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후정치사 - 일본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전개 커리큘럼 현대사 2
이시카와 마쓰미 지음, 박정진 옮김 / 후마니타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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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의 초판은 1995년, 전후50주년을 기해 간행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 증보신판이 필요하다고 여겨져 추가분의 집필되어야 했는데, 당시 애초 저자였던 이시카와 씨가 병상에 있던 터라 추가된 부분은 홋카이도 대학의 야마구치 지로교수가 대신 썼다고 한다. 고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책은 이시카와 마쓰미씨와 야마구치 지로씨의 공저라고 봐야 할 것이다.

어쨌건 책의 상당부분을 저술한 이시카와 씨는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출신이다. 그리고 그는 기자라는 그러한 직업의식 때문인지 서두에서 일본사를 '논하지 않겠다'고 한다. 즉, 사실의 기술에만 충실하겠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E.H카가 이미 이야기한대로 역사를 기록하는 행위 그 자체 마저도 객관적일 수 없는 행위이다. 우리는 어찌되었건 역사의 흐름 그 내부나 외부에서 그 역사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이러한 영향하에서의 경험과 의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저자는 독자들이 그 점을 파악하도록 하기 위해 서문에서 자신의 개인사를 미리 소개해놓고 있다. 참으로 치밀한 배려. 이러한 배려는 책 곳곳에서 베어나오고 있으며, 덕분에 책을 줄곳 신뢰하며 읽을 수 있었다.

저자가 일본의 현대 정치사를 하나씩 기술해가며 가장 천착한 부분은 역시 일본의 정당 체제에 관한 문제인 것으로 보여진다. 일본의 정당체제는 전후 자민당 집권기를 의미하는 55년체제동안 줄곳 차마 양당제라 하기 힘들정도의 불균형을 보여주고 있고, 이는 결과적으로 오늘날, 보수와 진보가 아닌 보수와 보수가 대립하는 '보수 양당제'구도로 귀결될 것처럼 보여진다. 저자는 이러한 55년 체제의 정당관계를 1과 1/2체제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55년 체제의 야당이었던 사회당이 집권 가능한 정당이 아닌 반쪽 정당이었다라는 이야기다.

책을 보면 줄곳 일본의 진보세력은 55년 체제 기간 내내, 외세에 의해 주어진 민주주의와 외세에 의해 주어진 민주헌법을 '방어'하는 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뿐만아니라 집권 이후의 특별한 청사진 없이 선거때만 되면 잔뜩 기대에만 부풀어 있다가 이골이 날 정도로 연신 '패배선언'을 해대는(심지어 이는 사회당이 '비교적'승리한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다)55년 체제의 최대야당인 사회당의 모습을 보다보면, 후에 심지어 자민당과 연정하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부인하여 지금은 궤멸상태에 이른 일본 진보정당들의 모습을 보다보면, 정말 이렇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 한다면, 일본사회에 민주주의나 평화라는 이념 자체가 자신의 힘이 아닌 외세, 그것도 '적국'이었던 미국에 의해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는 결과적으로 진보세력의 무능과 나태를 낳는 한 요인이 되었고, 그로인해 결국 이후 일본 진보세력의 궤멸과 온갖 잡탕(?)으로 이루어진 '또다른 보수'야당인 민주당의 출현으로 이어지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긴한다. 어떤 것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많은 힘이 필요하지만 이미 주어진 것을 방어하는 데에는 그만큼 많은 힘이 필요하진 않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한 배경 하에서 그저 외부로부터 별다른 고생없이 주어진 성과들을 지키는데에만 급급했던 일본 진보세력의 나태함과 안일함이 오늘의 보수 일변도의 정치구조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55년 체제가 끝나고 비자민 연립정권이 들어섬에 따라, 결과적으로 진보의 시대가 열리기보다는 보수 확장의 시대가 열렸다는 점을 보아도 이러한 일본의 진보세력에 대한 아쉬움은 더해진다. 물론, 불합리한 선거 제도나 정치풍토(정치파벌에 국한해 본다면, 일본은 한국 뺨친다. 그럼에도 이처럼 복잡한 파벌구도를 표로 간단하게 정리한 저자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가히 경외감이 느껴질 지경이었다는)로 인해 역동성을 잃은 시민사회(물론 일본의 시민사회는 우리의 시민사회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선진적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역동성은 거의 사라진 듯 싶다.)또한 일본 정치의 '완벽한 보수화'의 원인 중 하나로 볼 수 있겠지만, 무사안일에 빠져 있었던, 관념적으로만 급진적이지 실제 자신의 지지토대조차 만들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로 나태했던, 다분히 엘리트주의적 측면마저 보여지는 진보정당에 그 주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겠다는 느낌이 든다.

책은 깔끔하고 압축적인 정리 뿐 아니라, 일본 정가에서 한때 유행했던 혹은 지금까지도 쓰여지고 있는 몇몇 단어들에 대한 소개도 해놓고 있는데, 이 또한 독자에게 뜻하지 않은 즐거움을 준다.(하여간 일본사람들이 신조어 만들어내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듯^^) 하여간 현대 일본정치의 흐름을 콤팩트(?)하게 알고자 하는 분이라면 읽어보고 후회하시지는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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