곳곳에서 민주주의 정신을 위배하는 일이 일어나는 데

경각심을 잃은 한국 사회에, 온기와 빛을 몰고 온 의미심장한 영상물이다.”

이마고 문디에서는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의 저자인 정아은 작가가 2023년 한국 영화 최대 흥행작인 〈서울의 봄〉을 다룬다. 정아은 작가는 〈서울의 봄〉이 12·12라는 거대한 사건을 선택과 집중을 통해 극단의 두 남성 캐릭터의 대결로 선명하게 형상화한 데 주목한다. 이를 통해 1979년 12월 12일이라는 역사적 하루를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형상을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정서를 보여 주는 이야기’로 형상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의 힘이 민주주의 정신을 위배하는 일에 경각심을 잃어가는 한국 사회에서 이 영화가 세대를 관통해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원동력이었다고 평가한다.

디자인 리뷰

“탈네모꼴이 획득한 시대정신은 분명했다.

그것은 기존 질서를 벗어나고자 했던 디자이너들의 실험정신이자,

한글 자체가 지닌 조형적 원리에 입각한 한글 타이포그래피 방법론에 대한 열망이었다.”

디자인 리뷰에서는 정재완 편집위원이 「한글 타이포그래피 실험기의 탈네모꼴 폰트」라는 제목의 디자인 비평을 썼다. 정재완 편집위원은 인쇄 출판에서 새로운 시도가 풍성하게 이루어지던 1990년대를 돌아본다. 정재완 편집위원은 그중에서도 당대 디자이너들의 실험과 열망이 낳은 한글 탈네모꼴 폰트의 생산과 도입에 주목하여, 1990년대 출간된 탈네모꼴 폰트를 사용한 63종의 단행본 표지 디자인을 살펴본다.

북&메이커: 출판의 낭만과 일상

북&메이커에서는 문학 평론가 고명철이 「한인/한글 문학의 플랫폼,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를 만나기 위해」라는 제목 아래,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를 소개한다. 고명철은 ‘디아스포라 한인/한글 문학의 플랫폼’으로서 웹진 《너머》의 지향과 구성을 소개하며, 웹진 《너머》를 만들며 고찰한 디아스포라적 존재가 직면하고 있는 언어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나아가, 언어 민족주의와 한글 중심주의를 경계하며, 지구화 시대에 접어들며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이 한글이 아닌 현지어로 발표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고민한다.

문학: 풍성한 읽을거리

문학에는 작가 부희령과 SF 평론가 심완선의 에세이 2편이 실렸다.

부희령「비행 공포」에서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느끼는 불안을 잊기 위해 책 두 권을 들고 비행기에 올라탄 경험을 회고한다. 영화가 아닌 책을 택한 것은, 이제껏 살아오면서 주위를 완전히 잊은 경험은 책에 몰입했을 때뿐이었기 때문이다. 책이 불안을 달래지 못하는 가운데, 작가는 어린아이와 청소년의 경계를 넘어가던 시절, 혈육도 친구도 아니었으나 한동안 같은 방을 썼던 한 사람을 떠올린다.

심완선「판타지 세계를 사랑하고 있습니다」에서 SF와 웹소설을 ‘사랑할 만하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시간을 되돌아본다. 저자는 그것들을 ‘사랑할 만하다’라는 말을 하기까지 사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고백한다. 장르 문학을 좋아하는 일은 최근까지 아주 오랫동안 ‘자랑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르의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 덕분에 문학계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위계를 넘어 장르 문학을 ‘사랑하고’ ‘사랑할 만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 저자는,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도 사랑할 만한 것으로 생생하게 살아 있기를 희망한다.

차례

편집실에서 ∥ 김두얼

특집 리뷰: 민주주의와 선거

민주주의는 유권자 때문에 실패하는가 ∥ 송지우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선거로 구할 수 있을까 ∥ 유정훈

차별 없는 차이의 인정 ∥ 하상응

‘선거는 민주적’이라는 착각 ∥ 이나미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대중 ∥ 정회옥

양대 정당 독점 정치를 아래로부터 무너뜨리는 법 ∥ 장석준

이마고 문디: 이미지로 읽는 세계

두 가지 키워드로 들여다본 〈서울의 봄〉 ∥ 정아은

디자인 리뷰

한글 타이포그래피 실험기의 탈네모꼴 폰트 ∥ 정재완

북&메이커

한인/한글 문학의 플랫폼,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를 만나기 위해 ∥ 고명철

리뷰

베스트셀러 1위인 철학서를 어떻게 볼 것인가 ∥ 박찬국

조선 국가론을 향하여 ∥ 김영민

석유 이후의 걸프 경제 ∥ 박인식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아도 꽃은 이미 거기에 있다 ∥ 정우현

자넷 옐런을 통해 본 경제와 정치의 접점 ∥ 신현호

문학

비행 공포 ∥ 부희령

판타지 세계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 심완선

지금 읽고 있습니다

신간 책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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