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론 - 인문연대의 미래형식
김영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구판절판


대개의 어리석음은 어떤 종류의 '반복'과 관련된다. 그러므로 어리석음은 그 성격이 형식적이다. 형식을 이루지 못하는 실수는 반복되지 않는 법이다. 따라서 현명함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그래서 그 자체로 형식을 이루지 않도록 민활하게 애쓸 일이다. -25쪽

호의는 바로 그 호의의 천국 속에서 사적 규칙을 만든다. 호의지상주의자인 선량한 이들은 사적 규칙에 의해서 선의의 천국, 신뢰의 관념론을 건설한다. 그러나 신뢰는 타자들 사이의 심연을 날카롭게 가로지르는 사회성의 건축이기 때문에, 사적 규칙은 실질적으로 별무소용이다. 오히려, 개인의 호의 속에서 번창하는 사적 규칙들은 신뢰라는 공공의 건축에 적지 않은 장애를 제공한다. -26쪽

어쩌면 호의와 호감은 그 자체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평가는 생각 밖으로 극히 중요하다. 호의가 만든 천국의 수만큼, 우리는 바로 그같은 종류의 호의가 만든 그만큼 많은 지옥의 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31쪽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종의 '배치'인데, 말하자면 호의와 호감을 인간관계의 어느 곳에 배치하는가, 그리고, 배치한 후에 어떤 식으로 그것을 모른 체 하는가, 하는 문제다. 신뢰와 호감이 각각 제 나름의 가치를 발하려면, 호감은 신뢰를 이드거니 통과하는 통시의 과정이 필요하고, 신뢰는 호감을 재구성하는 변화된 공시의 과정이 필수적인 것이다. -46쪽

내 애인의 사랑에 토대가 없다는 사실, 그 사랑의 텍스트가 우연과 비약의 결과라는 사실은 때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슬픈일이다. 그래서 연정은 흔히 환상 속에서의 흔들림(물매)과 그 흔들림의 관성적 자가동력으로 근근이 스스로를 유지하는 것이다. 호의나 그리움에 토대가 없다는 진실은 전래의 통념에 어긋날 뿐 아니라 세속을 살아가는 우리들로서는 수용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63쪽

선의나 호의도 우리 삶의 잡박한 흐름 속의 일부일 뿐이며, 계몽과 성숙을 통해서 그 나름의 변증법적 변용을 계속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로써, 선의나 호의 그 자체가 아니라 이것들이 시공간속의 일관된 실천을 통해서 그 가능성을 건강하게 펼쳐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69쪽

호의라는 사적 규칙과 신뢰라는 사회적 약속이 서로 겹치거나 어긋나는 문제를 다룰 때에, 관련 당사자들의 사회적 관계에 원천적으로 개입하는 권력의 무게나 물매는 흔히 생략되거나 축소된다. 이른바 '마음의 환상적 전능성'속에서 빠르게 무책임하게 움직이는 호의는 특히 권력의 비대칭적 기반과 그 물매를 모른 체하곤 한다. 어쩌면, 종종 호의도, 고백(가라타니 고진)이나 웃음(바흐친)처럼 역시 기성의 권력을 자의적으로 무화시키려는 또다른 종류의 권력이기 때문이다. -82쪽

교태는 광고의 광고와 같다. 자신을 광고한다는 사실을 안다는 사실, 바로 그 사실이 새로운 광고의 소재로 등장하는 행위 속에서 교태의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태는 광고처럼 비본질을 상대와 공유함으로써 자신을 정당화한다. -94쪽

약속은 그 근본에서 일종의 도착이다. 그것은 '세속'이라는 어긋남, 그 불가능성을 거스르는 행위이기 때문이며, 무엇보다도 그것은 과거에 붙박힌 채, 미래를 선취하려는 과욕이기 때문이다. -116쪽

세속은 호의가 신뢰의 문 앞에서 자빠지는 꼴 속에서 그 화색을 드러냅니다. 호의를 향한 슬픔과 신뢰를 향한 아픔이 교차하는 사건 속에서, 그리고 그 사건이 총체적 무지 속에서 반복되는 조건/한계 속의 바로 그 사건의 밝은 아우라가 세속이지요. -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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