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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서의 순정 - Innocent Step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국민 여동생'이라는 대단한 칭호를 얻은 문근영이 나온 영화 가운데 두 번째로 본 영화다. 처음으로 본 영화는 2004년 여름에 DVD방에서 '어린 신부'이다. 지지리도 재미없는데다가 잠도 심하게 와서 매우 실망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문근영이 나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랐다.
다행히 그 바람이 빗나가지 않았다. 세상 물정이라고는 아무 것도 모르는 순수한 연변 처녀로 열연한 문근영은 놀라운 춤솜씨를 보여주었다. 예전에 아버지 친구 분이 우리집 안방에서 연습(!)하시는 것을 본 것 빼고는 스포츠 댄스라고는 전혀 모르는 형편인지라, 그저 놀라울 정도로 잘 춘다는 말만 하면서 감탄하기만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춤추는 것 빼고는 볼 것이 거의 없었다. 이철용(김기수 분)과 오미수(정유미 분)가 나름대로 웃긴 연기와 내 안목에서는 채린(문근영 분)과 영새(박건형 분)과 견주어 볼 때 전혀 뒤지지 않는 멋진 춤솜씨로 나를 즐겁게 해 주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이야기도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듯 했고, 설정이 너무 티가 나서 문근영이 춤을 춰서 애써 벌어놓은 점수를 다 까먹었다.
어떤 영화에서 배역을 맡은 배우는 그 영화에서 필요한 장면을 연기할 실력을 갖춰야 한다. 그러려고 배우들은 혹독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연습을 한다. 그런 훈련을 거친 끝에 사람들을 사로잡는 강하고 실감나는 연기가 나오는 것이다. 밀라 요보비치는 '레지던트 이블'에서 관객들에게 카포엘라 실력을 보여주었고, 모니카 벨루치는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격렬한 혈투 장면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그녀들과 마찬가지로 문근영도 이 영화에서 매우 뛰어난 춤솜씨를 보여주었다. 그녀가 처음부터 춤을 잘 췄을 수는 없다. 영화에서 멋진 연기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그토록 많이 연습한 결과가, 바로 이 영화에서 그나마 나를 만족하게 한 멋진 춤이다.
사람은 원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하면 무슨 일이든지 반드시 해내려고 힘쓰기 마련이며, 그러는 가운데 그 안에 숨어있던 놀라운 능력을 드러낸다. 지금까지 사람이 보여준 상식에서 벗어나는 기적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문제는 그 능력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과연 있기는 있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나도 내 안에 얼마나 많은 것이 숨어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나를 긍정해 보려고 했지만, 곧 있으면 한계에 부딪치고 그때마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지 의심하면서 쓰라린 고통을 맛봐야 했다.
그러나 나는 나를 믿는다. 며칠 뒤에 가야 하는 군대에서 나를 철저하게 궁지에 몰아넣어서라도 내 안에 숨어 있는 어떤 능력을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확률이 지배하며, 의식이 있고 행동하는 주체는 그 확률에 분명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