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아톤 - Malat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하나뿐인 여동생이 2005년 2월 2일에 부산에 놀러왔다. ‘말아톤’을 보고 싶다고 난리를 쳐서 남포동 CGV에 가서 영화를 봤다. 평이 매우 좋다고 해서 기대를 어느 정도 하고 들어갔는데, ‘말아톤’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참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다. 지금까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일은 기껏해야 두 번밖에 없으니 ‘오랜만에’라는 표현도 참 어색하다. 예전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많이 본 것처럼 들리니까. 내가 지금까지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실미도’와 지금 감상문을 쓰고 있는 영화 ‘말아톤’인데 나는 이 두 영화를 보면서 여러 번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눈물을 흘린 까닭보다는 영화를 보면서 내가 한 잡다한 생각을 더 많이 쓰고 싶다.

이 영화는 두 사람에게 초점을 둔다. 윤초원(조승우 분)과 초원이 엄마 경숙(김미숙 분)이 그 두 사람이다. 초원이는 몸은 스무 살이지만 정신 수준은 다섯 살에 멈춰버린 자폐증 청년이다. 경숙은 초원이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핀다. 그러느라 집안일에도, 한창 사춘기인 둘째 아들에게도, 남편에게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나는 그런 경숙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여기에서 많은 생각이라는 말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서 나는 영화를 보면서 매우 혼란스러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왜 그랬는지 한 번 이야기해 보겠다.

경숙이 초원이에게 매달리는 것은 진정한 내리사랑인가, 아니면 집착일 뿐인가?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릴 것이다. 물론 홍보물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름, 엄마’라고 나오지만 약간 삐딱하게 보자면 끝도 없다. 초원이가 마라톤 전구간인 42.195km를 뛰는데 성공하는 것을 엄마는 왜 바랐는가? 초원이도 그것을 바라고 있었는가? 초원이가 달리기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초원이가 과연 그런 목표를 지니고 있었는가? 초원이가 달리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대한 의심은 나중에 하도록 하고, 일단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 초원이가 마라톤 전 구간을 완주하기를 그저 엄마만 바라지 않았는가? 서울마라톤대회에서 초원이가 3등을 했을 때 찍은 사진 속에서 경숙은 웃고 있지만 초원이는 웃지 않고 있다. 왜?

경숙은 젊을 때 초원이를 공원에서 버렸다. 그것이 아주 짧은 순간 동안 한 생각 때문에 그랬을 뿐 결코 진심이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러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자신 있다고 대답하지는 못하겠다. 그런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왜냐하면 경숙이 나중에 초원이에게 집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집착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 때는 잘못했다면서 앞으로 남부럽지 않게 초원이를 잘 챙겨야겠다는 강박 관념 때문에 경숙은 결국 초원이에게 집착하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초원이를 지도하던 전직 유명 마라톤 선수인 정욱이 경숙에게 ‘자식 사랑과 집착을 착각하지 말라’고 말하자 왜 경숙은 뭐라고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는가? 정곡을 찔려서 그런 것이 아닐까?

집착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매우 괴롭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집착하는 사람이 훨씬 더 괴롭다. 그렇기에 초원이가 어릴 때 엄마가 자기를 버렸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 경숙은 어떻게 되었는가? 초원이에 대한 집착으로 괴로워하면서 생겨서 곪고 곪은 상처 때문에 결국 쓰러지지 않았는가? 수술을 받은 뒤 경숙은 남편에게 자기가 초원이에게 집착했다고 인정한다. 그 결과는 어땠는가? 한창 사춘기인 둘째 아들은 삐뚤어졌고 집안일도 제대로 못 해서 집안은 엉망이 되었다. 둘째 아들은 엄마에게 뺨을 얻어맞은 뒤 자기에게도 관심을 좀 가져줄 수 없냐고 울먹이면서 말한다. 삐뚤어진 둘째 아들은 초원이에게만 집착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경숙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곱게 볼 수도 없었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아이들이 부모가 집착하는 바람에 꿈을 잃어버리고 자기가 원하는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우울해진다. 나는 나름대로 줏대가 생긴 뒤 예전보다 훨씬 더 소신껏 밀어붙이고, 그 소신이 과연 옳은지도 항상 점검해 보기 때문에 그런 아이들을 보면 더욱 안타까운지 모르겠다. 물론 영화에서 초원이는 자기가 달리기가 좋다고 말한다. 천만다행이다. 만약 초원이가 달리기를 싫어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면 그녀는 과연 어떠했을까? 부모는 자식의 목표와 자기의 목표를 혼동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목표를 자식의 목표라고 그러면서 자식에게 자기의 목표를 강요하면 둘 다 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행스럽게도 초원이는 달리기를 좋아하며 달리기에 대한 순수한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처음에는 정욱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지만 차츰 정욱에게 마음을 열고 정욱도 초원이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초원이는 자두건 물이건 나눠주는 법이 없다가 나중에는 정욱에게 물병을 권한다. 그러면서 초원이는 열심히 훈련하며 마라톤 완주라는 목표에 조금씩 다가가기 시작한다. 달리기에 대한 순수한 의지가 드디어 결실을 볼 때가 가까워진 것이다.

그런데 경숙이 또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자기가 초원이에게 집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 뒤에도, 그녀는 자기의 목표와 자식의 목표를 여전히 혼동하고 있었다. 초원이는 일기장에 내일 할 일은 ‘말아톤’이라고 또박또박 적어놓으며 의욕을 불태우고 있는데, 그녀는 자기가 욕심을 버렸다고 해서 아들을 마라톤 대회에 못 나가게 하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초원이는 춘천국제마라톤대회에 나간다. 엄마와 동생이 쫓아와 말리지만 초원이는 선수들과 섞여 사라진다.

“초원이 다리는 몇 만 불?”

“백만 불…….”

“몸매는?”

“끝내줘요!”

아들이 자기 손을 놓고 달려가 선수들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드디어 초원이에 대한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홀가분해하지 않았을까? 그 순간이야말로 초원이와 경숙이 서로를 거의 완벽하게 이해하고 둘 다 자유로워지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멋대로 해석하자면 내리사랑과 순수한 의지가 드디어 빛을 보는 순간이라고 봐야 하는가?

결국 초원이는 3시간 안에 42.195km를 달리는데 성공한다. 마라톤이 끝난 뒤 초원이는 누구보다도 해맑게 웃는다. 그 웃음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으랴. 달릴 때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그라고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나는 그것도 의심했다. 과연 달리는 그 자체가 즐거울까? 차라리 정욱이 경숙에게 했던 말이 나에게 훨씬 더 와 닿는다. 마라톤이 무슨 어린애 뜀박질인 줄 아는 것일까? 그저 뛴다고 해서 즐거워서 힘든 것도 잊을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걸까? 심장에 더해지는 압박과 풀리는 근육이 과연 그에게 행복을 주는가? 달릴 때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느낌을 경숙은 알고 있었을까? 초원이는 과연 달리는 자체가 즐거웠을까? 달리기가 끝난 뒤에 느낄 수 있는 성취감과 평온함이 그 힘듦을 보상하고 남는다고 초원이가 말한다면 훨씬 더 그럴 듯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몸과 마음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욕망에 집착하고 그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초원이를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나도 내 관점으로 보는 바람에 초원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초원이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초원이가 달리기를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마라톤이 끝난 뒤 그가 지은 환한 웃음을 보라. 무엇을 더 의심하겠는가?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인 배형진 군(그냥 형진이 형이라고 부르고 싶다만 원래 생판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격식을 차려서 이렇게 쓴다)이 춘천국제마라톤대회가 끝난 뒤 철인 3종 경기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는 자막이 나오면서 영화는 끝난다. 그 뒤 배형진 군은 어떻게 되었는가?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 뒤 나는 배형진 군이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관한 새로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한 사회인으로서 살아갈 능력을 키우려고 지금 직업학교에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달리기를 하고 싶어서 매우 힘들어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초원이가 다시 직업학교에서 직업 훈련을 받을 때 영 어설펐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배형진 군은 이제 마라톤 훈련을 받을 때처럼 잘 해내고 있다고 한다. 지금 배형진 군의 어머니는 예전처럼 그에게 집착하지 않으며, 그가 한 사회인으로서 정상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그 새 소식을 듣고 빙그레 웃었다.

배형진 군.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웃음과 눈물과 감동을 선사해 주기 바랍니다. 그대가 한 사회인으로서 잘 살아가고 있다는 새로운 소식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영화 정말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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