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책이다 - 시간과 연민, 사랑에 대하여 이동진과 함께 읽는 책들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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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집착과 사랑을 구분할 수 없었다. 열정과 사랑의 차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무관심했다. 그는 사랑이라는 것이 상당한 노력과 의지를 필요로 하는 고도의 기술임을 끝끝내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중략)
사랑에 필요한 기술을 익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의 이면>에서는 사랑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은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하지만, 저는 거기에 덧붙여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사랑이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관계이기 때문이라고요. 사랑은 내 안에 있거나 상대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 사이의 좁혀지기도 하고 넓혀지기도 하는 공간에 불안정하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56쪽

그러고 보면 역도는 무척이나 상징적인 스포츠인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역도는 있는 힘을 다해 밀어 올린 후 일정 시간 동안 반드시 버텨내야 하는 경기니까요. 육중한 바벨 아래서 두팔을 치켜든 채 간신히 견뎌내는 선수의 처지는 삶을 짓눌러오는 무게를 온 몸으로 지탱해야 하는 경험들을 저절로 떠올리게 합니다. 함께 들어줄 누군가는 있을 수 없는 대신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구경꾼들은 눈앞에 즐비한 상황에서, 한계에 도달해 얼굴이 온통 일그러지더라도 바벨을 내려놓을 수는 없는 생의 어떤 순간들 말입니다. 역도에서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 중 가장 강해보이는 역사力士의 강인함이 아니라, 그렇게 강한 인간조차도 한계 앞에서 안간힘을 쓰며 부들부들 떨 수 밖에 없는 나약함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시간 앞에서 패배합니다. 설혹 그 순간에 안간힘을 쓰며 버텨냈다고 해도 그런 상황은 다시금 찾아오기 마련이고, 그때는 좀 더 무거운 바벨을 거듭 들어올려야만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언젠가는 바벨을 내려놓거나 떨어뜨린 후 경기장 바깥으로 퇴장해야 할 때가 찾아오겠지요. -69쪽

초야의 저녁들은 헐거웠다. 내 적막은 아주 못 견딜 만하지는 않았다. 그 해 겨울은 추웠고 눈이 많이 내렸다. 마을의 길들은 끊어졌고 인기척이 없었다. 얼어붙은 세상의 빙판 위로 똥차들이 마구 달렸다. 나는 무서워서 겨우내 대문 밖을 나가지 못했다. 나는 인간에 대한 모든 연민을 버리기로 했다. 그 해 겨울에 나는 자주 아팠다.
눈이 녹은 뒤 충남 아산 현충사, 이순신 장군의 사당에 여러 번 갔었다. 거기에, 장군의 큰 칼이 걸려 있었다. 차가운 칼이었다. 혼자서 하루 종일 장군의 칼을 들여다보다가 저물어서 돌아왔다.
사랑은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 뿐이라고, 그 칼은 나에게 말해 주었다. 영웅이 아닌 나는 쓸쓸해서 속으로 울었다. 이 가난한 글은 그 칼의 전언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 너의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 불고 물결 높은 날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 오라. 오라, 내 거기서 한줄기 일자진一字陣으로 적을 맞으리.
- 김훈, <칼의 노래> 서문 -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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