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펜스 기숙학교의 마녀들
리바 브레이 지음, 이원경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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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분위기로는 해리포터와 비교할 수 있을까.

그러자면 차이점이 크게 드러나겠다.

여자 기숙학교라 여학생들만의 정서가 물씬 풍긴다는 것.

오밀조밀 부대끼고 밀리고 당겨지는 감정의 조절이 풍부하다는 것.

당시 코르셋을 꼭 조이고 살았던 갑갑한 여자들의 삶이

어렴풋이 보여지다가 서서히 윤곽을 명확히 한다는 것.

그러다 보니 이야기는 읽히는 맛이 뛰어나다.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는 점에선 소설로서 훌륭하겠다.

뭔가 거대한 비밀을 목도에 두고

한발 물러날까 오히려 한발 내디딜까,

조바심내며 갈등하는 소녀들의 심리가 올록볼록 드러나며

스토리에 긴장감을 준다.

 

한데 해리포터와 달리 거대한 비밀의 정체가 조금 모호하게 묘사된다.

마법을 걸고 또 걸리는 모습들이 모호하다.

그건 원작자의 표현력 문제인지, 번역자의 기술 문제인지 잘 가늠이 안 된다.

어쨌든 두툼한 베일에 싸인 듯한 마법의 상황들이 좀 걸리적거린다.

 

게다가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상황을 진행시키는 시제가 대체로 현재형이라는 게 맘에 들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도일은 한 발 나선다. 두려움이 엄습한다. 엄마가 쓰러진다. 가슴이 옥죈다.

뭐 이런 식이다. 이런 표현은 전적으로 내 취향 탓이니

작가에게 뭐라할 건 아닐 것 같지만.

또 마법소설을 좋아하는 편이 아닌 것도 별 셋의 이유일 것 같고.

 

하지만 이야기가 후반에 접어들면서 긴박감이 농후해지는 건 훌륭했다.

각 등장인물들의 선택들이 괜스레 엄숙해지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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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은 왜 장지갑을 쓸까 - 돈이 굴러들어오는 지갑 사용 설명서
카메다 준이치로 지음, 박현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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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후 몇 가지 팁을 머리에 넣어뒀다.

그러고 나서 나의 첫 액션은 장지갑을 산 것.

책이 이처럼 재빠른 후속조치를 취하게 한 것은, 아마 이번이 처음?

내가 생각해도 조금 우습지만,

어쨌거나 책을 읽고는 당장 마음가짐을 가시적인 것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어쩌면 남들이 보기엔, 장지갑을 사고 싶은 마음에

핑계김에 구입한 건지도 모른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궁색한 변명이라도 대자면, 사실 나는 굳이 장지갑을 피하던 사람이는 것.

 

장지갑이 싫어서 일부러 작은 반지갑을 사용했다.

그건 돈을 철저히 가벼이 생각하려는 내 무의식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상하게도 돈 액수 같은 건, 비상하리만치 외우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암기력이 심하게 떨어지는 편도 아니다.

전화번호나 사람 이름 따위는 약간 비상할 만치 머릿속에 오래 남으니까.

그러다 보니 돈을 모으는 데는 완전 바닥을 긴다.

 

이러다가 정말 노후엔 철저한 가난뱅이가 되겠단 두려움이 엄습하면서,

이 책을 잡았고, 결국 반지갑을 버리고 장지갑을 손에 잡았다.

물론 이 책에서는 지갑의 액수 곱하기 200배를 하면 미래의 연봉이라고 했다.

그러자면 엄청 비싼 지갑을 사야 하겠지만,

그 지점에서는 또 굳이 내 식대로 저렴하고 튼튼한 걸로. ^^

 

돈을 지나치게 가벼이 생각하는 나는, 나쁜 버릇이 있다.

내 지갑에 돈이 얼마 있는지도 잘 모른다는 것.

그러니 가장 먼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건,

저자의 말마따나 지갑을 잘 보살피는 것이다.

또, 내가 얻은 팁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500엔(원으로 생각하고) 짜리 동전은 무조건 쓰지 않는 것,

저금통에 들어가는 돈으로 생각하자는 것.

한 달에 두 번, 계획적으로 일정한 금액을 인출하여

지갑에 넣어두고 쓰자는 것.

나야말로 돈을 조금 쓰자는 생각에서

조금 인출하고, 또 다음날 인출하는 우를 범하는데,

사실 이럴수록 돈을 적게 쓰기는커녕

내가 얼마나 쓰는지도 잘 파악 안 될 때가 있었다.

 

이 책은 책 가격에 비해 내용이 가볍다.

가벼운 책으로 만들어줬다면 별 한 개쯤 더 넣어줄 용의도 있다.

하지만 책 내용이 가볍다고 금세 잊혀지는 건 아니다.

말하자면,

내 지갑의 삶(?)을 조금은 급격하게 바꿀 수 있고,

어쩌면 내 경제적 삶도 서서히 나아질지 모를 거라 생각이 드는 책,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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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스!
햐쿠타 나오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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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과 어른의 차이들을 주절주절 늘어놓은 글에서, 이런 구절이 있다.

아이는 얼른 어른이 되고 싶어하며, 어른은 다시 아이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사실 나는 어른이면서도 이 구절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시 아이로 돌아가서 살아온 만큼 또 살아야 하다니!

끔찍해, 혹은 귀찮아, 라고 혼자서 덧붙였다. 창피하게도 말이다.

 

한데 이 소설을 읽고 나서는 이렇게 눈부신 젊음을 가진 그들이 부러웠다.

(이 대목에서는 나도 정말 어른인가!)

내가 돌아가봐야 권투를 할 리는 없지만,

순수한 우정과 뜨거운 열정이 벅차도록 겹치고 어우러지는

그들의 시간이 눈물이 나도록 눈부셨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실패의 두려움을 모르는 이,

한 번도 남에게 주먹을 던져본 일 없으며 언제나 주먹세례나 받던 이,

권투가 사람을 처절하게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알아 언제나 신중하게 링에 오르는 이,

내 눈을 잃은 것보다 제자의 기억이 사라진 데서 절망을 느끼는 이,

권투 속에서 움직이는 이들이 이 책 안에 모여 있다.

그들 안에서 사람의 놀라운 투지를 건져내고,

평생 발견하지 못한 채 사라지는 재능을 끌어내고,

공포를 오히려 눈을 감지 않고 이겨내는,

그런 소설이다.

 

소설을 한참 읽다가 연필을 꺼내들었다.

그냥 죽죽 읽어갈 만큼 호흡이 빠른 소설이라 연필을 들지 않고 싶었지만

끝내 줄을 긋고 싶은 문장들이 귀찮은 손을 움직이게 했다.

 

"야생동물은 한번 몸에 밴 공포를 씻어내지 못해요.

인간이 호랑이나 사자를 조련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호랑이도 한번 몸에 밴 공포는 극복할 수 없군요."

"뒤집어 말하면 고등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악어나 독사에게 새로운 공포심을 심어줄 수는 없죠."

"그러면... 인간도 공포를 극복하는 건 무리인가요?"

"아뇨. 인간은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금 생존본능에 따라..."

"그러니까 인간을 대단하다고 하는 거죠.

야성적인 본능을 의지력으로 극복할 수 있으니까요.

그 점이 인간과 다른 고등동물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하기야 그러려면 진짜 정신력이 강인해야겠지만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건가요?"

"글쎄요, 그건 사람마다 다르겠죠."

 

글쎄, 마지막 말마따나 이 대목은 사람마다 다르겠다.

한데 요즘 급격히 두려워하는 내게는

이 말이 정말 고마웠다.

복스, 는 사각링에서만 하는 게 아니니까.

살아가며 겪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도

나 같은 유약한 복서가 해야 하는 것.

 

제목을 쓰고 나서, 다시 덧붙인다.

이 책의 결말도 무척 흥미롭다.

링에서 맞붙어 싸우던 이들이 십 년 후 어떻게 살아냈는가, 를

확인할 수 있으니까.

링에서 마지막처럼 싸우던 이들은 각자의 길을 걸었다.

그러니 소설은 참 따듯한 위로제다.

모든 것이 다 지나간다는 걸,

가장 치열하고 뼈아팠던 순간들도 사실은 지나가고 말 뿐이라는 걸,

소설은 그 어떤 과학적인 사실들보다 에둘러, 하지만 정확히,

말해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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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훔친 여름 김승옥 소설전집 3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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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도 아닌데 읽는 내내 결말이 궁금해 죽겠는 소설이다.

이 소설집에는 중편이 둘 들었다.

표제작인 내가 훔친 여름, 그리고 60년대식.

제목도 기막히거니와 이야기의 흐름도 못내 엉뚱하다.

뭔 얘기를 하려고 하려나, 도대체 이 인물은 정체가 뭔가,

무진장 궁금해진다.

 

사기 치는 사기꾼 자질은 농후한데, 그리 심각하게 나쁜 놈 같지는 않고,

넙죽넙죽 여기저기 얼굴 내밀고 찔러대기 좋아하며

관련성 만드는 데 천부적인 인물이 왜 갑작스레 등장하여,

화자인 나를 꼬셔 여수까지 내려갔을까, 는

아예 드러내지도 않는다.

다만 여수에서 황당할 만치 증폭되는 이야기가 엄청스레

능청스럽다는 것. 한데 그 능청스러움이 그다지 돈이 되지 못하고 

사기는커녕 빈털터리가 되어 남루해지는 모습이,

영악하려 애쓰나 결국은 천부적인 사악함이 모자라

엎어지고 마는 행색이다.

 

사실 사기, 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예전에 어떤 이는 나도 아는 이의 이름을 들먹이며 그놈 사기꾼이야 하던데,

내가 볼 때는 사기꾼의 자질이라기보다는 오지랍의 폭이 넓을 뿐이었다.

그러니 그 이후에 내가 약간의 거짓말로 그를 떠났을 때

그는 지금쯤 내 이름을 들먹이며 사기꾼이야, 하고 말할 게 뻔하다.

얼토당토하지 않은 일에 우연히 연루되어

생각지도 못한 일에 휘말리는 경우, 사실 많다.

하지만 끝내는 쓸쓸한 결말이 될 것이다.

사기란, 독하게 맘먹고 온 심혈을 기울여 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니까.

그러니 시간 속에 던져진 나는, 어쩌면 적재적소에 내가 있을 곳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전 시작한 일 속에서 당황해하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뭐하자고 이곳에 들어왔나, 어이가 없었다.

내가 그토록 피하고자 한 일인데도 나는 어느새 그곳에 덜렁 들어가 있었으니까.

이 소설집을 덮으며 내린 결론은, 이거다.

시간 속에서 어느덧 흘러간 곳은,

내가 거기 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르니

닥치는 일에 적응해보자, 주춤거릴지언정 도망은 치지 말자,

뭐 그런 엄청 긍정적인 다짐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닥친 일 속에서 마치 크나큰 사기를 당한 듯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다.

60년대식, 의 소설에서는 흐르듯 밀려간 곳에서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이 나오지 않던가.

하지만 그는 끝내 생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작가는 묘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죽고자 해도 죽어지지 않는 생명력이다.

모든 건 지나가고 잊혀지고 사라진다.

사랑이든, 아픔이든, 살고 있으면 그런 것들은 흐트러진다.

바람에 날려갈 만큼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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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수첩 김승옥 소설전집 2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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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을 읽은 지 오래되었다.

그때도 김승옥이란 작가에게 감탄했다.

보통 작가에게 감탄하는 경우는, 이런 거다.

내가 뭘 느끼며 사는지, 내가 뭘 생각하며 사는지 알지 못했다가

작가의 몇 문장으로 명료하게 깨달을 때다.

혹은 그걸 뭐라고 표현하지, 하고 답답해하다가

정확히 짚어낸 문장으로 속이 시원할 때다.

사실 작가란 그런 게 아닐까.

세상에 전혀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널렸으나 버려졌고 먼지에 덮인 것을 찾아내어

눈에 보이도록 전시해주는 것.

 

그래서 이 작가의 소설들을 읽을 때는 고마움까지 느끼게 된다.

친구를 미워하면서도 어울려 다닐 수밖에 없고,

사랑을 거부하면서도 사랑하지 못하는 걸 두려워하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절대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애쓰지 못하는,

무수히 많은 '나'를 하나하나 목격하고 끌어안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후대의 작가들에게는 명백히 넘어서기 힘든 산이었을 것 같다.

표지 뒷면에는 소설가 이응준의 짧은 글이 들어 있었다.

"김승옥이란 소설가는 내게 있어 빛과 그림자였다.

빠져들어 닮고 싶어했을 때는 찬란한 빛이었으되,

빠져나와 다른 것을 쓰려고 했을 때는 잔혹한 어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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