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터 - Predato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상당히 오래 전에 아버지와 함께 '프레데터'를 봤다. 아버지께서는 주말에 하는 영화를 빠짐없이 챙겨 보셨는데, 나도 잔소리를 무릅쓰고 아버지와 영화를 즐겨 봤다. 아버지는 드라마보다는 액션 영화나 SF 공포 영화를 즐기셨는데, 그 취향을 나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 바람에 친구들한테 나는 앞으로 데이트 잘 하기는 글렀다는 핀잔을 제법 많이 들었다.
 

사실 이런 영화에서는 줄거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영화에 등장하는 괴생명체가 영화 속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기들을 마음껏 옥죄어 주는 것이다. 그러려면 자연스럽게 영화 속 사람들과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완벽하게 하나가 되어야 한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괴물이 나타날 지 알 수 없다. 온몸이 긴장하고 턱이 저절로 덜덜 떨리고 머리카락이 쭈볏한다. 나는 유난히 겁이 많은 편이라서, 한 때 공포영화를 볼 때는 반드시 이불이 필요하다. 그리고 굉장히 인상 깊은 공포영화를 본 뒤에는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잔다. 요즘에는 그나마 담력이 약간 세져서 이불은 필요없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여자친구가 생겨서 공포영화를 보러 가면 여자친구보다 더 덜덜 떨 듯 하다.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훌륭한 근육을 지닌 사람을 뽑는 대회인 미스터 올림피아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는 아놀드 슈왈츠 제네거가 '터미네이터'에서뿐만 아니라 '프레데터'에서도 관객들을 만족시킨다. '터미네이터'에서는 주인공인 사라 코너를 죽이려고 뒤쫓는 로보트로 나왔지만, '프레데터'에서는 반대로 외계 생명체에게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친다. 영화 속에서 아놀드 슈왈츠 제네거는 더치라는 이름을 쓴다.

 

처음에는 특수부대원들이 정글 안에 있는 게릴라 기지를 습격하는 장면을 보고 그냥 단순한 액션 영화인 줄 알았다. 그런데 구출 대상이 완전히 가죽이 벗겨진 채 매달려 있는 장면에서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사람을 그렇게 죽인다면 분명히 내가 기대하는 대단한 괴물일텐데, '프레데터(Predator : 포식자, 육식 동물)'라는 제목을 생각하면서 더욱 기대가 부풀었다.

 

어쨌든 구출 대상이 모두 죽어서 목표를 이루지 못한 대원들은 이상하게도 단 한 명만 남아 있는 게릴라, 그것도 여자를 생포한 뒤 숲을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여자 게릴라인 안나는 동료들이 죽은 까닭을 전혀 모르고 있다. 게릴라들이고 특수부대원들이고 뭐고 전부 다 프레데터한테 처참하게 살해당하는데, 이 여자는 더치와 끝까지 살아남는다.

 

나중에 안 지식에 따르면 그 까닭은 프레데터가 '전사(戰士)'로서 자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곧 적의를 보이는 것은 그 어떤 생명체라도, 그리고 나중에 목숨을 구걸한다 하더라도 기필코 죽이지만, 싸울 마음이 없는 상대이거나 형편없이 약한 상대는 죽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특수부대원들, 특히 더치와는 피 터지게 싸운다. 더치가 프레데터를 죽이고 살아남은 것일 뿐이지, 프레데터가 안나를 보호하는 더치를 공격할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쨌든 처음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에게 끌려간 희생양은, 행군하다가 쉬면서 안나를 지키고 있던 대원이다. 흐물거리는 프레데터를 대원들 가운데 처음으로 보고 공포에 떠는 빌리를 이해할 수 없던 그는, 갑자기 나타난 흐물거리는 물체에게 끌려가 버린다. 놀란 대원들이 안나를 다그치자, 안나가 공포에 떨면서 하는 대답이 걸작이다.

 

"숲이 나와서 끌고 가 버렸어요." 

 

하긴 몸을 투명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니 당연히 괴물이 숲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그들은 사라진 대원이 온몸에 화상을 입은 것처럼, 곧 그들이 게릴라 기지에서 본 가죽이 완전히 사라진 모습으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때서야 대원들은 뭔가 자기들을 사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온 몸에 전자 장비와 무기를 부착한 외계 괴물이 그들을 쫓고 있는 것이다.

 

이 생명체는 단순히 완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최첨단 기술까지 유감없이 보여주면서, 특수부대원들을 공포로 휘감으며 하나하나 처리한다. 사람처럼 생기기는 했는데 얼굴은 너무 못생겨서 역시 외계인답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거미 대가리를 본떠서 프레데터 얼굴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하다.

 

그리고 이놈은 자외선이 아니라 적외선을 감지한다. 가면 오른쪽에는 레이저 투시 장치도 달려 있다. 그래서 이놈은 밤낮에 상관없이 열을 내는 특수부대원들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은밀하면서도 빠르고 가차없는 공격에 대원들이 하나씩 죽어나가면서, 결국 안나와 더치만 남는다. 둘만 남았을 때 드디어 구조대가 도착한다. 그러자 더치는 헬리콥터에 안나를 태운 뒤, 일부러 프레데터를 유인하여 쫓긴다.

 

그런데 프레데터가 진흙을 바른 자기를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을 본다. 프레데터는 적외선을 보기 때문에 진흙을 발라 열을 숨기고 조금 발산되는 적외선도 산란시켜 버리는 더치를 보지 못한 것이다. 더치는 그때서야 프레데터를 잡을 계획을 세운다. 물론 진흙을 빈틈없이 계속 발라서 프레데터는 함정을 설치하는 더치를 전혀 보지 못한다. 

 

게다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몸을 투명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어서 사람들은 괴물을 볼 수가 없다. 자외선이 아닌 적외선을 감지하기 때문에 자기 모습도 얼마든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더치와 맞장을 뜨기 전에 더치를 추격하다가 물에 뛰어드는 바람에 스텔스 기능이 사라진다. 그래서 진흙을 바른 더치와 싸울 때는 오히려 보이지 않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프레데터가 감지하지 못하는 더치가 프레데터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무장도 어설픈 것 같으면서도 제대로 하고 있다. 투박하면서도 화려한 어깨와 무릎 보호대는 기본이다. 보통 단검과는 분명히 다른 예리하고 장식이 많은 단검으로 프레데터는 사람 가죽을 벗기고 전리품으로 뼈를 수집한다. 거기에다가 어깨에는 플라즈마 포탄을 발사하는 숄더 캐논(Shoulder Cannon)까지 있다. 더치는 나무 뒤에 숨어서 프레데터를 공격하다가 플라즈마 포탄 공격을 간신히 피하지만, 그만 나무에서 떨어져서 위기를 맞는다.

 

사실 프레데터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몸에 장착한 시한 폭탄이다. 더치가 설치한 통나무에 깔리고 얻어맞아 치명상을 입은 프레데터는 시한 폭탄을 가동시킨 뒤, 놀라서 도망치는 더치를 마음껏 비웃는다. 이 또한 전사로서 자부심이 굉장히 강한 프레데터로서 당연한 행동이었다. 상대에게 져서 치욕스럽게 죽느니 차라리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시한 폭탄을 터뜨려 자살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어쨌든 매우 재미있는 영화이다. 영화 자체뿐만 아니라 프레데터라는 외계인이 매우 큰 인기를 얻었다. 지금까지 여러 영화에 수많은 외계인이 나타나 관객들에게 인기를 끌어 보려고 나름대로 힘썼다. 그러나 프레데터(Predator)만큼 인기를 얻은 외계인도 드물다. 사람 피부 같은 약한 조직 따위는 아주 쉽게 녹일 수 있는 산성 침을 질질 흘리면서 야생 동물과 같은 두뇌 수준만으로 목표물에게 달려드는 에이리언보다는, 고도로 발달한 무기를 가지고 목표물을 정확하고 깔끔하게 처리하는 프레데터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어찌나 이 외계인에 열광했는지 나는 이 외계인을 직접 만나보고 그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내고 싶었다. 그러려면 과학자가 되어 외계인을 찾아야 했다. 그럴 준비를 한답시고 어머니가 가져다 놓은 학습지는 안 풀고, SF 공상 소설을 쓰고 브리태니커 백과 사전을 뒤적였다. 역시 어린아이다운 철없고 순진한 생각과 행동이었다. 어머니는 학교에서 시키는 공부는 제대로 하지 않는 내 모습을 매우 싫어하셨고, 몇 번이나 호되게 혼난 뒤 나는 그 꿈을 잃어버렸다.

 

대학교에 와서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사람에게 푹 빠지는 바람에, 전공과는 상관없이 과학에 열정을 불태우던 내가, 어릴 때 했던 생각을 다시 떠올려 외계생물학을 공부하려고 마음먹었던 때는 2학년 1학기였다. 자유전공 수업으로 '생명과학'을 들었는데, 수업을 열심히 듣지 않아서 성적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DNA 따위 기초 생물학이 다루는 내용은 익혔으니, 어렸을 때 알고 싶었던 외계생물학을 건드려 봐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 뒤 열심히 자료를 찾아봤지만, 외계생물학 자료라고 해 봐야 미국 몇몇 대학과 NASA 따위 기관에 등록된 몇몇 자료들밖에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어떤 특정한 외계 생명체를 직접 다룬 내용은 없었다. 기껏해야 드레이크 방정식 따위 외계 문명을 찾는 방법, 환경에 따라 예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외계 생명체 모습,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 따위 내용뿐이었다. 내가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는 미국에서 이미 외계인 시체를 많이 확보했고, 그를 연구하여 엄청난 외계생물학 자료를 축적했다는 주장이 나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자료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인터넷에 외계 생물체를 연구하는 곳이 있기는 했지만, 영화에 나오는 외계 생명체만 다뤄서 나를 크게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그저 잡다한 SF 지식이나 잔뜩 얻었을 뿐이다. 

 

초등학생 때 그랬던 것처럼 대학생 때도 어떻게 보면 굉장히 쓸데없는 생각에 사로잡혀 많은 시간을 보냈다. 물론 어느 정도 발전하기는 했지만, 확실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초등학생 때나 대학생 때나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순식간에 어떤 알 수 없는 열정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이상한 짓을 서슴없이 하게 할 정도로, 프레데터는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나는 영화를 보는데 이골이 난 사람이 아니라서 영화를 제대로 분석하고 평점을 줄 수는 없지만, 만약 준다면 이 영화에는 무조건 별 다섯 개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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