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의 현실과 대안 찾기 - 민주주의총서 08
송원근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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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국사회에서 재벌은 새로운 '성역'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자아낼 지경이다. 보수주의 정치세력의 반격으로 인해 비가역적이라 생각했던 수많은 가치들이 몰상식에 그 자리를 내주고 있는 듯해 보이는 오늘, 사실상 진정한 승자는 보수주의 정치세력도, 보수주의 언론도 아닌 재벌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그 실질적 효력은 차치하고라도 한동안 담론적 차원에서라도 활발하게 이야기되었던 '재벌개혁'이라는 말은 이제 어느덧 유행이 지나버린 감마저 들 지경이지만, 최근에 있었던 재벌총수와 관련한 여러 재판 결과를 보아도 알 수 있듯 재벌은 이제 경제적 영역 뿐 아닌 사회 제 영역에서 그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개혁을 이야기하며 그 대안을 찾아나간다는 것이 말만큼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저자 또한 그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듯 하며, 그런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본서는 주로 그간의 재벌개혁의 과정을 공시-통시적으로 해설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총 5장으로 이루어진 본서는, 1장인 서론과 5장인 결론을 제외하자면 모두 실증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그간의 재벌개혁 과정과 결과를 평가하는데 주력하고 있는데, 그로인해 기업지배구조를 논하는 책에서 흔히(?!)느낄수 있는 재미랄까, 그런것을 많은 부분 희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나 왜곡된 소유구조 등 재벌의 현실을 논하는 2장과 비정부 부문(?)에서의 재벌개혁 노력과 그에 관한 평가를 다룬 3장의 다소 지루하달법한 서술을 지나 독자가 본격적으로 흥미를 느낄법한 부분은 아마도 정부부문의 재벌개혁 노력과 평가를 다룬 4장과 구체적인 대안모색에 관한 5장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말인즉슨, 재벌개혁과 그에관한 여러 제도에 관한 기본 교양이 부족한 나같은(!) 독자에겐 사실 2장과 3장의 그 많은 자료나 분석은 그 서술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찰 듯 싶다는 이야기이다. (해서 사실 저자의 분석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 지적하는 것은 나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일 듯 싶다.) 사실 따지고보면 4장 또한 2,3장과 마찬가지로 제도와 효과에 대한 '해설'적 성격의 글임에도 특별히 흥미롭게 읽히는데 아마도 그 이유는 정부부문에서의 재벌에 대한 개혁 유인책들이 어떻게 작용하여 어떤 결과를 냈는가를 세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이것을 각각 실제 재벌그룹인 삼성-LG-현대자동차의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인 듯 싶다.

이러한 사례에 대한 설명을 지나 대안제시로서 벤쳐기업체제라던지 유한킴벌리 모델, 그리고 한동안 각광(?!)받은 바 있는 노사 대타협론등의 허와 실을 적절히 지적한 저자가 결국 주장하는 바는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모델'정도로 보면 될 듯 싶다. 물론 오늘의 우리사회에서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등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종종 노사대타협론과 궤를 같이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닌게 아니라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는 종종 주주가치경영이라는 최근의 흐름에 대한 안티테제로 등장하여 '재벌의 경영권을 인정하는 대신 노동자에게 복지를'운운하는 식의 담론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노사타협론과는 분명한 선을 긋는다. 저자는 총수의 전횡이 만연한 상황에서 외국자본의 도입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인정하는 등, 주주가치경영이 가져다주는 여러 장점(투명성 강화, 시장의 긍정적 효과 유발)의 긍정적인 측면을 결코 가볍게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기업이 주주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 주주만을 위해 기업이 운영될 경우 단기 성과에 집착하여 수많은 부작용을 양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당사자의 심도있는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저자는 '정부의 역할'을 중시하고 있다. 애초부터 개별기업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는 관계로 재벌규제에 적합치 못한 회사법을 보완하는 제도 개선이라던지, 노동자의 경영참여 제도 도입이라던지 기타 재벌개혁에 관한 정부의 노력을 요구하는 저자는, 그러한 노력 이전에 우선 재벌개혁의 목적이 '총수의 지배력약화'임을 명확히 하라고 주문한다. 이는 지난 10년간 정부의 재벌개혁에 대한 노력이, 정권이 진행됨에 따라 주된 목표가 무엇인지 잊고 우왕좌왕하다가 희미해져버린 경험에 연원하는 듯 싶기도 하다. 물론 재벌개혁에 관한 정부의 역할을 중시하는 이러한 저자의 입장은 지금 우리가 가진 정부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주장으로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개별기업 단독으로 달성하기 힘들었던 시너지 효과가 총수를 비롯한 몇몇의 전횡에 의해 진행되어 사회적 이익이 되어야 할 것마저 특정 계층의 사익으로 전환되어 온 우리의 지난 역사는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요구는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금산분리완화, 출총제 폐지를 이야기하는 현정부를 보면, 오늘 우리사회에서 재벌개혁을 이야기하는 것이 흘러간 유행가를 읊조리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외려 '그러하기 때문에' 재벌 개혁에 대한 더욱 강력한 요구가 지금 이 시점에 필요한 것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사실 굉장히 재미없는 책이지만,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적어도 마지막 장 정도는 재미있게 읽으실 수도(!)있을 것 같다. 참고로 말하자면, 본서에서는 출자총액제한제도나 금산법 같은 재벌규제와 관련한 기본 제도의 취지나 내용이 별다른 설명없이 마구 등장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다소간의 배경지식이 요구된다.(덕분에 나도 이번에 공부좀 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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