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재과거아‘라는 개념이 있다. 어른이 된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가 한때 거쳐온 어린이의 모습을 말한다. 미국 정신과 의사인 W. 휴미실다인은 몸에 밴 어린 시절이라는 책에서 우리는 누구나 어린아이였으며, 내면의 아이인 내재아가 지금도 계속 남아 있다고 말한다. 이 아이는 나의 일부이기에 도려내거나 지워버릴 수 없다. 방치하면 어른이 된 나를위협할 수도 있다. 성인이 되어 더이상 부모가 곁에서 뭐라고하지 않더라도, 내재과거아에게는 부모가 여전히 권위를 갖는다. 그러다보니 어린 시절처럼 이에 대응한다. 줄에 묶인 채 길들여진 어린 코끼리에 비유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말뚝에 묶여서 무력감을 학습한 코끼리는 다 자라서 말뚝을 벗어날 수 있는 힘이 생겨도 그 주변만을 맴돈다. 말하자면 이 어린 코끼리가 나의 내재과거아인 셈이다. 책에서는 문제를 일으키는 부모의 아홉 가지 태도를 ‘완벽주의‘ ‘강압‘ ‘유약‘ ‘방임‘ ‘건강염려증‘ ‘응징‘ ‘방치‘ ‘거부‘ ‘성적 자극‘으로 나눈다. 어떤 부모든, 아니 부모가 아니라도 누구나 조금씩은 이런 성향을 지니고 있다. 다만 자녀, 특히 아동과의 관계에서 부모는 권력을 가지기에 부정적인 면이 극대화되는 경향이 있다. 각자의 기질도 영향을 끼친다.

흥미로운 사실은, 어른이 된 우리가 자신의 내재과거아에게부모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내재과거아를 대하는 태도와내재과거아의 반응이 충돌할 때 정서적 갈등을 빚기 쉽다고 한다. 아, 정말이지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다. 하지만 내가 내 속의 어린아이에게 부모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은 좀 희망적이다.
내재과거아에게 훌륭한 부모가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어린 시절의 감정을 존중하기. 이미 자란 우리는 소위 ‘어린아이같은 짓‘을 부끄러워하고 멸시하는 데 익숙하다. 또는 그렇게 함으로써 손이 덜 가는 애로, 철이 빨리 든 애로 칭찬받고 인정받으려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어릴 적에 겪었던 좌절이 반복될 뿐이라 결핍이 해소되지 않는다.

이와 비슷한 현상을 가리키는 개념이 ‘허구의 독립‘이다. 의존적 욕구가 충분히 채워지지 않으면, 겉보기에는 굉장히 의전해 보이더라도 속으로는 자신에게 중요한 대상이 끊임없이 이욕구를 채워주길 바란다고 한다. 과도하게 남에게 잘해주거나,
부모님을 지나치게 헌신적으로 봉양하려 드는 것 모두 그 예다.
이때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안정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정상적 퇴행‘을 경험하는 것이 좋은 자극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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