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나 나는 꿈꾸는 청년이고 싶다
류태영 지음 / 국민일보 / 2000년 12월
평점 :
품절


2008년 2월 21일. 전역한 뒤 새롭게 시작하고자 부산에 내려올 때 내 마음은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했다. 2003년 11월에 처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전철에서 내려 부산대학교 앞을 걸어 올라가며 내가 느꼈던 그 복잡한 감정, 해방감과 희망과 두려움이 범벅이 된 묘한 감정과 거의 같은 것이었다.
 

그로 미루어 판단할 때 나는 태어난 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그 19년이나, 군 복무 기간인 2년이나 너무나도 암울하기는 마찬가지였다고 여기고 있다. 분명히 떠오르는 아침 태양을 바라보면서도 빛이 보이지 않는 그 참을 수 없는 역설. 내 눈 앞에서 더는 그 때와 같은 풍경을 보지 않아도 되기에, 끝도 없이 어두운 심연을 품은 자아 속에 갇혀 있는 확고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기억. 그 역설과 기억을 떨쳐버리고자 나는 빛으로 가득 한 새로운 삶을 꿈꿨다. 무엇이든지 내 의지와 열정에 따라 이루고 한 치 오차도 없는 삶을 꾸려 나가는 그 찬란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내 자취방은 부산대학교 앞 번화가 바로 옆에 있다. 자취방이야말로 내가 지금까지 그토록 원하는 공간이었다. 개인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대학 기숙사와 내무반에서 4년을 보내면서, 나 혼자 은거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욕구는 더욱 커졌다. 그 욕구를 드디어 충족시켰던 만큼, 나는 아주 큰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번화가 따위는 내가 계획했던 대로라면 아예 내 관심에서 영영 사라져야 했다. 오로지 '정진'이라는 두 글자만을 외치며, 류비셰프와 다치바나 다카시와 피에르 뒤페에 열광하던 내 모습과 모순되지 않는 자아를 만들어 나가야 했다.

 

하지만 전역한 뒤 지금까지 내가 보낸 시간을 돌이켜 볼 때, 그런 거창한 계획 따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런 휘황찬란한 거리를 바라보면서 그 모든 것을 즐기겠다던 비틀어진 열망에 사로잡힌 채 거리를 누볐는가? 내가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헛된 발걸음을 떼어놓는 사이에 내가 본받아야 할 이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자아 실현이라는 막연하지만 분명한 길을 걷다 못해 달리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방황 따위는 아예 무엇인지조차 모른다는 듯이 잠시도 쉬지 않고 말이다.

 

그러는 사이 나는 술을 마시고 방황하며 비틀거리고 낄낄댔으며, 방에 오면 내 바로 옆에 가득 찬 책꽂이 그 자체에만 헛된 만족을 느끼면서 풀썩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런 나를 아침에 뜨는 햇빛이 미친 듯이 찔러댔지만, 나는 아픔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 정도로 나는 방탕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느 글을 전역하고 난 뒤 거의 써 본 적이 없다. 부족한 점이 많았다던 대학교 1~2학년 때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이 읽고 썼다. 그리고 그토록 힘들고 괴로웠던 시기에 어떻게든지 책을 읽고 글을 써야겠다는 헛헛함이 있었다. 잠이 부족했을지언정 한 자라도 더 읽고 쓰겠다는 의지가 있었기에 무거운 눈꺼풀을 치켜올리면서 책을 읽었다. 읽을 수 없다면 무엇이라도 종이에 끼적거리면서 한 두 조각이라도 소중하게 모아서 보관했다. 그 때 읽고 보고 적은 모든 것을 정련해서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그 날만 나는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그런데 막상 그 시기를 맞이한 나는 지금 철저하게 무너져서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배가 불러서 이 따위 고민에 빠져 폐인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려고 했다. 한 치 오차도 없이 움직이면서 완제품을 만들어 내는 완벽한 동작 원리를 갖춘 기계처럼 살고 싶었다. 해병대에서 그토록 극심하게 고민하면서 그 모든 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이 책 '언제까지나 나는 꿈꾸는 청년이고 싶다'와 같은 책을 읽으면서 제목 그대로 언제까지나 한 결 같은 의지와 열정을 지닌 청년과도 같은 삶을 유지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류비셰프? 다치바나 다카시? 피에르 뒤페? 지금 내 모습 어디에서 이 세 사람과 티끌만큼이라도 비슷한 점을 찾아볼 수 있단 말인가? 시간 통계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이 단순히 시간을 잡아먹는 습관일 뿐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었지만, 그저 그 점을 인정하기 싫어서 버티고 있을 뿐이다. 책만 잔뜩 사면서 한 달에 책을 겨우 두 어 권밖에 읽지 않는다. 철저하게 욕구를 관리하면서 해야 할 일을 꼬박꼬박 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살려고 내가 그토록 힘들었던 지난 시간을 어떻게든지 견뎠단 말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 책에 나오는 류태영 박사처럼, 도서관 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에 꽃망울이 터질 듯이 부풀어오르는 것을 보며 공부했는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꽃망울은 온데간데없고 낙엽이 보였다는 일화를 남길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는가? 읽는 것만으로도 배가 고프고 잠이 와서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가난한 시절을 여과 없이 담은 문장을 읽으면서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단 말인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영상 가운데 목표로 전진하던 그 보람찬 순간이 과연 얼마나 되었는가?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그 모든 것이 실제로는 얼마나 덧없던 것이었는지 그토록 절실하게 깨닫지 않았는가? 그 깨달음에 따라 움직이지 못하고 있의 지금처럼 수 조 갈래로 나뉜 이 지긋지긋한 신경에서 생겨나는 전개념을 불안한 언어로조차도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때로는 피눈물을 흘려가면서까지 썼던 모든 글을 쓰레기로 만들어 버릴 것이나? 언행일치를 넘어서는 언문행일치를 이루는 진정한 자아실현이라는 그 꿈을 이렇게 어이없이 포기하고 말 것인가?

 

절대 그럴 수 없다! 나는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든지 벗어나야 한다. 누구보다도 더 치열하게 내 삶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고민해야 하며, 그 고민이 행동을 제약해서도 안 된다. 지금 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 자체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미 기득권 세력에 포함되어 있다는 그 비판을 극복해야 한다.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부족한 시간이나마 어떻게든지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놓은 것도 아니니, 더욱 서둘러야 한다.

 

내 나이 어느덧 20대 중반으로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내 모습을 냉정하게 바라보면 20대 중반까지 내 앞에 펼쳐져 있던 무수한 가능성을 헛되게 날려버린 실패자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서 무너질 수는 없다. 나는 이 책 제목대로 언제까지나 꿈꾸는 청년이고 싶고, 그런 청년답게 내 삶을 정말 알차게 꾸려가고 싶다. 베르나드스키가 진리를 탐구하면서 죽어도 좋다는 비장한 결언을 남겼듯이 나도 그러고 싶다.

 

지금까지 온갖 고민을 해 봤지만, 결국 지금 이렇게 추한 내 모습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터득한 것들을 바탕으로 세운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제는 더욱 철저하게 외부 환경과 나를 차단하고 예전에는 다 낡아빠져서 그저 나를 옭아매기만 하는 그런 쓸데없는 틀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더욱 강하게 해서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겠다. 시간과 공을 들여 쓴 글이 쓰레기가 되어 버리는 일을 한 두 번 겪은 것이 아니지만, 존재 자체가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나을 것이다.

 

다시 글을 쓰자. 역겨운 가래가 끓어오른다면, 거침없이 뱉어버리자. 그리고 청년답게 뜨거우면서도 차갑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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