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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맨즈 독 One Man's Dog
조지수 지음 / 지혜정원 / 2013년 4월
평점 :
조중걸 작가님의 책 중에 가장 먼저 읽은 책이 바로 '원 맨즈 독'이었다.
이 책을 읽고 한국에 이러한 수필 작가가 있다는 것에 감탄했고, 작가님이 예술사와 철학을 전공한 교수님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후에 작가님의 철학책도 읽게 되었고, '나스타샤'와 '마지막 외출'이라는 멋진 소설도 읽을 수 있었다.
원 맨즈 독을 거의 5번은 읽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보여서 반복해서 읽는 것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읽는 내내 작가만의 경험과 그 여정 속에서 함께 울고 웃었다. 인생은 그저 살아내는 것 만으로는 경험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경험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도무지 이겨낼 수 없을 것만 같은 고통과 인내, 체념, 포기 그리고 자신에 대한 사랑과 운명에 맞서는 용기. 이런 거대한 것들을 다 품어내야만 하고, 그 때 비로소 나만의 경험들이 생기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그냥 살아가는 것만으로는 다채로운 경험들이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과 운명 앞에서 처절하게 무너지게 되고,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고, 도망가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해본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경험들이 있고, 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반성하고, 자신을 이끌어 온 인생이 있는 것이다.
<원 맨즈 독>은 바로 이 토대 위에 쓰여진 글이다. 그러니 독자들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마주하며, 동시에 자신의 인생 또한 진실하게 마주하게 될 것이다. 무엇이든 그 실체를 알게 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두려움 속에서도 실체를 마주하고 인정하는 용기는 언제나 우리를 더 성장하게 만든다.
지금 생각해보면 삶에서 우연이 우리에게 주는 힘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나는 어떠한 계기로 이 수필집과 만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의 서문과 첫번째 챕터를 읽는 순간, 수필의 장르와 형식 안에서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창조되었음을 느꼈다. 수필이 보여줄 수 있는 무한한 매력의 세계를 이토록 광활하게 넓혀준 작가에 대한 감사함도 느낀다. 왜냐하면 나는 수필이라는 장르를 진심으로 아끼고, 또 수필이 출판으로 이어지기에 얼마나 모호한 장르인지도 어렴풋이 알기 때문이다.
단순히 자신의 경험과 통찰을 적었다고 해서 수필이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자동적으로 가지는 것은 아니다. 대단한 문학 작품을 써낸 작가들도 수필이라는 분야에선 오히려 더 낯설어지는 경우도 보았기에, 수필이라는 장르는 참 까다롭기도 하다. 게다가 자신의 진짜 경험을 그대로 노출한다는 점에 있어서 꺼려질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수필을 쓰려면 자신의 경험에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 또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경험에는 달콤한 추억만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쓰라린 상처와 이겨낼 수 없는 고통 또한 경험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작가들의 수필 작업을 정말 존경해왔다. 관심있는 작가의 작품을 접하면 반드시 그들의 수필집을 사 읽곤 했다. 내가 수필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 분야에 정통하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문학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하기엔 나는 그저 조용한 '감상자'일 뿐이다.
지금까지 많은 책을 읽어왔어도 나는 서평을 거의 쓰지 않았다. 타인의 작품의 가치를 평가한다는 것은 내 성향에도 안 맞고(남 비판하는 일은 죽어도 못한다),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뷰 중심의 마케팅 현실과 또, 좋은 작품에 리뷰나 서평이 없다면 사람들이 구매하는 것을 망설인다는 사실을 알고나서부터는, '좋은 작품을 어떻게든 세상에 알려야지' 라는 생각으로 서평을 조심스레 쓰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작품이란 그것을 접한 것으로 인해 나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만든다는 것이고, '영향' 그 자체가 바로 작품이 지닌 가치라고 생각한다. 작품이 나에게 끼치는 영향과 그것이 나와 인생에 어떠한 변화를 이끌어 내는 과정에서 작품과 '소통'하고 있음을 느낀다.
작품도 홀로 존재하지 않게 되고, 독자도 혼자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작품이 탄생하고, 그것을 누군가가 감상하게 되는 건 그 자체로 얼마나 아름다운 사건인 것인가? 서로가 혼자가 아니게 되는,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예술 감상의 중요한 부분임을 생각해본다.
이런 점에서 조중걸(조지수) 작가의 수필집 <원 맨즈 독>은 한국 수필 문학의 역사에 기록되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수필은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통찰과 성찰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글이기에, 작가의 내면과 경험이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한 인물의 일대기를 알고자 한다면, 외부의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쓴 전기나 평전보다는 당사자가 쓴 수필을 읽는 것이 훨씬 진실에 가깝다.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진실하게 부딪혀 온 경험과 그것에서 느낀 통찰은 날 것 그대로 일수록 매력적이고, 눈부시다. 자신의 못난 모습, 잘난 모습, 기쁨, 슬픔, 고통 등의 모든 측면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에서부터 수필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루를 시작하면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하루 동안 보게 되는, 일상의 평범한 사람들을 떠올려보자. 분명 그들 중에는 왠지 모를 반짝반짝 빛이 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틀에 박히지 않은, 자신만의 어떤 독특한 세계가 있을 것 같은 분위기의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자신만의 '경험'들로 인생이 풍부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주어진다. 그러나 그 24시간을 그저 살아낸다고 해서 다 자신만의 경험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일상과 사건에 파고들어갈 때,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때,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도망가지 않을 때 비로소 나는 시간과 경험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말하길, '두려움'은 모든 감정에 앞서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심지어 사랑과 행복 앞에서도 인간은 두려움을 먼저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눈 앞에 행복이 있는데도 불안해하며 행복을 잡는 것을 망설인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망설여서는 진정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의 '경험'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두려움을 가지면서도 행복을 선택하고,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위대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Fortes fortuna juvat.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행운은 용감한 자의 것이라는.
용감한 자만이 자신만의 경험들로 가득찬, 풍부한 인생을 살아간다.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언제나 나는 '자신만의 경험을 계속해서 만들어 나아가는 사람' 이라고 답할 것이다. 세상 어떤 부자도 내가 진실하게 추구해 온 나만의 경험이 없다면 불행할 것이며, 가장 높은 명예와 지위를 가진 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온몸으로 부딪혀 살아온 나의 경험과 인생은 얼마나 눈부신 것이며, 설령 그것이 고통과 고난의 연속이라해도 그 속에서 사유하고 나를 이끌어온 힘은 세상 가장 값진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깊이 존경한다. 그렇기에 조중걸 작가님을 존경한다.
용기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하는 나 자신도 사실은 매 순간이 두렵다.
오늘 하루가 두렵고, 살아갈 내일과 미래의 시간들이 두렵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헤쳐나가야 할 이 세상이 두렵다.
그러나 두려움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
주어진 운명과 우리가 살아가야 할 시간 속에서 용감하게 맞서야만, 먼 훗날 나만이 걸어온 나의 인생과 경험을 제대로 마주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정말 행복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정말 많은 힘이 된다.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이 '빙하기와 요리하기'이다.
이 부분은 정말 외울 정도로 많이 읽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불행이 닥쳤을 때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에 대한 답이 제시되어 있다. 그 중에 한 구절을 소개하며 마무리한다.
'고통 없고 상처받지 않는 인생이란 없다. 또 고통 없는 인생이 더 좋은 것도 아니고. '원유회'나 '음악수업'을 보았을 때의 감동은 암울하고 애조 띤 색조에 있고, 모차르트나 바흐의 음악도 단조로의 변조에서 극적 아름다움을 지닌다. 나는 운명이 편안하고 한결같기를 바라지 않는다. 힘든 인생인들 고마운 마음으로 견딜 용기를 바란다. 편한 운명을 바란다고 삶이 항상 편하겠는가. 운명에 대고 무엇을 바라기보다는 내 마음을 다잡으려 애쓴다.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한편, 운명과 우연도 나를 도와 줄 것이라고 믿으려 애쓴다. 나 자신에게 거듭 말한다. 낙천적으로 마음먹고 인내와 끈기로 버티라고. 비관하면 고통이 더욱 견딜 수 없다고. 운명에 기만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희망을 유지하는 것이 내 과거 삶에서 중요했다.'
-> '빙하기와 요리하기'에서 감자튀김 요리법을 소개하는 부분. 감자 요리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어쩐지 배가 고파져서 입맛 다시면서 읽었다. 역시 작가님께서 mbti 중 가장 과학자 유형인 INTJ라서 그런지 감자의 원산지에 따른 분석이 요리법에 가미된 부분이 너무 재미있었다. 요리에 대한 작가님의 통찰과 철학 또한 전적으로 공감한다. 여자든 남자든 자신의 입으로 들어가는 걸 만드는 일은 가능한 한 직접 스스로 해야한다. 밥 먹는 일을, 밥 짓는 일을 집안일 중 하나의 일로써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 보면 참 안타깝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남한테 맡긴다는 건, 내 생명을 남한테 맡기는 것과 같다. 그러니 누가 나에게 밥을 지어준다면, 그 사람의 노고에 절대적으로 감사할 것이며, 되도록이면 내가 직접 요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잠버릇'에서 코골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대목. 정말 재밌었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을 자면서, 꿈 속에서 이루어보려는 것으로 이해해보는 관용적인 부분의 문장이 정말 감각적이었다. '그들 삶의 낮과 밤의 대비가 나의 마음을 쳤다. 슬프게 쳤다. 바로크 회화의 키아로스쿠로가 감상자에게 그러했듯이.'라는 문장이 너무 아름답다. 이런 표현으로 가족의 코콜이와 잠버릇을 이해해보려는 작가의 포용이 이 수필이 가진 매력 중에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