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피치 magazine Peach 04호
피치마켓 편집부 지음 / 피치마켓 / 2024년 6월
평점 :
품절


*이 리뷰는 출판사의 홍보가 아닌, 제 개인적 호기심과 구매로 쓴 것입니다. 발달장애인의 언어 학습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찾다가 알게 된 잡지인데, 많은 분들이 교육 자료로 활용하시면 좋을 것 같아서 추천합니다.



#언어와 사람 사이의 틈을 메꾸는 노력, 느린학습자를 위한 매거진 <피치 Peach>


혹시 '읽기 쉬운 책'이라는 용어를 들어보신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읽기 쉬운 책이란, 발달장애인의 문해력 성장을 위해 쉽게,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기존의 책을 다시 재구성해서 만든 책입니다.

기존의 일반 도서들은 문장이 길고, 단어가 어렵고, 발달장애인의 문해력 수준에 따라 접근하기에 어려운 도서들이 대부분이라서 다시 문장을 간결하고 쉽게 가다듬고, 어려운 단어를 쉬운 단어로 바꾸어서 재구성하는 작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는데요.

2023년 국립장애인도서관에서 처음으로 읽기 쉬운 책을 출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전국 공공도서관에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작년에 도서관에 근무할 때 저희 시립도서관에도 읽기 쉬운 책이 어린이 도서관에 비치되었는데요,

발달장애인을 포함해서 언어를 통한 이해와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다양한 사람들을 '느린학습자'라고 합니다.

저는 그동안 책을 읽고 그 세계를 이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정도로 누구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을 위한 책을 따로 제작해야 할 만큼, 느린학습자들의 언어 이해는 그들에게 얼마나 어렵게 다가오는 것인지를 도서관에서 근무하면서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는데요.

제가 어렵지 않게 읽었던 책들이 발달장애인에게는 얼마나 힘겨웠던 것일지, 또 벽이라고 느낄만큼 넘을 수 없던 것일지 생각해보니 그동안의 제 독서 생활과 가치관에 대해 반성하게 될 만큼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나에게는 당연하게 이해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절대로 이해되지 않는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바로 우리가 언어를 받아들이고 소통하는 모든 관계의 시작점인 것 같아요.

발달장애인에게는 언어를 이해하고, 그것으로부터 학습하고, 생활에 적용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보통 사람들보다 굉장히 많이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되고나서, 그럼 '어떻게 언어와 책을 이해하고 학습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행복함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나 자신을 지키고, 내가 스스로 나의 일들을 결정해나가고,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것도 바로 책을 읽고, 그 속의 언어와 세계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발달장애인이 독서 문화 생활을 어떻게 접근하고 즐길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되면서, 그들을 위한 교육 컨텐츠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역시나 저는 궁금한 것이 생기면 책에서 답을 찾는 사람이기에, 다양한 책을 검색하다가 느린학습자를 위한 잡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전 잡지를 너무 좋아해서 어렸을 때 잡지 회사에 취직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었답니다.ㅎㅎ

너무나도 예쁘고 멋있는 사진들과 심장에 확 꽂히게 만드는 칼럼들...

잡지에도 다양한 주제의 분야가 존재합니다. 제가 주로 읽었던 잡지는 패션지와 문학 관련 잡지들.

하지만 발달장애인을 비롯한 느린학습자를 위한 잡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정말 저에게는 감동과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글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잡지가 있다니.

이런 혁명적이고 따스한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매거진 피치 Peach는 '피치마켓'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느린학습자를 위한 교육 잡지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모든 문장이 간결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로 글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누구든지 글을 읽고 실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각종 정보와 지식을 재미있게 전달한다는 점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장점입니다.


제가 구매한 매거진 피치 4호는 주제가 '여행'입니다.

'사람들은 왜 여행을 떠날까요?'라는 질문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바닷가에 놀러가서 수영하기 전에는 어떤 것을 준비해야 되는지, 여행 중에 갑자기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행 중 길을 잃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행계획표는 어떻게 짜는지, 여행 경비는 어떻게 계산하고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필요한 돈은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지, 여행이 끝난 후에 그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등 다양한 상황과 삽화를 제시하면서 많은 질문들을 던지고 그것에 대해 답해보는 과정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행을 하는 이유와 '나는 언제 행복한가요?'라는 질문을 함께 생각해보게 만든다는 점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형식적인 여행이 아니라 각자가 스스로 어떤 여행을 하고 싶은지, 또 그것으로 어떻게 행복을 느낄지 읽는 사람에게 생각해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책이라는 매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게 가슴 깊이 느껴집니다.

단순하게 정답과 지식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주요 독자인 느린학습자들이 함께 이 책에 참여하고 현실에서 적용해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학교 밖에서의 교육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여행이 다르고, 자기만의 방법으로 여행하면서 행복을 느낀다고 언급하면서, '나는 어떤 취미가 있나요?' 라는 질문을 던지는 부분도 정말 좋네요. 


그리고 혹시라도 어려울 수 있는 단어가 나오면 쉽게 풀어서 그 뜻을 알려주는 부분들이 정말 세심합니다.

당일치기 여행이라면 '당일치기'의 뜻은 무엇인지, 1박 2일 여행에서 '1박 2일'의 뜻은 무엇인지 쉽게 설명해줍니다.

실제 여행 후기를 소개하면서 그 과정들을 하나하나 쉽게 풀어내면서 다양한 상황에서 필요한 질문이 함께 제시됩니다.

이렇게 실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생각하는 과정 자체가 언어를 이해하고, 학습하고, 현실에 적용하고, 세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교육'의 방법인 것 같아요.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저도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깐요.


그리고 또 인상 깊었던 부분인데, 이번 4호의 주제인 여행과 관련지어서 시 한 편을 소개하는 점이 정말 좋았습니다.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시를 소개하고, 그것에 대한 질문들이 역시 등장합니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글에 참여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흥미로운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자, 문해력 성장의 본질이 담겨 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언어를 단순히 읽고 그 뜻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나만의 답을 생각해볼 수 있도록 계속 유도하고 있어서 매거진 피치가 교육용 컨텐츠로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를 읽고 실제로 다른 친구들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보여줌으로써, '나는 이렇게 생각해' 라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열어준다는 점이 참 좋습니다.

단순히 질문만 제시하면 독자들이 질문만 읽고 끝날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를 보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더 용기내서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세심하게 구성된 내용들에 감동합니다.



대안학교 선생님의 자전거 국토종주 후기를 소개하는 과정도 역시 쉽고 간결한 문장으로 하나하나 차근차근 흘러갑니다.

마지막에 '힘들었지만 고개를 잘 넘은 것처럼 앞으로 살면서 어려운 일이 생겨도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라는 선생님의 느낀 점을 제시하면서, '어려운 일이 생겨서 힘들었던 적이 있나요?' 라는 질문이 나오는데, 이런 것들을 함께 답해보면서 서로의 힘든 기억을 나누고 이해하는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이 책은 혼자 읽어도 좋겠지만, 또래 친구들과 함께 읽거나 집단에서 독서가 행해지면 학습 효과가 훨씬 올라갈 수 있어서 다양하게 활용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소개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이것은 '잡지'라는 매체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라서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라따뚜이는 먹어본 적도 없고, 그것에 대한 지식도 없었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접하는 느낌이 무엇인지 새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QR코드가 있어서 라따뚜이를 만드는 영상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심한 배려 진짜 최고입니다!



피치 4호는 여행이 주제이기에 여행지를 소개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단순히 소개에서 그치지 않고, 그 장소의 특징인 '보라색' 을 주제로 다양한 생각을 해보게 한다는 점이 잡지로서의 매력과 교육 컨텐츠로서의 기능을 동시에 하고 있네요. 구성이 정말 알찹니다.


그리고 책의 끝에는 여행에 앞서 무엇을 챙겨야 할지, 짐은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알기 쉽게 하나하나 실제 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명하는 부분이 너무 유용합니다. 

여행을 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짐을 챙기는 것인데, 보호자가 알아서 다 챙겨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필요한 것들을 직접 생각하면서 스스로 짐을 챙길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매거진 피치가 교육 컨텐츠로서 얼마나 훌륭한지 감동하면서 읽느라 벌써 새벽이 다가오네요.ㅎㅎ


언젠가 국립장애인도서관을 소개하는 글을 보았는데, 이런 문구가 있더라구요.

"모든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책과 도서관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국립장애인도서관"


똑같은 내용의 글과 책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을 비롯한 느린학습자에게는 언어를 읽고 이해하는 것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좀 더 긴 시간과 다양한 방식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모두가 인식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언어들이 그들에게는 벽으로, 두려움으로 느껴질 거에요.

이처럼 언어와 사람 사이에는 '틈'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것을 메꾸려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동안은 이 틈이 무시되어져 왔을지도 모릅니다. 저 또한 언어를 이해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의 입장에서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깐요. 부끄럽지만 그렇기 때문에라도 지금부터 느린학습자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공부해보려고 합니다.

그런 와중에 매거진 피치를 알게 된 건 정말 행운입니다. 이 책으로 인해 앞으로의 구체적 진로도 결정할 수 있었으니깐요.

좋은 책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에게 반드시 도움이 될 거에요.

모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글을 읽고 이해하고 세상 속에서 주체적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피치마켓에서 운영하시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쉬운 글이 있는 도서관이라니. 언어와 사람 사이의 간격이 이렇게 차곡차곡 메꾸어지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서울가면 꼭 방문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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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24-10-26 0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의미하고 멋진 리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좋은 하루를 시작합니다.^^
피치마켓에서 운영하시는 공간, 저도 시간 날 때 방문해 봐야겠어요~
라이브러리 피치, 대학로에 있어서 더욱 반갑네요~^^
즐겁고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전야제 2024-10-26 09:29   좋아요 1 | URL
오늘도 이렇게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양한 독서 문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 서울 사시는 분들은 부럽습니다.ㅎㅎ 저는 춘천에 살아서요. 다음에 서울 여행으로 라이브러리 피치 꼭 들리려고 합니다. 혜화역 대학로는 예전에 연극보러 자주 갔었는데 이런 도서관이 있는 줄 이제야 알았어요. 아마 최근에 생긴 것 같아요! appletreeje님의 노랑무늬영원 리뷰 읽었는데 댓글다는 곳이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것 같아서 좋아요만 눌렀어요.ㅎㅎ 저도 얼마전에 구입해서 아직 읽기 전인데 다음 리뷰는 노랑무늬영원을 읽고 써보려구요. appletreeje님이 올려주신 시에 대한 글들 하루 한 편씩 잘 읽고 있어요. 수필집 내셔도 좋을만큼 너무 담백하고 좋은 글들이라서 읽을 때마다 따뜻한 위로가 됩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appletreeje 2024-10-26 0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춘천 사세요?^^ 저 춘천 너무 좋아하는 곳인데요~옛날에 카페 이디오피아에서 해질 때까지 만화 그리며 놀았던.ㅎ
춘천에는 ‘망고‘님도 사시는 곳이라 춘천이 더욱 좋아집니다! 제 글들은 그냥 낙엽 한 장일 뿐입니다.ㅋ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굿데이!!!

전야제 2024-10-26 15:04   좋아요 1 | URL
우와 만화 그리세요?ㅎㅎ 저 어렸을 때부터 만화책 정말 좋아해서 많이 읽었어요. 춘천에도 역시 서재 운영자님들이 살고 계시는군요ㅎㅎ 낙엽 한 장이라니, 아니에요. 푸르른 나무같은 글이에요!^^

appletreeje 2024-10-26 15:24   좋아요 1 | URL
아주 옛날에요.ㅋㅋ 낙엽 쓰는 사람을 고운 눈빛으로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야제 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