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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전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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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는 처음엔 그런 신학 논쟁에 별 관심이 없었으나 이내 예수가 하느님의 지위를 얻으면 자신의 지위도 함께 격상된다는 점을 간파했다. 교리의 통일을 통해 자신의 통치력을 한껏 강화할 수 있다는 점도. -24쪽

예수는 '지금까지의 삶의 태도와 방식을 완전히 뒤집고 ,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라'는 말은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려면 먼저 내 삶의 태도와 방식을 완전히 뒤집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회개'로 번역된 그리스어 메타노이아는 '길을 바꾸다, 되돌아서다'라는 뜻이기도 하다.-29쪽

세리는 대단한 세속적 야망이나 기득권을 구하기 위해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먹고 살기 위해 그 짓을 하는 사람이다. 만일 다른 품위 있는 일을 해서 비슷한 벌이를 할 수 있다면 세리 노릇을 지속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비난받아야 할 그들의 배후보다 더 심한 비난과 경멸을 받아야 했다. -47쪽

체제는 개혁은 수용할 수 있어도 변혁은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는 유대교 체제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개선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뒤집어 다시 세우려 한다. 예수는 사회에서 배제되고 나아가 제거될 위험 속으로 발을 디딘다. -57쪽

하느님을 섬기는 마음이나 품위있게 살고싶은 욕구는 바리사이인들보다 적지 않았지만 먹고 사느라고 율법을 제대로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은 바리사이인들 앞에서 죄의식과 열등감에 젖어야 했다. 바리사이 인들은 인민들의 그런 죄의식과 열등감을 기반으로 여느 인민들에게서 자신을 '분리'하여 품위를 유지했다. 예수는 그 공공연한, 그러나 아직 단 한번도 문제시되지 않은 억압의 체제에 분노한다. -59쪽

운동의 외형적 성장은 두가지 위험을 수반한다. 하나는 외형적 성장과 운동의 정체성 훼손이 비례하는 경향이다. 또 하나는 운동의 외형적 성장은 기존의 사회체제에 포섭되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국 운동의 껍데기는 커졌지만, 알맹이는 사라져버린 비대한 운동조직이 사회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운동조직 스스로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61쪽

그들은 '변화를 위한 보다 현실적인 선택들'을 제시한다. 그런 선택들은 많은 사람들에게서 지지를 받는다. 그런 선택들은 대단한 변화를 일으키는 듯 하지만 실은 현실의 모순을 순화하고 인민들의 정당한 분노를 누그러트림으로써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 되곤 한다. -79쪽

예수의 치유이적이 그들과 다른 점은 그 이적을 행하는 자신을 감춘다는 점이다. '나'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예수는 단 한번도 '내가' 혹은 '내 능력으로' 병을 고쳤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예수는 언제나 '당신의 믿음이' 당신의 병을 고쳤다, 라고 말한다. "딸아,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했소. 평안히 가시오/ 그리고 당신의 병고로부터 건강하게 나으시오." 믿음이란 무엇인가?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상대에게 나를 연다는 뜻이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수는 '하느님을 잘 믿으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하느님이 축복한다'고 말하는게 아니라 하느님은 이미 축복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그걸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하느님은 바로 고통과 비참에 빠진 당신 편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믿고 힘을 내세요. 하느님은 당신이 어느 누구에게도 함부로 누릴 이유가 없는 당당한 권리와 자존심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라십니다.'

-92쪽

중요한 건 이적 자체가 아니라 그 이적에 담긴 믿음과 소통이기 때문이다. 이적은 하느님이 실은 잘나고 힘센 사람들이 아니라 무시당하고 억압받는 내 편이며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는 사건이다. 이적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97쪽

부모들은 제 아이가 부자가 되길 바라는 욕망을 '부자가 되어 불쌍한 사람을 도우라'는 식으로 우회하여 표현하곤 하는 것이다. 물론 당장의 적선이나 자선이 금세 굶어죽을 사람을 살리거나 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긴급한 조처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그가 굶어죽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110쪽

종교개혁의 좀더 중요한 본질은 십자군 이후 봉건사회가 점차 무너지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왕과 귀족들을 제치고 서서히 서양 세계의 주인으로 나타난 도시 상인들, 즉 부르주아들이 왕과 귀족의 교회인 가톨릭 교회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이해와 정체성에 맞는 교회를 세운 사건이었다. 말하자면 종교개혁은 자본주의 사회 탄생의 서막이다.
-159쪽

그러나 예수는 제자들의 그런 소망조차 일축한다. '좋은 지배'를 꿈꾸지 마라. 그런 건 없다. 오로지 섬김만이 있다. 진정으로 인민을 위하고, 세상을 위하고 싶다면 섬겨라, 가장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에 함께하라.
-172쪽

믿음이란 어떤 대상에게 나를 완전히 여는 것이다. 하느님의 의지와 행동에 거리낌없이 참여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교회에 나가거나 기독교인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차원이 아니다. 교회나 기독교가 하느님을 믿는 한 방식일 순 있지만, 유일하거나 완전한 방식은 아니다. 하느님은 교회나 기독교의 성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온 세상에 관련하며 온 세상의 근본적인 변화를 준비하는 존재다. -185쪽

먼저 분명히 분노해야 한다. 진정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진정 용서할 줄도 모르며, 진정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진정 분노할 줄 모른다. 분노와 용서는 실은 하나다. -189쪽

마르크스 이래 사회주의자들이 기독교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건 사실이지만, 그건 현실 속에서 인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지배체제의 앞잡이였거나 그 지배체제 자체였던 기독교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 예수를 대상으로 한 건 아니다. (중략)
자본주의는 예수의 이웃사랑과 적대적인 사회체제이며, 그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셔려는 사회주의의 기본 정신이 예수의 이웃 사랑에 닿아있다는 건 분명하다. 예수의 이웃사랑은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어떤 것' 이 아니라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어떤 것'이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선량한 자본주의자'가 아니라 '특별한 사회주의자'인 것이다. -204쪽

깨어 기도한다는 건 그런 스승의 모습을 모조리 본다는 것, 스승으로 하여금 품위를 잃은 제 모습을 제자들에게 모조리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자들은 다만 잠들 수 밖에, 이 속 깊은 갈릴래아 청년들은 잠시 잠든 체 함으로써 스승에 대한 마지막 예의를 갖출 수밖에. -233쪽

우리는 공포와 번민을 낳는 '색의 세계'를 뛰어넘는 경지에 이른 사람들에게 감탄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경지는 공포와 번민을 그대로 느끼면서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다. 약하고 흔들리는 인간이기에 공포와 번민은 당연하다. 그러나 또한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이기에 그 공포와 번민을 끝내 이겨 낼 수 있다. 우리는 가장 인간적일 때 신적일 수 있으며,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신적일 수 있다. -235쪽

로마에 의해 탄압받고 있던 그들은 자신들의 그리스도가 로마에 대한 반역죄로 처형된 사람이라는 사실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예수가 정치적 반역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며 로마총독도 예수를 죽이고 싶어 죽인 게 아니라 유다 지배세력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음을 강조하면서, 그들의 종교과 로마와 적대적이지 않음을 애써 주장한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분명 사실과 다르지만 그들의 신앙에 문제가 되진 않았다. 그들은 이미 역사 속에서 실제로 살아 숨쉰 예수보다는 '죽음으로 내 죄를 대속한 그리스도'예수, 즉 신학과 교리 속에 갇힌 예수를 선택한 상태였기 때문이다.-249쪽

예수가 영성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예수가 비폭력주의자인데 왜 사형당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형당하는 비폭력주의자'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서 예수의 모습에서 제 마음에 드는 한 부분만 똑 떼어내어 예수는 사랑과 용서의 결정체입네, 예수는 영성가입네, 예수는 평화주입네 하는 것은 예수를 욕보이는 일이다. 사형은 커녕 1년내내 뺨 한번 맞을 일 없이 안락하게 살아가면서 예수 흉내로 세상의 존경과 명예를 구가하는 건 예수를 팔아먹는 것이다.
-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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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훔친 여름 김승옥 소설전집 3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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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어떤 쾌락을 추구하는 행위라기 보다는 병에걸린 사람끼리 서로를 치료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것 같았다. 구경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음탕한 기색은 전연 없고 자못 엄숙하고 심각했다. 동학란을 일으키기 직전, 사랑방에서 녹두장군의 열변을 듣고 있는 머슴들의 표정이 아마 이러했으리라... 다시 말해서 목숨을 걸어놓고 자기의 인생을 구원해보려는 자들이 가질 수 있는 표정들이었다.
-390쪽

서양의 고전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형의 얼굴엔 지성이 만들어준 표정이 있습니다. 개가 개를 알아보듯이 저는 얘기가 통할 수 있는 사람과 그럴수 없는 사람을 가릴줄압니다...
-395쪽

그러나 도인으로서는 , 솔직히 말해서 그의 얘기가 단순한 신세타령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대중잡지 따위에도 그보다는 훨씬 고생한 사람들의 얘기가 얼마든지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보다 더 고생한 사람들이 있다고해서 그가 고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자기의 신세가 다른 사람의 관심속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자리잡을 수 있는가, 쯤은 대강이라도 알고 있어야 예의가 아닐까?
-398쪽

미국은, 아니 외국이면 어디라도 좋습니다만, 생각하기조차 싫은 자기의 어두운 과거를-그런 과거가 있는 사람은 말입니다-더이상 부채처럼 지고 살지 않아도 되는 곳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말하자면 외국으로 가서 산다는 것은 가톨릭신자의 고해성사와 같은 것이죠. -404쪽

물질적인 면에서 그런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기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사랑'이라는 자기의 능력을 사용했다고 해서 나무랄 수 있을까요? 사랑은 어쩌면 '사기詐欺'와 사촌간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들이 다른 점은 하나는 자기도 돕고 사랑하는 상대도 돕는 결과를 수반하게 되는데 다른 하나는 자기도 파멸하고 상대방도 골탕을 먹는다는 결과를 수반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406쪽

진정한 혁명에서는 그것을 지배했던 이성과 지성의 빛이 무엇보다도 두드러져 보이듯이 인간을 무더기로 도살했던 과거 역사적인 사람들에게 공통되게 드러나는 것은 무엇보다도 정열이라고 도인은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에게는 정열이란 말처럼 서먹서먹하고, 아니 두렵기까지 한 말은 없었다.
그는 자기 자신속에서 정열을 제거해버리려고 노력해왔으며, 모든 사람들이 정열을 내세우지 말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런데 화학기사의 입에서 '당신은 정열이 없어보인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도인은 이상스럽게도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정열이 없어 보이는 사람은 무섭지 않다'는 얘기에선 패배감조차 느꼈다...중략
아니다. 이제야 도인은 자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정열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과도한 정열이, 또는 정열로 위장한 추잡한 욕망이 빚어내는 인간에 대한 과오를 경계한 나머지 이제 그에게는 이성과 지성에서 나온 판단을 밀고 나갈 힘이 되어줄 최소한의 정열조차 닳아 없어져버린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416-4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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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목수정 글, 희완 트호뫼흐 사진 / 레디앙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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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풍요가 도리어 최고급 메이커 제품에만 한정된 선택을 하도록 하는 족쇄가 되는 셈이다. 요동하는 시대를 거치면서 부자들은 모두 신흥부자들일수밖게 없게 된, 이 사회에서 독자적인 미감과 취향을 연마한 세대적 연륜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이들에게는 이른바 명품취향이 다른 계층과 서둘러 경계를 긋고자 할 때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된다. -210쪽

결혼과 가족생활은... 삶의 오물통과 마주하기에 훌륭한 장소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과 엘리자베트 벡 게른샤임의 공저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의 한구절이다. -256쪽

원칙이 있는데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원칙을 지켜내기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이지 그 사람들때문에 내가 떠날 필요는 없었다. -279쪽

모든 진정한 예술작품은 시대에서 튕겨져 나간다. 시대를 저항하고 조롱하고 비판하며 앞서나간다. 우파는 오른쪽으로 가기보다 주어진 길을 가는 사람들이며, 좌파는 현상을 까뒤집어보고 다른 각도에서 삐딱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우파는 사람들을 얌전히 성냥갑안에 넣어놓고 통제하려들며 좌파는 어떻게 해서든 그 통제의 틀을 뛰쳐나오려 한다. -289쪽

모순의 틀을 깨기 위해서 계속해서 또다른 길을 만들어보지만, 새로운 틀을 만드는 순간 조직이라는 것이 갖는 고질적인 병폐는 하나둘씩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그것을 벗어나려면 내부에서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된다. 그러면서 태초의 순결한 의지는 내부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에너지로 소진되 버린다. 그 속에서 개인의 번잡한 욕망따위는 꽃필 틈도 없이 사회적 대의라는 흙더미에 묻히고 만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흙더미를 뚫고 피어나는 꽃도 있고 풀잎도 있다..-302쪽

그러나 한우물 파기 싫으면 어떡해야 하는지, 그 우물에서 아무것도 안나오면 어떡할 건지에 대해서는 답해주지 않는다. 중략, 집단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한 영역씩 맡아서 한우물을 죽어라 파주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러나 각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건 어쩌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인생일 수도 있다. 난 이 거대한 사회의 나사가 아니다.
-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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