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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사부일체 - My Boss, My Hero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두사부일체(頭師父一體)'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에서 군(君)만 두(頭)로 바꾼 것이다. 임금이 아닌 조폭 두목이 스승과 아버지와 같은 급수라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제목이다. 제목 그대로 조폭 두목이 주인공인데, 일자무식인 조폭 두목 계두식(정준호 분)이 사립 고등학교에 기부금 입학제로 들어간 뒤 사학 비리에 맞서 싸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준호, 정웅인, 정운택 이 세 사람이 수많은 사람들 배꼽을 빼 놓았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웃다가 화를 내다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정확하게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명절에 TV에서 하기에 그냥 재미있게 보고 넘겼다. 그런데 요즘에 굳이 이 영화를 보고 글을 쓰도록 만드는 사람들 때문에 속이 좀 끓어오른다. 난데없이 그들이 이 영화를 걸고 늘어지는 까닭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2006년 1월 14일에 한나라당이 대구에서 개정 사학법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대구 남부교회에서 열린 이 집회에는 한나라당 주요 인물 말고도 조갑제 월간조선 사장, 김범일 대구광역시 정무부시장 따위 인물이 참석했다. 이들이 사학법 개정을 반대하는 까닭이랍시고 들이대는 논리는, 이들이 얼마나 기득권층만 철저하게 대변하는 집단인지를 증명한다.
조갑제라는 인물이야 지만원과 더불어 극우 친미 사대주의자로 유명하지만, 김범일이라는 인물은 처음 보는 사람이다. 어쨌든 이 사람이 한 말도 대단하다. 정무부시장이라면 오래 전부터 공무원으로 일했다는 말인데, 독재 정권이 서슬 시퍼렇게 살아 있을 때 어지간히도 교육을 잘 받았나 보다.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모든 국가가 이념 논쟁을 끝내고 우향우하고 있는데 유독 한국만 이념 논쟁을 겪고 있다. 분명 국민을 대립하게 만드는 불순 세력이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도라면 민주주의를 꿈꾸던 사람들이 한창 거리로 나서 민주화 투쟁을 벌이던 때이다. 극우 세력이 떵떵거리며 활개를 치던 시대야말로 우익(?) 논리에 반하는 모든 것은 폭압에 시달려야 했던 시기 아닌가? 그래서 수많은 민중들이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치며 부족한 민주주의나마 이 땅에 세워놓지 않았는가?
이념 논쟁을 부추기고 있는 세력에 친북 좌파 세력이 포함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반북 우파 세력이 그들에게 적의를 품으면서도 서로 의존하고 있는 것은 모르는가? 못 믿겠다면 지만원이 운영하는 시스템클럽에 한 번 가 보라. 이념 논쟁 없이는 나라를 구할 수 없다고 당당하게 주장하고 있다. 솔직히 이념 논쟁으로 가장 큰 덕을 보는 것은 우익 세력 아닌가? 달콤한 지배를 꿈꾸는 수구 세력에게는 우익 논리에 대항하는 세력은 무조건 국민을 대립하게 만드는 불순 세력인가? 한 마디로 그냥 닥치고 옛날처럼 고분고분 정부 말이나 잘 들으라는 사고방식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 사람은 냉전 구도가 무너지고 공산주의가 망한 자리를 박정희 독재 정권과 같은 우파 정권이 자리잡았고, 그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로서 대세였는 줄 아는 듯 하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동유럽을 휩쓸고 지나간 '오렌지 혁명'과 같은 민주화 운동은 무엇인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독재 정권을 보좌했던 우익 논리(사실 전혀 우익답지 않은)가 옳으며, 세계도 우익으로 기울고 있다는 주장이야말로 자기한테 이롭게 세상을 해석하는데 정점에 오른 모습이다. 그렇다면 라틴 아메리카에는 독재 정권이 그토록 '빨갱이'로 몰아붙였던 사회주의 좌파들이 득세하고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온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자본주의, 반세계화 운동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시덥잖은 논리를 보고 괜히 흥분한 내가 잘못이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원래 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해 보자. '두사부일체'라는 영화를 자기 주장에 써먹어 나를 흥분하게 한 사람은 누구인가?
사실 이 영화를 대놓고 깎아내린(?) 사람은 김범일이 아닌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다. '일본은 없다'를 써서 좀 뜨나 했더니, 갑자기 조선일보 논설주간으로 활동하면서 엄청난 독설로 이미지를 슬슬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나라당 대변인으로 들어가더니 이제는 완전히 할 말을 잃게 할 정도로 변해 버렸다. 한나라당에 들어가면 누구든지 전부 다 그렇게 되어버리는가? 지금 전여옥 뒤를 이어 한나라당 대변인을 맡고 있는 이계진이라는 사람도 TV에서도 많이 본 사람이었다. 나름대로 이미지가 좋았는데 한나라당 대변인 맡으면서 그동안 쌓아올린 이미지를 다 깎아먹었다고 알고 있다.
어쨌든 전여옥이 그 집회에서 당당하게 주장한 바는 다음과 같다.
"노무현 정권은 '두사부일체', '공공의 적' 따위 문화를 이용해 사학법 개정에 성공했다. 개정 사학법은 우리 아이들을 친북 좌파로 키우고, 그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드는데 홍위병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사학법 개정안을 보고 그토록 입에 게거품을 무는 세력이 그 까닭이랍시고 제시하는 것이 잘 드러나 있다. 내 관점에서는 저런 논리에 요즘에도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차라리 교원 단체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제대로 파고들어서 논쟁을 벌였더라면, 그나마 국민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러면서 이제는 논리가 딸리니까 별 희한한 것을 다 가져다 붙이고 있다. 열린우리당 안민석 의원 말따나 전여옥 의원은 당장 '두사부일체' 제작진과 출연진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해야 한다.
여기에 사립학교법 개정안 원문을 가져다 놓고 일일이 분석하고, 개정안에 반대하는 논리가 얼마나 허술한지 낱낱이 밝힐 필요는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전여옥이 한 말만 물고 늘어지면 그만이다.
이 영화를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통쾌하다고 느꼈다고 알고 있다. 전여옥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그들이 통쾌하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한 각본대로 일이 굴러가는 것이다. 요즘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수많은 황우석 교수 죽이기 음모론만큼이나 근거 없고 쓸데 없는 주장이다. 마르크스가 모든 예술은 혁명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무기로 써야 한다고 했고, 노무현 정권은 골수 빨갱이 정권인만큼 그 주장을 충실히 따랐다는 뜻인가?
어디를 봐서 노무현 정권이 빨갱이 좌파 정권인가? 하버마스 같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속한 학자들을 스승으로 모시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정책을 보면 도저히 보수 세력이 그토록 강변하는 좌파이며 사회주의 정권이라고 보기 힘들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순수한 좌파 정권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정권이든 무엇이든 자기 멋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니, '두사부일체'를 보고 통쾌하다고 느낀 나 같은 사람들이 느낀 통쾌함도 그 따위로 아주 쉽게 몰아갈 수 있는 것이다. 사립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이 말하는 그 수많은 비리는 죄다 헛소리일 뿐이라는 건가? 그토록 그들이 깨끗하다면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왜 반대하는가? 1991년에 한나라당 전신이었던 민자당이 상정해 통과시킨 사립 재단에 매우 유리한 개악안을 유지하기를 원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교육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립 학교는 교육이라는 공공 정책을 담당하는 곳인만큼 그만큼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한다. 사학법 개정안에 나와 있는 법조항을 꼼꼼하게 뜯어봐도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문제가 일어날 만한 아무런 근거도 없다. 사학법 개정은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일이며, 이번에 나온 사학법 개정안은 부족하나마 사학 비리를 척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법안에 맹렬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나라를 생각한다는 발언을 늘어놓을 자격이 없다. 1991년부터 지금까지 유지된 개악안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그들은 교육을 도대체 무엇으로 보는 것인가. 예비교사로서 매우 화가 난다.
사학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뒤 나름대로 잘 밀어붙이던 열린우리당이, 기득권이 강력하게 반발하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재건 당의장이 사학법을 다시 바꿀 수도 있다고 해서, 한나라당이 쾌재를 부르고 있다. 오랜만에 여당이 잘 한다고 많은 국민들이 박수를 치고 있는데, 또 흔들리려고 하는가?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밀어붙여 '두사부일체'라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 현실이 되는 터무니없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