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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어머니
정채봉 지음 / 샘터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정채봉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 TV를 통해서였다. 솔직하고 순박해 보이는 분이 화면에 나오면서 그 분이 주로 '어른을 위한 동화'와 에세이를 많이 쓰신다는 걸 알았다. <오세암>의 원작자라고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알지도 모르겠다. 그 때 조금만 더 독서에 관심이 있었더라면 바로 선생님이 쓰신 책을 찾아 봤을 텐데 그냥 막연히 나중에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만 했더랬다. 그 나중은 대학에 입학한 후도 아니었고 대학원에 입학한 후도 아니었다. 2001년에 그 분께서 간암으로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듣고 그제서야 다시 기억이 났으니 어쩌면 난 이렇게 내 서재 첫 화면에 선생님을 기린다는 말을 쓸 자격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의 책 가운데 에세이집 두 권을 먼저 읽었는데 '그대 뒷모습'과 '스무살 어머니'이다. 왜 스무살 어머니인가. 무슨 뜻일까?
p.70 "열일곱에 시집와서 열여덟에 나를 낳고 꽃다운 스무 살에 이 세상살이를 마치신 우리 어머니.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해도 어머니의 내음은 때때로 떠오르곤 한다. 바닷바람에 묻어 오는 해송 타는 내음..."
선생님은 1946년 전남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세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도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느껴지고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나타나고 고향의 자연을 떠올릴 수 있다. 얼굴도 못 본 어머니가 평생 얼마나 그리웠을까.
p.78 "엄마, 엄마께 한 가지 감사드릴 일이 있어요. 그것은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음력 동짓달에 저를 낳아주신 것입니다. 엄마,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엄마를 만나러 그쪽 별로 가는 때도 눈 내리는 달이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엄마, 끝으로 하나 고백 할게요. 엄마가 못 견디게 그리울 때는 해질 무렵이라는 것입니다. 엄마 나이 스물에 돌아가신 산소 앞에 가서 마흔이 넘은 나이로 울고 온 적도 있으니까요. 엄마, 그쪽도 지금 낙엽지는 가을인가요? 안녕히 계세요. 엄마의 제일(祭日) 전날 밤 아들 올림"
책 앞부분에 보면 실제로 선생님은 2001년 1월, 동화처럼 눈 내리는 날 짧은 생을 마감하셨단다.
선생님께서 투병중 발간한 첫 시집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가운데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이라는 시가 있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나도 눈물이 나려 한다. 그러고보니 내일이 어버이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