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훔친 여름 김승옥 소설전집 3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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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도 아닌데 읽는 내내 결말이 궁금해 죽겠는 소설이다.

이 소설집에는 중편이 둘 들었다.

표제작인 내가 훔친 여름, 그리고 60년대식.

제목도 기막히거니와 이야기의 흐름도 못내 엉뚱하다.

뭔 얘기를 하려고 하려나, 도대체 이 인물은 정체가 뭔가,

무진장 궁금해진다.

 

사기 치는 사기꾼 자질은 농후한데, 그리 심각하게 나쁜 놈 같지는 않고,

넙죽넙죽 여기저기 얼굴 내밀고 찔러대기 좋아하며

관련성 만드는 데 천부적인 인물이 왜 갑작스레 등장하여,

화자인 나를 꼬셔 여수까지 내려갔을까, 는

아예 드러내지도 않는다.

다만 여수에서 황당할 만치 증폭되는 이야기가 엄청스레

능청스럽다는 것. 한데 그 능청스러움이 그다지 돈이 되지 못하고 

사기는커녕 빈털터리가 되어 남루해지는 모습이,

영악하려 애쓰나 결국은 천부적인 사악함이 모자라

엎어지고 마는 행색이다.

 

사실 사기, 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예전에 어떤 이는 나도 아는 이의 이름을 들먹이며 그놈 사기꾼이야 하던데,

내가 볼 때는 사기꾼의 자질이라기보다는 오지랍의 폭이 넓을 뿐이었다.

그러니 그 이후에 내가 약간의 거짓말로 그를 떠났을 때

그는 지금쯤 내 이름을 들먹이며 사기꾼이야, 하고 말할 게 뻔하다.

얼토당토하지 않은 일에 우연히 연루되어

생각지도 못한 일에 휘말리는 경우, 사실 많다.

하지만 끝내는 쓸쓸한 결말이 될 것이다.

사기란, 독하게 맘먹고 온 심혈을 기울여 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니까.

그러니 시간 속에 던져진 나는, 어쩌면 적재적소에 내가 있을 곳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전 시작한 일 속에서 당황해하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뭐하자고 이곳에 들어왔나, 어이가 없었다.

내가 그토록 피하고자 한 일인데도 나는 어느새 그곳에 덜렁 들어가 있었으니까.

이 소설집을 덮으며 내린 결론은, 이거다.

시간 속에서 어느덧 흘러간 곳은,

내가 거기 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르니

닥치는 일에 적응해보자, 주춤거릴지언정 도망은 치지 말자,

뭐 그런 엄청 긍정적인 다짐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닥친 일 속에서 마치 크나큰 사기를 당한 듯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다.

60년대식, 의 소설에서는 흐르듯 밀려간 곳에서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이 나오지 않던가.

하지만 그는 끝내 생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작가는 묘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죽고자 해도 죽어지지 않는 생명력이다.

모든 건 지나가고 잊혀지고 사라진다.

사랑이든, 아픔이든, 살고 있으면 그런 것들은 흐트러진다.

바람에 날려갈 만큼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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