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 소식


2024 여름호 특집 리뷰: 믿음, 주술, 애니미즘

서울리뷰오브북스 편
한승훈·권석준·오성희·임종태·심재훈·홍성욱
현시원·구정연·강의모·이승철·김지훈·홍제환
박진호·정우현·한성우·박해울 지음

260쪽|신국판 변형(140×225)|무선|15,000원|2024년 6월 15일
ISSN 2765-1053 42|ISBN 979-11-89333-79-9 (0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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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왜, 어떻게 믿는가?
특집 리뷰: 믿음, 주술, 애니미즘

박찬경 작가의 〈신도안〉에 담긴 믿음의 공동체,
이마고 문디

고전을 읽는 새로운 시선, 신설 코너
고전의 강

서평 전문지 《서울리뷰오브북스》





도서 개요

우리의 불가해한 믿음을 들여다보는 여섯 편의 전문 서평,
‘특집 리뷰’

《서울리뷰오브북스》의 새로운 코너 ‘고전의 강’

『경계를 넘는 공동체』부터 『혁명과 일상』까지,
서점가의 화제작들을 다루는 다채로운 ‘리뷰’

《서울리뷰오브북스》 2024년 여름호(14호)의 특집 주제는 ‘믿음, 주술, 애니미즘’이다. 우리는 무엇을, 왜, 어떻게 믿는가? 기성세대뿐 아니라 젊은 세대에게도 사주팔자와 신점이 인기이고,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전화와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서도 ‘용한 곳’에 접속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치인이나 경영인이 ‘주술’에 의지한다는 혐의를 받으면 지지율과 주가가 요동친다. 무당·지관·장의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파묘〉(2024)가 오컬트 장르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동시에, OTT에서는 ‘사이비 종교’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공개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고, 많은 이들의 분노와 경악을 자아냈다. 혹자는 근대로의 이행을 ‘탈주술화’ 과정이라 했지만, 2024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여전히 주술과 함께 살아간다. 《서울리뷰오브북스》 14호에서는 이런 현실을 마주 보며 우리의 불가해한 믿음과 그 믿음의 대상들을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종교학, 문화인류학, 과학학, 역사학, 자연과학 분야 전문가 6인이 머리를 맞댔다.
종교학자 한승훈은 이창익의 『미신의 연대기』를 리뷰하며 ‘미신’이란 무엇인지, 인간의 기괴한 믿음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에 답한다. 권석준 편집위원은 과학적 회의주의자 마이클 셔머의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를 통해 패턴 완성이 잘못된 믿음과 광신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살펴본다. 무속 현장을 연구하고 있는 오성희는 두 여성 학자의 인류학적 무속 연구의 결과물인 『무당, 여성, 신령들』과 『한국 무교의 문화인류학』을 읽으며 한국 무속과 여성들 삶의 내면을 파악해 본다. 임종태(서울대 과학학과)는 지난 2월 작고한 ‘풍수 학인’ 고 최창조(1950-2024) 선생의 『한국의 풍수사상』을 다시 읽으며, 풍수라는 ‘전근대적’ 술수(術數)를 ‘현대적’ 학문으로 정립하고자 한 그의 여정을 좇는다. 심재훈(단국대 사학과)은 인신 공양과 식인 풍습이 만연했던 상나라의 흥망성쇠를 다룬 『상나라 정벌』을 비판적으로 독해한다. 홍성욱(본지 편집위원, 서울대 과학학과)은 애니미즘적 감수성의 복원을 주장하는 『애니미즘과 현대 세계』를 읽으며 과거와 다른 현대 사회의 ‘객체’들과의 관계성을 논의한다.

이번 호부터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새로운 코너 ‘고전의 강’을 통해 현재 우리에게 닥친 문제의 근본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읽고 넘어가야 할 고전을 꼽고, 그 책을 오늘날의 시각에서 다시 살펴보는 작업을 시도한다. ‘고전의 강’이 탐독하는 첫 번째 주제는 ‘진화’이다. 오늘날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진화는 찰스 다윈의 위대한 연구 이후, 다양한 맥락에서 이해되고 심화·발전되어 왔다. 진화심리학은 이런 지적 탐구가 낳은 한 결실이다. 정우현(본지 편집위원, 덕성여대 약학과)은 진화심리학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거쳐야 할 필독서이자 현대의 고전이라 할 로버트 라이트의 『도덕적 동물』을 읽으며, 유전과 도덕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검토한다.

리뷰 코너에서는 유럽의 중심에서 중국을 이야기하는 인류학자 샹바오의 『경계를 넘는 공동체』부터, 영화라는 매체의 본성과 미적 가능성을 탐색하는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의 『영화의 이론』과 질베르토 페레스의 『영화, 물질적 유령』, 북한에 대한 통설에 이의를 제기한 김수지의 『혁명과 일상』, 월북 지식인 김수경의 생애를 톺아보는 이타가키 류타의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등, 서점가의 화제작들을 두루 다루었다.


특집 리뷰:
믿음, 주술, 애니미즘

“이번 호에서는 믿음과 회의, 합리와 비합리 같은 인간 인식의 본질적 문제를
보다 심도 있게 살펴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 이런 기획이 맹목적인 믿음의 세계를 넘어서는 것과 아울러, 도식적 형태의 근대성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한계도
극복할 수 있는 자그마한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두얼, 「편집실에서」 중에서

과연 근대화는 탈주술화·합리화의 과정이었는가? 하이테크놀로지의 시대에도 주술은 여전히 우리 곁에 밀착해 있다. 여전히 주술과 ‘미신’은 합리적 판단을 요구받는 정치경제적 결정권을 지닌 권력자들의 친밀한 이웃(정신적 지주)이며, 대중에게도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자리하고 있다. 한편, 합리성이나 과학이 지배자의 논리로 매도되거나 진리의 상대성이라는 잣대로 공격받고, 사실관계와 동떨어진 가짜 뉴스, 음모론, ‘사이비 역사’, ‘유사 과학’이 삽시간에 확산되고는 한다. 인터넷이나 SNS를 통한 정보 및 소통의 증대는 이런 편향을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증폭시키는 듯하다. 그 반대편에는 비근대적 사유 방식이나 영적 현상들이 충분한 성찰 없이 비난받거나 매도당한 역사가 있는데, 근래에는 생태적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한 해법으로 애니미즘과 같은 비근대적 세계관의 복원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기도 하다. 《서울리뷰오브북스》는 ‘미신’이란 무엇인지, 인간의 기괴한/이상한 믿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우리가 설명하기 어려운 많은 영적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지, 나아가 인간 중심적인 세계 인식을 넘어서 사물이나 환경과 어떻게 관계 맺고 상호작용해야 하는지와 같은 주제를 다룬 책들을 꼼꼼히 읽고 차분하게 따져 보는 여섯 편의 서평을 모아 보았다.

“인간의 기괴한 믿음이란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매혹적인 지적 대상이다.” 한승훈(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종교학)은 「지적 대상으로서의 기괴한 믿음」에서 기우 의례, 인육 포식, 풍장, 구타 치료, 백백교 등 일제강점기를 형성한 ‘미신’들을 살펴보는 이창익의 『미신의 연대기』를 리뷰한다. 저자가 제기한 ‘미신의 논리’와 ‘미신의 사회학’이라는 화두를 좇으며, 한승훈은 근대적 종교 개념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불가해하고 위험한 대상으로 분류된 ‘미신’이 제거되고서야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정상’적인 종교가 출현하게 됐음을 지적한다.

“패턴의 엉뚱한 자동 완성은 간혹 비과학적 결론으로 이어진다.” 권석준(본지 편집위원, 성균관대 화학공학/고분자공학부)은 「패턴의 자동 완성이 주는 편안함과 쏠림」에서 과학적 회의주의자이자 《스켑틱(Skeptic)》의 발행인인 마이클 셔머의 대표작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를 다룬다. 권석준은 인간 지능의 핵심 중 하나인 ‘패턴의 완성’이 어떻게 비과학적인 결론으로 이어지는지를 설명하며, 유사 과학, 사이비 역사, 창조설 등을 반박한다. 나아가, 저자의 원칙인 과학적 사고방식과 회의주의를 재삼 강조한다.

“두 여성 학자는 실제로 무속의 현장에서 여성들과 함께 살며 민족지 쓰기를 실천했다.” 오성희(서울대 인류학과 박사과정 수료)는 「여성 인류학자들이 만난 무속의 현장들」에서 무속의 현장으로 뛰어든 두 명의 여성 인류학자, 로렐 켄달의 『무당, 여성, 신령들』과 김성례의 『한국 무교의 문화인류학』을 소개한다. 한국에서 무속의 실천은 대부분 여성들과 그들 삶의 영역에 존재한다. 오성희는 저자들의 시선을 따라 한국 무속과 여성들 삶의 내면을 파악한다.

“풍수라는 ‘전근대적’ 술수(術數)를 ‘현대적’ 학문으로 정립하고자 한 그의 여정은 평탄하지 않았다.” 임종태(서울대 과학학과)는 「현대 지리학과 그 사상적 대안 사이에서」에서 풍수지리학자 고 최창조 선생의 1984년 작 『한국의 풍수사상』을 다시 읽는다. 『한국의 풍수사상』은 출간 당시 ‘술’로 취급받던 풍수를 ‘학’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은 고인의 대표작이다. 임종태는 풍수를 현대적 학문으로 재정립하고 현대 서구 지리학의 한계를 보완할 대안적 지리 사상을 모색한 최창조 선생의 지적 여정을 살펴본다.

“자료로 입증할 수 없는 고대사의 많은 영역은 공백으로 놔두는 게 미덕일 수 있다.” 심재훈(단국대 사학과)은 「좋은 역사가가 베스트셀러를 쓸 수 있을까?」에서 2022년 중국에서 출간되어 고대사를 다룬 책으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가 된 리숴의 『상나라 정벌』을 리뷰한다. 저자는 신석기 시대부터 부족국가와 초기 국가 단계를 거쳐 하·상·주 단계에 이르기까지 약 1,000년에 걸친 중국 초기 문명의 성격을 규명하며, 그 핵심에 살육과 인신공양 제사, 카니발리즘을 두었다. 심재훈은 비판적 독해를 통해 하나의 이야기로 중국 고대사를 재구성한 저자의 시도가 노출하는 고고학적 디테일과 문헌 기록의 오용을 지적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접하는 존재에게서 생명력과 활력, 관계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홍성욱(본지 편집위원, 서울대 과학학과)은 「애니미즘은 세상을 구원할까?」에서 유기쁨의 『애니미즘과 현대 세계』를 읽는다. 홍성욱은 생태 위기 속에서 인간과 비인간/자연환경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데 애니미즘의 감수성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문제의식에 공감을 표한다. 그러나 애니미즘이 세계를 이해하는 합리적 방식이었던 과거와 현대인의 환경·일상은 상이함을 지적하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접하는 존재에게서 어떻게 생명력과 활력, 관계성을 발견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리뷰: 책으로 세상을 보다

〈리뷰〉에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시의성 있고, 심도 있는 서평들이 이어진다.

이승철(서울대 인류학과)은 「사소한 것들의 힘」에서 인류학자 샹바오의 대표작 『경계를 넘는 공동체』를 리뷰한다. 이승철은 『경계를 넘는 공동체』에서 그려지는 저장촌의 역사뿐 아니라, 이주민들의 삶의 내밀하고 사소한 면들을 독자가 직접 이해· 경험하게 하고, 나아가 ‘체감’하게 하겠다는 저자의 기획을 고찰한다. 이승철은 저자가 제안한 두껍고 조밀한 연결망 개념에 기반한 사회의 도경 그리기가 지니는 의의를 인정하는 한편, 그러한 도경에서 빠진 노동자와 여성의 자리, 저자의 위치성, 이 도경을 틀 짓는 액자와 이를 조망하는 ‘경계’는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들을 제기한다.

김지훈(중앙대 공연영상창작학부)은 「영화의 모던한 존재론, 역사와 예술」에서 영화 사회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의 『영화의 이론』과 영화학자·영화평론가 질베르토 페레스의 『영화, 물질적 유령』을 함께 읽었다. 두 권의 무게감 있는 영화 서적을 통해 김지훈은 영화 매체의 본성이 무엇이고, 그 본성은 다른 예술과 어떻게 구별되며, 어떤 영화들이 그 매체의 미적 가능성을 가장 잘 실현하는가를 탐구한다.

홍제환(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은 아니다?」에서 제임스 팔레 한국학 도서상 수상작 『혁명과 일상』을 다뤘다. 저자 김수지는 오늘날 북한의 비극은 비극은 그들이 택한 체제 때문이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 탓에 벌어졌음을 주장하며, 혁명 기간 북한 주민의 일상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홍제환은 통설에 대한 이의 제기의 필요성과 의의를 인정하는 한편, 이 책이 노출한 변화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와 특수한 경험의 성급한 일반화를 지적한다.

박진호(본지 편집위원,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는 「한 언어학자의 삶을 통해 본 남북 분단」에서 인류학자 이타가키 류타의 ‘비판적 코리아 연구’의 실천인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을 리뷰했다. 박진호는 북한에서 언어학자로서 족적을 남긴 김수경의 특수성과 분단을 경험한 지식인으로서 그가 겪은 생애의 일반성 두 측면을 두루 살피며, 남북 분단이 한 개인 및 학자에게 끼친 영향을 성찰한다.


고전의 강

‘고전의 강’ 첫 번째 주제, ‘진화’
“진화는 인간의 본성을 결국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을까?”

이번 호로 첫발을 떼는 코너 고전의 강에서는 오늘날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을 꼽고, 현재의 시각에서 심층적인 독해를 시도한다. 고전의 강에서 다루는 첫 번째 화두는 ‘진화’이다. 정우현(본지 편집위원, 덕성여대 약학과)은 진화생물학 분야에서 학술적·대중적 영향력을 떨친 로버트 라이트의 『도덕적 동물』을 톺아보며, 인간의 도덕성은 과연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규범을 유전자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한지, 진화심리학은 성차별을 정당화하며 과연 과학적인지 등을 규명한다.


이마고 문디: 이미지로 읽는 세계

“박찬경의 영상 〈신도안〉은 하나의 세계다.
‘〈 〉’를 떼어 낼 때 신도안은 계룡산 부근 지역을 일컫는 이름으로서 현실에 존재한다. 
신도안이라는 글자 앞뒤로 ‘〈 〉’가 붙을 때 그것은 박찬경의 작업이 된다.”

믿음에 대한 사유와 성찰은 이미지 리뷰 코너 ‘이마고 문디’에서도 이어진다. 현시원(본지 편집위원, 시청각 랩 대표)은 「믿음과 단체 사진: 박찬경의 〈신도안〉에 대하여」에서 박찬경 작가의 6채널 영상 작업 〈신도안〉(2008)을 리뷰한다. 현시원은 박찬경 작가의 시선을 따라 수백 개의 종교 단체가 뿌리내렸던 계룡산 자락의 ‘신도안(新都內)’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믿음의 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했던 믿음과 시간이 지난 후 그 세계 바깥으로 빠져나온 이들의 의심을 응시한다.


디자인 리뷰

“번역이라는 행위를 통해 하나의 책은 서로 다른 언어의 판본으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디자인에 대해서도 번역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디자인 리뷰에서는 구정연(리움미술관 교육연구실장)이 「사건으로서의 번역」이라는 제목의 디자인 비평을 썼다. 구정연은 리투아니아 출신 미국 독립 실험영화 감독 요나스 메카스의 『영화작가들과의 대화』의 세 가지 판본(영어판, 한국어판, 중국어판)을 비교하며 원서와 번역서의 디자인에 관해 사유한다. 한 권의 책이 번역될 때 그 물리적・시각적 형태는 어떻게 번역되는가라는 질문에 천착하는 구정연은, 책을 옮기는 여러 사람들의 노력과 개입, 해석에 주목한다.


북&메이커: 출판의 낭만과 일상

북&메이커에는 18년째 SBS 러브FM 〈김선재의 책하고 놀자〉를 맡고 있는 강의모(프리랜서 방송작가)의 「오늘도 행복한 동행, 책 한 권 잊지 마세요!」가 실렸다. 강의모는 〈책하고 놀자〉의 구성과 제작 과정, 〈책하고 놀자〉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역할을 소개한다. 라디오 부스의 풍경과 라디오에서 ‘책을 말하는’ 이들의 일과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문학: 풍성한 읽을거리

문학에는 한성우(인하대 한국어문학과)와 소설가 박해울의 에세이가 실렸다.

한성우는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과 타자기 전쟁」에서 일제강점기의 천재 음악가, 감옥살이를 하다 모진 고문에 전향해 말년에 친일을 하다 생을 마감한 도례미(都禮美)와 조우한다. 한성우는 그의 삶의 여정을 좇으며, 한글 타자기를 개발하기 위해 경쟁했던 이들의 고민과 노력을 이야기한다.

박해울은 「그래, 책이라도 있어서 어딘가, 내세울 것 없는 세상에」에서 ‘SF를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당신은 왜 차별과 빈부격차에 대해 글을 쓰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개인적인 답변을 한다. 이때 작가는 작은 임대아파트에서 살았던 경험을 떠올린다. 작가는 그곳에 살며 차별·불평등과 마주하고, 현실을 벗어나 픽션의 세계로 도피했던 기억을 이야기한다.


“한국에도 서평 전문지가 필요하다.”

‘어떤’ 책을 ‘왜’, 어떻게 읽을 것인가? 2020년 12월 0호로 출발하여 2024년 봄, 창간 3주년에 이른 《서울리뷰오브북스》는 그 답을 서평에서 찾는다. 17인의 편집진은 오랜 토론을 거쳐서 주제와 책을 선정하고 서평을 쓴 뒤에, 이를 내부에서 돌려 읽으면서 비판을 듣고, 이를 반영해서 글을 고친다. 타인의 책을 비평하고 비판하듯이, 자신들의 글도 같은 비판의 과정을 거친다.
서평 전문 계간지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좋은 서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한국에도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서평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탄생했다.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자연과학, 역사, 문학, 과학기술사, 철학, 건축학, 언어학, 정치학, 미디어, 물리학, 생물학, 법조, 북디자인, 미술 등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7명의 편집위원이 뜻을 모았다. 중요한 책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제대로 짚고, 널리 알려졌지만 내용이 부실한 책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주목받지 못한 책은 발굴해 소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저자 및 편집위원 소개


편집위원  강예린, 권보드래, 권석준, 김영민, 김홍중, 박진호, 박훈, 송지우, 심채경, 유정훈, 이석재, 정우현, 정재완, 조문영, 현시원, 홍성욱
편집장    김두얼
필자      (게재순)


한승훈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종교학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왕의 수명을 줄여라』(공저), 『무당과 유생의 대결』, 『혁명을 기도하라』 등이 있다.

권석준
본지 편집위원.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부/고분자공학부 및 반도체융합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주로 계산과학과 물리학에 입각한 반도체 소자, 소재, 공정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반도체 삼국지』가 있다.

오성희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박사학위 논문을 위해 무속 현장에서 연구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유네스코 유산, 평화를 품다』(공저), 『기억으로 남은 새말』(공저) 등이 있다.

임종태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과학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같은 대학 과학학과에서 가르치고 있다. 조선 후기 서양 과학 수용, 중국과 조선의 과학 교류, 유교 관료제하에서의 과학기술 등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17, 18세기 중국과 조선의 서구 지리학 이해』, 『여행과 개혁, 그리고 18세기 조선의 과학기술』이 있다.

심재훈
단국대 사학과 교수로 고대문명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에서 ‘역사책의 감동, 역사의 이면’을 연재한다.

홍성욱
본지 편집위원.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는 과학기술학자. 최근에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에 대해 그동안의 여러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현시원
본지 편집위원. 큐레이터로 이미지에 관한 글을 쓰고 전시 공간 ‘시청각 랩’을 운영한다. 2024 창원조각비엔날레 예술감독이다.

구정연
예술가의 집단적 실천과 지식 생산 및 유통 형태에 관심을 두고 이를 연구한다. 국민대학교 제로원디자인센터에서 큐레이터를 거쳐, 미디어버스와 더 북 소사이어티에서 공동 디렉터로 활동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MMCA 작가연구 총서 및 출판 지침, 한국 근현대 미술 개론서 『한국미술 1900-2020』 등 학술 연구 및 공공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현재 리움미술관에서 교육연구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강의모
프리랜서 방송작가. 2000년 늦은 나이에 라디오 작가로 입문, 〈최백호의 낭만시대〉를 비롯한 다수의 프로그램 구성을 맡아 왔고 현재는 〈김선재의 책하고 놀자〉 구성작가로 있다. 저서로 『땡큐,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살아 있는 한, 누구에게나 인생은 열린 결말입니다』,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공저) 등이 있다. 2013년 SBS 연예대상 라디오 작가상, 2022년 제5회 롯데출판문화대상 언론 부문 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이승철
경제인류학과 사회 이론을 전공했으며,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공저로 『연구자의 탄생』, 『기본소득의 사회과학』이 있고, 옮긴 책으로 『푸코의 맑스』, 『관용』 등이 있다.

김지훈
학제간 인문예술학인 영화미디어학(cinema and media studies)의 제도화에 주력해 온 영화미디어학자. 중앙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Activism and Post-Activism(Oxford University Press, 2024), Documentary’s Expanded Fields(Oxford University Press, 2022), Between Film, Video, and the Digital(Bloomsbury, 2016)을 썼다. 2021년 대우재단학술연구지원사업 논저 분야 선정작으로 『위기미디어: 위태로운 21세기 사회와 미디어의 확장』을 작업 중이다.

홍제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주로 북한 경제, 남북 경제 협력, 한국 경제사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주요 연구로는 『경제관료의 시대』, 『북한경제』, 『김정은 시대 북한경제: 경제정책, 대외무역, 주민생활』(공저), 『북한의 인구변동: 추세, 결정요인 및 전망』(공저) 등이 있다.

박진호
본지 편집위원. 언어학자. 서울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공저로 『한국어 통사론의 현상과 이론』, 『현대 한국어 동사구문사전』, 『인문학을 위한 컴퓨터』 등이 있다.

정우현
본지 편집위원. 덕성여자대학교 약학과 교수이자 분자생물학자. 유전체 손상과 불안정성을 일으키는 여러 요인과 스트레스에 대한 생명의 다양한 대응 기전을 연구한다. 생물학에는 다른 학문이 놓치고 있는, 무언가 아주 중요한 것이 숨어 있다고 믿는다. 저서로는 『생명을 묻다』가 있다.

한성우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사부터 박사까지 마친 후 인하대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한국어의 말소리와 방언을 공부하고 있다. 새벽에는 주로 글을 써서 『방언정담』, 『우리 음식의 언어』, 『노래의 언어』, 『문화어 수업』, 『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 등의 언어 관련 책을 썼다. 주말과 휴일에는 ‘첼로를 사랑하는 목수’로 살며 목공과 음악에 몰두하고 그 경험을 살려 에세이집 『꿈을 찍는 공방』을 썼다. 해마다 4월 1일에 말, 나무,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엮은 글을 쓰는데 이 글 또한 그와 같은 결로 쓴 것이다.

박해울
소설가. 장편소설 『기파』로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SF 앤솔러지인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서』와 『우리는 이 별을 떠나기로 했어』, 리디북스 ‘우주라이크 소설’ 시리즈 등에 참여했다.


차례

편집실에서 ∥ 김두얼

특집 리뷰: 민주주의와 선거
  지적 대상으로서의 기괴한 믿음 · 『미신의 연대기』 ∥ 한승훈
  패턴의 자동 완성이 주는 편안함과 쏠림 ·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 권석준
  여성 인류학자들이 만난 무속의 현장들 · 『무당, 여성, 신령들』, 『한국 무교의 문화인류학』 ∥ 오성희
  현대 지리학과 그 사상적 대안 사이에서 · 『한국의 풍수사상』 ∥ 임종태
  좋은 역사가가 베스트셀러를 쓸 수 있을까? · 『상나라 정벌』 ∥ 심재훈
  애니미즘은 세상을 구원할까? · 『애니미즘과 현대 세계』 ∥ 홍성욱

이마고 문디: 이미지로 읽는 세계 
  믿음과 단체 사진: 박찬경의 〈신도안〉에 대하여 ∥ 현시원

디자인 리뷰
  사건으로서의 번역 ∥ 구정연

북&메이커
  오늘도 행복한 동행, 책 한 권 잊지 마세요! ∥ 강의모

리뷰
  사소한 것들의 힘 · 『경계를 넘는 공동체』 ∥ 이승철
  영화의 모던한 존재론, 역사와 예술 · 『영화의 이론』, 『영화, 물질적 유령』 ∥ 김지훈
  북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은 아니다? · 『혁명과 일상』 ∥ 홍제환
  한 언어학자의 삶을 통해 본 남북 분단 ·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 박진호

고전의 강
  도덕은 왜 유전자와 싸우는가 · 『도덕적 동물』 ∥ 정우현

문학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과 타자기 전쟁 ∥ 한성우
  그래, 책이라도 있어서 어딘가, 내세울 것 없는 세상에 ∥ 박해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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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책꽂이


본문 중에서

이번 호에서는 믿음과 회의, 합리과 비합리 같은 인간 인식의 본질적 문제를 보다 심도 있게 살펴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사람들은 왜 이상한 것을 믿는지, 우리가 설명하기 어려운 많은 영적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지, 나아가 인간 중심적인 세계 인식을 넘어서 사물이나 환경과 어떻게 관련을 맺고 상호작용해야 하는지와 같은 주제를 다룬 책들을 꼼꼼히 읽고 차분하게 따져 보는 서평을 모아 보았다. 이런 기획이 맹목적인 믿음의 세계를 넘어서는 것과 아울러, 도식적 형태의 근대성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한계도 극복할 수 있는 자그마한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두얼 「편집실에서」, 3쪽

인문사회과학이 인간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학문이라고 한다면, 낯설고 기이하게 여겨지는 인간 문화야말로 그 첨단에 있는 연구 대상이다. 우리는 타자의 불가해한 믿음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동시에 자신의 일상적 인식 체계 또한 역사적으로 구성된 범주들의 덩어리라는 것을 성찰하게 된다. 인간의 기괴한 믿음이란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매혹적인 지적 대상이다.
―한승훈 「지적 대상으로서의 기괴한 믿음」, 24쪽

인류가 존속하는 한 앞으로도 과학은 계속 발전할 것이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자연의 범위는 더 넓어질 것이며,
그 안에는 우리 자신이 포함될 것이므로, 이상한 것을 믿는 것의 여파가 사회에 주는 영향력은 점차 축소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 조건이 따른다. 그것은 사람들이 이상한 것보다 과학적 사고방식과 회의주의를 더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지성의 불꽃이 꺼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권석준 「패턴의 자동 완성이 주는 편안함과 쏠림」, 40쪽

켄달과 김성례의 작업에서 인류학적 무속 연구가 가능했던 것은 어쩌면 연구자들 자신이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남성 무당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극히 소수이며 대부분 무속의 실천은 여성들과 그들 삶의 영역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남성 연구자가 여성들과 함께 살며 현지조사를 수행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움이 많았다. (……) 반면, 두 여성 학자는 실제로 무속의 현장에서 여성들과 함께 살며 민족지 쓰기를 실천했다. (……) 한국 무속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살았던 두 여성 연구자의 경험은 한국 무속과 여성들 삶의 내면을 파악하는 인류학적 성과를 남겼다.
―오성희 「여성 인류학자들이 만난 무속의 현장들」, 44-45쪽

얼마 전 작고한 최창조(1950-2024)를 추모하는 기사에서 풍수지리학자 김두규(우석대 교양학부)는 그를 이전까지 “‘술(術)’로 치부되던 풍수”를 “당당하게 ‘학(學)’의 반열에 오르”게 한 인물로 평가했다. 생전에 최창조는 자신을 “풍수 학인(學人)”이라 부르고는 했는데, 스스로도 진지한 학문으로서 풍수를 공부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규정했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풍수라는 ‘전근대적’ 술수(術數)를 ‘현대적’ 학문으로 정립하고자 한 그의 여정은 평탄하지 않았다.
―임종태 「현대 지리학과 그 사상적 대안 사이에서」, 55쪽

물론 헤이든 화이트의 ‘임플롯먼트(emplotment, 일련의 역사적 사건을 줄거리를 갖춘 하나의 이야기로 조합하는 것)’ 개념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려 역사가 허구라고 합의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진실 추구라는 역사학의 명제를 포기할 수 없다면, 설사 역사가가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증거를 제시하는 데 어느 정도라도 꼼꼼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 국내의 독자들이 이 서평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을 염두에 두면서 고대 중국의 다양한 자료가 빚어낼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의 일단을 즐기길 바란다.
 ―심재훈 「좋은 역사가가 베스트셀러를 쓸 수 있을까?」, 82-83쪽

지금 우리가 골머리를 앓는 많은 문제의 원인이자, 또 우리의 삶을 지속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테크노사이언스의 결과물들. 정말 난처하고 곤란하고 가끔은 사랑스럽고, 그렇지만 위험한 괴물들, 키메라들, 잡종들, 사이보그들. 우리를 닮았지만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옷과 냄새가 다른, 절하고 기도하는 방법이 다른 낯선 이방인들. ‘우리의 애니미즘’은 이런 존재들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침울하고 의심 가득한 것에서 생동감 있고 생명력 있는 것으로 만드는 감수성일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애니미즘’에서 배울 태도는 이것이다.
―홍성욱 「애니미즘은 세상을 구원할까?」, 96쪽

신도안은 특정한 지형지물을 기반으로 하는 기대의 공동체다. 카메라는 계룡산 자락에 위치했던 수천 개의 종교 집단들 대신 개인들을 궁금해한다. 그리고 여전히 영상이 만들어진 시점에 살아남은 개인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다. 이동하는 차의 창밖으로 향하는 카메라는 여전히 이름들을 포착한다. 하나의 이름이 아닌 여러 개의 이름이다. 계룡산 용화사 연화굿당, 단군성전, 해운암, 사랑의 씨튼 수녀회와 씨튼 영성의 집. 말뚝을 박듯이 거리에 새겨진 간판은 여전히 흩어진 이름들을 보여 준다. 수천여 개의 종교가 다른 지도자들을 모셨던 이질적 땅이다.
―현시원 「믿음과 단체 사진: 박찬경의 〈신도안〉에 대하여」, 111쪽

번역이라는 행위를 통해 하나의 책은 서로 다른 언어의 판본으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디자인에 대해서도 번역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된 책은 서로 다른 물성을 지니게 된다. 책 제목, 부제만 해도 표지에 각기 다르게 옮겨져 표기되며, 표지 디자인은 말할 것도 없다. 모든 번역에는 원본을 배반하는 실수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원문 중심의 직역을 하더라도 의미 전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또 도착어를 고려해 지나치게 생략하거나 의역함으로써 오역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하나의 책이 번역될 때 그 물리적・시각적 형태는 어떻게 번역될까.
―구정연 「사건으로서의 번역」, 116쪽

〈책하고 놀자〉의 가장 큰 매력을 하나 꼽으라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프로그램 제목을 먼저 말한다. 독서는 엄숙한 학습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 기쁨을 얻는 쾌락의 향유여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책하고 놀자〉의 지향점은 ‘읽고 들어도 재밌고 안 읽고 들어도 재밌는 책 방송’이다. 방송을 듣고 독서에 흥미를 느껴 도서관에 가거나 책을 구입했다는 청취자들의 사연을 접할 때, 프로그램 작가로서 가장 뿌듯하다.
―강의모 「오늘도 행복한 동행, 책 한 권 잊지 마세요」, 131-132쪽

이 책은 무엇을 주장하는가를 넘어, 그 주장이 어떻게 제시되는가를 보다 세심히 살펴봐야 하는 책이다. 아마도 이미 주어진 개념적 도구들로 사회 현상을 분석해 나가는 기존의 사회과학 글쓰기에 익숙한 독자들은, 끊임없이 쏟아지
는 ‘사소한’ 사례들과 행위의 방대한 더미 속에서 길을 잃기 십상일 것이다. 책을 통해 한 공동체의 역사를 독자가 직접 체감하도록 하겠다니, 저자는 왜 이토록 무모해 보이는 기획을 시도한 것일까?
―이승철 「사소한 것들의 힘」, 137쪽 

이 두 권의 책이 상영되는 스크린은 영화가 모던함과 맺는 특별한 관계다. 그 관계의 원천은 영화의 사진적 속성, 즉 카메라를 통한 변화하는 현실의 기록을 재료로 삼고 그 기록을 움직이는 이미지의 지속으로 전환하는 영화의 고유한 역량이다. 『영화의 이론』은 이와 같은 역량으로 인해 영화가 20세기 사회의 모더니티에 참여하는 기술적, 미학적 예술일 뿐 아니라 모더니티의 매혹적이고도 파괴적인 양면성을 감각하고 이해하는 데 핵심적임을 주장한다. 『영화, 물질적 유령』은 영화의 사진적인 역량이 다른 예술과 구별되는 영화 이미지의 현전과 부재 모두를 이끌면서도, 바로 이와 같은 역설적 공존을 통해 영화 예술이 모더니스트 예술의 폭넓은 전통에 생산적으로 기여해 왔음을 밝힌다.
―김지훈 「영화의 모던한 존재론, 역사와 예술」, 152쪽
통설에 대한 이의 제기는 바람직하며 필요하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역사는 끊임없이 재해석된다. 문제는 통설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축적된 논리와 근거를 뛰어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데에 있다. 『혁명과 일상』도 통설에 대한 이의 제기라는 측면에서 신선했지만, 통설의 논리와 근거를 뛰어넘어 설득력을 지니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북한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바로잡아 보겠다는 저자의 의욕이 너무 앞섰기 때문은 아닐까?
―홍제환 「북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은 아니다」, 176쪽

한반도는 20세기에 큰 비극의 무대이기도 했고, 냉전 체제에서 양극 사이에 낀 위치라는 특수성도 있고, 여러 면에서 주목할 만한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다. 그런데 이를 연구할 때 너무 거시적인 세계체제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맞추고 한반도에 살면서 행위했던 사람들을 장기판 위의 졸로 보는 듯한 태도를 지닌다면 부적절할 것이다. 반대로 민족주의에 지나치게 사로잡혀서 시야를 한민족에만 한정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을 도외시한다면 그 또한 곤란할 것이다. 이 둘 사이에서 주체와 환경 양쪽을 균형 있게 고려한 접근법이 필요하다. 저자는 바로 이 점을 중시하면서 한반도를 연구해 왔고, 이를 ‘비판적 코리아학’이라고 불렀다. 이 책은 그의 그러한 연구가 맺은 귀중한 결실이다.
―박진호 「한 언어학자의 삶을 통해 본 남북 분단」, 189-190쪽

진화는 인간의 본성을 결국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을까? 만약 (일부의 바람대로) 진화를 ‘진보’라고도 볼 수 있다면 진화심리학은 앞으로도 오랜 기간 절치부심하며 더 진화할 결심을 해야 할 것이다. 같은 꿈을 꾸는 다른 학문 분야의 방법론과도 과감히 손을 잡을 용기를 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 진화하는 구조를 섣불리 오판해 학계의 갈라파고스가 되지 않도록, 대중의 필요에 영합해 과학과 소설의 경계를 함부로 넘나들며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는 양치기 소년이 되지 않도록.
―정우현 「도덕은 왜 유전자와 싸우는가」, 222쪽

이 싸움은 모두가 승리자이고 궁극적으로는 세종이 승리자이다. 타자기 싸움의 초점은 빠른 속도와 예쁜 글꼴에 맞춰졌는데 이는 결국 한글 때문이다. 글자는 자음과 모음 두 벌인데 소리는 초성, 중성, 종성 셋이다. 그런데 종성은 다시 초성을 쓰니 어찌 보면 둘이다. 타자기 전쟁을 벌인 이들은 결국 세종이 낸 숙제를 붙들고 머리를 싸맨 것이다.
―한성우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과 타자기 전쟁」, 233쪽

개인적으로 체감하고 있는 한국형 SF의 특징은 소수자에 대한 시선이 두드러지며 차별과 빈부격차에 관한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적었다. 그렇게 답변을 쓰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려는데 불현듯 ‘나도 차별과 빈부격차에 대해 쓰고 있는데,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라는 질문에 사로잡혔다. 며칠간 생각한 후 나는 질문지에 다음 문장을 써 내려갈 수 있었다. ‘내가 차별과 빈부격차에 대해 쓰는 이유는, 작은 임대아파트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박해울 「그래, 책이라도 있어서 어딘가, 내세울 것 없는 세상에」, 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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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校注 남원고사


남원의 옛 노래 김춘향전

 

정길수 교주 50025,000신국판(152*225)

출간일 2024630ISBN 979-11-89333-81-2 [93810]

 

분야 : 문학 > 한국문학 > 근대문학

문학 > 문학사 > 소설사

역사사 > 한국문화사 > 한국문학사

 


  

한국 고전소설의 걸작 남원고사를 정밀하게 독해하고

춘향전해석의 폭과 깊이를 더하다.

 

 

  

 

 

 춘향전의 결정판, 남원고사를 교주하다

 

서울대 국문학과 정길수 교수가 펴낸 남원고사는 국내 연구자로서는 네 번째로 학술 주석을 붙인 교주본이다. 남원고사1860년대 서울 종로에서 필사된 책이 프랑스 파리로 옮겨 가 있다가 1970년대에 뒤늦게 알려지면서 즉시 춘향전의 최고봉, 춘향전의 결정판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춘향전의 수많은 버전 중 남원고사는 생기발랄한 춘향 캐릭터와 서사 구성의 일관성을 지닌다. 그래서 춘향전의 초기 버전에 상대적으로 가까운 것으로 판단된다.

정길수 교수는 가장 생기발랄한 야성’(野性)을 지닌 김춘향의 형상, 풍성한 디테일,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웃들, 곧 절대 선인도 절대 악인도 아닌 인간 군상을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는 서술자의 시선이 좋아 남원고사춘향전의 최고봉이라고 말한다.

연구자는 물론 고전에 큰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 춘향전, 그중에서도 남원고사의 진가를 이해하는 데 기초 자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자세한 학술 주석(2,371개의 주석, 200여 개에 달하는 교정)을 붙여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정길수 교주 남원고사는 프랑스 국립동양언어문화대학(INALCO) 소장 필사본(5, 춘향전사본선집 1, 명지대출판부, 1977 영인; 김진영 외 편저, 춘향전 전집 5, 박이정, 1997)을 저본으로 삼았다. 그리고 남원고사계열에 속하는 춘향전동양문고본(향목동 세책본: 춘향전 전집 5)과 최남선의 고본 춘향전(신문관, 1913)을 참고하여 저본의 오류를 바로잡았다. 기존의 모든 주석서, 1970년대 김동욱·김태준·설성경 교수의 춘향전 비교연구(삼영사, 1979)와 이윤석 교수의 남원고사 원전 비평(보고사, 2009), 설성경 교수의 춘향전-남원고사(서울대출판부, 2016)를 참조하면서 주석을 대폭 추가하고 기존 주석의 일부 오류를 바로잡았다.

 

남원고사학술 주석의 역사

 

남원고사를 읽는 일은 한문소설을 정밀하게 독해하는 것 이상으로 어렵다. 작품 곳곳에 삽입된 한시나 한문 전고(典故)를 파악하는 것은 연구자들이 시간과 노력을 투여하면 거의 해결 가능하지만, 오늘날 그 시대의 우리말과 속어, 속담, 당대의 풍속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이 때문에 자세한 주석서가 필요한데, 최초의 교주본이라 할 최남선의 고본 춘향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남원고사주석의 역사는 한국 고전소설을 통틀어 가장 긴 편에 속한다.

최남선의 고본 춘향전남원고사의 개작본으로, ‘허두가’(虛頭歌)라고 부르는 남원고사서두의 노래를 새로 창작한 노래로 바꾸고, 중국의 지명과 인물 고사를 조선 것으로 바꾸었으며, 외설적인 장면이나 표현을 모두 제거한 것이어서 남원고사의 온전한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고본 춘향전은 이처럼 남원고사의 온전한 모습을 간직한 것도 아니고, 오늘날의 원전 주석에 해당하는 풀이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남원고사주석의 선구적인 성과이다. 본격적인 남원고사주석 작업은 1970년대 김동욱·김태준·설성경 교수의 춘향전 비교연구에서 시작되어 이윤석 교수의 남원고사 원전 비평과 설성경 교수의 춘향전-남원고사에 이르렀다.

정길수 교수는 이 책에서 고본 춘향전을 비롯하여 가장 상세한 주석을 담은 남원고사 원전 비평등 기존의 모든 주석서를 참조하면서 지금까지 의미와 출처가 밝혀지지 않았던 미상 구절에 대한 주석을 대폭 추가하고 기존 주석의 일부 오류를 바로잡고자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어구가 적지 않고, 혹 지나친 억측으로 기존의 올바른 주석을 오히려 해친 결과에 이르지 않았는지 조심스러운 바 있다. 정길수 교수는 잘못을 계속 수정하며 한국 고전소설의 걸작 남원고사를 정밀하게 독해하고 춘향전해석의 폭과 깊이를 더하는 데 바탕이 되는 자료로 만들어 가고자 한다.

 

남원고사, 춘향전의 가장 초기 버전이자 대표 버전

 

춘향이라고 하면 우리는 성춘향을 떠올리지만 김춘향도 있다. 이도령이 책방에 갇혀 사는 양반댁 도련님으로 설정된 버전이 있는가 하면 어린 나이에 기생집을 드나들며 기생 상대하는 법을 터득한 난봉꾼 캐릭터로 등장하는 버전도 있다. 모든 버전이 이몽룡과 춘향의 사랑을 테마로 삼아 큰 틀에서 대동소이한 스토리를 가진 춘향전이지만, 각각의 버전마다 뚜렷이 구별되는 특징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남원고사(南原古詞: 남원의 옛 노래)춘향전의 초기 버전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되는, 춘향전의 대표 버전이다. 1860년대 서울 종로의 누동(樓洞: 다락골)에서 필사되어 서울의 세책가(貰冊家: 도서대여점)에 있던 책이 지금은 프랑스 국립동양언어문화대학(INALCO)에 있다. 1970년대에 춘향전사본선집 1(명지대출판부, 1977)로 영인 출판되었고, 작품이 소개되자마자 춘향전의 최고봉, 춘향전의 결정판으로 지목되어 왔다.

남원고사1823년부터 1864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5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2·3책은 1864, 4·5책은 1869년에 필사되었다. 1860년대에 유통된 책이지만 현재 전하는 춘향전여러 버전 중에서는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되어 춘향전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버전인 완판 84장본열녀춘향수절가1906년 무렵에, 신소설 작가 이해조의 옥중화(獄中花)1912년에 출판된 점, 널리 유통된 이 두 버전과 남원고사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있는 점까지 고려하면 춘향전의 초기 버전에 상대적으로 가까운 남원고사를 통해 춘향전의 원형(原型)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남원고사계통의 이본인 일본 동양문고 소장본, 육당 최남선이 1913년 신문관에서 간행한 고본 춘향전이 모두 남원고사를 변개한 버전이고, 전주의 완판본과 함께 시장을 양분했던 경판 30장본등 서울의 경판본남원고사의 축약 버전에 해당한다.

남원고사의 글자 수는 대략 한글 85천 자로,춘향전중에서는 가장 긴 작품에 해당해서 완판 84장본의 두 배 분량에 이른다. 춘향전의 원형, 또는 남원고사보다 이른 시기에 성립된 초기 버전에 비해 대규모 확장이 이루어진 결과다. 남원고사에서 대폭 확장된 부분은 대개 서사 진행과 크게 관계 없는 소소한 장면의 확대에 해당한다. 때로는 그 시대에 유행하던 시가를 대량 삽입하고, 때로는 리얼리티에 손상을 줄 정도의 장황한 나열식 대화가 이어진다.

 

남원고사사랑의 약속에 관한 소설이다

 

남원고사는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 이야기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어떻게 사랑의 약속을 지켰는가, 특히 춘향의 입장에서 사랑 앞에 놓인 달콤한 유혹과 모진 시련을 어떻게 대처해 나갔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보면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서 있다. 대단원의 도정에서 만난 인간 군상과 세태는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오싹하다. 그러나 동정을 보내기도 하고 차갑거나 음험한 시선을 던지기도 했던 주변 사람들은 평소 매몰차고 교만하다 여겨 왔던 춘향의 집념, 사랑을 향한 일념에 차츰 공감하며 한편이 되어 갔다. 그리하여 남원고사는 성스럽기도 속되기도 한, 순수하기도 교활하기도 한 인간 존재의 양면에 대한 냉정하고 따뜻한 시선, 실리에 따라 표변하는 세태까지 그대로 인정하고 포용하는 시선 아래 그럼에도인간의 어떤 마음과 태도가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가 묻고 답하는 소설이 되었다.

 

남원고사의 김춘향은 한국 고전소설사에 처음 등장한 독특한 인간형

 

남원고사의 김춘향은 어떤 인물형일까? 작품 곳곳에는 김춘향에 관한 등장인물의 평가가 이어진다. 이에 따르면, 춘향의 성품은 매몰차고 교만하다. 춘향은 본래 도도한 성품에다 부사 아들의 세력까지 끼고는 안하무인으로 관속들을 무시하는, 매우 고약한 아이년이다. 춘향에 대한 주변 인물의 평가는 완판 84장본을 비롯한 후대 버전에서 정반대로 바뀐다.

김춘향은 위기에 처하면 평소에 거들떠보지도 않던 이에게 아양을 부리고 거짓말도 서슴지 않으며 자신에게 적대적인 이들의 마음을 금세 돌리는 법을 아는 능수능란한 여성이다. 얄밉다면 얄미운 캐릭터이나 영악하면서도 깜찍한 정도지 밉살스러운 모습은 아니다. 허판수의 해몽 에피소드까지 보고 나면 남원고사의 김춘향은 한국 고전소설사에 처음 등장한 독특한 인간형이라는 점이 좀 더 뚜렷이 드러난다.

앞선 시대 소설의 청순가련형 여주인공과도 다르고, 대쪽같은 지조의 직선적인 여주인공과도 다르며, 교묘한 수단을 부리는 대담무쌍한 악녀와도 다른, 사랑스러우면서도 능수능란한 임기응변으로 상대를 제압해서 자기 뜻을 관철시킬 줄 아는,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가 탄생했다.

 

남원고사의 인간관: 밤 잔 원수 없다

 

남원고사의 인간관은 밤 잔 원수 없다는 최패두의 말, 밤 잔 원수 없고 날 샌 은혜 없다라는 속담에 집약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순식간에 태도를 돌변하는 춘향도, 매정한 춘향에 앙심을 품고 심술을 부리려다 오히려 자신들의 매정함을 후회하는 두 패두도, 춘향을 향한 욕정과 동정심을 동시에 지닌 허판수와 왈자들도, 신관 사또 변악도의 눈에 들고 싶어 한껏 치장을 하고 나이를 속이거나 거지 행색의 어사를 푸대접하는 기생도, 오직 눈앞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세태에 가장 충실한 월매도, ‘밤 잔 원수 없는남원고사의 세계에서는 영원한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선악을 넘어 이들 모두 현실 어디에나 존재하는 인물, 영악한 얌체 같지만 사랑스러운 깜찍함이 있고, 사납고 거칠어 보이지만 어수룩하고 순박한 구석이 있는 사람들, 매몰찬 마음과 정다운 마음, 이기적인 마음과 이타적인 마음, 엉큼한 마음과 아끼는 마음, 못난 마음과 잘난 마음을 동시에 가진 존재들이다.

남원고사의 작자는 시종 유머러스한 필치로 평범한 인간 군상의 이중적 면모와 함께 그들 하나하나가 가진 인생의 단면을 보여주며 때로는 거룩함의 편에, 때로는 비속함의 편에 서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천하의 악인이어야 할 변악도조차 종반부로 향할수록 그 악행이 부각됨에도 작품 전편에 걸쳐 밉지 않은 구석이 있는 코믹한 인물로 그려진 데서 이 세상에 절대 선인도, 절대 악인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남원고사특유의 시선이 확인된다. 선인 집단과 악인 집단의 치열한 대결 속에 두 진영 사이에는 그 어떤 중간지대도 있을 수 없는 세계를 보여준다는 후대 완판 84장본과 비교할 때 남원고사는 중간지대, 또는 회색지대에 속한 인물 군상에 관한 기록으로 기억될 만하다.

남원고사의 세계에는 규범적 당위에 충실한 인간형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종일관 정직하고 행실이 바른 도덕군자와 요조숙녀는 물론 전형적인 선인이나 의인 캐릭터도 존재하지 않는다. 주인공 춘향과 이몽룡을 포함하여 남원고사의 모든 등장인물은 규범적 시각에서 볼 때 나름의 결함을 지닌 존재여서 언제든 타인의 시선 앞에 조롱과 희화화의 대상이 된다.

 

사랑의 계약 문서, 훼손된 사랑일까?

 

남원고사의 세계, 19세기 중반 세사난측’(世事難測)의 시대에 살던 김춘향은 첫 만남에서 이몽룡을 평생의 남자라고 확신하자마자 불망기를 요구하고, 훗날 계약이 파기된다면 이 문서를 증거 자료로 삼아 소송을 걸겠다고 했다. 춘향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이몽룡은 기꺼이 문서를 써 주며 정실로는 맞이하지 못 해도 소실로 맞아 백년해로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사랑에 계약 문서가 등장했으니, 애정소설의 전통에서 보자면 사랑의 완전무결한 진실성에 균열이 생긴 훼손된 사랑이다. 그러나 설령 출발점은 사또 자제의 위세를 빌려 기생을 불러 보고, 콧대 높은 기생으로서 권력자의 소실이 되어 호사를 누리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할지라도 사랑의 진실성과 순수성이 과정으로 입증되는 것이라면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 또한 진실하고 순수하다.

춘향과 이몽룡은 모든 시련을 거쳐 마침내 사랑의 약속을 지켰다. 이몽룡은 당초의 약속을 묵묵히 이행했다. 서울로 간 이도령은 은근히 저[춘향]를 위한 정이 가슴에 못이 되고 오장(五臟)에 불이 되어오직 춘향과 백년해로하겠다는 일념으로 과거 공부를 했고, 마침내 남원으로 돌아와 옥중의 춘향을 만났다. 춘향은 오매불망 구원해 주기를 바라던 이몽룡이 패가하여 걸식하는 신세가 된 것을 보고 절망했다. 암행어사 출도 후에 춘향은 옥에서 풀려나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이몽룡은 춘향을 즉시 내려가 붙들고 싶으나정체를 감추고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고 했다. 가혹한 최후 시험이다. 하지만, 춘향은 최후의 시험에 이르기까지 끝내 목숨을 걸고 사랑의 약속을 지킴으로써 세상에서 가장 의기 있고 아름다운 한 사람이 되었다.

 

 

지은이 정길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 고전소설을 공부해 왔고, 동아시아 소설 비교 연구로 공부 영역을 넓혀 가려 한다.

저서 구운몽 다시 읽기, 17세기 한국소설사, 역서 구운몽, 선가귀감, 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허균 선집, 논문 전쟁, 영웅, 이념, 춘향전 인간학, <남원고사>, 혹은 경계인<춘향전>등이 있다.




목차

 

 

책머리에

 

 

1

1. 서장(序章)

2. 이도령

3. 봄나들이

4. 광한루

5. 춘향

6. 만남

7. 약속

8. 상사(相思)

9. 초조번민

10. 춘향 집 가는 길

11. 월매

 

2

1. 춘향의 집

2. 권주가

3. 춘향의 거문고

4. 이도령의 천자풀이

5. 이도령의 바리가

6. 데굴데굴 인간지락

7. 흥진비래

8. 첫사랑 첫 이별

9. 긴 한숨

10. 이별의 술잔

11. 귀덕이

12. 이별 후가 더 어렵다

 

3

1. 신관 변악도

2. 남원 가는 길

3. 기생 점고

4. 기생이 열녀 되랴

5. 절통 춘향

6. 춘향 압송

7. 춘향의 발괄

8. 어른의 웅심한 맛

9. 숫자 노래

10. 맹장 삼십

11. 하옥

12. 왈자

 

4

1. 왈자의 노래

2. 왈자의 책 읽기

3. 왈자의 놀이

4. 수심가

5. 월매의 슬픔

6. 장원급제

7. 어사 출동

8. 농부들

9. 산사의 선비들

10. 십시일반

11. 옥중편지

12. 사또의 악정

13. 다시 찾은 춘향 집

14. 허판수

 

5

1. 해몽

2. 상봉

3. 춘향의 소원

4. 출도 준비

5. 잔치

6. 어사 입장

7. 파흥

8. 난리법석

9. 출옥

10. 기생 점고

11. 열녀 춘향

12. 강동강동 월매

13. 대단원

 

해설 남원고사와 사랑의 가치

찾아보기

 

본문 중에서

 

불과 2년 전 남원고사를 정독하기 전까지 나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는 춘향전의 가치를 잘 알지 못했다. 열녀춘향수절가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완판 84장본과 신재효가 정리한 판소리 춘향가정도로만 알고 있던 춘향전의 세계와 전혀 다른 남원고사의 면모, 인간을 보는 독특한 서술자의 시선을 읽고서야 이 작품의 진가를 얼마간 이해하게 되었다.

남원고사는 초기 버전에 가까운 면모를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춘향전의 대표 버전이다. 1860년대 서울 종로에서 필사된 책이 프랑스 파리로 옮겨 가 있다가 1970년대에 뒤늦게 그 소재가 알려지면서 즉시 춘향전의 최고봉’, ‘춘향전의 결정판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나는 가장 생기발랄한 야성’(野性)을 지닌 김춘향의 형상, 풍성한 디테일,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웃들, 곧 절대 선인도 절대 악인도 아닌 인간 군상을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는 서술자의 시선이 좋아 남원고사춘향전의 최고봉이라고 생각한다. (4-5)

 

이 세상에 매우 이상하고 신통하고 거룩하고 기특하고 패려(悖戾)하고 맹랑하고 희한한 일이 있것다. 전라도 남원(南原) 부사(府使) 이등 사또 도임시(到任時)에 자제 이도령이 연광()16세라, 얼굴은 진유자(陳孺子), 풍채는 두목지(杜牧之), 문장은 이태백(李太白)이요, 필법은 왕희지(王羲之). 사또 사랑이 태과(太過)하여 도임 초에 책방(冊房)에 기생(妓生) 수청(守廳) 들이자 하니 색()에 상할까 염려하고, 통인(通引) 수청 넣자 하니 용의(容儀) 골까 염려하여 관속(官屬)에게 분부하되 (23-24)

 

소녀의 성은 김()이요, 이름은 춘향이요, 나이는 이팔이로소이다.”

이도령 이르는 말이

신통하다! 네 나이 이팔이라 하니, 나의 사사 십육(四四十六)과 정동갑(正同甲)이로고나.”

또 묻되

생월생시(生月生時)는 어느 때니?”

춘향이 대답하되

하사월(夏四月) 초팔일(初八日) 축시(丑時)로소이다.”

어허, 공교하다! 눈 무섭다! 방자야, 네가 아까 수군수군하더니 내나와 생일을 다 일러바쳤나 보고나. 그렇지 않으면 이럴 일이 있느냐? 대저 신통기이하다, 다 맞아 오다가 똑 시()만 틀렸으니! 나 해산할 제 불수산(佛手散)을 급히 달여 거꾸로 먹었더면 사주 동갑(四柱同甲)될 뻔했다. 어찌 반갑지 않으며, 어찌 기쁘지 않으리오? (72)

이도령은 춘향을 여중군자(女中君子)며 화중일색(花中一色)”이라 보아 정실부인으로는 맞지 못하나 평생 사랑할 것을 맹세했고, 춘향은 처음부터 이도령을 만고영걸”(萬古英傑)이라 여겨 인연 맺을 마음을 품었으나 이도령이 변심하지 않고 백년해로하리라는 서약서, 불망기’(忘記)를 받아낸 뒤에야 마음을 허락했다. 순정하고 고결한 사랑과 불망기는 잘 어울리지 않고, 따라서 한국 고전소설의 전통에서도 사랑의 계약이라는 설정은 낯선 것이지만, 기생 여주인공이 사랑의 한 축으로 등장하면서 독특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475)

 

김춘향은 애당초 이도령의 정실이 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이도령이 출세하고 요조숙녀를 정실로 맞은 다음 자신을 잊지 말고 소실로 삼아 평생을 함께한다면 사랑의 약속은 지켜지는 것이다. 이도령은 기생 춘향을 정실로 받아들이겠다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았다. 소실로 삼아 백년해로하겠다는 약속을 굳게 했을 뿐이다. 춘향은 이별 앞에 목숨을 끊어도 좋다고 했고, 이도령은 변치 않는 자신의 마음을 믿으라고 했다. 남원고사는 이처럼 사랑의 서약 장면을 춘향전어떤 버전보다도 길게 확대한바, ‘사랑의 약속에 관한 소설이라 할 만하다. (476-477)

 

본격적인 남원고사주석 작업은 1970년대 김동욱·김태준·설성경 세 분 선생의 춘향전 비교연구(삼영사, 1979)에서 시작되어 이윤석 교수의 남원고사 원전 비평(보고사, 2009)과 설성경 교수의 춘향전-남원고사(서울대출판부, 2016)에 이르렀다. 이 책에서는 고본 춘향전을 비롯하여 가장 상세한 주석을 담은 남원고사 원전 비평등 기존의 모든 주석서를 참조하면서 지금까지 의미와 출처가 밝혀지지 않았던 미상 구절에 대한 주석을 대폭 추가하고 기존 주석의 일부 오류를 바로잡고자 했다. 여전히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어구가 적지 않고, 혹 지나친 억측으로 기존의 올바른 주석을 오히려 해친 결과에 이르지 않았는지 조심스러운 바 있다. 잘못을 계속 수정하며 한국 고전소설의 걸작 남원고사를 정밀하게 독해하고 춘향전해석의 폭과 깊이를 더하는 데 바탕이 되는 자료로 만들어 가고 싶다. (488-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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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기획

 

서울리뷰오브북스

어떤책을 읽어야 하는가? 20213월 창간한 서평 전문지 서울리뷰오브북스는 그 답을 서평에서 찾는다. 서울리뷰오브북스한국에도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서평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탄생했다.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자연과학, 역사, 문학, 과학기술학, 철학, 건축학, 언어학, 정치학, 공학, 생물학, 법조, 북디자인, 미술 등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7명의 편집위원이 뜻을 모아 함께 만든다. 중요한 책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제대로 짚고, 널리 알려졌지만 내용이 부실한 책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주목받지 못한 책은 발굴해 소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필자 (게재순)

 

홍성욱

서울리뷰오브북스첫 편집장.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는 과학기술학자. 가습기 살균제나 세월호 참사 같은 과학기술과 재난 관련 주제들, 그리고 이와는 상당히 다르지만 1960-1980년대 산업화와 기술 발전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

 

이두갑

서울대학교 과학학과에서 가르친다. 과학기술과 자본주의, 과학기술과 법의 관계에 관심이 있다. 저서로 재조합 대학(The Recombinant University)이 있으며 편저로 아는 것이 돈이다, 함께 옮긴 책으로 자연 기계가 있다.

 

조문영

서울리뷰오브북스편집위원.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저서로 빈곤 과정, 인민의 유령(THE SPECTER OF “THE PEOPLE”), 엮은 책으로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 민간중국, 문턱의 청년들, 동자동, 당신이 살 권리, 옮긴 책으로 분배정치의 시대가 있다.

 

김홍중

서울리뷰오브북스편집위원. 사회학자. 사회 이론과 문화사회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가르친다. 최근 관심은 물성(物性), 인성(人性), 생명, 영성(靈性)의 얽힘과 배치이다. 저서로 은둔기계, 마음의 사회학사회학적 파상력이 있다.

 

권보드래

서울리뷰오브북스편집위원. 한국 근현대문학 전공자. 현재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한국 근대소설의 기원, 연애의 시대, 1960년을 묻다(공저), 31일의 밤등이 있다.

 

송지우

서울리뷰오브북스편집위원.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정치철학, 법철학, 인권학의 교집합에 있는 문제를 주로 연구한다.

 

박진호

서울리뷰오브북스편집위원. 언어학자. 서울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공저로 한국어 통사론의 현상과 이론, 현대한국어 동사구문사전, 인문학을 위한 컴퓨터, 디지털로 읽고 데이터로 쓰다등이 있다.

 

심채경

서울리뷰오브북스편집위원. 태양계 천체를 연구하는 행성과학자. 현재 한국천문연구원에 재직하며 달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옮긴 책으로 우아한 우주등이 있다.

 

정우현

서울리뷰오브북스편집위원. 덕성여자대학교 약학과 교수이자 분자생물학자. 생화학, 분자생물학, 신경과학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유전체 손상과 불안정성을 일으키는 여러 요인과 생명의 다양한 대응 기전을 연구한다. 저서로 생명을 묻다가 있다.

 

박상현

서울리뷰오브북스편집위원. 미디어스피어 공동 창업자, 오터레터발행인으로 중앙일보등에 디지털 미디어와 시각 문화, 미국 정치에 관해 쓰고 있다. 저서로 도시는 다정한 미술관, 나의 팬데믹 일기가 있고, 함께 옮긴 책으로 아날로그의 반격, 생각을 빼앗긴 세계,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등이 있다.

 

김두얼

서울리뷰오브북스편집장. 명지대학교에서 경제사, 제도경제학, 경제학 등을 연구하고 강의한다. 저서로 경제성장과 사법정책, 한국경제사의 재해석, 사라지는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살면서 한번은 경제학 공부가 있다.

 

강예린

서울리뷰오브북스편집위원. 건축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가르치고 있다. ‘브릭웰’, ‘미래농원’, ‘윤슬등의 공간을 디자인했으며, 공저로 도서관 산책자, 아파트 글자등이 있다.

 

박훈

서울리뷰오브북스편집위원.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에서 일본 근대사를 가르치고 있다. 메이지유신, 동아시아의 정치문화 등을 연구해 왔고 한일관계사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로 메이지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메이지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위험한 일본책등이 있다.

 

장하원

서울대학교 과학학과에서 과학기술학을 전공했다.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에 소속되어 코로나19부터 발달 장애까지 우리 사회의 질병과 장애 경험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공저로 겸손한 목격자들, 마스크 파노라마, 대한민국 재난의 탄생등이 있다.

 

서경

교육공동체 벗 편집부. ‘밀루라는 이름으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등에서 활동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대학을 가지 않았다.




차례

 

책을 펴내며 | 홍성욱

 

1부 인류세를 읽다

전 지구적 기후위기와 녹색 계급 _녹색 계급의 출현| 홍성욱

기후위기와 환경 재난의 자본주의 _느린 폭력과 빈자의 환경주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이두갑

다른 세계를 디자인하고 선언하는 인류학자 _플루리버스| 조문영

김홍중 방사능 폐기물에도 불성(佛性)이 있는가? _체르노빌| 김홍중

 

2부 과학기술을 읽다

인간의 조건 _클라라와 태양| 권보드래 · 송지우

인공지능이 인간을 더 닮으려면? _2029 기계가 멈추는 날| 박진호

우주를 보는 새로운 시선 _관찰과 표현의 과학사』 『비욘드』 『호모 스페이스쿠스』 『뉴호라이즌스, 새로운 지평을 향한 여정| 심채경

유전 vs. 환경, 무엇이 웃음을 닮게 하는가? _웃음이 닮았다| 정우현

 

3부 위험을 읽다

무해의 시대: 21세기 안전 패러다임의 계보와 전망 | 김홍중

밤길을 걷는 법: 강화길과 정세랑을 따라 길을 잃다 | 권보드래

안한 빈자는 어쩌다 안전의 위협이 되었는가: 21세기의 빈곤 통치 _자동화된 불평등』 『커밍 업 쇼트| 조문영

 

421세기 자본주의를 읽다

실리콘밸리가 만든 새로운 자본주의 시스템 _감시 자본주의 시대| 박상현

역사로 보이고 싶은 것과 역사가 말하는 것 _21세기 자본| 김두얼

밀실에서 나오는 지도를 그릴 수 있는가 _정크스페이스 | 미래 도시』 『짓기와 거주하기| 강예린

 

5부 전쟁을 읽다

인도주의는 평화를 가로막는가 _인도주의(Humane)| 송지우

가족, 서로 죽이고 구원하는: 전쟁 사회의 양극적 대립을 넘어서 _전쟁과 가족| 권보드래

구한말, 21세기 벽두의 데자뷔? _러일전쟁』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박훈

 

6부 차별과 연대를 읽다

가난한 개인은 그 자체로 세계다 _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조문영

진짜자폐인과 자폐인 캐릭터 사이에서 _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장하원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 성소수자를 배척하는 개신교에 대한 한 신학자의 비판 _성서, 퀴어를 옹호하다| 홍성욱

문란한 돌봄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_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 서경

본문 중에서

 

이 시점에서 읽기의 최전선을 기획한 것은 가히 시의적절하다고 하겠다. 앞만 보고 뛰어왔는데, 이제 서울리뷰오브북스에 실린 좋은 서평을 주제별로 묶어서 세상에 한번 내놓을 때가 되었다는 얘기다. 뒤도 잠깐 돌아보면서 숨을 한번 가다듬고, 새로운 미래를 기획해 보겠다는 약속이다. 여기 실린 서평들은 인류세’, ‘과학기술’, ‘위험’, ‘21세기 자본주의’, ‘전쟁’, ‘차별과 연대라는 여섯 가지 주제에 대해 독자들에게 다시 소개해 주고 싶은 글이다. 독자 여러분들은 이 글을 읽으며, 서평의 묘미와 깊이를 감미롭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홍성욱 책을 펴내며, 5-6

 

지금의 위기, 모순, 갈등은 생산의 속도를 줄이는 것만이 해결책이다. 진보 대신 퇴보, 성장 대신 탈성장, 발전(development) 대신 감싸기(envelopment)를 해야 하는 시점이다. 성장을 멈추고 후퇴해야 함을 외치는 지금의 투쟁은 19세기에 자본주의가 등장했을 때의 계급 투쟁보다 더 급진적이다. 19세기의 투쟁이 생산을 그 본래 의미로 이어 가기 위한 투쟁이었다면, 지금의 투쟁은 생산을 쇠퇴시키고 우리 존재의 생성(engendering)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19세기 노동 계급이 생산수단을 탈취해서 제대로 된 생산 체계를 확보하기 위해 싸웠다면, 지금의 투쟁을 주도하는 녹색 계급은 생성 체계를 지탱하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

홍성욱 전 지구적 기후위기와 녹색 계급, 20-21

 

클라인과 닉슨의 책은 기후위기와 환경 오염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역사적 맥락에 위치시키며 그 해결책을 강구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두 책을 읽은 후에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기후위기와 환경 오염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다. 두 책은 무엇보다 극단적 자본주의의 한 형태인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무분별한 자원 채취와 오염을 통해 지구와 우리 몸에 느린, 그렇지만 거대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보여 주고 있다.

이두갑 기후위기와 환경 재난의 자본주의, 37

 

이 책의 독특함은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복원하기 위한 도구, 전환을 위한 행위 방식과 존재 형태를 만드는 기술로서 디자인에 주목하고, 디자인의 관점에서 라틴아메리카에서 만개한 전환의 움직임을 탐구한다는 점이다. 에스코바르는 묻는다. “시장에 종속된 디자인이 형태와 개념, 영토와 물질을 지닌 창조적 실험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특히 지구와 함께 호흡하는 삶을 기획하기 위해 투쟁하는 서발턴 공동체에 적합한 디자인을 설계할 수 있을까?”

조문영 다른 세계를 디자인하고 선언하는 인류학자, 48

 

체르노빌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적어도 1945년 지구상에 핵문명이 시작된 이후 지구의 생명체들은 모두 피폭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는 불안이다. , 참사에서 죽어간 희생자들만이 피폭자인 것이 아니라, 지구적 중생(衆生) 모두가 잠재적 피폭자라는 사실에 대한 각성이다. 지구 시스템 어느 한 곳 빠지지 않고 돌아 내 코앞에 도착한 공기를 우리는 마신다. 어느 한 곳 빠지지 않고 흘러 내 손에 쥐어진 한 컵의 물을 나는 마신다. 이 광대한 물질적 순환의 흐름은 지구 위의 어떤 존재에게도 특권적 은신처를 마련해 주지 않는다. 인류세의 참된 의미는 바로 이 은신처의 불가능, 피난의

불가능성이다.

김홍중 방사능 폐기물에도 불성(佛性)이 있는가?, 68

 

인간의 마음이란 방 안에 방이 있는 것 같아서 그 복잡성을 다 파악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때 클라라가 아마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지 않나요? 인간의 마음, 그리고 거기에 기반한 개별성이나 고유성이라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권보드래)

인간이 대체 불가능하다는 믿음이 어떤 면에서는 인공지능의 등장 이전에 이미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가령 노동 시장에서 일부 직군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 가능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고요. ‘인간이 이렇듯 여러 의미로 대체 가능한데도 불가침성을 지니는 이유가 무엇인가가 더 정확한 질문이지 않나 싶네요.(송지우)

권보드래 · 송지우 인간의 조건, 88-89

 

기계 학습, 그중에서도 딥러닝이 몇몇 영역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방식으로 인간에 필적하는, 또는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섣부르다. 2029 기계가 멈추는 날은 바로 이 점을 힘주어 설파하고 있다. 딥러닝을 포함한 기계 학습으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신중한 성찰보다는 섣부른 과장 광고가 성행하고 있는 요즘 이 책의 목소리는 더욱 소중하고 이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박진호 인공지능이 인간을 더 닮으려면?, 108

 

탐험의 다른 이름은 설렘이기도 하지만, 두려움이기도 하다. 생존하기에는 너무나 불리한 우주 공간으로 뛰쳐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아주 작은 소행성의 흙을 퍼오려다가 너무 큰 충격을 가해 소행성을 지구로 가는 고속도로에 올려놓아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지구에서 숱하게 경험했던 무분별한 개척과 수탈의 역사가 우주에서까지 반복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두려움은 우주 상업화의 달콤한 열매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또 다른 두려움이 덮어 버리는 모양새다. 우리는 겪어 봐서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겪어 봐야 알더라는 것을.

심채경 우주를 보는 새로운 시선, 124

 

유전적 결함은 운명을 결정짓지 않는다. 유전적 한계는 도리어 능동적으로 환경을 바꾸고 운명을 새로 개척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유전자만 전해 줄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게 될 새로운 환경 또한 정성껏 물려주어야 한다.

정우현 유전 vs. 환경, 무엇이 웃음을 닮게 하는가?, 134

 

비인간의 얼굴들, 도처에서 우리도 살고 싶다, 죽이지 말라고 외치는 이 얼굴들도 이제 외면할 수 없다. 고통의 자리는 역동적으로 분열되어 간다. 거기에는 절대적 경계도 없고, 특권적 위치도 없다. 더 괴로워하는 존재는 언제나 어딘가에 있으며, 반드시 우리 앞에 나타난다. 무해의 시대는 고통이 회피되는 시대가 아니라, 이제껏 인정되지 못했던 새로운 고통을 기왕의 것들과 연결하는, 강인하고 질긴 망()이 엮어지는 그런 시대다.

김홍중 무해의 시대, 152

 

이토록 흔한 안전안심이란 구호는 역설적으로 그 갈망이 충족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안전은 어떻게 달성될 수 있을까. 가령 안전의 주체로 호명되는 여성을 위해서는 치안과 성평등이, ‘청년을 위해서는 직업과 주거 공간이 갖춰지면 되는 것일까. 함께 안전해야 할 다른 주체들의 자리는 어디 있는가. ‘안전을 우선시하는 한 정부와 국가의 개입을, 감시와 통제와 증명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면 좋은 것일까.

권보드래 밤길을 걷는 법, 167

 

불안한 삶들이 표류하는 세계다. 불안이 다른 불안을 마주하지 못할 때, 구조적 배제로든 자동화 기술로든 멀리하고 밀어낼 때, ‘안전위험과 동의어가 된다. 자기 구원에 매몰된 인간들의 헛된 노력을 탓할 것이 아니라, 한국어판 서문에서 실바가 던진 질문을 모두의 화두로 곱씹는 편이 낫겠다. “전 지구적 불안과 정치적 격변으로 흔들리는 시대에 괴로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이 집단적 동원의 수단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자기 단절이나 방어적인 고립에 맞설 제도들을 건설할 수 있을까?”

조문영 불안한 빈자는 어쩌다 안전의 위협이 되었는가?, 183-184

주보프는 감시 자본주의 자체가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쿠데타라고 주장한다. (……) 온라인, 특히 소셜미디어에서 일어나는 여론의 분극화(polarization)를 보면 순한 양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알고리즘이

해낸 일이다. 사회를 분열시키지만 소셜미디어 기업에게는 이익이 되는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사용자들은 이미 말을 잘 듣는 양 떼일 뿐이다.

박상현 실리콘밸리가 만든 새로운 자본주의 시스템, 202

 

과연 피케티는 어떻게 이런 접근을 하게 되었을까? 그는 불평등에 대한 역사 자료 분석을 기초로 어떤 주장을 했을까? 그의 주장은 자신이 제시한 논리적·실증적 증거와 잘 부합할까? 이 질문들을 따져 보며 21세기 자본을 읽는 것이야말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 책을 대하는 제대로 된 자세일 것이다.

김두얼 역사로 보이고 싶은 것과 역사가 말하는 것, 207

 

정크푸드가 영양가가 부실한 인스턴트 혹은 패스트푸드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같은 맥락에서 정크스페이스는 도시나 건축의 역사적인 맥락과 무관하게 쉽고 빠르게 만들어진 공간으로 짐작할 수 있다. 정크스페이스는 건축가의 의도와 설계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계산이 디자인을 대신하여, 더 많은 물건의 노출과 거래와 면적을 생성한다. 외부 형태나 건물의 형식은 없고, 마치 번식하듯이 공간은 쉽게 만들어진다. (……) 쇼핑의 논리만으로 존재하는 내부 공간 혹은 공간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추상화한 것이다.

강예린 밀실에서 나오는 지도를 그릴 수 있는가, 222-223

 

승리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적국의 모든 것을 정당한 군사 표적으로 간주하는 총력전(total war)’이 난무하는

세상보다는 국제인도법이 관철되는 세상이 낫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인도주의는 이런 상식적 판단에 어두운 이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참혹함을 최소화한 인도적 전쟁의 시대는 또한 조용하고 정밀하지만 동시에 분명한 종착점도 없는, 영구 전쟁(forever wars)의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더 나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모인에게 국제인도법이 내세우는 인도주의(humanitarianism)의 대척점은 총력전이 아니라 평화주의(pacism)이다.

송지우 인도주의는 평화를 가로막는가, 239

 

동아시아의, 한반도의, 한국 내의 문제는 ()식민과 ()냉전이 얽힌 양상으로 나날이 어지럽다. 냉전이 끝났는데 정치·경제적 격변 속 갈등만 기승스러워지다니. ‘너도 빨갱이(의 가족)인가?’라는 겁박에 모두가 시달렸던 세월을 겨우 벗어났는데, ‘좌빨이나 수구꼴통이란 적대(敵對)의 레테르가 횡행하는 세태라니. ‘가족은 무력하고 애도도 무기력하다. ‘진실은 어디까지 추구돼야 하고 화해는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지, 어지간한 지혜는 충돌의 불쏘시개감이 되고 마는 시절이다.

권보드래 가족, 서로 죽이고 구원하는, 263-264

 

한국 시민들은 나라가, 특히 국제 정세가 어려울 때면 곧잘 구한말을 입에 올린다. “구한말 때도 이랬다든가 정신 못 차리면 구한말 때처럼 나라 망한다든가 하는 말들 말이다. 70년가량 버텨 온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동요하고 있는 요즘, ‘구한말소리가 부쩍 자주 들린다. 그런데 구한말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인가. 무슨 일을 떠올리며 구한말을 말하는가.

박훈 구한말, 21세기 벽두의 데자뷔?, 267

 

가난과 싸워 온 사람들이 가난한 개인을 전면에 등장시켰을 때, 이 개인의 몸이 다른 사람, 사물, , 정책과 연결되면서 펼쳐지는 세계를 서사화·역사화할 때, 우리는 은막의 구조가 아니라 울퉁불퉁한 배치(assemblage)를 들여다보고, 숙고의 시간을 갖는다. 거대한 불평등의 시대, 선진국 진입을 자축하는 나라에서 이 배치가 정말 최선인지, 우리가 이 배치에 어떻게 연루되어 있는지, 어떤 연결이 생명에 대한 동료 인간의 예의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조문영 가난한 개인은 그 자체로 세계다, 292

 

이제는 우영우 실험이 남긴 잔상과 질문들에 집중할 시간이다. 좋은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직업 세계에서 비장애인이 성장하듯 장애인도 성장하며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우영우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우영우와는 다른 자폐인, 다른 장애인이라면 어떨까? 현실의 자폐인과 장애인이 사회에서 직업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마련되어야 할까?

장하원 진짜자폐인과 자폐인 캐릭터 사이에서, 303

 

신학자 박경미는 신이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모두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나는 인간의 진화 과정이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모두가 만들어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본다. 동성애에 대한 최근의 과학 연구들은 성적 지향으로서의 동성애가 선천적인 유전적 요소, 태아 시기의 호르몬의 영향, 출산 초기와 영유아 시절의 환경의 복합적 영향 때문에 생기며, 개인이 선택하거나 바꿀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보여 주고 있다. (……)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성적 지향이 바뀔 수 있고, 바뀌어야만 한다고 강요한다면 이것은 폭력이자 반인권적 처사이다. 아마 예수가 살아 있다면 가장 먼저 호통치고 야단칠 대상이 지금의 한국 교회일 것이다.

홍성욱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 317

 

나는 일생을 함께할 파트너를 선택하지 않고, 자신을 부양하거나 대리할 가족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 대표로 등장하는 운동에 함께하고 싶다. 각각 혼자로 남지 않기 위해서, 혼자서도 살 만한 사회를 상상하고 요구하고 싶다. 혼자가 알아서 스스로 일하고 돌보는, 신용과 능력이 있는 1인 가구 모델이 아니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나눠야 할 말들이 있다고 느낀다.

서경 문란한 돌봄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328-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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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리뷰오브북스》창간 3주년 특별판, 『읽기의 최전선』

77인의 필자, 198권의 리뷰 도서, 156편의 서평. ‘한국에도 역사와 전통이 있는 서평 전문지가 필요하다’는 바람을 담아 창간한 《서울리뷰오브북스》가 지난 3년간 더 나은 지식 공론장을 위해 뿌린 씨앗이다. 《서울리뷰오브북스》 창간 3주년 특별판 『읽기의 최전선』은 그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혹은 오늘날 더욱더 긴박한 사유와 성찰을 요하는 이슈들인 ‘인류세’, ‘과학기술’, ‘위험’, ‘자본주의’, ‘전쟁’, ‘차별과 연대’를 주제로 한 열다섯 명의 필자들의 서평 스물한 편을 한 권으로 다시 엮어냈다.

1부 ‘인류세를 읽다’는 홍성욱·조문영·김홍중 편집위원과 이두갑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가 기후위기와 원자력 발전소 사고 등 현실로 닥친 생태 위기의 현실을 직시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2부 ‘과학기술을 읽다’에서는 권보드래·송지우·박진호·심채경·정우현 편집위원이 인공지능과 우주 탐사, 유전학 분야의 현주소를 고찰한다. 3부 ‘위험을 읽다’는 《서울리뷰오브북스》 창간호의 특집 ‘안전의 역습’을 재구성한 것으로, 김홍중·권보드래·조문영 편집위원이 우리 시대 위험과 안전의 지형을 살핀다. 4부 ‘21세기 자본주의를 읽다’에서는 칼럼니스트 박상현과 김두얼·강예린 편집위원의 리뷰를 통해 21세기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자본, 도시, 감시 체계를 들여다본다. 5부 ‘전쟁을 읽다’는 ‘전쟁의 해’를 지나오며 구한말과 한국 전쟁이라는 과거와 인도주의의 한계를 여실히 마주하고 있는 현재의 전쟁을 송지우·권보드래·박훈 편집위원이 톺아본다. 마지막 6부에서는 ‘차별과 연대를 읽다’라는 제목 아래 조문영·홍성욱 편집위원과 과학기술학 연구자 장하원, 편집자 서경이 빈자, 자폐인, 성소수자의 삶과 연대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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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붙들고, 사유를 담금질하고,

치열하게 써 내려간 최전선의 책 읽기

바야흐로 ‘재난의 시대’이다. 기후위기, 팬데믹, 지정학적 충돌, 불평등의 심화, 정치적 불안 등 위기와 위협의 목록을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위기의식은 날로 선명해지고 있다. 사회, 정치, 경제, 문화, 환경 전 분야에 걸쳐 재난이 일상화되고, 해결은 난망하다. 우리는 이 재난의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서울리뷰오브북스》는 그 해답을 책에서 찾기 위해 치열하게 읽고 써왔다. 브뤼노 라투르의 『녹색 계급의 출현』을 통해 생태적 전환의 가능성을, 드라마 〈체르노빌〉을 통해 인류세의 감각을, 『클라라와 태양』을 통해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존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사회를 고민해왔다. ‘읽기의 최전선’에서 재난의 시대를 헤쳐나갈 최량의 지혜를 모색하기 위해 책을 붙들고, 사유를 담금질하고, 치열하게 써 내려간 지난 3년의 결실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 간략 소개

《서울리뷰오브북스》창간 3주년 특별판, 『읽기의 최전선』

재난의 시대,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77인의 필자, 198권의 리뷰 도서, 156편의 서평. ‘한국에도 역사와 전통이 있는 서평 전문지가 필요하다’는 바람을 담아 창간한 《서울리뷰오브북스》가 지난 3년간 더 나은 지식 공론장을 위해 뿌린 씨앗이다. 《서울리뷰오브북스》 창간 3주년 특별판 『읽기의 최전선』은 그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혹은 오늘날 더욱더 긴박한 사유와 성찰을 요하는 이슈들인 ‘인류세’, ‘과학기술’, ‘위험’, ‘자본주의’, ‘전쟁’, ‘차별과 연대’를 주제로 한 열다섯 명의 필자들의 서평 스물한 편을 한 권으로 다시 엮어냈다.

1부 ‘인류세를 읽다’는 홍성욱·조문영·김홍중 편집위원과 이두갑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가 기후위기와 원자력 발전소 사고 등 현실로 닥친 생태 위기의 현실을 직시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2부 ‘과학기술을 읽다’에서는 권보드래·송지우·박진호·심채경·정우현 편집위원이 인공지능과 우주 탐사, 유전학 분야의 현주소를 고찰한다. 3부 ‘위험을 읽다’는 《서울리뷰오브북스》 창간호의 특집 ‘안전의 역습’을 재구성한 것으로, 김홍중·권보드래·조문영 편집위원이 우리 시대 위험과 안전의 지형을 살핀다. 4부 ‘21세기 자본주의를 읽다’에서는 칼럼니스트 박상현과 김두얼·강예린 편집위원의 리뷰를 통해 21세기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자본, 도시, 감시 체계를 들여다본다. 5부 ‘전쟁을 읽다’는 ‘전쟁의 해’를 지나오며 구한말과 한국 전쟁이라는 과거와 인도주의의 한계를 여실히 마주하고 있는 현재의 전쟁을 송지우·권보드래·박훈 편집위원이 톺아본다. 마지막 6부에서는 ‘차별과 연대를 읽다’라는 제목 아래 조문영·홍성욱 편집위원과 과학기술학 연구자 장하원, 편집자 서경이 빈자, 자폐인, 성소수자의 삶과 연대를 읽는다.



오늘의 이슈를 책으로 읽고, 서평으로 사유한다!

“이 시점에서 『읽기의 최전선』을 기획한 것은 가히 시의적절하다고 하겠다. 앞만 보고 뛰어왔는데, 이제 《서울리뷰오브북스》에 실린 좋은 서평을 주제별로 묶어서 세상에 한번 내놓을 때가 되었다는 얘기다. 뒤도 잠깐 돌아보면서 숨을 한번 가다듬고, 새로운 미래를 기획해 보겠다는 약속이다. 여기 실린 서평들은 ‘인류세’, ‘과학기술’, ‘위험’, ‘21세기 자본주의’, ‘전쟁’, ‘차별과 연대’라는 여섯 가지 주제에 대해 독자들에게 다시 소개해 주고 싶은 글이다. 독자 여러분들은 이 글을 읽으며, 서평의 묘미와 깊이를 감미롭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서울리뷰오브북스》 첫 편집장 홍성욱, 「책을 펴내며」

서평 전문지로 알려진 《뉴욕리뷰오브북스》와 《런던리뷰오브북스》가 창간된 지 각각 61년, 45년이 지났다. 누군가에게는 세계를 보는 창(窓)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손꼽아 기다리는 흥미로운 읽을거리였던 서평은 지성사의 이정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서평 덕분에 생명력을 얻은 책들은 때로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하며 역사를 만들어 왔다. 《서울리뷰오브북스》는 “한국에도 서평 전문지가 필요하다”는 바람을 담아 2020년 12월 창간준비호(0호)를 거쳐 2021년 3월 창간했다.

기대와 우려 속에 출발한 《서울리뷰오브북스》가 어느덧 창간 3주년을 맞았다. 창간 3주년을 기념하며 지난 3년간 책을 붙들고 치열하게 담금질한 사유와 성찰을 한 권으로 엮었다. 우리 시대의 숱한 위기들을 헤쳐 나가는 데 작은 밀알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읽기의 최전선’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전 지구적 기후위기부터 원자력 발전소 사고까지,

인류세를 읽다


첫 번째 최전선은 ‘인류세’다. 기후위기의 현실 속에 ‘녹색 계급’이라는 새로운 존재의 등장에 주목하는 홍성욱, 자본주의에 의한 기후위기와 환경 재난을 직시하는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조문영,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참사 속에서 인류세라는 현실을 인식하는 김홍중의 리뷰를 한데 모았다.

“지금 당장 녹색 계급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할까?” 《서울리뷰오브북스》 첫 편집장인 과학기술학자 홍성욱은 「전 지구적 기후위기와 녹색 계급」에서 브뤼노 라투르와 니콜라이 슐츠의 『녹색 계급의 출현』을 들여다본다. 라투르가 평생 치열하게 연구・고민하며 형성해 간 그의 사상을 책 속 ‘녹색 계급’을 통해 살펴보고, 더 이상 “지구공동체가 직면한” 큰 위기를 돌이킬 수 없는 시점이 되기 전에 막아보자고 책의 목소리를 빌려 외친다.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생존을 위해 채취와 오염 생산에 동원되는 빈자들을 위해 어떻게 정의를 구현할 것인가?” 이두갑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는 「기후 위기와 환경 재난의 자본주의」에서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와 롭 닉슨의 『느린 폭력과 빈자의 환경주의』를 리뷰한다. “기후 위기의 구조적 배경과 재난의 일상성”의 극복을 아프리카의 빈자와 작가-활동가들의 실천적·대안적 활동에서 찾는다.

“새로운 위기는 새로운 대안을 요구한다.” 인류학자 조문영은 「다른 세계를 디자인하고 선언하는 인류학자」에서 『플루리버스』의 서평을 실었다. 조문영은 콜롬비아 출신의 인류학자 아르투로 에스코바르가 책에서 주장한 “자본주의・제국주의”를 넘어선 “다중의 우주와 세계인” 플루리버스가 가리키는 방향성에 십분 동의함을 피력한다. 또한,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한 존재론-디자인-정치의 관계를 둘러싸고 더 풍성한 질문, 비판, 논쟁, 제안을 촉구한다.

“인류세의 참된 의미는 바로 이 은신처의 불가능, 피난의 불가능성이다.” 사회학자 김홍중은 HBO에서 방영된 드라마 《체르노빌》을 통해 인류에게 닥친 참사의 흔적에서 존재론적 의미를 환기하며 다층적 질문을 길어 올린다. “방사능에 오염된 산천초목에도 불성이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사유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를 거쳐 인류세에 이른다.

인공지능, 우주 탐사, 유전학까지,

과학기술을 읽다

두 번째 최전선은 ‘과학기술’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조건을 질문하는 권보드래와 송지우, 인공지능 기술의 원리와 현주소를 톺아보는 박진호, 우주를 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는 심채경, 유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는 정우현의 리뷰를 모았다.

“인간이 이렇듯 여러 의미로 대체 가능한데도 불가침성을 지니는 이유가 무엇인가.” 문학연구자 권보드래와 정치철학 연구자 송지우는 「인간의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대담 형식의 서평을 시도했다. 권보드래와 송지우는 각각의 자리에서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을 따로 또 같이 리뷰한다. 코앞으로 다가온 인공지능의 미래 시대의 면면을 ‘클라라’라는 AF(Artificial Friend)의 시선으로 조망하는 『클라라와 태양』은 201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이다. ‘클라라의 눈으로 본 세계’에서 인간다움의 조건은 어떻게 설명되는지, 인공지능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클라라가 어떤 인간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지, 그로 인해 독자가 느끼는 불안과 긴장의 원천이 무엇인지 분석한다. 또 분열과 불평등이 심화되고 능력주의화된 세상 속에 인간이 어떻게 다른 인간을 소외, 차별하는지 설명한다. 두 편집위원은 오늘의 세계를 반영하는 이러한 모습을 훑고 경제, 교육, 인간관계 등의 주제 등을 건드리며 교차, 대화의 가능성과 서평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 준다.

“인간에 필적하는, 또는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섣부르다.” 언어학자 박진호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더 닮으려면?」에서 『2029 기계가 멈추는 날』의 서평을 실었다.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에 대한 세간의 과도한 관심과 기대 속에, 독자로 하여금 현재 인공지능 기술로 “할 수 있는 일과 한계”를 신중하게 돌아보게 하는 데 이 책의 효용이 있다고 말한다.

“탐험의 다른 이름은 설렘이기도 하지만, 두려움이기도 하다.” 천문학자·행성과학자 심채경은 「우주를 보는 새로운 시선」에서 2020년에 출판된 ‘우주 탐사’ 관련 서적 4권을 리뷰한다. 『관찰과 표현의 과학사』, 『호모 스페이스쿠스』, 『비욘드』, 『뉴호라이즌스, 새로운 지평을 향한 여정』에 대한 서평을 통해, 심채경은 인류의 DNA에 새겨진 탐험 유전자를 읽어내며, 우주 탐사를 위한 인류의 기나긴 탐험의 여정을 개관한다.

“유전만큼이나 우리 존재에 중대하게 기여하는 환경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분자생물학자 정우현은 「유전 vs. 환경, 무엇이 웃음을 닮게 하는가」에서 칼 짐머의 『웃음이 닮았다』를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칼 짐머는 유전이 수평적으로도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또한 유전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와 환경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한편, 저자는 칼 짐머를 따라 유전만큼이나 환경이 우리 존재에 중대하게 기여함을 지적한다. 이와 같이, 저자는 유전의 역사를 돌아보며 통념을 벗어나 유전 현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정립할 수 있음을 보인다.



‘전쟁의 해’를 지나오며, 어제와 오늘의

전쟁을 읽다

다섯 번째 최전선은 ‘전쟁’이다. 2023년은 끝나지 않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목도한, ‘전쟁의 해’였다. 5부 ‘전쟁을 읽다’에서는 평화에 이를 수 없는 인도주의의 한계를 짚는 송지우, 한국전쟁기 고발과 학살의 기록을 살피는 권보드래, 구한말 대한제국을 둘러싼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되돌아보는 박훈이 어제와 오늘의 전쟁을 화두로 다룬다.

“인도주의의 대척점은 총력전이 아니라 평화주의이다.” 송지우는 「인도주의는 평화를 가로막는가」에서 새뮤얼 모인의 『인도주의(Humane)』를 리뷰했다. 이 책에서 모인은 『인권이란 무엇인가』, 『충분하지 않다』에서의 논쟁을 ‘국제인도법’이라는 영역으로 확장해서 가져온다. 그는 ‘인도주의의 확산이 평화주의의 성장을 막는다’는 모인의 주장에도 전쟁이 종속되지 않았다는 “슬픈 사실”을 지적하며, ‘인도적 전쟁’은 괜찮다며, 더 나아간 평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진보 진영의 “윤리적 안일함과 상상력의 빈곤”에 씁쓸함을 보낸다.

“친밀한 존재끼리 휘두른 폭력의 세계.” 권보드래는 권헌익의 저서 『전쟁과 가족』을 통해 전쟁이라는 재난을 겪었던 70년 전의 한국 사회를 지금 이곳에 불러낸다. 『전쟁과 가족』은 한국전쟁의 발발과 전개 과정을 추적하는 대신 부역, 고발, 학살 등 한반도 주민들이 생활 세계에서 겪은 전쟁을 추적한다. 권보드래는 권헌익의 시선을 따라 전쟁 중과 전쟁 이후의 화해와 치유의 노력을 톺아보며, 오늘날 한국 사회에 진실과 화해, 애도와 존엄의 현주소를 성찰한다.

“설마 했던 전쟁이 ‘어? 어!’ 하는 사이에 실제로 일어났다.” 역사학자 박훈은 「구한말, 21세기 벽두의 데자뷔?」에서 구한말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대한 일본 역사학계의 도달점을 보여주는 책 두 책, 『러일전쟁』과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를 리뷰한다.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긴장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지금, 구한말의 경험을 다시금 읽는다.

차별을 넘어 연대로,

차별와 연대를 읽다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최전선은 ‘차별과 연대’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오늘을, ‘대혐오의 시대’라 지칭하고는 한다. 6부 ‘차별과 연대를 읽다’에서는 쪽방촌 주민들의 고투를 이야기하는 조문영,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대본집을 리뷰하는 장하원, 성소수자를 배척하는 개신교를 바라보며 종교의 역할을 질문하는 홍성욱, 성소수자 주거 공동체를 통해 주거와 가족, 돌봄의 의미를 질문하는 서경이 홈리스, 자폐인과 장애인, 성소수자의 취약한 삶, 저항과 연대를 읽는다.

“가난은 쉽게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이슈’가 아니다.” 조문영은 「가난한 개인은 그 자체로 세계다」에서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로, 자본주의 시대에 빈자들의 주거에 대한 문제 제기 앞에 우리는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지 담담히 묻는다. “서울역 맞은편 양동 쪽방촌” 주민과 활동가 등이 함께 만들어 온 이 책을 빈자의 “섬세한 선언문”으로 고쳐 읽는다.

“이제는 우영우 실험이 남긴 잔상과 질문들에 집중할 시간이다.” 과학기술학 연구자 장하원은 「자폐인 변호사라는 실험」에서 올해 화제가 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대본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서평을 썼다. ‘자폐인도 직업인으로서 변호사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대본을 써내려 간 저자의 질문에 드라마가 아닌, 우리 사회의 현실 속에서 답을 찾는다. 다소 엉뚱하고 귀엽지만, 무해한 ‘우영우’라는 캐릭터와 ‘변호사’라는 직업 세계가 드라마 속 판타지로 남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자폐인도 장애인도 현실 사회에서 ‘직업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점이 무엇인지 묻고, 특히 개인보다 사회 구조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아마 예수가 살아 있다면 가장 먼저 호통치고 야단칠 대상이 지금의 한국 교회일 것이다.” 홍성욱의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는 성소수자를 배척하는 개신교에 대한 한 신학자의 비판을 담았다. 박경미의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의 서평을 통해, 동성애는 진정으로 기독교의 교리와 어긋나는 것일까에 대한 답을 구해 본다. 필자는 이 책이 동성애를 배척하는 한국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증거로 삼는 성경의 몇몇 구절들에 대해서 대안적인 해석이 존재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과학기술학자로서 홍성욱은 동성애에 대한 최근의 과학 연구들을 보면서 신학자 박경미의 시각과는 다른 관점에서 동성애를 바라보며, 이를 토대로 한국 교회나 한국 보수 개신교계를 비판한다.

“무엇을 위해 가족이 필요한가 하는 질문이, 집을 어떻게 본래 목적으로 되돌릴 것인가라는 질문과 나란히 놓여 있다.” 서경은 「‘문란한 돌봄’의 세계로 초대합니다」를 투고하여, 성소수자 주거 공동체의 이야기를 담은 『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를 소개했다. 서경은 무지개집 구성원들이 공동체를 기획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두고, 성소수자를 돌보지 않는 국가에 맞서, 국가의 역할을 민간에서 먼저 해 보이는 방식의 저항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서경은 성소수자들이 겪는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있어 제도적 변화가 지니는 한계를 지적하며 제도를 넘나드는 다양한 상상과 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집과 가족의 의미에 대한 질문과 성찰을 제기한다.



저자 소개

기획

서울리뷰오브북스

‘어떤’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 2021년 3월 창간한 서평 전문지 《서울리뷰오브북스》는 그 답을 서평에서 찾는다. 《서울리뷰오브북스》는 ‘한국에도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서평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탄생했다.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자연과학, 역사, 문학, 과학기술학, 철학, 건축학, 언어학, 정치학, 공학, 생물학, 법조, 북디자인, 미술 등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7명의 편집위원이 뜻을 모아 함께 만든다. 중요한 책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제대로 짚고, 널리 알려졌지만 내용이 부실한 책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주목받지 못한 책은 발굴해 소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필자 (게재순)

홍성욱

《서울리뷰오브북스》 첫 편집장.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는 과학기술학자. 가습기 살균제나 세월호 참사 같은 과학기술과 재난 관련 주제들, 그리고 이와는 상당히 다르지만 1960-1980년대 산업화와 기술 발전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

이두갑

서울대학교 과학학과에서 가르친다. 과학기술과 자본주의, 과학기술과 법의 관계에 관심이 있다. 저서로 『재조합 대학(The Recombinant University)』이 있으며 편저로 『아는 것이 돈이다』, 함께 옮긴 책으로 『자연 기계』가 있다.

조문영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위원.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저서로 『빈곤 과정』, 『‘인민’의 유령(THE SPECTER OF “THE PEOPLE”)』, 엮은 책으로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 『민간중국』, 『문턱의 청년들』, 『동자동, 당신이 살 권리』, 옮긴 책으로 『분배정치의 시대』가 있다.

김홍중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위원. 사회학자. 사회 이론과 문화사회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가르친다. 최근 관심은 물성(物性), 인성(人性), 생명, 영성(靈性)의 얽힘과 배치이다. 저서로 『은둔기계』, 『마음의 사회학』과 『사회학적 파상력』이 있다.

권보드래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위원. 한국 근현대문학 전공자. 현재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한국 근대소설의 기원』, 『연애의 시대』, 『1960년을 묻다』(공저), 『3월 1일의 밤』 등이 있다.

송지우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위원.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정치철학, 법철학, 인권학의 교집합에 있는 문제를 주로 연구한다.

박진호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위원. 언어학자. 서울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공저로 『한국어 통사론의 현상과 이론』, 『현대한국어 동사구문사전』, 『인문학을 위한 컴퓨터』, 『디지털로 읽고 데이터로 쓰다』 등이 있다.

심채경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위원. 태양계 천체를 연구하는 행성과학자. 현재 한국천문연구원에 재직하며 달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옮긴 책으로 『우아한 우주』 등이 있다.

정우현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위원. 덕성여자대학교 약학과 교수이자 분자생물학자. 생화학, 분자생물학, 신경과학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유전체 손상과 불안정성을 일으키는 여러 요인과 생명의 다양한 대응 기전을 연구한다. 저서로 『생명을 묻다』가 있다.

박상현

전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위원. ㈜미디어스피어 공동 창업자, 《오터레터》 발행인으로 《중앙일보》 등에 디지털 미디어와 시각 문화, 미국 정치에 관해 쓰고 있다. 저서로 『도시는 다정한 미술관』, 『나의 팬데믹 일기』가 있고, 함께 옮긴 책으로 『아날로그의 반격』, 『생각을 빼앗긴 세계』,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 등이 있다.

김두얼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장. 명지대학교에서 경제사, 제도경제학, 경제학 등을 연구하고 강의한다. 저서로 『경제성장과 사법정책』, 『한국경제사의 재해석』, 『사라지는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살면서 한번은 경제학 공부』가 있다.

강예린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위원. 건축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가르치고 있다. ‘브릭웰’, ‘미래농원’, ‘윤슬’ 등의 공간을 디자인했으며, 공저로 『도서관 산책자』, 『아파트 글자』 등이 있다.

박훈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위원.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에서 일본 근대사를 가르치고 있다. 메이지유신, 동아시아의 정치문화 등을 연구해 왔고 한일관계사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로 『메이지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메이지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위험한 일본책』 등이 있다.

장하원

서울대학교 과학학과에서 과학기술학을 전공했다.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에 소속되어 코로나19부터 발달 장애까지 우리 사회의 질병과 장애 경험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공저로 『겸손한 목격자들』, 『마스크 파노라마』, 『대한민국 재난의 탄생』 등이 있다.

서경

교육공동체 벗 편집부. ‘밀루’라는 이름으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등에서 활동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대학을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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